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우담바라경(優曇婆邏經)1) 제8제2소토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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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 니구타범지경(尼拘陁梵志經)』과 『장아함경(長阿含經)』의 8번째 소경인 「산타나경(散陀那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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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成)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가란다원(竹林伽蘭哆園)에 머무셨다.
그때 어떤 한 거사가 있었는데 이름을 실의(實意)라고 하였다. 실의 거사는 이른 아침에 왕사성에서 나와 부처님께 나아가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고자 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선 부처님께 가는 것을 그만두자. 세존께는 여러 비구들과 연좌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우담바라(優曇婆邏)숲에 있는 이학(異學)들의 동산으로 가자.’
이에 실의 거사는 곧 우담바라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으로 갔다.
그때 우담바라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에는 무에(無恚)라고 하는 한 이학이 있었는데 그는 그들 가운데서 존경을 받아 이학들의 스승이 되었고 대중들의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을 항복받아 500이학들은 그를 추종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다. 그는 대중 가운데서 요란스럽게 높고 큰 음성으로
조론(鳥論)ㆍ어론(語論)ㆍ왕론(王論)ㆍ적론(賊論)ㆍ투쟁론(鬪諍論)ㆍ음식론(飮食論)ㆍ의피론(衣被論)ㆍ부녀론(婦女論)ㆍ동녀론(童女論)ㆍ음녀론(淫女論)ㆍ세속론(世俗論)ㆍ비도론(非道論)ㆍ해론(海論)ㆍ국론(國論)을 설하였다. 이와 같이 갖가지 조론 등을 설하며 모두 그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때 이학 무에는 멀리서 실의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그 대중들에게 분부하여 조용하게 하였다.
“여러분, 그대들은 떠들지 말라. 잠자코 있기를 즐기고 잠자코 있으면서 제각기 몸을 단속하라. 왜냐하면 실의 거사가 오기 때문이니, 그는 사문 구담의 제자다. 또 그는 사문 구담의 제자로서 이름과 덕이 높고 훌륭하여 우두머리로 존중할 만하고 집에 머무는 거사로서 왕사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제1로 칠 것이다. 그는 말하지 않기를 즐기고 잠자코 있으면서 스스로 단속한다. 만일 그가 이 대중이 잠자코 있는 줄을 알면 그는 기꺼이 여기로 올 것이다.”
이에 이학 무에는 대중을 잠자코 있게 하고 자기도 잠자코 있었다.
그때 실의 거사는 이학 무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문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실의 거사는 말하였다.
“무에여, 우리 불세존께서는 일 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계시고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또한 사람도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불ㆍ세존께서 그와 같이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계시고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멀리 떠난 곳에 계시면서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고 안온하고 쾌락하십니다.
불세존께서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 법회를 소집해 함께하신다 해도 오늘 그대와 그대의 권속들이 한 것과는 애초에 같지 않습니다.”
이에 이학 무에가 말하였다.
“거사여, 그만 두시오. 그대가 어떻게 알 수 있겠소? 사문 구담의 공허한 지혜의 해탈이라면 족히 말할 것도 없소.
혹 서로 맞는가[相應] 하면 서로 맞지 않으며 혹은 따르는가 하면 따르지 않소. 저 사문 구담은 가장자리[邊]로 가서 가장자리에 이르고 가장자리를 즐겨하여 가장자리에 이르며 가장자리에 머물러 가장자리에 이르는데 마치 애꾸눈 소가 변지(邊地)에서 먹이를 먹을 때 가장자리로 가서 가장자리에 이르고 가장자리를 즐겨하여 가장자리에 이르며 가장자리에 머물러 가장자리에 이르는 것과 같이 저 사문 구담도 또한 그와 같소.
거사여, 만일 저 사문 구담이 이 대중들에게 온다면 나는 한마디 말로 그를 쳐부수어 마치 빈 병을 놀리듯 할 것이오. 그리고 그에게 애꾸눈 소의 비유를 말할 것이오.”
이에 이학 무에는 자기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사문 구담이 혹 이 대중 가운데 오더라도 만일 반드시 오더라도 그대들은 공경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합장하지 말고 앉기를 청하지도 말라, 미리 한자리를 남겨 두었다가 그가 여기에 오거든 이렇게 말하라.
‘구담이여, 자리가 있으니 앉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연좌하고 계시다가 사람의 귀보다 훨씬 나은 청정한 하늘귀[天耳]로써 실의 거사가 이학 무에와 나눈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해거름에 곧 연좌에서 일어나 우담바라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으로 가셨다.
이학 무에는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찬탄하여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오랫동안 여기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원컨대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제 약속을 어기는구나.’
세존께서는 그런 줄 아시고도 곧바로 자리에 앉으셨다. 이학 무에는 곧 세존과 서로 문안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무에여, 전에 실의 거사와 무슨 일을 의논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모여 앉았는가?”
이학 무에는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사문 구담은 어떤 법이 있어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가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안온을 얻게 하며 그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깨끗이 닦고 또 남을 위하여 설명하는가?’
구담이시여, 전에 실의 거사와 이런 일을 의논하였고 이 일로 말미암아 여기 모여 앉았습니다.”
실의 거사는 그의 말을 듣고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이학 무에는 이상하게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 면전에서 세존을 속이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이미 아시고서 곧 말씀하셨다.
“무에여, 내 법은 매우 깊고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여 깨닫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보기도 어렵고 얻기도 어렵다. 곧 내 제자를 가르치면 제자는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깨끗이 닦고 또한 남을 위하여 설명한다.
무에여, 만일 그대의 스승이 옳다고 하는 바를 네가 이해하지 못하고 그 행을 미워하거든 너는 그것을 내게 물어라. 내가 반드시 잘 대답하여 네가 마음으로 옳다고 여기게 하리라.”
이에 소란스럽던 이학 무리들은 같은 음성으로 함께 크게 외쳤다.
“사문 구담께서는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시며 큰 여의족[大如意足]이 있고 큰 위덕[大威德]이 있으며 큰 복[大福]이 있고 큰 위신[大威神]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능히 자기의 종교를 버리고 남의 종교로써 사람들의 질문에 따라 대답하기 때문이다.”
이에 이학 무에는 자기 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분부한 뒤에 물었다.
“구담이시여,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해야 할 행은 어떻게 하면 구족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구족할 수 없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어떤 사문 범지는 옷이 없는 알몸으로 혹은 손으로 옷을 삼거나 나뭇잎으로 옷을 삼거나 구슬로 옷을 삼는다. 혹 병으로 물을 뜨지 않거나 바가지로 물을 뜨지 않기도 하며 무기로 뺏은 음식을 먹지 않고 속여서 얻은 음식을 먹지 않으며 청하지 않는 데는 가지 않고 사람을 보내지도 않는다. 와서 존경하기를 구하지 않고 존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존경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만일 두 사람이 먹으면 그 가운데서 먹지 않고 아기 밴 집의 음식을 먹지 않으며 개를 기르는 집의 음식을 먹지 않고 만일 집에 똥파리가 날아오면 곧 먹지 않는다. 물고기를 먹지 않고 짐승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나쁜 물을 마시지 않으며 혹 도무지 마실 것이 없으면 마시지 않는 행을 배운다. 혹은 한 입을 먹고는 한 입으로 만족하고 혹은 2ㆍ3ㆍ4 내지 일곱 입을 먹고는 일곱 입으로 만족하며 혹은 한 번 얻어먹고는 한 번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혹은 2ㆍ3ㆍ4 내지 일곱 번 얻어먹고는 일곱 번 얻는 것으로 만족한다. 혹은 하루에 한 번 먹고는 한 번으로 만족하고 혹은 2ㆍ3ㆍ4ㆍ5ㆍ6ㆍ7일이나 보름ㆍ한 달에 한 번 먹고는 한 번으로 만족한다.
채소를 먹거나 피[稗子]를 먹으며 혹은 기장을 먹고 잡보리를 먹으며 두두라식(頭頭邏食)을 먹고 거친 밥을 먹는다. 혹은 일 없는 곳으로 가서 일 없이 한가하게 지내며 풀뿌리를 먹거나 혹은 열매를 먹되, 저절로 떨어진 열매를 먹는다.
누더기를 입고 털옷을 입으며 두사옷[頭舍衣]을 입고 털두사옷[毛頭舍衣]을 입으며 성한 가죽 옷[全皮]을 입거나 해진 가죽 옷[穿皮]을 입으며 혹은 완전히 해진 가죽 옷[全穿皮]을 입는다.
머리를 흩트리거나 머리를 땋기도 하고 흩트리고 땋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깎거나 수염을 깎고 수염과 머리를 모두 깎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뽑거나 수염을 뽑고 머리와 수염을 모두 뽑기도 한다.
혹은 꼿꼿이 서서 앉지 않고 혹은 앉은걸음을 익히며 혹은 가시 위에 누워 가시로 평상을 삼고 혹은 열매에 누워 열매로 평상을 삼는다.
혹은 물을 섬겨 밤낮으로 손으로 긷고 혹은 불을 섬겨 그날부터 계속해 태우며 혹은 해와 달의 존우대덕(尊祐大德)을 섬겨 그것을 향하여 합장한다. 이런 따위로써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번거롭고 답답한 행을 배운다.
무에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이렇게 하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구족했다 하겠는가,구족하지 못했다 하겠는가?”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그렇게 한다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이로써 구족하였고 구족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다고 말하리라.”
이학 무에가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저를 위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淸苦行者)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있고 욕심을 생각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있고 욕심을 생각한다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고 해의 정기를 빨아먹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고 해의 정기를 빨아먹으면 이것을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잘난 체하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는 마음이 곧 얽매여 집착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잘난 체하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는 마음이 곧 얽매여 집착한다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자신은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면 이것을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수행은 청고(淸苦)하며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수행은 청고(淸苦)하며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질투하여 이렇게 말한다.
‘무엇하러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질투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무엇하러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에여,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 범지를 맞대고 꾸짖어 말한다.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으며 항상 뿌리종자ㆍ줄기종자ㆍ열매종자ㆍ마디종자ㆍ씨종자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暴雨)처럼 5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 범지를 맞대고 꾸짖어 말한다.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뿌리종자ㆍ줄기종자ㆍ열매종자ㆍ마디종자ㆍ씨종자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처럼 오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 견디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그러면 진에여,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과 두려움ㆍ무서움ㆍ은밀한 행동ㆍ의심ㆍ명예의 상실ㆍ탐욕ㆍ방일이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과 두려움ㆍ무서움ㆍ은밀한 행동ㆍ명예의 상실ㆍ탐욕ㆍ방일이 있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見取)ㆍ난위(難爲)를 내어 뜻에 절제가 없으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인데 통용되지 못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ㆍ난위를 내고 뜻에 절제가 없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인데 통용되지 못하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ㆍ말하지 않는 원결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있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ㆍ말하지 않는 원결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있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다시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추한 말ㆍ꾸밈말을 하여 나쁜 계를 구족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추한 말ㆍ꾸밈말을 하여 나쁜 계를 구족하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고 게으르며 바른 생각[正念]과 바른 지혜[正智]가 없고 나쁜 슬기[惡慧]가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고 게으르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고 나쁜 슬기가 있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렵혀진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렵혀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에여, 나는 다시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가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도 말하리라.”
이학 무에가 다시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저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라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없고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없고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지 않고 해의 기운을 먹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지 않고 해의 기운을 먹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잘난 체하지 않으며 이 청고행자는 고행을 마친 뒤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잘난 체하지 않으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행은 청정한 수행이고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행은 청정한 수행이고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무에여,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질투하여 ‘무엇 때문에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질투하여 ‘무엇 때문에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이 사문 범지를 맞대고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뿌리종자ㆍ줄기종자ㆍ열매종자ㆍ마디종자ㆍ씨종자 따위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처럼 5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살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고도 이 사문 범지를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뿌리종자ㆍ줄기종자ㆍ열매종자ㆍ마디종자ㆍ씨종자 따위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처럼 5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살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거나 은밀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의심하거나 명예를 잃지 않고 탐욕을 내거나 방일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거나 은밀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의심하거나 명예를 잃지 않고 탐욕을 내거나 방일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見取)를 내지 않고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으며 뜻에 절제가 있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이라고 통용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를 내지 않고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으며 뜻에 절제가 있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이라고 통용된다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없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없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추한 말ㆍ꾸밈말을 하지 않고 나쁜 계를 갖추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추한 말ㆍ꾸밈말을 하지 않고 나쁜 계를 갖추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고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나쁜 슬기가 없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고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나쁜 슬기가 없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라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학(異學) 무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라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렵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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