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존에 존재하는 종교의 말들이 진실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방편적 개념으로 너희를 믿게 하기 위해 전한 말이라 하였다 


이를테면 석가는 음탕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러한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말하였다 

하지만 마음을 먹어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환경의 조건이 생겨나면

그 생각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의 우주를 이야기 하나 

실제로는 마음조차 생겨나게 하는 우주가 따로 존재한다 이것이 실체의 우주이다 


생식기는 번식을 하기 위해 욕구를 느끼게 구조적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런 생각이

안들수는 없다 


그래서 중생에게 있어 더 좋은 상황을 만들수 있는 방법은 느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정하여 잘 배출하는 것에 있다 


그러면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예수는 뺨을 맞으면 반대쪽 뺨도 내어주라 말하였다 

하지만 인간으로써 그렇게 사는 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은 할수만 있다면 내가 한대 맞으면 열대를 돌려주려 하기 때문이다 

만일 모든 이들이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 내어주려고 한다면 이를 악용하여 수없이 

사기를 치고 누군가의 권리를 짓밟고 침해하는 이들로 가득 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이 성을 내고 맞았을때 돌려주며 강경하게 나가는 것이 무조건 적인 잘못이라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인간은 달라지거나 바뀌지도 않는다 


저자가 나에게 심각한 죄를 짓고도 저 교회에 나가 빌어 하느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 줬다 

말하면 너는 납득을 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예수가 얼마만큼 자비로운지 설명하기 위함이라면 다른반대의 뺨도 내어주라 말을 하는 것으로 

너희는 예수가 자비로운 자 였구나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너희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한다 해도 실제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세상에 죄가 있고 실수가 있고 욕심이 있어서 그래서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고 성장한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 정말로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라면 새로 태어날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을 할 수 있겠느냐 


종교에서는 죄를 저지르지 말고 악이 존재해야 하지도 않으며 오직 선만 존재해야 한다 가르치지만

실제의 세상에서는 그렇게 적용될 수도 없다 


그래서 중생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중생들은 억울해서 잠을 자지 못하고 사적제제를 품으며 복수심으

다지면서 살아간다 


종교가 얼마나 거룩하고 자비로운지를 위해 설명하는 자비로움과 너희가 실제로 살아가는데 적용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쉬움의 받아들임은 일치하지 않는다 


지혜가 있는 자라면 이에 대해 분별하고 구분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 거를것만

알맞게 거를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전부 받아들임으로 이해하면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 말들을 지키고 살았다면 불교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나 아무도 싸우지 

않고 문제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몰라서 지키지 못한것이 아니다 눈을 감고도 떠들만큼 너희는 경전의 구절을 잘알고 있음에도 그리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 거룩한 이야기는 자비로움을 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은 판타지 소설이다 

너에게 맞는 실제의 현실 이야기는 내가 뺨을 맞았을때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만일 너의 말을 듣고 예수께서는 반대의 뺨도 내어주라 하셨습니다 말한다면 너는 그 종교를 믿고 있을 필요가 없다 

메뉴얼대로 세상의 답이 고정이 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리 말하는 이는 그 답을 모르고 자신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실패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너또한 너에게 답을 묻는 이에게 종교의 격언을 이야기하며 해답이라 이야기 하겠지만 실제로 네가 그런 삶을 살지 않는이상

그것이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죄를 저지르지 않는 자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 말한다면 사람중 그 어떤이도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다 

죄를 저지르고 또 그로인해 배우는 가운데서도 현실에 맞는 성장이 가능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너희에게 실제 피부에

다가올 수 있는 현실의 이야기와 만질 수 있는 종교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종교는 너희가 만질 수 있는 종교가 아니다 그림속에 존재하는 판타지와 같은 이야기이다 

내가 조금만 더 욕심을 내면 저 집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 


닿지 않아 화가 난다면 욕심을 버리라 그래서 아픈것이다 말하면 그것이 반드시 현실적인 답이라 말을 할 수는 없다 

한번은 꿈도 꿔보라 실제로 가져보아라 그후에도 너의 기분이 어떤지 말해보라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무리도 해보고 아파도 해보고 욕심도 내고 때로는 질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생 자체가 망가진다면 문제가 될 수 있어도 애초에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아무것도 하지 마라 하지 마라

만 말한다 하여 그렇게 살아가거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소유욕을 가지지 말라는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만 매달리며 삶을 접어버리지 말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 사람은 몸이 아픈 사람은 기회가 될때 돈을 모아야 한다 그러니까 반대로 재물을 욕심내고 가져라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하라가 아니라 방편상 개념상 그렇게도 갈수 있다로 이해해야지 


반드시 무소유로 가라로 이해해 버리면 네 삶이 그 종교로 인하여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롭거나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방편상 비워야할때도 있고 방편상 채워야 할때도 있다

오른뺨을 맞았으면 상대방을 향해 되돌려 줘야 할때도 있다 


그게 중생들이 이해하기에는 보다 적용하기 쉽고 받아들이기 쉬운 방정식이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세상의 질서가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의 조절점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종교를 완전하다 믿고 말하였다고 해서 현실에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너희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느님이 용서했다 말해 화가 난다면 너희의 마음이 느끼는 것이 맞는 것이다 


욕심을 내는 이유는 욕심을 부려 잘되는 순간도 있기에 부리는 것이다 모두 잃지는 않는다 얻는 순간도 있다 

욕심을 부려야 할때는 부릴줄도 알아야 하는 방편이 있다 


화를 내야 할때는 방편으로 내야 하는 것이 맞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보기 좋아 보이는 것만 하라 하고 보기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은 하지 말라 말한다면


더 좋은 길을 가는것 같아도 실제로는 너에게 더 힘드고 어렵고 답을 구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너희가 주님에게 끝이 없이 기도하지만 너를 더 화나게 하고 시험하게 하며 괴로워 하였던 

순간들이 없었던 것이냐 


이것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환경과 생각이 같다 해도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오며 자신의 생각이 달라지면 같은 사람이라도 답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어떻게 답이 정해져 있음이 존재하겠느냐 


그 답은 수시로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만드는 것이 구도자이고 자기수행이다 

두가지 세가지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말하는게 답이 아니란 것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많은 종교 상담가중에 이를테면 법륜이나 자현이나 문광이나 

이런 이들의 답을 보자면 늘 같은 형식의 답이 반복되는 것이다 


석가의 생각을 기초로 불교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같은 대답이다 

너희가 틀렸다 


저자가 싫은 소리를 하였다면 이에 대해 화를 냈다 여기는 것은 잘못이라 말한다

그래서 감정이 아닌 그냥 소리로 이해하라 말하며 이것을 무명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상대의 이야기에는 정보가 존재한다 감정으로 받지는 않더라도 그 정보를 무시하면 안된다 

왜 상대방이 욕을 하는지 어떤 매끄럽지 않은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거기에서 나아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답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싸움이 필요할 수도 있고 화를 내며 후회를 해야할때도 있다 

그런일은 잘못된 거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말아라 라는건 잘못됨을 막기 위해 성장도 포기하라는 소리와 같다 


팔정도를 수행하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수 있다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그 팔정도를 수행하여 자신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음 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는 너희에게 받아들일 것과 거를 수 있는 것을 구분하라 말하였는데 

팔정도 무명 무아 이런것대로만 머물러 있다면 실제로 너희의 삶을 바꿀 수는 없다 


믿음에 대해 확인이 연료라면 믿음을 만들수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은 엔진이라 말하였다 

너의 영혼을 새롭게 해야 너 자신이 바뀌는 것이지 고정되어 있는 해답을 들여다 보는 것이

너 자신을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눈을 감고 나 자신은 누구인지 들여다 보기 위해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다 

어떤 불교인들은 참나가 있다 말하고 어떤 불교인들은 참나가 없다 말하고 있다 


너희 모두 틀렸다 있으면서도 없기도 하고 없으면서도 있기도 하며 또 너힁의 생각과 다른것의

존재함도 있다 


그러니까 판타지적 개념으로 단지 나아감을 위해 거짓이어도 그렇게 정하자는 방편으로 만든 개념의

전함이 있고 실제의 너의 살에 맞게 바꿔야 하는 지식도 있다 


파파고와 같이 변환할 수 있는 번역기가 필요하다 


얻어 맞고 나서 반대의 뺨을 내주기 이전에 뺨을 맞지 않는 상황을 먼저 만들수도 있어야 하고 

불가피하게 맞았다면 더 맞지 않는 방법도 알아야 하며 그래서 실수로 나도 때렸다면 


그 이후에 극복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하나의 문제가 생김으로 인해 대처하거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이야기가 수두룩하게 많은데 

그냥 오직 하나의 이야기만 존재하고 모든이들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여기는건 있을 수가 없는

판타지 소설을 꿈꾸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가 자력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구분하여 버릴것과 취할것은 저절로 알 수 있을 거라

보지는 않는다 그냥 모두 받아들여야 하고 여기에 머무르고 정해야 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 신화속의 판타지와 신을 틀리다고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그 예수에 그 석가에 너희가 얼마나 거룩하고 대단하고 깊은 의미를 심든 그것과 상관없이 

너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제의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한다 


너희가 배워야 할 것은 기존 종교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좋다 좋다 말하는 거짓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 너희삶과 최대한 가까운 도움을 연결할 수 있는 지혜에 있다 


그런 지혜는 기존 종교에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 나와 같이 말하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라 말한다 나는 말한다 내야 할때는 낼수도 있어야 한다 


게을러도 보아야 말할 수 잇는 것이 생긴다 하다 못해 변명이라도 그렇다 

변명을 하고 보니 생각하지 못한 쓸모있음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변명한 하는 이도 있는 것이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느 하나에만

고정되어 있다면 결코 좋은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좋음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쁨도 경험해봐야 그 좋음도 말할 수 있음이 있는 것이다 

하여 나는 너희에게 한가지의 단편적이고 편협한 지식에만 머물지 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이치를 말할 수 있는 넓은 문으로 나오라 말하였다 

너희가 이세상에서 가장 좋다 말하는 그 종교는 바늘 구멍안에 천국이 있다 말하는 것이다 


그 바늘로만 들어가야 천국이 있다 말한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정말로 예수를 통해서만 천국에 도달할 수 있을까 ? 


그렇지는 않다 나 예수를 통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이를 수는 없다

정말로 그러하드냐 ? 


여러 길이 있는 가운데 그중 하나의 길일 뿐이다 


달을 보며 행복하다 미소짓는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이를 보고 저자는 

지금 지옥에 있다 말을 할 수는 없다 


예수를 보고도 갈수 있고 달을 보고도 갈수 있다 

다른사람들이 비난해도 네 가족이 너를 지지하는 것을 보고 여기가 천국임을

느낄 수도 있다 


가족이 너를 지지해주는 것도 나 여호와의 천국이고 

예수를 보고 천국을 느끼는 것도 나 여호와의 천국이며 


추운날 뜨거운 국수 국물을 먹고 행복한 것도 나 여호와의 천국이다 

그 모든것이 행복하다면 이것이 바로 진리의 넓은 문이다 


악이라 하여 사탄의 계획이고 너를 시험하고 하느님이 너를 벌하고와 같은 말을 하지 말아라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너희의 영성이 발달되지는 않았다 


몰라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너희가 나에게서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내가 너희에게 전해야 할 것도 많고 

기존의 종교적 개념으로 인하여 너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뜯어 고쳐야 할 것도 매우 많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 예수나 그 석가가 와도 스승으로써 나에게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들또한 그러할진데 그들의 이야기를 맹신하는 너희는 오죽 하겠느냐 


나는 꽤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나의 말을 지혜라 여겨 그런 삶을 살거나 바뀐이는

없을 것이다 


나의 말이 바르게 보이거나 좋아 보이느냐 묻는다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연료를 써야

차가 잘 가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엔진이 바뀌어야 그 차는 모든 연료를 받아들여 잘 갈 수 있는 것이다 


너희의 영이 바뀌어야 한다 개념이 달라지고 인식이 달라져야 비로소 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다 

지혜가 없었냐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네 영이 바뀌지 않으면 내 말을 보면서도 

너희는 이것이 실로 지혜였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말을 말로써 받는 것이 아니다 영으로써 새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