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염처경(念處經) 제2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檢磨瑟曇)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제도하며 고뇌를 없애고 슬픔을 끊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도(道)가 있으니, 곧 4념처(念處)이다.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께서는 모두 5개(蓋)1)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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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범어로는 pañca āvaraṇāni이며, 5장(障)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심성(心性)을 장애하여 선법(善法)을 낼 수 없게 하는 5법(法)을 말함.
첫째 탐욕개(貪欲蓋)로서 5욕(欲)에 집착하기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둘째 진에개(瞋恚蓋)로서 성냄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셋째 수면개(睡眠蓋)로서 마음이 흐려지고 몸이 둔해짐으로 인하여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넷째 조희개(調戱蓋)로서 마음이 들뜨고 희동함 때문에 심성을 장해하는 것이다.
다섯째 의개(疑蓋)로서 결연한 의지가 미약하여 법에 후퇴함으로써 심성을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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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覺支)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無上正盡之覺)을 얻으셨다.
또 미래의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도 다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의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으로서 나도 또한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몸[身]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이고
이와 같이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며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이다.
어떤 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하는가?
비구는 다니면[行] 다니는 줄을 알고 머물면[住] 머무는 줄을 알며 앉으면[坐] 앉은 줄 알고 누우면[臥] 누운 줄 알며 자면 자는 줄 알고 깨면 깬 줄 알며 자다 깨면 자다 깨는 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內身]을 몸[身]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外身]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明]이 있고 통달함[達]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고 남[出入]을 바르게 알고 굽히고 펴거나 낮추고 우러르는 것을 분별하고 잘 관하여 몸가짐과 거동에 질서가 있고, 승가리(僧伽梨)와 옷과 발우를 잘 지니고 다니고 머물거나 앉고 눕거나 자고 깨거나 말하고 침묵하는 것을 다 바르게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善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니,
마치 목수나 목수의 제자가 먹줄을 나무에 튀기고 나서 곧 날카로운 도끼로 쪼아 곧게 다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인 채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니, 마치 두 역사(力士)가 나약한 한 사람을 붙잡고 곳곳으로 끌고 다니며 마음대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이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고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숨[入息]을 생각하되 곧 들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고
날숨[出息]을 생각하되 곧 날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며
들숨이 길면 곧 들숨이 긴 줄을 알고
날숨이 길면 곧 날숨이 긴 줄을 알며
들숨이 짧으면 곧 들숨이 짧은 줄을 알고
날숨이 짧으면 곧 날숨이 짧은 줄을 알며
온몸으로 숨을 들이쉬는 것을 배우고 온몸으로 숨을 내쉬는 것을 배우며
몸의 행[身行]을 그치고 숨 들이쉬는 법을 배우고
입의 행[口行]을 그치고 숨 내쉬는 법을 배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목욕하는 도구를 만드는 어떤 사람이 그릇에 가루비누[澡豆]를 담아 물과 섞어서 덩어리로 만든 것을 물에 가져다 담그면 그 물이 윤택해지는데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하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산의 샘물이 청정하여 흐리지 않고 충만하게 흘러 넘쳐 사방의 물이 흘러들어갈 길이 없으면,곧 그 샘 밑바닥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물은 밖으로 흘러 넘쳐 산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되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기쁨[喜]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樂]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푸른 연꽃이나 붉고 빨갛고 흰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 물밑에 있으면, 그 뿌리와 줄기와 꽃과 잎은 모두 촉촉하고 윤택하며 두루 충만하게 되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속에서 청정한 마음으로 뜻을 터득하여 두루 충만하게 성취하여 노닐면, 청정한 마음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마치 어떤 사람이 7주(肘)나 8주 되는 옷을 입으면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그 몸을 감싸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청정한 마음이 온몸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광명상(光明想)을 생각하여 잘 받아 지니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여 앞에서와 같이 뒤에서도 또한 그러하고 뒤에서와 같이 앞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낮과 같이 밤에도 그러하고 밤과 같이 낮에도 그러하며, 아래서와 같이 위에서도 그러하고 위에서와 같이 아래서도 그러하다. 이렇게 뒤바뀌지 않고 마음에 얽매임 없이 광명심을 닦으면 마음은 끝내 어둠에 덮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觀相]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는데, 마치 어떤 사람이 앉아서 누운 사람을 관찰하고 누워서 앉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거나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더러운 것으로 충만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ㆍ털ㆍ손톱ㆍ이ㆍ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ㆍ가죽ㆍ살ㆍ힘줄ㆍ뼈ㆍ심장ㆍ콩팥ㆍ간ㆍ허파ㆍ큰창자ㆍ작은창자ㆍ지라ㆍ밥통ㆍ똥ㆍ골ㆍ뇌수[腦根]ㆍ눈곱ㆍ땀ㆍ눈물ㆍ가래침ㆍ고름ㆍ피ㆍ기름ㆍ골수ㆍ침ㆍ쓸개ㆍ오줌이 있다.’
마치 그릇에 몇 가지 종자(種子)를 담은 것 같아서 눈이 있는 사람은 다 분명히 본다. 곧 벼나 조의 종자나 갓ㆍ무ㆍ겨자의 종자와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고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더러운 것이 충만해 있다고 관찰한다.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ㆍ털ㆍ통합뷰어
손톱ㆍ이ㆍ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ㆍ가죽ㆍ살ㆍ힘줄ㆍ뼈ㆍ심장ㆍ콩팥ㆍ간ㆍ허파ㆍ큰창자ㆍ작은창자ㆍ지라ㆍ밥통ㆍ똥ㆍ골ㆍ뇌수ㆍ눈곱ㆍ땀ㆍ눈물ㆍ가래침ㆍ고름ㆍ피ㆍ기름ㆍ골수ㆍ침ㆍ쓸개ㆍ오줌이 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내 몸에는 흙의 요소[地界]ㆍ물의 요소[水界]ㆍ불의 요소[火界]ㆍ바람의 요소[風界]ㆍ허공의 요소[空界]ㆍ의식의 요소[識界]가 있다.’
마치 백정이 소를 잡아 껍질을 벗겨 땅에 펴고 그것을 여섯 동강으로 가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한다.
‘내 몸에는 흙의 요소ㆍ물의 요소ㆍ불의 요소ㆍ바람의 요소ㆍ허공의 요소ㆍ의식의 요소가 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저 송장이 하루ㆍ이틀 혹은 엿새나 이레가 되어 까마귀나 솔개[鵄]에게 쪼이고 승냥이나 이리에게 먹히며 불에 타고 땅에 묻혀 다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관찰한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해골이 푸른빛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반쯤 남은 뼈 사슬이 땅에 뒹구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이 가죽과 살과 피가 분리되어 오직 힘줄만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마디가 분리되어 여러 곳에 흩어져 발 뼈ㆍ장딴지 뼈ㆍ넓적다리뼈ㆍ허리뼈ㆍ등뼈ㆍ어깨뼈ㆍ목뼈ㆍ머리뼈들이 제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역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가 마치 소라[螺]처럼 희고 집비둘기처럼 푸르며 피를 칠한 것처럼 붉고 썩어 문드러지고 부서져 가루가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역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면 이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라고 한다.
어떤 것을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하는가?
비구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즐거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고
괴로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로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닫는 줄 안다.
즐거운 몸[樂身]ㆍ괴로운 몸[苦身]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不苦不樂身]과
즐거운 마음[樂心]ㆍ괴로운 마음[苦心]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마음[不苦不樂心]과
좋아하는 음식[樂食]ㆍ괴로운 음식[苦食]ㆍ괴롭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음식[不苦不樂食]과
즐거운 무식[樂無食]ㆍ괴로운 무식[苦無食]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식[不苦不樂無食]과
즐거운 욕심ㆍ 괴로운 욕심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욕심과
즐거운 무욕각[樂無欲覺]ㆍ괴로운 무욕각[苦無欲覺]도 또한 그러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닫는 줄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각[內覺]을 각 그대로 관하고 바깥 각[外覺]을 각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각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한다.
어떤 것을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하는가?
비구는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성냄[恚]이 있고
성냄이 없는 것과
어리석음[癡]이 있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더러움[穢]이 있고
더러움이 없는 것과
모임이 있고
흩어짐이 있는 것과
낮춤이 있고
높임이 있는 것과
작음이 있고
큼이 있는 것과
닦고[修]
닦지 않음과
정[定]하고
정하지 않은 것도 그러하며,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 있으면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해탈한 마음이 있으면 해탈한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마음[內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바깥 마음[外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마음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한다.
어떤 것을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하는가?
눈은 색을 연(緣)하여 안의 번뇌[內結]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結]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약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도 또한 그러하며 뜻은 법을 연하여 안의 번뇌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하니 곧 안의 6처(處)이다.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욕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성냄[瞋恚]ㆍ수면[睡眠]ㆍ들뜸[掉悔]도 역시 그러하며,
안에 진실로 의심이 있으면 의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의심이 없으면 의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의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의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하니, 곧 5개(蓋)이다.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염각지(念覺支)가 있으면 염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염각지가 없으면 염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염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염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또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택법(擇法)ㆍ
정진(精進)ㆍ
기쁨[喜]ㆍ
쉼[息]ㆍ
정(定)도 그러하며
비구는 안에 진실로 사각지(捨覺支)가 있으면 사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사각지가 없으면 사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사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사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니, 곧 7각지(覺支)이다.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7년 동안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念處)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現法)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餘]이 있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얻을 것이다.
7년ㆍ6년ㆍ5년ㆍ4년ㆍ3년ㆍ2년ㆍ1년은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7개월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재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7개월ㆍ6개월ㆍ5개월ㆍ4개월ㆍ3개월ㆍ2개월ㆍ1개월은 그만두고,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이레 낮ㆍ 이레 밤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이레 낮ㆍ이레 밤이나 6ㆍ5ㆍ4ㆍ3ㆍ2일은 그만두고 하루 낮ㆍ하룻밤도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물러 아침에 이렇게 행하면 저녁에는 반드시 승진(昇進)하게 될 것이며 저녁에 이렇게 행하면 아침에는 반드시 승진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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