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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린 두 죄수가 누구였는지는 성경이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이 강도라고는 하지만 정확히 어떤 죄로 인해 사형에 이르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 양옆에 함께 달렸다는 사실은 단순한 역사적 장면을 넘어,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 오른편과 왼편의 두 죄수는 마지막 때에 나뉘게 될 두 부류의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한 사람은 끝까지 불신과 조롱 가운데 머물렀고, 다른 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이는 장차 인류가 양과 염소로 나뉘게 될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 (마태복음 25:31-33)
그렇다면 예수님께 낙원을 약속받은 그 죄수는 곧바로 하늘나라에 들어갔을까요?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23:43)
이 말씀은 단순히 시간적인 즉시성을 의미하기보다, 구원의 확실성과 약속의 확정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부활과 구원의 질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고린도전서 15:23)
부활의 첫 열매는 그리스도이시며, 그 이후에 그 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차례로 죽은 뒤 부활하여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또한 주님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행해진 선행들중 작은 행위 하나까지도 결코 헛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10:42)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우리의 영원을 가르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붙들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존파 사건의 김현양과 같이, 사형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역시 죽음 이후에는 부활하게 되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은 각자의 삶에 따라 양과 염소로 나뉘는 판단을 받게 됩니다.
"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고린도후서 5:10)
만일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다면,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성장 과정, 그리고 그가 처했던 여러 상황들이 모두 공의롭게 고려될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순간의 회개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실하다면 결코 가볍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그의 행위 또한 결코 무시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랑과 공의를 가지신 분이시기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온전한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의 최종적인 결과는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은 길어 보이지만, 영원의 관점에서는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십자가 위 두 죄수처럼, 우리 역시 같은 시간을 살지만 전혀 다른 결말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끝내 마음을 닫았고, 다른 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찾으십니다. 늦었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진심으로 주님을 향한 믿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결론은 지금 무엇을 소유했는가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누구를 믿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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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십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