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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왜 다른 종교처럼 모두를 포용하지 못할까?"라고 의문을 품는 이들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세상 사람들도 그 넓은 아량에 박수를 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 옳다고 인정해 주면 교세도 커질 것이고, 세상에서 무시당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합니다.


최근 한국 불교에서는 중국산 로봇에 승복을 입히고 불자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세상에 로봇까지 불자가 된다니, 얼마나 열린 모습처럼 보입니까? 로봇도 되는데 사람은 누구나 불자가 될 수 있겠지요.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녀가 태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아이에게 바른 길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귀가 솔깃한 말을 합디다. "사람을 가려 사귀게 하지 말고, 아이가 마음대로 살게 놔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무서운데 그래도 되냐고 물었더니, 아이의 '자유'를 부모가 막아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 말이 맞는 줄 알고 미숙한 아이를 마음대로 살게 방치했습니다.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꾸만 엇나갔습니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일진 노릇을 하며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다 결국 소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크면 정신 차리겠지' 하고 또다시 방관했습니다.


출소 후에도 아이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며 마약과 온갖 범죄에 손을 댔습니다. 그제야 자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말로 타일렀습니다. "너도 이제 컸으니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돌아온 것은 폭력이었습니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마세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결국 저는 "네 인생이니 알아서 잘 살아라"라며 포기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중증 마약 중독자가 되었고, 살인까지 저질러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피붙이의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 면회를 갔을 때, 아들은 저를 향해 피눈물을 흘리며 욕을 퍼부었습니다.


" 내가 어릴 때 철없이 굴었을 때, 왜 나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내가 말을 듣지 않을때 매를 들어서라도 사정없이 때려잡았다면, 내가 오늘 이런 괴물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고 미워한 것입니다! "


아들의 절규 앞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저는 아이의 자유를 존중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고 있습니다.


"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 (잠언 13:2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로 징벌을 주시고 엄한 법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미워하셔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미숙하고 영적으로 무지한 우리들이 파멸의 길로 가지 않도록, 아프더라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참된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 (히브리서 12:6-8)


진리는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순수한 물에 더러운 물이 섞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마실 수 없는 오수가 됩니다.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기틀은, 시대가 변해도 진리의 기준(법)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무엇이 바른 것인지 혼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대중화'와 '포용'이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이교적 요소와 세속적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사랑하고 그분을 제대로 알기 위한 길은 오직 '성경 말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유행이나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절대 가치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결국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우상이자 피해야 할 덫일 뿐입니다.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 (출애굽기 20:3)


진실은 거짓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하는 기독교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으로 보이며 싫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을 살리는 진짜 사랑은 달콤한 방임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단호한 진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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