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소 레드 38! 본부에 신호가 원활하지 않다고 알림!

Ебать! (씨발!) 신호도 제대로 안가는거야?"


릴리아의 Su-01Be가 한 쪽이 기운 채 바다 한 가운데로 추락하고 있었고,

릴리아는 엄청난 풍압에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젠장! 사제 보드카만 아니였어도 이런 곳엔 안왔을텐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엔진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푸쉬익... 털털..털털털털... 

결국 남은 한 쪽 엔진마저 꺼졌고 릴리아는 정신을 잃은 상태로 추락했다.



-



삐익 짹짹 삐익 짹짹 


"새 소리..? 뭐지 살아남은 건가.."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때 릴리아는 새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끄는 눈썰매 소리에 정신을 차렸고,

몸에는 순록 모양이 그려진 검은 숄이 둘러져 있었다.


"이봐! 이봐요 제 목소리 들려요?"


"...?

오.. 네.. 안녕..하세요 정신을 차리셨군요" 


썰매가 멈추자 살짝 연한 회갈색의 머리를 한 남성이 

느릿느릿 말을 하며 뒤를 돌아봤다.


'러시아어를 쓰는걸 보니 여긴 적성국은 아닌 모양이군..'

"도와주신 와중에 죄송한데 여기가 어디죠?"


"음.. 네 여기는 러시아.. 아.. 이걸 물어보는게 아니겠군요..

사할린.. 사할린에 있는 유배지에요.. 타타르해협 동쪽이죠

숲 속에 추락하셔서.. 놀랐는데 다행이에요"




추락 당시 빗자루의 엔진은 멈췄지만 다행히 쉴드는 작동한 모양이었다.

릴리아는 몸에 붙은 눈과 잔 나무 가지를 툭툭 털어내며 일어났다.


"젠장.. 멀리도 왔네 혹시 여기 가까운 군부대나 관리소가 있어요?"


"어.. 감독관이 오긴 하는데.. 앞으로 이틀은 있어야.. 하겠군요

가까운 관리소까지는.. 130km는 가야 있어요..

폭설 때문에.. 걸어서 가기는.. 힘들죠"


"쉣! 이틀이나 여기 있어야 한다고..?! 

맞다 내 보드카..! 내 사랑스러운 보드카는?"


릴리아는 허리춤의 힙 플라스크를 꺼내보았지만 

플라스크는 충격에 금이 갔는지 이미 많은 양의 보드카가 샌 뒤였다.


"씨발! 신은 나를 버렸어"


릴리아가 투덜거리는 사이 어깨에 작은 새를 얹은 남자가 물었다.


"군복.. 같은데.. 어디서 오셨나요..?

저는.. 겨울이라고 합니다.. 이 곳에서 유배 생활.. 중이죠"


"아 맞다 소개를 까먹었네. 저는 바렌츠해 방면 12 비행정찰대에서

동부 정찰 임무를 받고 파견된 릴리아라고 해요"




겨울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바렌츠해..? 거긴 무르만스크.. 그러니까.. 여기랑 반대편.. ?"


"아.. 그렇죠 어쩌다보니 임무 지원을 받아 오게됐어요

아저씨는 흉악범으로는 안보이는데.. 혹시 정치범? 무슨 짓을 했길래 여기 계신데"


겨울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시를.. 지었을.. 뿐이에요 크렘린에 계신.. 분에 대한.."


"크렘린? 흐흐하 아저씨 그렇게 안생겼는데 배짱이 대단하시네 아 이해가 됐어요

그래서 지금 어디 가는 중이었죠? 아무리 유배로 외롭다고해도 

이런 화약내 나는 여군을 납치할 생각을 하다니 재미라도 보시려고요?"


릴리아가 호탕하게 웃으며 농담을 던지자 겨울은 눈동자가 커지며 귀가 빨개졌다.


"아..아 아니.. 아니에요.. 추락하기도 했고.. 옷을 춥게.. 춥게 입으셔서.. 유배 숙소에.."


말을 더듬는 겨울의 모습에 릴리아는 더욱 짖궃게 장난을 쳤다.


"아 여자 허벅지를 보는게 오래간만 이신가봐요? 저는 하나도 안추운데

흐흐 장난이에요 장난 썰매 이리주세요 제가 끌테니"


릴리아는 겨울이 쥐고 있던 썰매의 끈을 받아 들었다.



-



썰매를 끌고 40분 정도 지났을까 가까이서 작은 오두막 같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은 낡아보였지만 여기저기 덧댄 탓에 바람이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다.


"와.. 이게 유배건물? 대단한데 다시 신병훈련 때로 돌아간 것 같네"


"네.. 유배지니까요.. 다른 민족은.. 땅굴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어요.."


오두막 안에 들어서자 작은 벽난로와 탁자, 나무로 만든 침대

그리고 생감자가 들어있는 포대가 있었다.


"참 단촐하네요 보니까 여기 술같은건 없겠죠? 에.. 엣취 으으 춥다 추워

엥 근데 뗄감이 겨우 이거밖에 없어요?"


들어오자마자 벽난로 앞에 붙은 릴리아는 얼마 없는 뗄감이 눈이 갔다.


"아.. 네.. 밤에 눈폭풍이 온다고 해서.. 숲에 뗄감을 구하러 나섰는데..

거기서 릴리아씨가 추락하는걸.. 목격했어요.. 어쩔 수 없죠..

불씨는 약하겠지만.. 벽난로 앞에 있으면 아주.. 춥지는 않을거에요"


"윽 내 Su-01Be가 고장만 안났으면 뗄감 정도는.. 

아 그랬으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없었겠구나.. 어쨌든 미안하게 됐어요"


릴리아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미안하다는 몸짓을 했다.

겨울은 탁자 위의 작은 냄비를 가져와 벽난로 속에 올린 뒤 

감자 몇 개를 난로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 아니에요. 아침에 먹던 스튜가.. 조금 남았는데.. 드시면 따뜻해질 거에요"


"크흥.. 킁 아 고마워요 아저씨 아.. 벽난로 앞인데도 오한이 드네"


릴리아는 긴장이 풀렸는지 떨어지며 부딫힌 발목과 어깨가 욱씬거렸고, 

오한이 드는 느낌을 받았다.


"으 쑤신다 쑤셔 그래도 여기 할머니 댁 같아서 좋은데요?

저 할머니 밑에서 자랐거든요. 아버지는 징집돼서 돌아오지 않고 

어머니는 어딘가로 가버리고 뭐 흔한 이야기죠"


"오.. 이런.. 안되셨네요.. 전쟁의 비극이란..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겨울은 벽난로 속 스튜 냄비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할머니 댁은 좋았어요 근처 개울에서 여름이면 

연어가 끝 없이 올라왔죠 그 녀석들로 연어 파이도 해먹고..

그치만 언제까지 할머니 손을 벌릴 수는 없으니까 군인이 되기로 했죠"


"그렇군요.. 연어 파이.. 못먹어본지 오래됐네요.. 

여기는.. 바다를 나가야 연어를.. 볼 수 있으니까요..

자.. 드세요 든건 없지만.. 따뜻해 질거에요.. 저는 구운 감자가 있으니까요"


겨울은 릴리아에게 스튜가 든 작은 냄비를 건냈다 

당근 몇 덩이와 감자 그리고 녹아있는 호밀빵이 들어있는 묽은 스튜였다.


"저는 사실.. 당근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묘하게 쓴맛이 난다고 해야하나..

그렇지만 여기선 감자와.. 당근 뿐이니 이것도 참.. 감사할 따름이에요"


"아 그렇죠 네, 그래도 확실히 전투식량보단 맛있네요"



-




식사를 마친 후 벽난로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릴리아는 폭풍의 바람이

문을 삐걱이는 소리에 머리는 몽롱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뜨거웠다.


"으... 으 젠장 콜록..콜록.. 너무.. 추워.."


탁자에서 무언가 적고 있던 겨울은 그 소리에 릴리아의 곁으로 다가섰다.


"어.. 음.. 괜찮으세요? 아.. 앗 열이 많이.. 나고 있어요"


겨울은 자신이 걸치고 있던 숄과 외투를 벗어 릴리아에게 덮어줬지만

벽난로는 화톳불만 남아있었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 이런 더 이상 뗄감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릴리아가 다음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등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고 있었고,

벽난로 안에는 타다 만 종이와 나무 조각이 들어있었지만 불은 옮겨 붙지 못하고 있었다.


'나무.. 조각? 어디서 나온거지.. 불꽃은 아까와 같은데 이상하게 따뜻해..'


그리고 무언가 허전함을 느낀 릴리아는 다음 순간 화들짝 놀랐다.


"오.. 죄송.. 죄송해요 그치만.. 벽난로에 불이 붙지않아서.. 미안해요 어쩔 수 없었어요"


릴리아의 다리엔 겨울의 외투가 덮혀 있었다.

몸은 검은색 숄과 릴리아의 자켓으로 둘러쌓여 있었고,

그리고.. 그 속엔 겨울의 등과 릴리아의 등이 맨 살로 닿고 있었다.


다시보니 벽난로 속의 타다 만 종이에는 시가 적혀있었다.

나무 조각은 의자의 다리였고 나무는 코팅된 탓인지 불이 붙지않은 것이었다.


"으.. 으.. 아저씨 꽤 대담하신데? 하지만.. 나쁘지않아요

조난 당했을 때 콜록.. 콜록.. 맨몸으로 체온을 옮길 수 있는건 상식이니까

하지만 등은 표면적이 적고.. 저는 지금 아주 춥거든요.."


릴리아는 그대로 뒤로 돌아 겨울의 등을 껴앉았다.

릴리아의 봉긋한 가슴이 맨 살에 닿자 겨울은 깜짝놀라고 말았다.


"아..아니 어.. 이런.. 이러면.."


"괜찮아요.. 아저씨 긴급 상황.. 이니까

저 벽난로 속에 있는 종이 아저씨가 지은 시편 맞죠?

유배지라 종이 구하기도 힘들었을텐데 저걸 태울 생각을 하다니.."


잠시 정적이 흘렀고 릴리아의 귀에는 겨울의 고동치는 심장 소리만이 울렸다.

쿵.. 쿵.. 쿵..


"시인 이라고 하셨죠? 시 한 편만 읽어주세요 하하.. 

저는 시를 들으면 바로 잠들어버리거든요.. 

그럼 폭풍이 그친 아침까지 잘 수 있을 것 같아서.."


"아.. 그렇군요 그럼.. 톨스토이의 시를.. 읽어 드릴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릴리아는 드문 드문 들리는 겨울의 작은 낭송 소리에 졸음이 몰려왔다.



이른 봄

풀은 간신히 고개를 내밀고

(...)


숲의 작은 고사리도

아직은 잎을 돌돌 말고 있다

(...)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내리깔고

내 앞에 너는 서 있었다 


내 사랑에게 보내는 응답으로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던 너

(...)

사랑스런 네 얼굴을 보며

나는 울었노라


이른 봄

자작나무 아래서

(...)




-




다음 날 눈 폭풍은 지나갔고, 릴리아는 겨울과 함께 숲으로 가

자기 몸만한 양의 뗄감을 주워왔다. 


둘은 그 날 밤을 따뜻하게 보냈고, 이틀 날 낮이 되어 

유배지 감독관을 맞을 수 있었다. 


"이런 동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분을 이런 곳에 머물게 하다니

몸이 성하셔서 다행이군요 제가 가까운 정비창 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예 동지 잘부탁드리죠. 아저씨도 감사했어요 음..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답례로 연어파이를 사다드리죠"


뒤돌아서 떠나려는 릴리아에게 겨울은 시 한 편을 적은 종이를 쥐어주었다.


"이거.. 돌아가셔서.. 읽어주세요.. 주무시는데 도움이.. 될거에요"


릴리아가 차를 타고 떠난 뒤 겨울은 차의 매연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지켜보다가

울적하지만 조금은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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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는 안맞지만 대충 둘다 소련 사람이라 엮어봄


톨스토이의 이른 봄이라는 시를 넣어봤는데 너무 길어서 중략을 많이 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