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손에 대해 말할 때, 어떤 이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 앞에서 비굴하게 굽히며 살아가는 태도로 오해합니다. 또 세상에서는 겸손하면 손해를 보고,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고 아는 체를 해야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보여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성경이 말하는 교만과 겸손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은 겸손을 단순한 자기 비하나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로 아는 태도로 가르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18)


우리는 다니엘서에 기록된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세가 커지고 모든 사람 위에 서게 되자,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여기며 크게 교만해졌습니다.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다니엘 4:30)


이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스스로 높아지려 했던 아담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에 의해 낮아져 짐승과 같이 되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낮아짐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가 낮아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자, 잃었던 왕권도 다시 회복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겠고” (다니엘 4:32)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오며… 내 나라의 위엄도 내게로 돌아왔고” (다니엘 4:36)


이 사건은 단순한 한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권세를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아담이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께 도전하다가 에덴에서 쫓겨난 것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잘려나간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고 다시 나무가 자라나 더 크고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이사야 11:1)


"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조회하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 (다니엘 4:36-37)


가장 겸손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천한 자가 되시어 아버지께 복종하고 높이셨습니다.


"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 (다니엘 4:17)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빌립보서 2:8-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며 그분의 은혜로 살고있음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고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교만한 자들은 에덴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 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야고보서 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