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 제25권
승가제바 한역
9. 인품제4②
99) 고음경(苦陰經) 제3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머무셨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점심 뒤에 조그마한 일로 강당에 모여 앉았다. 이때 많은 이학(異學)들이 오후에 천천히 걸어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서로 인사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사문 구담(瞿曇)께서는 욕심[欲]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치고, 색(色)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치며, 각(覺)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도 또한 욕심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치고 색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치며 각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칩니다.
사문 구담과 우리들의 이 두 가지 앎과 두 가지 끊음 중에 어느 것이 나으며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이에 모든 비구들은 많은 이학(異學)들의 말을 듣고 옳다고도 않고 그르다고도 않은 채 잠자코 일어나 자리를 뜨며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말의 뜻을 우리들은 세존에게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이른바 많은 이학들과 서로 의논할 만한 것들을 모두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즉시 저 많은 이학들에게 이렇게 물어라.
‘여러분,
어떤 것을 욕심의 맛[味]이라 하고
어떤 것을 욕심의 환(患)이라 하며
어떤 것을 욕심의 출요(出要)라 하는가?
어떤 것을 색(色)의 맛이라 하고,
어떤 것을 색의 환이라 하며
어떤 것을 색의 출요라고 하는가?
어떤 것을 각(覺)의 맛이라 하고
어떤 것을 각의 환이라 하며
어떤 것을 각의 출요라고 하는가?’
모든 비구들아, 만일 너희들이 이렇게 물으면 저들은 그 말을 듣고 곧
서로 난처해하며 다른 일을 끌어다 말하며 점점 성이 나서 다투다가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코 물러갈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 세상의 하늘ㆍ마군ㆍ범(梵)ㆍ사문 범지 등 일체의 다른 무리들 중에 능히 이 뜻을 알아 해설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고 오직 여래나 여래의 제자한테서만 이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
...
...
본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없어지니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이것을 색의 환이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색의 출요[色出要]라고 하는가? 만일 색을 끊어 없애고 색을 버리고 여의어 색이 멸해 색이 다하고 색을 건너 뛰어 벗어나게 되면 이것을 색의 출요라고 한다.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색의 맛[色味]과 색의 환[色患]과 색의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는 끝내 스스로도 그 색을 끊지 못할 텐데, 하물며 다시 다른 이의 색을 끊어줄 수 있겠는가?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색의 맛과 색의 환과 색의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는 스스로도 없앨 수 있고 또한 능히 다른 이의 색도 끊어줄 수 있다.
어떤 것을 각의 맛[覺味]이라고 하는가?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그때에는 스스로 해치기를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남 해치기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만일 해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각의 즐거운 맛[覺樂味]이라고 한다. 무슨 까닭인가? 해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즐거움을 성취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각의 맛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각의 환[覺患]이라고 하는가?
각이란 무상한 법[無常法]이며 괴로움의 법[苦法]이며 멸의 법[滅法]이니 이것을 각의 환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각의 출요[覺出要]라고 하는가?
만일 각을 끊어 없애고 각을 버려 여의며 각을 멸하여 각이 다하고 각을 건너 뛰어 벗어나면 이것을 각의 출요라고 한다.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각의 맛[覺味]과 각의 환[覺患]과 각의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는 끝내 스스로도 그 각을 끓을 수 없을 텐데 하물며 다시 다른 이의 각을 끊어줄 수 있겠는가?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각의 맛과 각의 환과 각의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는 스스로도 없앨 수 있고 또한 능히 다른 이의 각도 끊어줄 수 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00) 고음경(苦陰經) 제4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기수(釋羈瘦)를 유행하실 때에 가유라위(加維羅衛)의 니구류원(尼拘類園)에 머무셨다.
그때 석마하남(釋摩訶男)은 오후에 이리저리 서성이다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법[世尊法]은 제 마음속의 세 가지 번뇌[三穢], 곧 물들어 탐하는 마음의 번뇌[染心濊]ㆍ성내는 마음의 번뇌[恚心穢]ㆍ어리석은 마음의 번뇌[癡心穢]를 멸하게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법을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제 마음속에는 다시 탐하는 법ㆍ성내는 법ㆍ어리석은 법이 생깁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게 어떤 법이 없어지지 않고서 내 마음속에 다시 탐하는 법ㆍ성내는 법ㆍ어리석은 법을 생기게 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하남아, 너에게는 한 법이 없어지지 않았다.
곧 너는 집에 있으면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서 집 없이 도를 배우지 않았다.
만일 네가 이 한 법을 없애면 너는 반드시 집에 있지 않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서 집 없이 도를 배울 것이다. 너는 한 법을 없애지 않은 까닭에 집에 있으면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서 집 없이 도를 배우지 않는 것이다.”
이에 석마하남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 한 자락을 벗어 메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한 채 세존께 말씀드렸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법을 설하셔서 제가 마음이 깨끗해져 의심을 없애고 도를 얻게 하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하남아, 5욕(欲)의 공덕이 있어 사랑할 만하고 생각할 만하며 기뻐할 만하고 욕심과 서로 응하여 사람을 즐겁게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곧 눈은 색을 알고
귀는 소리를 알며
코는 냄새를 알고
혀는 맛을 알며
몸은 감촉을 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왕이나 왕의 권속으로 하여금 안락과 환희를 얻게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이 욕심의 맛은 지극하여 다시금 이 보다 더한 것은 없고 또 우환도 매우 많은 것이다.
...
...
...
마하남아, 이런 까닭에 욕심이란 즐거움이 없고 한량없는 괴로움과 우환이 있는 줄을 안다.
만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多聞聖弟子]로서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면 그는 욕심에 덮이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얽매여 평정의 즐거움[捨樂]과 위없는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마하남아, 이와 같이 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욕심 때문에 후퇴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나는 욕심이란 즐거움이 없고 한량없는 괴로움과 우환이 있는 줄을 알며 나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욕심에 덮이지 않고 또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얽매이지 않아 곧 평정의 즐거움과 위없는 안식을 얻었다. 마하남아, 이런 까닭에 나는 욕심 때문에 후퇴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하남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사랑 과 자비 평화 그리고 진리 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