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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니는 어쩔 수 없는 집안 사정때문에 그린 레이크를 떠나기 전까지는 줄곧 그린 레이크의 호수 앞에서 '제시카'라는 인형에게 이야기를 말하던 것을 즐기던 아이였잖아?

블로니가 나이를 먹고 성장한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것이 아닌, 나름의 '흑역사'일 수도 있지만... 그 때에는 어린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듬뿍 들어간 혼자서 하는 나름의 놀이였던거지.

말하는 것, 듣는 것, 이야기를 고르는 것, 시작하는 것, 끝내는 것 모두가 블로니가 하는 단순한 놀이. 사실 블로니조차 모르는, 그녀의 이야기를 몰래 듣고 있던 청자가 한명? 한마리? 더 있었지만.

어쨌든, '제시카' 입장에선 블로니가 자신에게(인형에게) 해주는 이야기야말로 곧 세상의 척도이자 자신이라는 새하얀 도화지를 칠해줄 다양한 색의 물감이었을거야.

제시카가 그린 레이크에서 눈을 뜨고 본 것은 우거진 숲, '인간'으로서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짐승들과 크리터들, 쾌쾌하고 따뜻한 이끼, 자연이 주는 먹을 것들, 거대하고 잔잔한 호수, 그리고 또 너무나도 익숙한 숲이였으니깐!

그러던 와중에 블로니가 들려주는 것들은 제시카에게 그보다 더한 것 없을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이고, 제시카가 그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지.

그런데 만약, 제시카가 듣는 이야기. 즉, 블로니가 말해주는 이야기의 주제가 '공포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로멘스 영화'에 관한 것이라면?

사실, 로멘스 영화를 어린이가 그렇게 좋아하려나? 싶기도 하지만,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어린이도 있는데 로멘스 영화라고 불가능할 것은 없지.

로멘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겠어? 바로 '사랑'이겠지.

사랑...! 인류가 가장 접하기 쉬울 수도, 접하기 가장 어려운 감정일 수도 있으며, 발목까지만 차오르는 개울가의 높이처럼 가볍게 빠질 수도, 깊고 깊은 저 바다속 심연처럼 한번 빠지면 영영 빠져나올 수 없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지.

그런데 어린 블로니가 '사랑'에 대해 알아봤자 도대체 얼마나 알겠어? 물론, 블로니도 사랑이 뭔지는 알겠지. 부모님이 자신에게 주는 것또한 사랑이니깐.

하지만, 블로니가 좋아하는 '로멘스 영화'에서 다루는 사랑이란 그런 종류가 아니지. 가족간의 사랑이 아닌, '이성'간의 사랑.

블로니가 부모님 몰래 찾아본 것이 아니라면야 그 중에서도 '육체'적인 사랑을 직접적으로 나누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겠지만, '감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라면 몇번이고 보았겠지.

그러고는 블로니는 줄곧 이야기 하는거야, 자신의 품속에 있는 '제시카'와 그 뒤에서 이야기를 몰래 듣는 제시카에게.

자기가 보았던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자기가 나름대로 이해한 사랑은 어떤건지, 만약 사랑을 한다면 어떻게 하고싶은지, 로멘스 영화를 자기가 직접 만든다면 어떻게 하는건지... 등등.

물론, 그렇게 재잘재잘 이야기를 해도 역시나 아직은 어렸기 때문인지 블로니는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블로니의 이야기를 들은 제시카는 달랐어.

블로니가 말했던 '사랑'. 누군가를 애뜻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하게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무엇이든 해줄 수 있을만한 마음.

그래, 제시카는 자신이 다름아닌 블로니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거야.

'아! 이 감정이 너가 말한 사랑이구나.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는거야.'

그러나 시간은 제시카의 사랑이 블로니에게 전해지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았지. 그렇게 어린 블로니는 그린 레이크를 떠났어. 블로니를 사랑하는 제시카를 냅둔 체로.

제시카는 슬퍼했지.

제시카에겐 블로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마음도, 블로니를 생각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선물도, 그걸 건내줄 용기도 이제는 있었는데... 정작 블로니가 없는거야.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거 아니었어? 어째서? 왜?

하지만 곧 제시카는 블로니를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어. 블로니가 분명 말했거든. 자신을 직접 보고 말한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다음에 또 보자. 제시카."

그래, 이건 분명 블로니가 말했던 '영화'라는 것에서 나오던 것일 뿐이야. 사랑하는 두 사람이 모종의 이유로 잠시 이별하는 장면은 종종 있기 마련이지, 무얼 위해서?

"두 사람이 다시금 만나서 진실되고 영원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언젠가, 반드시 자기 곁으로 돌아올 블로니를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게 준비하는 제시카의 모습은 분명 사랑에 빠진 소녀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