도교의 상징이 있다면 바로 태극에 있다
음과 양이 있고 그 가운데는 애매모호한 선 하나가 있다
이것은 그 경계를 나타내는 것인데 그 경계의 기준이 바뀌면
이것이 보여지는 것과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만물에는 여러가지의 모습이 존재하기에 어떤이들은 이것을 보고
불쾌함을 표시하고 어떤이는 같은 것을 보고도 그것이 아름답다
말하기도 한다
보기에는 하나인것 같은데 실제로는 무수히 서로 다른 여러가지의 모습들이
그 안에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이 움직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그 모습도 변하게 되고
지금 정답과 같이 보이는 것은 영원히 그러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오답이 되기도 하고
현재의 오답이 미래의 시간에서는 정답이 될때도 있다
그래서 지금 순간의 지혜를 이세상 최고라 말하는 불교는 실제로는 이치적으로 부족함을 뜻하는
것이다
금강보다 강하다는 지혜는 그보다 더 난 지혜가 등장함으로 손쉽게 부서질 연약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석가모니 그 자체의 말과 지혜가 아니라 불교에 담겨진 유용함의 원리가 중요하다
기독교 또한 믿음을 이용한 이치를 이용할줄 아는 것에 따라 너희의 나아감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너희가 보아야 할 것은 종교에서 말하는 그대로 말하는 전함이 아니라 바로 어떤것이 이렇게 작용을 하는
원리를 보아야 한다
도교는 원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나타내기 때문에 모든 종교의 개념을 이치와 이해로 풀어나갈 수 있다
만일 가와 나 서로 다른 이들이 다툼을 벌이고 있다면 이 둘중에 누가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
가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둘 모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사태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싸우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서로의 생각을 납득하지 못한채 감정으로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일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과 같이 생각이 들어도 모든 일에는 순서와 계획이 존재한다
만일 내가 이전에 나의 생각을 표출하지 못해 손해를 본 일상이 존재했다면
자신이 무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번에는 자신의 확실한 생각을 말하겠어
아니면 상대의 말을 받아 치겠어란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는 그 순간이 되면 왜인지 오늘은 유독 날카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기도 하는데
이는 자신이 어떻게 되고자 하는 목적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만일 선거에 나가는 정치인이 당선이 목적이라면 그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로 인해 피해를
받아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선하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라는 계획이 있기 대문에
좋은 사람을 연기하며 이를 잘 흘려 보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목적에 따라서 사람들은 화도 내고 웃기도 하고 순간 순간 대응을 다르게 전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굳이 내가 어떤일에 대해서 날카롭게 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의 목적이 좋은 사람을 유지하는 것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누군가와 싸움을 지속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누군가의 논리가 더 낫고 누가 정의인지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가 된다
나의 감정을 화나게 한것으로 인하여 어떤식으로든 상대방은 대가를 치뤄야할 응징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는 정의는 이해를 다투기 위한 논함이 아니라 상대를 깎아 내리기 위한 수단의 도구로써 사용되기에
이는 논리의 싸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은 정의와 정의가 싸우는 것이 아니게 된다 둘 모두 감정에 사로 잡혀 응징을 위해 단지 정의라는 주제를
자신의 목적에 사용하는 것 뿐이다
그들은 이미 상대방을 해로운 존재로 정의하고 대화를 하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흠과 구실을 삼아 깎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서 불교는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든 내앞에 고통이 있든
그 답을 고정시키기로 정한 것이다
문제 없음으로 말이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가 화를 낼 필요도 화를 느낄 필요도 없다
목적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교의 원리이다 답이 정해져 있다면 그 과정이 어떻든 나의 목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석가의 말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스스로 답을 만들 수 있다면
상황도 너의 의도대로 컨트롤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의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볼 수 있다면 그 원리를 이용하여 감정대로 움직이면서도
결과를 유도하는 것또한 가능하다
화가 났지만 그 화를 이용하여 이를 열정으로 변환하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그 화가 반드시 나쁜 것으로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프지만 오직 슬픔으로만 삶이 끝이 나지는 않는다 또다시 새로운 대상을 향해
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이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을 이번에는 시도해 볼 수 있다면
슬픔은 더 큰 아름다움으로 향하기 위한 그저 발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의 원리라는 것이 결국에는 그 답이 정해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면
너의 노력으로 너의 빛과 너의 나아감을 충분히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경전이 아니어도 상관없고 누군가의 격언이 없어도 상관이 없다
네 스스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기에
그 어떤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화를 내면서도 그것을 왜 내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것은 미묘하여 잘 들여다 보지 않으면 스스로도 알수 없는 것들이다
화를 표출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에 욱 하는 감정이 올라온다면 이미 결과를 그리 정했기
때문에 화를 내는 목적하에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감정을 컨트롤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 너에게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선하나가 달라지면 음과 양이 모습이 바뀌는 것처럼 어떤 목적여하에 따라 너는 파괴적인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이를 이용한 나아감을 만들 수도 있다
내 기분이 불쾌하니 너또한 응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과
화는 났지만 원만한 해결이 목적이 된자는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에 과정은 물론 결과또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갈 것인지 인생에 대해서 그 목적을 정하기만 하여도
너희는 많은 실수를 줄이면서 살수 있고 어느정도 의도한대로의 움직임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은 하느님을 믿는다 하여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을 믿는다 하여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너희가 종교적 개념의 고정성에서 탈피해야 하는 이유이다
만일 내 마음에서 누군가 시비를 걸었을때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누군가 나에게 불만을 표시한다 해도 나는 그에게 이해와 수긍 그리고 칭찬을 통해
좋은 결말로 마무리 할 수 있다
사람으로써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목적이 있느냐
대화할때는 어떤 사람이고 싶으냐
칭찬을 할때는 어떤 모습으로 남에게 비춰지고 싶으냐
평소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하나하나의 존재함에는
너 스스로 너의 모습과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방법적 개념이 있다
나에게는 견해를 다투나 감정을 다투지 아니한다는 평소의 생각이 있기에
나를 모멸하는 글에도 나는 파괴적으로 끝을 내지는 않는다
나의 삶에는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져야 한다는 신념도 목적하에 존재하기에
나는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말을 하여 더 나아가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것은 크게 도움이 되는 생각들이 있기에 스스로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의 수준이 더 높아져 삶을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연결 할 수 있다
너희도 아는 것처럼 나는 일생동안 단한권의 책도 읽은 적이 없고 어떤 경전을
본일도 없으며 누군가의 말에 머무른 적도 없다
하지만 나 스스로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원리를 생각하기에
그 모든 방법적 개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예수의 말에만 머물렀다면 실제로 내가 이런것에서는 어떻게 나아가고
저런것에서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모두 보거나 알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에 자신의 행복을 찾는 방법은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 스스로가 찾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을 구원한 이의 이름이 천국인 이유이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 보며 마냥 시간을 때우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보다 먼저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 입으로 말을 할 수 있는자가
자신을 구원하여 행복과 연결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말을 할 수 있어서 지금 나는 행복하다
나의 글을 읽는 이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곳에 글을 쓰는 이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에 어떤이유를 붙이든 결과는 너의 행복과 나아감으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
나의 종교가 맞다 틀리다가 아니다 지금 네가 행복 한 것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없다면 네 종교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네 삶이 불행한데 어찌 그것이 너를 구원 할 수 있겠느냐 그 이름이 하느님이라도
너를 구해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네 삶의 목적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계획을 잡는 것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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