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설경(說經) 제6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것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내나니 그 이름을 사종설경(四種說經)이라고 한다. 


이 사종설경의 뜻을 분별해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이제 설명해 주겠노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사종설경의 뜻을 분별하는 것인가?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하며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욕계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초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초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초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초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2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초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초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2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2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2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2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고,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3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2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3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3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3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3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定]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이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4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4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3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3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4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4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4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제4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공처(無量空處)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4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想]조차 기억[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색(色)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량공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량공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량공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무량공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성취하여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량식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공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공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량식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량식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량식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식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하여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소유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소유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식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소유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소유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소유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무소유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비유상비무상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싫어함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소유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생각[想]이 있고 앎[知]이 있어 이와 같이 알게 되면 나아가 제일인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까지도 알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중아함경 제46권 


승가제바 한역 


14. 심품 제3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