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녕하세요. 오늘의 저희 신문사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낮은 탁자와 딱딱해 보이는 소파가 있는 방안에 기자로 보이는 사람과
한 은발의 중년 여성이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하 안녕하세요. 동독이 붕괴되고 이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건 오랜만이네요"
"제가 당신에 대해 뭐라고 호칭하는 게 좋을까요?
KA/7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리셨다는 것은 알고있습니다."
KA/7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 하더니 대뜸 기자에게 물었다.
"프로이센 왕국의 국화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흠.. 글쎄요. 파란 꽃이었던 것은 기억합니다만 이름은 모르겠네요."
"푸른 센토레아... 자연에서 푸른색이 드물다는 말은 들어보셨겠죠.
저는 들녘 곳곳에 흔하게 피지만 특별한 색을 가진 콘블룸으로 불리고 싶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불러주진 않았지만요. 콘블룸이라는 호칭이 좋겠군요."
기자는 테이블 위에 녹음기가 있었지만 이 내용을 수첩에 받아적었다.
"콘블룸씨는 당시 내부 고발과 민간인 감청 등의 혐의로
형량을 사신 것으로 압니다만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으셔서
화제가 되셨죠.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콘블룸은 잠시 미간을 찌푸린 뒤 입을 뗐다.
"제가.. 변호사를 선임했다면 확실히 형량은 크게 줄었겠죠.
그렇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 라고 해야 할까요. 직접적인 관여는 없었지만
피해를 입힌 것은 사실이니까요. 물론 피해자들은 아직도 부족하다 여기겠죠."
"그렇군요. 피해자 단체에서는 아직도 매주 집회를 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시 슈타지에 어떻게 소속되었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먼 곳을 바라보던 콘블룸은 수 십 년전 보육원의 일을 회상했다.
2
당시 분단이 된 국가의 부모들은 아이들까지는 챙기기 어려워
보육원에 두고 떠나는 경우가 많았고, 부모의 얼굴을 모르는 아이들이 넘쳐났다.
그녀도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다만 마도학의 재능을 가진
땅- 땅- 땅-
"일어나 애들아 아침이야. 이불 개고 식당으로 모이렴"
원장 선생님은 아침마다 아이들을 깨웠으며 당연하게도 잘 일어나는 아이와
아침이 힘든 아이들이 대조를 이뤘다.
"안녕 콘블룸? 아침 일찍부터 그림을 그리고 있었구나. 그렇지만 식당에 모여야지?"
"네 선생님! 이 꽃만 그리면 돼요"
당시 꿈에 그리던 것은 어떤 영화에서 봤던 장면이었다.
꽃밭이 딸린 집에서 보살핌을 주는 부모와 곰 젤리를 주는 친절한 이웃 할머니.
대부분 선전 영화였지만, 콘블룸의 기억 속엔 아주 선명히 남아있었다.
"집을 아주 잘그렸구나. 마당이 딸린 집.. 조만간 너도 양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거야
공부도 잘하고 어른 말씀도 잘 들으니까 분명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겠지"
"에.. 그럼 선생님이랑은 못만나는 거 아니에요?"
무척이나 아이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당시에는 슬펐던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걱정하지마 선생님이 매달 연락을 할 거야
또.. 건강하게 자라면 직접 만나러 올 수도 있으니까"
"네! 좋아요 빵이랑 우유랑 토마토를 열심히 먹을 거에요"
3
어느 날 정장을 입은 아저씨들이 우리 보육원에 왔다.
아이들은 자신을 데리러 온 것 일까 하는 기대에 수근거렸지만,
원장 선생님의 눈빛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한 아이가 궁금함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저기 그런데 엄마는 어딨어? 저긴 아빠들밖에 없는데..?"
"바보야 그것도 몰라? 외국에서는 남자들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데
TV에서 우스꽝스러운 영국인 아저씨들이 뽀뽀하는 걸 봤어"
선전물 속에서 영국은 사악하고 멍청한 사람들로 묘사되었고
사회주의의 군인들이 이들을 혼쭐내는 장면이 많았다.
"... 그렇게 되어서 아이들과 면담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그런 곳에 보내는 건.."
"선생님. 이 보육원이 부실 보육원으로 지정된 건 알고 계신가요?
아이들의 지원은 줄어들고, 선생님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셔야겠죠
인민들을 위해 대의를 위해 숭고한 희생은 따르는 법입니다."
어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랐지만, 콘블룸은 직감적으로
아이들 중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이 그림자가 사라지게 되리란 걸 알았다.
"자 여러분들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아저씨들의 질문에 대답하면 이 곰모양 젤리를 한 봉지 씩..
아니지 두 봉지를 사이좋게 받을 수 있어요."
"와! 저부터 할래요 빨간색이 많은 봉지로 주세요!"
아이들은 면담을 하기 위해 서로 앞다퉈 식당으로 향했지만
콘블룸이 멀뚱히 서있자 한 정장 입은 아저씨가 물었다.
"너는 면담하러 안가니? 지금 가면 지렁이 젤리도 있는데"
대뜸 콘블룸이 물었다.
"아저씨들 정부에서 왔죠..? 선생님이 불안해 하시는 걸 봤어요."
"하하.. 왜 그렇게 생각했니?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아저씨는 자세히 듣고 싶다는 듯 무릎을 쪼그려 눈높이를 맞췄다.
"아저씨들은 다 똑같은 코트를 입고 있어요. 그리고 어딘가 딱딱해요
거기다.. 여긴 16살까지 입양되지 않아서 독립하는 언니, 오빠들이 많아요
그런데 굳이 이런 보육원에 아저씨들끼리 아이를 데리러 왔을까요?"
"너 아주 똑똑하구나 혹시 잘하는 게 뭐가 있니?"
콘블룸은 눈을 찌푸리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휘저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질문했으니 이번엔 제가 질문을 할 차례죠.
제가 아저씨들 마음에 들면 보육원이 행복해 질 수 있나요?"
그 아저씨는 한 방 먹었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꼬마 아가씨 또, 아가씨도 그렇게 불행하진 않을 거야
행복하지도 않겠지만. 그래서 잘하는 게 뭐가 있니?"
"... 저는 작은 소리도 잘들어요. 또 방금처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아요
아저씨가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쥐었다 폈다하는 크기를 보면
주머니에 동전이 3개 있을거에요 1마르크 짜리와 작은 페니 동전 2개겠죠"
짤그락..
쪼그려 앉은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1마르크와 10페니 2개를 꺼냈다.
"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아가씨 곰 젤리 하나 먹겠나?"
4
다시 소파가 있는 방으로 시점이 옮겨지며 기자가 묻는다.
"당시 불법적인 일들이 많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보육원 아이들까지 동원했을 줄은 몰랐군요"
콘블룸은 덤덤하게, 그 당시엔 당연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주 흔한 일이었죠. 기록을 조작하기 쉽고, 죽어도 소리 내 줄 사람이 없고,
언제든지 편하게 사용하다 버릴 수 있는 버림패로 이만한 게 없었겠죠."
"그래서 보육원엔 다시 찾아가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통일되기 전엔 항상 감시가 붙었기 때문에 출소한 뒤
몇 년 전에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곳에 보육원은 없었고
보육원 친구에게 듣기론 선생님도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잠시 방안에 정적이 흐르고, 기자가 말을 이어간다.
"그것 참 안타까운 이야기군요. 그럼 다음으로 활동에 대해서인데..."
갑자기 콘블룸은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괜찮다면.. 잠시 휴식을 가져도 될까요?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를 했더니
속이 좋지 않군요. 약을 먹어야겠어요."
"아 이런 제가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실수를 했군요.
잠시만 계세요 카모마일 티를 내올테니"
콘블룸은 입안에 공황 약을 털어넣고 삼키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의 시끄러운 심장 소리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뭣 왜 10대 하와와 여고생쟝 콘블룸 중년의 여성으로 만들어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