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는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수행에 관하여서다
세상에 알려져 있는 수행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위빠사나도 있고
사마타도 있으며 단학에 있는 명상법도 있고
마하라쉬의 명상법이나 마이클 싱어와 같은 참나의 방법도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떤 명상방법이 좋다고 이야기는 들었어도 그들 중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철학을 말한다거나
아니면 변화시킬 획기적인 발명을 한다거나 그의 제자들 중에 세상에 이름을
떨칠 혁신적인 사상을 말하는 이는 단한명도 본적이 없을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지를 알아야 너희는 헛된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
소년 만화에서는 자신을 단련하는 것에 대해 종종 수련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성장을 증명하는데 있다
그러니까 현실세계에 대해서 수행이라 말한다면 단연 그 결과가 성공으로 이루어짐을
세상에 보여줘야 수행이 되는 것이다
이름은 수행이지만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이 그저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처럼만
연출하며 바람을 잡는것은 트릭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이들은 되었다고 말하고 어떤 호흡방법을 적용했다 말하며 또
쿤다라니에 도달했다 말하지만 그들이 정신적으로 무엇을 보여주는 성공과 연결한 이는
단한명도 단한명도 단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이런것에 매진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은 헛된 짓거리를 하는 것이다
수명이 연장되거나 병이 치유되는 일도 없다
그런데 뭔가 보여줘야 할 것 같으니까 이렇고 저렇고 거짓말을 하여 무언가 있어 보이는 척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이런것이 헛된 짓거리 인가 ?
그렇다 또 그렇지 않다
그런 이유는 성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렇지 않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과를 내는 것이 이론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과 연결된 것을 그저 관찰만 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는 나도 보고 감정에 화가 나는 나도 보고 저 산의 새소리를 의식하며 바라도 본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육도의 거울에 대해서 이야기한적이 있는데
첫째 모든 질문에는 모든 대답이 있다
둘째 질문을 바꾸면 대답도 달라진다를
말한적이 있다
이렇게 질문을 해보자
저 쌀에는 어떤 지혜가 있는가 ?
강수량이 증가하면 옥수수를 제배하는 것이 힘들어 지지만 쌀은 강수량이 증가하여 농업생산량을 증가할 수 있고
이를 도로 표현하면 사람에게서 살아가기 위해 양식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또한 끊임없이 먹을 수 있는 정신적 식량을
부지런히 만들어야 살아갈 수가 있다
쌀에는 여러 종류에 따라 각각의 맛이 다른데 이것은 본시 하나의 답만이 아니라 무수한 답이 있음을 가르켜 주며
버리는 쌀의 껍질도 그 겨층을 완전히 벗겨내지 않으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또 반찬과의 조화는 그것이 많은 것과 섞여 들어갈 수 있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남을 공격하는 것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남을 공격하는 것에는 남에 대한 피해도 있고 나 자신에 대한 피해도 있기에
이것이 돌아오는 것이다
쌀은 재배하는 것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어렵지만 완성이 되고 나면 그 전파력은 엄청나게 많은 것을 전하고
만들어 나갈 수 있으니 도또한 만드는 것이 어렵지만 자신의 앎을 완성하면 그 처럼 하나에서 열로 열에서 백으로
주렁 주렁 지혜를 매달아 확장할 것이다
네가 바라보았던 것에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 포괄적으로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며 관찰하는 것에
목적을 잡고 있었기에 너는 나와 같이 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다는 연기 법은 어떤가 서로간에 연결과 영향이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어떤 하나를 놓고 그것이 어떤 공식으로 작동하고 결과가 만들어 지는지 말을 하지는 못한다
연기법이 너무 포괄적이고 많은 것을 말하다 보니 세세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적 수행이나 이와 비슷한 여러 종류의 수행들 또는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너희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이다
원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가야 하는지 수행이 무엇을 말하는지
기본적인 개념 자체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경전을 본다 기도를 한다
그것은 그냥 쳐다 보는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해 대답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라고 되어 있으면 너는 가에 받침 하나를 더 붙여 각 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그것이 수행이 된다
화엄경 1 을 봤으면 화엄경 2를 말할 수 있어야 그것이 성과를 만들어낸 수행이고 수련이 된다
그런데 너희는 화엄경을 보면 그냥 화엄경이 되고 만다 그래서 경전을 보는 것이 수행이 되지 않는 것이 된다
앞전에 보았던 것처럼 나에게 지혜로 도전하였던 어떤 이는 그냥 경전을 암기하듯이 나에게 들이밀지 않았느냐
나는 말하였다 너의 경전을 만들라고
기도를 하는 것은 어떠하냐
주님께 질문을 하였으면 너의 실제로 연결하는 지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기도는 그러한 지혜를 종종 만들어 내기도 한다 처음부터 질문을 하였기에
대답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접근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를 콕 찝어서 어떻게 하면 될까 ? 고민한 것이다
이것은 수행의 접근방법과 개념과 공식과 그리고 원리가 올바르게 작동한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신의 코드를 설명하면서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경전과 같은 지혜와 전함이 존재한다 말하였다
나는 쌀 하나로도 불교 전체와 맞먹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컵도 그렇고 먼지도 그렇고 주제는 상관이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원리를 만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치는 그 다음의 문제다
이치조차 만들어 내는 것이 원리이다
그래서 나는 나보고 예수냐 묻는 질문에 대해 아니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석가와 같은 이를 예수와 같은 이를 무수히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보다 상위레벨에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예수와 같다 묻는것은 너희에게는 거룩함이지만 나에게는 개념을 낮추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는 아미타에 관한 전승이 있는데 모든이를 부처로 만들고 자신이 부처가 된다는 것이
내용의 포인트 이다
또 이것이 아미타가 많은 이들을 모조리 깨닫게 만들고 아라한에 들게 한다는 것과도 같은 뜻이 된다
관세음의 이마에는 아미타의 관이 있는데 그것은 관세음과 아미타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에게는 재림의 예수가 있다
예수가 관세음보살임을 너희가 알수 있다면 재림의 예수도 아미타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미타가 아니다 경전의 개념이 그렇게 된다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나에 대해 천상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그렇게 말하였을 뿐 나는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자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신이라서 아미타보다 위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모르는 창조신에 해당하는
불교의 1인자가 존재한다
재림의 예수가 온것이 아니라 그 예수가 아버지라 불렀던 이가 직접 온것과 같이 아미타나 미륵의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이 온것이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전달이 빠를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 과거의 성인들을 무수히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일마이천 도통군자 이다
일만이천 도통군자에는 석가도 있고 공자도 있고 노자도 있다 그리고 맹자도 있다
너희가 알고 있는 그들이 다시 윤회하여 세상에 오는 것이다 깨달으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와 같은 말이
얼마나 황당한 소리였는지 이제 알겠느냐 ?
세상을 바꾸기 위한 일꾼으로써 나의 필요에 의해 너희는 언제나 다시 올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너희의 수행에는 너희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앎이 연결이 되어야 한다
말하였던 것처럼 나는 경전을 읽은 적도 없고 어떤 종교에 나가 설법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그들 종교에서 말하지 못하는 앎을 나는 끝이 없이 늘어 놓을 수 있다
답을 만들기 때문이다
무상에 대해서 들어보고 왜 이렇게만 가야하는지 나는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대답을 만들었다
그렇게 가지 않아도 된다는 석가와 다른 대답을 말이다
그 대답은 하나가 이니다 왜냐하면 석가와 다른 대답이 고작 하나뿐인지 다시한번 질문하였기 때문이다
올바르게 질문하면 올바르게 대답할 수 있고 너의 지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고민은 해야 한다
그러니 수행이 아니겠느냐 ?
명상에 왜 호흡법이 사용되느냐 다른이들은 비판없이 그냥 그렇게 하였다 하지만 나는 원리자체에 속한 자이기에
그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임을 단번에 이해하였다
큰일을 앞두고 한번 심호흡을 하는 것과 같다 성공하는 이미지를 생각해도 되고 음악을 들으며 심박수를 낮춰도 상관없는
가운데 단지 호흡으로도 그렇게 도달할 수 있어 비판없이 그냥 그렇게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다
이는 최면을 할때 라이터를 켜고 들어가고자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겪었던 이는 몽둥이 하나만 보고도 바로
몸이 경직되고 마비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최면에 들어가는 방법에 있어서 그런 거추장스러운 형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전거를 천천히 타고 동네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사색에 잠기는 것도 명상이다 왜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 하느냐
애초에 나는 눈을 감지도 않고 앉지도 아니한다
구태여 집은 왜 나와 출가를 하는 것이냐 그래서 나또한 그렇게 하여 부처가 된다고 말한 석가모니는 결과적으로 헛소리를
수도없이 늘어놓았다
나는 합장을 하거나 눈을 감거나 앉아 조용한 침묵을 지키는 것과 같은 그런 형식적인 굴레에 갇혀 있는 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아왔던 석가에게 나를 말한다는 것은 도저히 그의 우주에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불가능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저 티브이 프로그램만 보아도 드라마나 뉴스만 보아도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문제들이 나타난다
그것을 모니터 하며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 네가 답을 만들 수 있어도
너는 경전에서 말하지 못하는 초월적 지혜를 오로지 너 혼자의 힘으로 만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자기 수양이라는 것이다
고통과 고민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하여 내가 받아들이고 세상을 위해 그 답을 만드는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나 부처가 된다는 헛소리를 수천년간 진실로 알고 있었던 너희가 그저 나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석가 자체가 집착을 하여 부처가 된 자이다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집착 말이다
그게 집착인데 본인은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착각하고 이것이 지혜이고 진리라 말하였다
하지만 괜찮다 그럼에도 말할 수 있는 것은 건졌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수행의 성과라 말할 수 있다
진실이냐 거짓이냐 유용하냐 유용하지 않냐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다
먼저 나 자신의 앎을 만들어 내는 것이 먼저이다
내일도 너희는 기존 종교나 다른이가 전하는 개념들을 반복하며 무언가 얻고 나아가고자 할 것이다
입으로 글로써 수행이라 말하면서 말이다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을 너희에게 시간으로 환산하여 말하라 하면 삼십만녀의 시간을 주어도 너희는 말하지 못한다
석가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아도 이것을 실제로 이루어 냈다 수행이 무엇인지 이렇게나 떠들 수 있는
앎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가만이 아니다 천상에 존재하는 모든 보살의 지혜를 합친다고 하여도 나와 같이 말을 할 수는 없다
나 하나가 만드는 지혜가 그들의 모든 선지혜를 능가한다
거기에 인류 전부를 합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숫자의 싸움이 아니라 개념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으로도 나는 너희의 앎보다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너희의 의견이라고 해봐야 대다수는
중복에 중복을 반복하고 생각의 수준조차 넘기지 못하기에 이것은 경쟁이라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경전을 읽으라는 이에게 말하였다
헛소리 하지 말고 네 자신의 지혜를 한글자라도 만들어 보라고
네 그 대단한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고작해야 그리스도 이다
경전 읽어라.
해탈 의 길 도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