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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 (시편 14:2-3)
"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 (로마서 3:10-11)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의 고통과 괴로움을 알려고 하는 사람도 드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분이 남기신 말씀을 지식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며, 철저히 인간의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보곤 합니다. 그렇기에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을 읽다 보면 필연적으로 수많은 의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왜 젖먹이와 여인들까지 진멸하라 하셨을까?
죄없는 욥에게 그토록 가혹한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똑같이 죄를 지었음에도 왜 사울은 버리시고, 다윗은 끝까지 사랑하셨을까?
인간의 이성과 감정으로만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은 자비롭기보다 두렵고 거부감이 드는 분으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외의 이방인들을 철저히 외면하시는 것처럼 보이고, 유대인의 선민의식은 도리어 세상의 미움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구약의 많은 역사는 하나님의 징계로 가득 차 있습니다. 택함 받았다는 이스라엘 조차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바벨론의 노예로 끌려갔으며,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습니다. 율법은 그들에게 무거운 멍에였습니다.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려다 무기력하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고, 결국 생존을 위해 안식일에도 칼을 들고 싸우는 길을 택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인간 편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멀리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감추어진 영적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
"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 (이사야 55:8-9)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리에게 이토록 고통스러운 세상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본래 가장 완벽하고 행복한 에덴동산에 살았으나, 하나님을 배신하고 마귀의 유혹을 따라 죄를 선택했습니다. 그 죄의 결과로 세상에 고통과 저주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다시 진정한 행복의 나라를 허락하시기 위해, 거친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거룩한 자녀로 양육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 기준에 불합리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주권과 행하심을 겸손히 인정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 완전하신 사랑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온전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교묘한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교만한 욕망으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보다 눈앞의 여인을 더 사랑하여 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오늘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신앙의 중심을 세워야 합니다.
첫째, 유혹에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달콤한 것들은 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어기게 만듭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강건한 사람은 세상의 어떤 유혹도 믿음으로 이겨냅니다.
둘째,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진리를 교묘하게 비틀어 다가오는 사탄의 거짓말을 알아채고 대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온전한 신뢰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주님보다 우선될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을 쏟아낸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 발을 들이지 못했습니다. 고난과 아픔, 심지어 불합리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순종의 걸음을 내딛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나라를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가 주시는 잔을 마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수많은 이웃과 가까운 이들이 장차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죽어갈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유대민족은 예루살렘 파괴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박해와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조차도 때로는 아버지의 뜻을 다 헤아리기 힘든 고뇌 속에 계셨으나, 끝내 온전히 순종하셨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만물 위에 높이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온전한 사랑을 우리에게 단번에 다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구속의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아버지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랑의 크기를 더 웅장하게 느끼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찾고 안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알거나 성경 구절을 읽는 데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것이며, 감추어진 그분의 깊은 사랑을 발견해 나가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하나님만이 선하시며 진정한 사랑이심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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