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제24권


승가제바 한역


9. 인품(因品)제4①

이 인품에는 총 열 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대인경(大因經)ㆍ염처경(念處經)ㆍ고음경(苦陰經) 상ㆍ하와

증상심경(增上心經)ㆍ염경(念經)과

사자후경(師子吼經)ㆍ우담바라경(優曇婆羅經)과

원경(願經)ㆍ상경(想經)이다.


97) 대인경(大因經) 제1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에 머무셨다.


그때 존자 아난은 한가히 홀로 지내면서 연좌(宴座)하여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연기(緣起)는 매우 기이하고 지극히 깊으며 이해하기도 또한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관찰하여 본 바로는 지극히 얕고도 얕다.’

이에 존자 아난은 저녁때 연좌에서 일어나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한가히 홀로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연기는 매우 기이하고 지극히 깊으며 이해하기도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관찰하여 본 바로는 지극히 얕고도 얕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이 연기는 지극히 얕고도 얕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마라. 무슨 까닭인가? 이 연기는 지극히 깊고 이해하기도 또한 매우 어렵다. 


아난아, 이 연기를 참답게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며 깨닫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 중생들은 베틀이 서로 얽매는 것 같고 넝쿨풀이 어지러운 것 같으며 바쁘고 부산하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며 왔다 갔다 하면서 생사(生死)를 뛰어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난아, 그러므로 이 연기는 지극히 깊고 이해하기 또한 매우 어려운 줄 알아야 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늙고 죽음에 연(緣)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늙고 죽음에는 연이 있다’하고 대답하라. 

또 어떤 이가 ‘늙고 죽음에는 어떤 연(緣)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생(生)에 인연한다’하고 대답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생에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생에도 역시 연이 있다’하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이가 ‘생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유(有)에 인연한다’하고 대답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유에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유에도 연이 있다’하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이가 ‘유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수(受:取)에 인연한다’하고 대답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수에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수에도 역시 연이 있다’하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이가 ‘수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애(愛)에 인연한다’하고 이렇게 대답하라. 


아난아, 

이것을 ‘애(愛)를 인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를 인연하여 유(有)가 있으며 

유를 인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인연하여 노(老)ㆍ사(死)가 있으며 

노ㆍ사를 인연하여 걱정[愁]과 슬픔[慼]이 있고 

울음[啼哭]ㆍ걱정[憂]ㆍ괴로움[苦]ㆍ번민[懊惱]은 모두 노ㆍ사를 인연하여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구족하면 오로지 큰 고음(苦陰)만 생긴다.


아난아, 생을 인연하여 노ㆍ사가 있으면 이것을 ‘생을 인연하여 노ㆍ사가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생을 인연하여 노ㆍ사가 있다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생이 없다면 고기[魚]면 고기 종자[魚種], 새[鳥]면 새 종자[鳥種], 모기[蚊]면 모기 종자[蚊種], 용(龍)이면 용 종자[龍種], 신(神)이면 신 종자[神種], 귀신[鬼]이면 귀신 종자[鬼種], 하늘[天]이면 하늘 종자[天種], 사람[人]이면 사람 종자[人種] 등 아난아, 저마다의 중생들이 저마다의 처소[處]를 따라 생이 없을 것이다. 제각기 생이 없다면, 가령 생을 떠나더라도 노ㆍ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노ㆍ사의 원인[因], 노ㆍ사의 성취[習], 노ㆍ사의 근본[本], 노ㆍ사의 인연[緣]은 곧 이 생이다. 무슨 까닭인가? 생을 인연하여 곧 노ㆍ사가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유(有)를 인연하여 생(生)이 있으면 이것을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유가 없으면 고기면 고기 종자, 새면 새 종자, 모기면 모기 종자, 용이면 용 종자, 신이면 신 종자, 귀신이면 귀신 종자, 하늘이면 하늘 종자, 사람이면 사람 종자 등 아난아, 저마다의 중생들이 저마다의 처소[處]를 따라 유가 없을 것이다. 제각기 유가 없다면 가령 유를 떠나더라도 마땅히 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생의 원인, 생의 성취, 생의 근본, 생의 인연은 곧 이 유이다. 무슨 까닭인가? 유를 인연하여 곧 생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수(受)를 인연하여 유(有)가 있으면 이것을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른바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수가 없어 제각기 수가 없다면, 가령 수를 떠나더라도 마땅히 다시 유가 있거나 유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유의 원인, 유의 성취, 유의 근본, 유의 인연은 곧 이 수(受)이다. 무슨 까닭인가? 수를 인연하여 곧 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애를 인연하여 수(受)가 있으면 이것을 ‘애를 인연하여 수가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른바 애(愛)를 인연하여 수가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애가 없어 제각기 애가 없다면, 가령 애를 떠나더라도 마땅히 다시 수가 있거나 수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수의 원인, 수의 성취, 수의 근본, 수의 인연은 곧 이 애(愛)이다. 무슨 까닭인가? 애를 인연하여 곧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이것을 

애를 인연하여 구함[求]이 있고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利]이 있으며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分]이 있고 

분별을 인연하여 욕심[染欲]이 있으며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著]이 있고 

집착을 인연하여 아낌[慳]이 있으며 

아낌을 인연하여 집[家]이 있고 

집을 인연하여 지킴[守]이 있다고 말한다. 

아난아, 지킴을 인연하기 때문에 곧 칼과 몽둥이ㆍ싸움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이 있으며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구족하면 오로지 큰 고음(苦陰)만 생긴다. 



아난아, 만일 지킴이 없어 제각기 지킴이 없다면, 가령 지킴을 떠나더라도 마땅히 칼과 몽둥이ㆍ싸움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이 있고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칼과 몽둥이ㆍ싸움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과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키는 원인[因], 성취[習], 근본[本], 인연[緣]은 곧 이 지킴[守]이다. 무슨 까닭인가? 지킴을 인연하기 때문에 곧 칼과 몽둥이ㆍ싸움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이 있고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구족하면 오로지 큰 고음만 생긴다.


아난아, 집[家]을 인연하여 지킴이 있으면 이것을 ‘집을 인연하여 지킴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집을 인연하여 지킴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집이 없어 제각기 집이 없다면, 가령 집을 떠나더라도 마땅히 지킴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한다. 이 지킴의 원인, 지킴의 성취, 지킴의 근본, 지킴의 인연은 곧 이 집이다. 무슨 까닭인가? 집을 인연하여 곧 지킴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아낌[慳]을 인연하여 집이 있으면 이것을 ‘아낌을 인연하여 집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아낌을 인연하여 집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아낌이 없어 제각기 아낌이 없다면, 가령 아낌을 떠나더라도 집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집[家]의 원인, 집의 성취, 집의 근본, 집의 인연은 곧 이 아낌이다. 무슨 까닭인가? 아낌을 인연하여 곧 집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집착[著]을 인연하여 아낌[慳]이 있으면 이것을 ‘집착을 인연하여 아낌이 있다’고 한다. 

아난아, 만일 집착이 없어 제각기 집착이 없다면 가령 집착을 떠나더라도 아낌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아낌의 원인,아낌의 성취, 아낌의 근본, 아낌의 인연은 곧 이 집착이다. 무슨 까닭인가? 집착을 인연하여 곧 아낌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욕심[欲]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욕심이 없어 제각기 욕심이 없다면, 가령 욕심을 떠나더라도 집착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집착의 원인, 집착의 성취, 집착의 근본, 집착의 인연은 곧 이 욕심이다. 무슨 까닭인가?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분별[分]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으면 이것을 ‘분별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른바 분별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다. 

아난아, 만일 분별이 없어 제각기 분별이 없다면, 가령 분별을 떠나더라도 욕심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욕심의 원인, 욕심의 성취, 욕심의 근본, 욕심의 인연은 곧 이 분별이다. 무슨 까닭인가? 분별을 인연하여 곧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分]이 있으면 이것을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이익이 없어 제각기 이익이 없다면, 가령 이익을 떠나더라도 분별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분별의 원인, 분별의 성취, 분별의 근본, 분별의 인연은 곧 이 이익[利]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익을 인연하여 곧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구함[求]을 인연하여 이익[利]이 있으면 이것을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구함이 없어 제각기 구함이 없다면, 가령 구함을 떠나더라도 이익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이익의 원인, 이익의 성취, 이익의 근본, 이익의 인연은 곧 이 구함이다. 무슨 까닭인가? 구함을 인연하여 곧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애(愛)를 인연하여 구함이 있으면 이것을 ‘애를 인연하여 구함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애를 인연하여 구함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애가 없어 제각기 애가 없다면, 가령 애를 떠나더라도 구함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구함의 원인, 구함의 성취, 구함의 근본, 구함의 인연은 곧 이 애이다. 무슨 까닭인가? 애를 인연하여 곧 구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욕애(欲愛)와 유애(有愛) 이 두 법은 각(覺)을 인(因)하고 각을 연(緣)하여 오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각에 연(緣)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각에도 연이 있다’라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각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갱락(更樂)을 인연한다’라고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갱락을 인연하여 각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눈[眼]의 갱락이 없어 제각기 눈의 갱락이 없다면, 가령 눈의 갱락을 떠나더라도 눈의 갱락을 인연하여 생기는 낙각(樂覺)ㆍ고각(苦覺)ㆍ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귀ㆍ코ㆍ혀ㆍ몸도 역시 그러하며, 만일 뜻의 갱락이 없어 제각기 뜻[意]의 갱락이 없다면 가령 뜻의 갱락을 떠나더라도 뜻의 갱락을 인연하여 생기는 낙각ㆍ고각ㆍ불고불락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각의 원인, 각의 성취, 각의 근본, 각의 인연은 곧 이 갱락이다. 무슨 까닭인가? 갱락을 인연하여 곧 각(覺)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갱락에도 연(緣)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갱락에도 연이 있다’라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갱락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명색(名色)을 인연한다’라고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명색을 인연하여 갱락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행하는 바와 연하는 바에 명신(名身)이 있다. 이 행을 떠나고 이 연을 떠나더라도 상대가 있는 갱락[有對更樂]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행하는 바와 연하는 바에 색신(色身)이 있다. 이 행을 떠나고 이 연을 떠나더라도 증어갱락(增語更樂)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가령 명신(名身)과 색신(色身)을 떠나더라도 마땅히 갱락이 있어 갱락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갱락의 원인, 갱락의 성취, 갱락의 근본, 갱락의 인연은 곧 이 명색이다. 무슨 까닭인가? 명색을 인연하여 곧 갱락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명색에도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명색에도 연이 있다’라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명색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식(識)을 인연한다’라고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른바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식이 어머니 태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 몸을 이루는 명색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식이 태에 들어갔다가 곧 나온다면 명색이 정(精)을 만나겠는가?”


“만나지 못합니다.”


“아난아, 만일 어린 소년과 소녀의 식(識)이 처음부터 끊어지고 부서져서 없다면 명색이 더 자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명색의 원인, 명색의 성취, 명색의 근본, 명색의 인연은 곧 이 식이다. 무슨 까닭인가? 식을 인연하여 곧 명색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식에도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식에도 역시 연이 있다’라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식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명색을 인연한다’라고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명색을 인연하여 식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식이 명색을 얻지 못하고 만일 식이 명색에 서지도[立]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면, 식은 과연 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괴로움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식의 원인, 식의 성취, 식의 근본, 식의 인연은 곧 이 명색이다. 무슨 까닭인가?명색을 인연하여 곧 식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이것을 명색을 인연하여 식이 있고 식을 인연하여 또한 명색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말을 보태고 거듭 말을 보태어 설명하고 전하고 전하여 설명하며 주장할 만한 것이 있게 되니, 그것은 곧 ‘식과 명색은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神)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오직 원하건대 그것을 해설하여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겠다.”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어떤 사람은 각(覺)을 신(神)이라 보고 어떤 사람은 각을 신이라 보지 않으면서 신(神)은 능히 깨닫고 또 신법(神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본다. 

또 어떤 사람은 각(覺)을 신이라 보지 않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거든 마땅히 그에게 ‘3각(覺) 곧 낙각(樂覺)ㆍ고각(苦覺)ㆍ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 있는데, 너는 이 3각에서 어느 각을 신이라고 보는가?’하고 물어야 한다. 


아난아, 마땅히 다시 그에게 말해야 한다. 

만일 낙각을 깨닫는다면 그때 그는 2각 곧 고각ㆍ불고불락각이 멸하고 오직 낙각만을 깨달을 것이다. 낙각은 무상(無常)의 법이며 괴로움[苦]의 법이며 멸하는[滅] 법이니, 만일 낙각이 이미 멸해 버리면 그는 신이 멸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난아, 만일 다시 1각 곧 고각이 있으면, 그는 그때에는 2각 곧 낙각ㆍ불고불락각이 멸하고 다만 고각만을 깨닫는다. 고각은 무상의 법이며 괴로움의 법이며 멸하는 법이니, 만일 고각이 이미 멸해 버리면 그는 신이 멸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난아, 만일 다시 1각 곧 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 있으면, 그때 그는 2각 곧 낙각ㆍ고각이 멸하고 다만 불고불락각만을 깨닫는다. 불고불락각은 무상의 법이며 괴로움의 법이며 멸하는 법이다. 만일 불고불락각이 이미 멸해 버리면 그는 신이 멸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난아, 그가 이와 같은 무상의 법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떠나고서도 마땅히 다시 각을 신이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그가 이와 같은 무상의 법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떠나기만 한다면 다시는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각을 신이라고 보지 않으면서, 신(神)은 능히 깨닫고 신법(神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네게 만일 각이 없다면 깨달을 수가 없어 응당 이것은 내 소유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아난아, 그가 다시 이렇게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신은 능히 깨닫고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그는 이와 같이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면서 신은 능히 깨닫고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지 않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보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네게 만일 각이 없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신이 각을 떠나면 응당 신은 청정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아난아, 그가 다시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그는 응당 이와 같이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한다. 


아난아,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오직 원하건대 그것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해 그 뜻을 분별하리라.”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어떤 사람은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지 않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또한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도 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보지 않은 뒤에는 곧 이 세간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는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는 곧 피로해하지 않으며 

피로해하지 않은 뒤에는 곧 열반에 든다. 

그래서 ‘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아난아, 이것이 거듭 거듭 말을 보태어 설명하고 전하고 전하여 설명하며 주장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곧 받아들임[所受]이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이렇게 바르게 해탈하면 그는 다시 여래는 마침이 있다고 보거나 

여래는 마침이 없다고 보거나, 

여래는 마침이 있으면서 마침이 없다고 보거나 

여래는 마침이 있는 것도 마침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보는 일이 없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신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것이라 고 하는가?”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오직 원하건대 그것을 해설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리라.”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어떤 사람은 소색(少色)을 신(神)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지만 무량색(無量色)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소색(少色)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지만 소무색(少無色)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으며 또한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지만 무량무색(無量無色)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지금 소색을 신이라 하여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며, 만일 소색(少色)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지만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지금 무량색을 신이라 하여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며, 만일 무량색(無量色)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지만 소무색(少無色)을 신(神)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지금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며, 만일 소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고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으며 또한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지만, 무량무색(無量無色)을 신(神)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며, 만일 무량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고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고 한다.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이 없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그것을 해설해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겠다.”

존자 아난이 분부를 받아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소무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며, 만일 소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는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며, 만일 무량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는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며, 만일 소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는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그는 지금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며, 만일 무량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는다. 


아난아,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신이 없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