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어느 날 밤 호수가의 장미가 흩날리는 물웅덩이에서 잿빛 갈기를 가진 한 사람이 대사를 읊고 있었다.
"아름다운 한 여름 밤을 축복하며.. 축복, 축복하며! 하하.. 잘 안되네"
바스락.. 바스락.., 수풀 속에서 자갈과 모래가 뒤섞이는 소리가 나더니 은은한 달빛 속에 제시카가 나타났다.
"엇.. 안녕하세요 닉 보텀씨 오늘도 갈기가 멋지시네요. 어떤 소리가 들려서 와봤는데, 대사 연습 중 이셨나봐요"
닉 보텀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하더니 이내 쑥스러운 듯 말했다.
"하하 제 갈기를 칭찬해주시는 분이 있다니 이런 모습이 되고 나서 처음이군요
어.. 음.. 네 맞아요 한 여름 밤의 꿈 이라는 연극의 대사를 연습하고 있었어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연극이죠."
"아하 그렇군요. 연극은 학교 수업 때 해본 게 전부지만, 저도 영화를 찍는 취미가 있어요
주로 공포 영화를 찍는데 아주 무섭답니다. 나중에 한 번 보여드릴게요"
제시카는 최대한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 영화 말인가요 제가 살던 시대에는 없던 유흥 거리라 그것 참 기대가 되는군요
재단에 오고 나서 증명 사진을 위해 카메라라는 것에 찍혀봤는데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음..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연습하고 계셨나요? 저도 가끔 이 호수에서 연습하곤 하는데
재단에서는 제법 거리가 있는데.. 부끄러움이 많으신가봐요?"
"제가 인간의 모습일 때.. 아니 지금도 인간이지만 온전한 모습일 때는 제 연극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 때는 사자 역할도, 영웅 역할도 했었는데 지금은 당나귀 연기밖에 못해요
영웅스러운 당나귀란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상하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저 혼자 연극을 하고 있었죠"
닉 보텀은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갈기를 어루만졌다.
"아하 그런가요 제가 생각하기엔 이상하지 않은데요
야심한 밤 사람을 산 채로 잡아먹는 라이칸 슬로프를 무찌르는 사자탈을 쓴 영웅 당나귀!
어때요 벌써 공포 영화 각본이 하나 나왔죠?"
"후후.. 후후후 그것 참 재밌어 보이네요 혹시 영화를 찍으실 일이 있으면 절 불러주세요
카메라는 영혼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지만 그런 내용이라면 제 영혼도 아깝지 않겠죠
또 저는 무대 의상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제시카는 눈을 반짝이며 닉 보텀의 손에 있는 화관을 바라보았다
"그 화관도 직접 만드신건가요? 아주 아름답고 향긋한 향기가 나요"
"아 이건 여기 있는 장미로 만들었답니다. 붉은 장미 줄기에 분홍 장미를 붙히고 안개 꽃을 얹으면..
간단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화관이 만들어지죠 한 번 써보시겠어요?
조심하세요 장미에는 가시가 있으니까"
닉 보텀은 자신이 만든 화관을 제시카에게 건내주었고, 제시카는 자신의 머리에 있는 흰 꽃 대신
닉 보텀의 장미 화관을 써보더니 마음에 드는 듯 좌우로 움직였다.
"저는 흰 꽃을 좋아하지만 분홍 장미도 나쁘지않네요 아주 향기로워요"
"그래요 꽃은 언제나 이토록 향기롭죠 작은 봉우리가 피어나기 전
어떤 흉한 모습이었을지라도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향기롭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면 가지셔도 좋아요 장미는 이곳에 많으니까요"
"와 정말이요? 감사합니다. 어떤 연극 대사인지는 몰라도 정말 아름다운 대사에요"
제시카는 무의식적으로 화관의 향기를 맡더니 그대로 입 안에 넣어버렸다.
"음냠냠.. 헉 죄송해요 모르고 버릇대로 잎을 먹어버렸네요 너무 향기로워서요"
"후훗 괜찮습니다. 장미란 어떤 모습이 되어도 아름답고 향기로우니까"
동물끼리 하는 건 묘사하고 싶지 않다. 필요한 만큼은 보여줬다.
TMI : 사불상이라는 동물은 당나귀의 몸통에 사슴의 뿔을 가진 모습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과연 사불상을 낳을 것인가 인간을 낳을 것인가?
와 오늘부터 닉뷰텀x제시카 응원한다
당나귀 탈을 쓴 인간이라 생각하면 편합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