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깜깜한 숲. 자연 그대로의 수풀을 해치며 어디론가 급하게 나아가는 한 무리가 숲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버틴, 레굴루스, 소더비, 그리고 한 투명한 기사로 이뤄진 무리. 그들이 한 곳을 지나가면 얼마 안 가 크리터들이 그 수만큼이나 빽빽한 안광을 빛내며 쫓아왔다.
크리터들은 눅진하고 검은 무언가를 흘려대며 뭔가의 사주를 받은 듯 광적으로 버틴 일행을 쫓아가고 있었다.
버틴이 이곳에 온 이유는 딱 하나,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단서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어머니만이 공유했던, 아니 그렇게 생각했던 단서였다. 그것은 버틴을 꿰어내기 위한 재건의 손의 함정이었다.
어떻게 재건이 이 정보를 손에 넣은 건지, 자신과 어머니만 안다고 생각했던 연결점은 또 어떻게 알아낸 건지.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란했다. 재단에 내통자가 있는 것인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일단 이 상황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어머니와의 접점이라는 것에 홀려 너무 깊숙히 들어왔다. 여기까지 오느라 지친 일행은 점점 속도가 떨어지는 중이었다.
드루비스가 있었다면. 하지만 드루비스는 그녀가 필요한 일이 있어 재단에 남았다. 어쩌면 이것 또한 내통자의 수작일지 몰랐다.
유일한 전투원이라고 할 수 있는 A 나이트는 일행의 후미에서 점점 따라붙기 시작하는 적들을 떨쳐내고 있었다. 이것도 곧 한계에 다다르리라.
슬슬 포위망이 형성되어 눈에 보이는 크리터들의 수가 적잖았다. 안전한 곳까지 가려면 30분은 더 가야 한다. 그때까지 저것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때, 레굴루스가 마지막 남은 기력을 끌어모아 그녀의 마도술, 신나는 로큰롤을 발동했다. 일행은 그 틈에 눈앞의 공터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둥치에 기대앉았다.
은신 효과의 남은 시간은 5분. 이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시간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당장 가쁜 숨을 몰아 쉴 뿐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여기서 끝인가. 나를 따라온 내 사람들은 어쩌지. 너무 성급했다. 최소한의 대책이라도 마련해야 했는데.
차라리 자신이 잡혀 주어 나머지만이라도 보낸다면. 그래,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다같이 잡혀 못볼 꼴을 당하는 것 보다야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버틴이 하염없이 죄책감과 절망을 곱씹으며 자신을 희생하려 할 때. 평정심을 잃지 않은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타임키퍼.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표정만 봐도 알겠습니다.”
“A 나이트 씨?”
“제가 보아온 당신은 자신의 사람들에게 한없이 상냥한 분이었습니다. 분명 자신을 희생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러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레굴루스와 소더비가.”
“타임키퍼.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은 부디 잠자코 들어주십시오.”
A 나이트는 항상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뿔피리를 건넸다. 항상 들고 다니는 검과 함께 그의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인 그것. 분명 많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제가 여기에 남겠습니다. 지금 제 책무는 호위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사입니다. 기사가 지켜야 할 주군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하, 그건 기사도 정신에 어긋납니다. 안 그래도 요즘 기사도 정신을 가진 젊은이가 흔치 않은데. 제가 그럴 수는 없지요.”
“A 나이트...”
상황에 맞지 않은 가벼운 웃음. 분명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것이리라.
“저의 몸과 시대를 잃고 방황하던 저를 거둬 주신 순간부터, 이름 없는 방랑 기사는 길을 찾았습니다. 제가 정식으로 당신의 밑에 소속되었을 때 한 말, 기억하십니까?”
뭐였지. 마지막 순간까지 충성을 다하겠다, 고 했던가. 그냥 기사로서 멋들어지게 한 관례상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버틴이 고개를 끄덕이자 A 나이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받았다.
“당신께 충성을 바쳐야 하는 이유는 의심해본 적 없습니다. 당신께서 필부의 선택을 증명해주셨으니까요.”
A 나이트의 망토가 들려 한쪽 무릎을 꿇은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해묵은 갑주가 양손으로 뿔피리를 내밀었다.
“이것을 받고, 멀어지면 있는 힘껏 피리를 불어주십시오. 필부의 마지막 간청입니다.”
“...”
몸이 없어 표정도, 어딜 보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기사에게서는 완고하고 단단한 강철같은 신념이 느껴졌다. 이건 거절할 수 없다. 세월이 빚어낸 가장 굳건한 조각품이 지금 그 끝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결국 A 나이트를 제외한 버틴 일행은 은신이 끝나기 전 포위망 반대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남을 몸. A 나이트는 은신을 해제하고 두 손으로 검을 붙잡아 몸을 지탱했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저들을 쫓으려면 나를 먼저 꺾어야 할 것이다.”
곧 그동안 쌓인 크리터의 파도가 공터를 덮쳤다. 처음 몇 분간은 밀리지 않고 응전했으나, 거대한 악의의 파도가 기사의 몸을 덮었다. 기사는 대인전에 특화된 직업. 이 정도의 물량 공세에는 어쩔 방도가 없었다. 이만큼 버틴 것이 기적이었다.
기사의 망토가 엉망으로 찢기고, 갑주는 깨져갔다. 검신은 깨져 손잡이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어가는 중에도 기사는 자신을 잃지 않았다.
기사는 정신없는 파도 속에서 자신의 해묵은 과거를 떠올렸다. 격렬한 전쟁터, 든든한 동료들, 실크 침대와 장미 정원... 기억이 세월에 깎여나갔음에도 잊지 못할, 지금의 자아가 형성되게 해 준 소중한 추억들.
그때, 멀리서 뱃고동같은 웅장한 울림이 퍼져왔다. 버틴이 안전한 곳까지 간 것이리라. 그래. 이제 됐다. 자신을 유령의 모습으로나마 세상에 남게 해 준 옛 신의 신성력. 그 쓸모를 다할 때다.
검은 크리터들이 형성한 언덕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나왔다. 빛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크리터들을 단숨에 떨쳐냈다. 크리터들이 감싸던 해묵고 깨진 갑주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곧 한 남성의 윤곽을 형성했다.
“나팔 소리가 울리는구나.”
깨진 검신에 밝디밝은 신성이 대신 자리했다. 기사가 검을 치켜세우자, 신성은 하늘을 뚫을 듯 높이 솟아올랐다.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신성이 해묵은 갑주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휘둘러졌다. 서기 776년. 기사가 몸을 잃은 마지막 전투에서 펼쳐졌던 동귀어진의 마도술. 순간 세상이 빛의 경계로 갈라지는 동시에, 크리터들 또한 갈라져 먼지가 되었다.
버틴이 모든 위험이 사라졌다 판단하고 다시 재단의 인원과 돌아왔을 때, 놀랍게도 기사는 아직 의식이 남아있었다.
“A 나이트! 어서 재단으로 돌아가요. 어쩌면 살릴 수도...!”
그럴 순 없었다. 기사는 자신이 소생할 수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의식이 날아가기 전, 기사는 그의 마지막 주군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이전에 작위를 받았을 때의 필부는, 아주 어렸었습니다.”
“...”
“하지만 당시의 경건한 맹세는, 지금까지도 전혀 변함 없습니다. 그 맹세를 끝까지 지켰으니. 기사로서 정말 행복합니다.”
똑. 똑. 해묵은 갑주에 슬픔 맺힌 눈물이 떨어졌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해묵은 갑주라도 이따금씩 추억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마지막까지 실한 농담을 하며 타인을 위한 기사는. 문득 옛날 친구가 흥얼거리던 노래를 떠올렸다.
롤랑은 피가 흐르는 입으로 온 힘을 다해 뿔피리를 불었네.
그러자 땅과 산맥이 진동하며 소리가 3일 밤낮을 맴도네.
열심히 썼는데 묻혀서 슬픔 ㅜㅜ 추하지만 개추좀 눌러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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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추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