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oman We Love - 스물 한 살, 김지원

그녀는 아직 미완성이다. 바로 그녀가 아름다운 이유이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이제 겨우 얼굴을 알린 배우 김지원. 그녀가 돌연 일본에서 가수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 최대 규모 기획사인 에이벡스와 계약을 맺었다니 괜한 이슈거리나 만들어보자는 심산은 아닌 것 같다. 내친김에 <에스콰이어>에서 그녀를 '로커'로 변신시켜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연거푸 거울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까지 짙은 화장은 처음이라며 신기한 듯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다시 응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상큼한 이미지가 전부였다. 오란씨 광고에선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CM송에 맞춰 발랄한 율동을 선보였고 장진 감독의 영화 <로맨틱 헤븐>에선 촌스럽고 맹한 소녀를 연기했다. 뮤지컬 드라마 <왓츠 업>에서는 꿈을 향해 도전하는 대학생, 심지어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고등학생으로 출연했다. 아직까지 그녀에게는 젊음이 무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선희, 이문세. 김지원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다. 인터뷰어 입장에서 이런 의외의 면은 언제나 즐거운 자극이다. 이제 스물한 살인 젊은 처자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했던 가수의 노래를 즐겨 듣고 있다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손 편지 쓰는 걸 즐기고 아직도 2G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보여준 지원의 캐릭터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그녀의 평소 모습이 토대가 되었던 것이리라. '엉뚱하다'란 단어로 규정하기에는 부족한, 21세기를 살아가는 아날로그형 인간. 김지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 아날로그적 감성이 그녀의 연기를 또래 연기자들과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감성 표현과 자연스러움.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연기는 확실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백지장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로서의 포부도 남달랐다. 그녀는 배우로서 하지원을 본받고 싶다고 했는데 극 중에서 하지원은 항상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란다. 배우에게는 고정된 이미지가 큰 장점일 수도 있지만 자칫 그것 때문에 배우 생명이 줄어들기도 한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게 된 배우는 항상 새로운 변신을 강요받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바람은 현명해 보였다. 백지장이라면 어떤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그림들이 덧입혀지다 보면 결국엔 자신만의 새로운 색깔이 표현될 것이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어찌 보면 그녀의 가수 데뷔 선언은 이런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음반을 발매해봐야 '배우의 한순간 외도' 정도로 인식될 것이니 일본에서 아예 신인 가수로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해 연기까지 영역을 넓히는 경우는 많아도 그 반대는 드물다 보니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일본에서의 가수 데뷔를 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피아노는 6년 정도 배웠고 기타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을 위해 배우기 시작했어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배우고 준비도 많이 한 상태고, 그냥 제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좋은 경험이 더해지는 것 같아요."

경험이 쌓이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새로워질 수 있다. 어린 나이라면 그 파급 효과는 더욱 무시무시하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만 놓고 보더라도 1회의 김지원과 7개월이 지난 123회의 김지원은 분명 달랐다. 쉴 새 없이 촬영에 임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녀는 좀 더 배우 김지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성장한 것이다. 그것은 김병욱이란 유능한 프로듀서를 만나서일 수도, 훌륭한 선배 배우들과 함께 호흡해서일 수도,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또래 연기자들과의 유대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 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제 생각엔 아무래도 계상 오빠와의 호흡이 가장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누군가를 실제로 짝사랑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강제적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토론을 이끌어내주셨어요. 일방적으로 배우기보다 제 생각을 물어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는 식으로 토론을 하다 보니 조금씩 감이 오더라구요."

 

그녀는 아직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많지 않다. 앞으로 보여줄 그녀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까닭이다. 어느 날 갑자기 유명 뮤지션이 되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록 뮤지션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크게 걱정스럽지는 않다. 그 경험마저 배우로서 값진 밑거름이 될 테니 말이다. 김지원이라는 캔버스에 앞으로 어떤 물감으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우리는 그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글/ 김진호 어시스턴트/ 서정민 스타일리스트/ 이영미
헤어/ 김석(노주원 헤어그라프) 메이크업/ 김태현(노주원 헤어그라프)

 

에스콰이어 2012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