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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마치 인간 사회를 축소해 놓은 듯한 질서와 구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는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개미 사회를 의인화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여줍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잠언 6:6–8)


개미 사회에는 여왕, 수개미, 병정개미, 일개미가 각자의 역할을 맡아 살아갑니다. 그들은 거대한 집을 짓고, 때로는 이웃 개미 집단과 전쟁을 벌이며 생존을 이어갑니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 사회의 권력 구조와 경쟁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개미 사회에서 눈에 띄는 점은, 여왕개미와 수개미만이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개미는 스스로 노동하지 않지만, 일개미들로부터 보호와 보살핌을 받으며 중요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또한 개미의 번식 방식은 매우 독특합니다. 수개미는 여왕개미의 유전자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생명의 탄생은 철저한 질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여왕개미가 태어나면, 특정한 시기에 하늘로 날아올라 ‘혼인비행’을 통해 종족을 이어갑니다. 이 장면은 마치 하늘에서 이루어질 영적 혼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요한계시록 19:7)


개미들에게는 많은 위험이 존재합니다.

명주잠자리 유충은 개미귀신이라 불리며 서양에서는 개미사자라고 불리우는데, 개미지옥’이라 불리는 곳으로 개미를 유인해 죽음으로 이끕니다.

이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유혹과 악에 이끌려 멸망에 이를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전서 5:8)


개미의 뇌는 기생하는 파리에 의해 조종되어 머리가 잘리거나 이상 행동을 하다가 죽게 됩니다

이는 사람이 외부의 악한 영향에 지배될 때 얼마나 쉽게 길을 잃을 수 있는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때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 (에베소서 2:2)


한편, 파리는 더러운 곳에 머물며 병균을 옮기는 존재로 악한 것에 자주 비유됩니다. 겉으로는 손을 비비는 듯한 모습이 마치 용서를 구하거나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 성경적으로 보면 외식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태복음 23:13-15)


파리와 대비되는 존재로 꿀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꿀벌은 꽃을 오가며 꿀을 만들어내지만, 파리는 더러운 환경에 머물며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를 옮깁니다. 같은 곤충이지만 그 삶의 방향과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는 인간 역시 어떤 것을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짐을 보여줍니다.


벌은 애벌레로 태어나 로얄젤리만 먹으면 여왕벌이 됩니다.그리고 수명도 일반벌의 7주가 아닌 7년까지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음식’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로얄젤리가 상징하는 성경 말씀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태복음 4:4)


이처럼 자연 속 작은 생명체들 안에도 다양한 질서와 상징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리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열립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마태복음 7:7)


곤충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창조의 질서와 영적인 의미를 묵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이 우연이 아닌, 깊은 뜻과 목적 가운데 지어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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