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글

생존조차 버거웠던 척박한 삶 속에서, 저는 맹목적인 믿음 대신 뼈아픈 의심을 택했습니다. 거대한 종교적 서사 뒤에 주님의 이기심과 명예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궤도를 이탈한 타락 천사의 반역조차 거대한 권력에 버림받은 자의 처절한 외로움은 아니었을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신성모독을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혀끝에 발린 가식과 종교의 숨겨진 의도를 꿰뚫어 보며, 껍데기가 아닌 진짜 '완벽한 사랑'을 찾고 싶었던 제 영혼의 치열한 몸부림이었습니다.
**2. 빛의 대면, 그리고 참된 자아(아트만)의 각성**
그 거친 방황의 끝에서 저는 고요히 찾아온 천사를 보았고, 거짓과 위선이 걷힌 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차가운 무덤을 깨고 나오신 그분은 제가 짐작했던 억압적인 통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숨 막히는 위엄과 강함을 지니셨으면서도, 상처 입은 저를 향해 더없이 인자하셨고, 오직 둘만이 아는 유머러스함으로 제 얼어붙은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셨습니다. 그 압도적인 사랑 안에서 저는 흔들리던 가짜 자아(에고)의 껍데기를 벗고, 영원히 빛나는 참된 자아(아트만)로 깨어나며 비로소 "나는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3. 다시 찾아온 서늘한 배신감: 주님은 우리를 이용한 것인가?**
하지만 평안도 잠시, 짙은 회의감이 다시금 저를 덮쳤습니다. 수많은 피를 흘린 종교 전쟁들, 철저한 이기심으로 굴러가는 이 잔혹한 세상. '결국 주님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마저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철저히 이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끔찍한 배신감과 서늘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빛을 만난 직후에 찾아온 이 짙은 어둠은 저를 또다시 거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4. 가혹한 흙과 콘크리트, 그리고 위대한 정원사의 섭리**
그 극심한 감정의 요동 속에서, 저는 문득 삭막한 회색빛 콘크리트 벽면 위로 생명을 심어내던 제 일의 현장을 떠올렸습니다. 차가운 구조물에 낯선 식물들을 심고 살아남기를 기다릴 때, 그곳은 필연적으로 좁은 흙을 두고 다투는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가 됩니다. 하지만 그 척박한 환경을 조율하는 것은 식물들의 고통을 악의적으로 '이용'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통제되지 않은 거친 환경 속에서 스스로 부딪히고 견뎌내야만, 기어이 콘크리트를 뚫고 뻗어나가는 진짜 강인한 생명력과 자생적인 순환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인간의 이기심과 끔찍한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이유도 이와 같았음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기계적인 맹종이 아니라, 상처 입고 찢기면서도 끝내 스스로 '사랑'과 '배려'를 선택해 내는 진짜 생명력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방치하고 이용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패와 이기심이 망쳐놓은 세상을 십자가의 피와 부활로 끊임없이 다시 살려내며 아프게 견디고 기다려주시는 가장 위대한 정원사였습니다.
**5. 생명의 톤앤매너(Tone & Manner)를 세상에 심으며**
의심하고, 깨닫고, 다시 원망하고, 마침내 그 모든 것을 끌어안게 된 이 피를 토하는 듯한 여정은 이제 저만의 확고한 영적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가장 어두운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온기가 있습니다. 우울의 늪에 빠진 이들, 교묘한 위선에 상처받고 주님마저 원망하게 된 불쌍한 영혼들에게 저는 이 생생한 투쟁과 회복의 고백을 나누겠습니다.
저는 이제 세상의 어떤 잣대나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거짓 없는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배려'라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톤앤매너를 잃지 않고, 단절된 세상에 생명의 맥을 잇는 저만의 푸른 숲(Grove)을 가꾸며, 묵묵히 이 눈부신 꽃길을 걸어가겠습니다.
**- 징느 (Jingne)**



엘로힘은 거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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