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난아, 7식주(識住)와 2처(處)가 있다. 


어떤 것을 7식주라고 하는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有色衆生]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인간과 욕계천(欲界天)이다. 

이것을 제1식주(識住)라고 한다. 


다시 또 아난아,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초선천(初禪天)에 태어나 요절하지 않고 사는 범천(梵天)을 말한다. 

이것을 제2식주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황욱천(晃昱天)이다. 

이것을 제3식주라고 한다. 


또 아난아,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변정천(遍淨天)이다. 

이것을 제4식주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색(色)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여 약간의 생각도 없어, 무량공처(無量空處)인 이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곧 무량공처천(無量空處天)이다. 

이것을 제5식주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무량공처(無量空處)를 벗어나 무량식처(無量識處)인 이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곧 무량식처천(無量識處天)이다. 

이것을 제6식주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무량식처를 벗어나 무소유처(無所有處)인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곧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이다. 

이것을 제7식주라고 한다.


아난아, 어떤 것을 2처(處)라고 하는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생각[想]도 없고 감각[覺]도 없으니, 무상천(無想天)이다. 

이것을 제1처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나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인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곧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想處天)이다. 

이것을 제2처라고 한다.



아난아, 제1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인간과 욕계천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識住)를 알고 식주의 성취[習]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2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초선천(初禪天)에 태어나 요절하지 않고 오래 사는 범천(梵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3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황욱천(晃昱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4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변정천(遍淨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5식주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색(色)이란 생각을 벗어나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여 약간의 생각도 없으면, 무량공처(無量空處)인데 이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무량공처천(無量空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6식주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무량공처(無量空處)를 벗어나면 무량식처(無量識處)인데, 이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무량식처천(無量識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7식주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무량식처(無量識處)를 벗어나면 무소유처(無所有處)인데,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1처라는 것은 색이 있는 중생으로서 생각[想]도 없고 감각[覺]도 없는 것이니, 곧 무상천(無想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처(處)를 알고 그 처의 성취를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처를 좋아하고 그 처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2처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무소유처(無所有處)를 벗어나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인데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想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곳을 알고 그곳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처를 좋아하고 그 처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저 7식주(識住)와 2처(處)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아 해탈을 얻으면 그를 비구 아라하(阿羅訶)라 하고 혜해탈(慧解脫)이라 부른다.



아난아, 8해탈(解脫)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색(色)을 색(色)으로 관찰하니, 

이것을 제1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안으로 색상(色想)이 없이 밖으로 색을 관찰하니, 

이것을 제2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정해탈(淨解脫)을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3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일체의 색상(色想)을 벗어나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약간의 생각도 없는 무량공처, 이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4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일체의 무량공처(無量空處)를 벗어난 무량식처(無量識處),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5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일체의 무량식처를 벗어난 무소유처(無所有處),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6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7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다음에는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상(想)과 지(知)가 멸한 해탈(解脫)을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고 지혜로 모든 누진지(漏盡知)를 관하여 아는데 

이것을 제8해탈이라고 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저 7식주와 2처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아 해탈을 증득하고 또 이 8해탈을 순역(順逆)으로 해서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또한 지혜로 관찰하여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그를 비구 아라하라 하고 구해탈(俱解脫)이라고 부른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