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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 나를 원망해줘. 나를 저주해줘. 내 심장에, 상처를,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줘.”


  주저앉은 버틴은 헛소리를 지껄였다.

  이제는 본인이 뭐라 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아까부터 계속 소네트가 자신을 어르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버틴은 자기 할 말만 읊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밉지? 모두 내 탓이야. 잘못했어. 용서를 빌게. 그러면, 모두들, 잃어버린 사람들이 돌아올까?”


  질문의 답을 기다리는 대신, 버틴은 눈물만 뚝뚝 흘렸다. 바닥에 팽개친 눈물은 유리 파편에 달라붙어 작은 옹달샘을 만들었다. 깨진 유리잔. 마룻바닥에 난 흠집. 떨리는 손과 무릎. 머리카락. 눈물— 버틴은 아래서 보이는 모든 것이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너도 떠날 거지!?”


  종지부를 찍듯 악을 쓰는 버틴.


“어차피 너도 똑같잖아!? 내 옆에 붙어있는 척하지만, 여차하면 사라질 거면서…! 너도 똑같아. 난 계속 혼자였어. 기억이 시작된 순간부터 혼자였어. 이제는 속지 않을 거야— 꺼져!! 가버려!! 날 버려!! 지금 당장—”


  그리고 버틴의 헛소리는 끊겼다.


  부드럽고 따뜻한 무언가에 의해 말문이 턱— 막혔다.
  우드 향.
  상쾌한 향이, 불쑥, 코앞으로 다가왔다가, 금방 떨어졌다.

  그 끝에 소네트가 있었다.

  자기 입을 억누르는 소네트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순간, 버틴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소네트가 하는 말이 그제야 귀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타임키퍼. 무례를 저질러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당신의 입을 막아야 할 것 같았어요. 큰일이 나기 전에요. 그래서……!”


  소네트는 반쯤 울먹였다.


  버틴은 딱히 놀라지도, 화를 내지도 않고 그 자리에 흐리멍덩 앉아만 있었다.

  


  둘 사이에는 깨진 유리컵, 흩어진 눈물.



  모두 버틴이 몇분 전에 어지른 것이었다.












   우디 계열의 향은 심신을 맑게 한다.


“……미안해, 소네트. 방금은 제정신이 아니었어.”


  이제야 사람다운 말을 할 수 있게 된 버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자기 머리를 옮기려 했다. 소네트의 허벅지에서— 소네트가 없는 다른 곳으로.   
  하지만 실패했다.


“요즘 제대로 쉬시지 못 했어요.”


  짧게 말하고, 소네트는 버틴의 귀를 자기 다리 위에 지그시 눌렀다.
  눌리지 않은 반대쪽 귀가 왼쪽과 오른쪽 허벅지 사이에 푹 묻혔다. 그러고 보니. 버틴은 생각했다. 소라를 귀에 대면 파도 소리가 나던데, 소네트의 허벅지 사이에서는 별 소리가 안 나는구나.
  
  소네트는, 여기 머물라거나, 움직이지 말라는 표현도 없이 버틴의 머리를 구속하면서 말했다.


“주무시지 않고 계속 일만 하신 탓이에요. 이제는…… 휴식을 취할 때가 되었어요.”

“…………”


  옆머리를 다듬는 소네트의 맨손은 약간 습했다.

 
  버틴은 눈을 감았다. 망막 안쪽으로 떠오르는 것은, 여전히 눈물과 깨진 유리컵이다.
 
  버틴은 자신이 왜 이리도 깨진 유리컵에 집착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딱히 컵일 필요는 없다. 유리일 필요도 없다.
  깨지기만 한다면— 어떤 물건에든 발작을 일으켰을 것이다.
  4년 전 ‘폭풍우’에 친구들을 잃었던, 꼭 그때처럼.




  트라우마는 교활한 놈으로, 숙주가 가장 약해진 틈을 타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
  


  말 할 것도 없이 버틴은 약해져있었다.
  
  어쩌면 불면증 진단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메스머 주니어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저, 스트레스로 잠깐 불면 증상이 생긴 것뿐이니 업무량을 줄이라든가, 마음을 편안히 하라든가.
  상투적인 조언과 함께 수면 유도제를 몇 알 처방하고 버틴을 돌려보냈다.
  처방전을 대신 받던 소네트의 표정을 버틴은 기억했다. 만족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센터에서 돌아오자 마자 버틴은 또다시 일을 시작했다.
  업무량을 줄일 수 있을 리가 없다. 타임키퍼라는 직함의 무게를 보아라.
  수면제를 처방받은 의미도 없이, 최근에는 정말 기계처럼 일만 했다. 거기다 내려찍듯 찾아오는 재단의 압력까지.
  그 모든 요건을 고려했을 때, 사소한 실수— 이를 테면 손이 미끄러져 유리컵을 깨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그보다 더한 일을 저지르지 않은 것이 대견할 정도.
 
  ………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깨진 컵을 치우려고 했다. 그런데.

  저 조각, 폭풍우를 맞고 사라지는 사람이랑 비슷하게 생겼지 않아?



  머릿속의 누군가가 속삭이자마자 버틴은 무너져내렸다.








  허벅지와 손바닥으로 감싼 머리가 따뜻해졌다.



  망막 안쪽의 유리 조각이 희미해지자, 버틴은 다시 눈을 뜨고 소네트의 아랫배를 보았다.

 

  흰 정복이 위를 덮은 소네트의 배는, 인체의 일부라기보다 대리석 벽 같은 인상이었다— 리본이 묶인 대리석. 이 늦은 밤에도 그녀의 정복은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타임키퍼의 업무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피로 때문인지 눈 앞이 뿌옇다. 소네트의 하얀 아랫배도 꿈처럼 흐릿했다. 이대로 눈을 더 가늘게 뜨면 천 너머 오목한 배꼽을 투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얀 대리석을 세 손가락으로 눌러보았다. 안쪽에 있는 배꼽을 찾아보려는 의도였다. 생각보다 감촉이 보드랍다. 


  

  그러자 배가— 아랫배인지 대리석인지— 한 번 움츠리더니, 팽— 긴장해서는 뻣뻣하게 펴졌다.


  
  갑작스러운 동작이었다.



  버틴이 천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소네트와 눈이 마주쳤다.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여있었다.


“어……”



  아—와 오— 사이의 어떠한 소리를 냈다고 생각한다.
  소네트와 대략 15초 정도, 그렇게 마주보고 있었다.

  버틴은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동그란 눈으로 이쪽을 한참 내려다보는 소네트.

  왜 저러지?

  당시 버틴의 카드탑 같은 사고로는 세상만사 어떤 일도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소네트가 왜 저러지? 하고, 버틴은 생각했다.

  대리석 벽에 파묻은 세 개의 손가락을 하나, 둘, 셋. 책상을 두드리듯 각각 움직였다.
  넷, 다섯, 여섯.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 맞다.
  이건 대리석이 아니라 소네트의 배였지. 내 정신도 참……


“미안. 갑자기 만져서 불쾌했지.”


  손가락을 치우며 얼른 사과했다.
  몸을 뒤척여 허벅지 위에서 정자세로 누웠다.

  버틴은 소네트의 머리를 가림막 삼아 백열등을 피하려고 했다.


  주황색 머리카락이 만든 그림자 세상 속에 있으려니, 소네트의 눈이 가장 빛나는 무언가로 보였다.
  에메랄드를 닮은 눈.



  소네트의 코끝은 붉게 젖어있었다.
  뺨처럼. 눈시울처럼.
  추위에 떠는 강아지처럼.


  소네트는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가림막이 사라져 백열등이 버틴의 망막을 태웠다.


  버틴은 눈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 동작을, 이번에는 무엇도 막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뻑뻑한 눈가를 비비고, 한 손으로는 주황 머리카락을 걸친 어깨를 잡았다. 체중을 싣자 소네트가 잡힌 부위를 순간 떨었는데, 버틴은 눈치채지 못 했다.


“……이제 그만 주무셔야죠?”


  고개 돌린 건너편에서 물안개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인데도, 새삼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버틴은 안개를 지우려는 듯 연신 눈을 비비며 말대꾸했다.


“안 돼. 아직 잘 수 없어. 일이 많이 남았는걸.”

“…괜찮습니다. 여유가 있어요. 며칠동안 쉼없이 일하신 덕에요. 하지만 효율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소네트는 호흡을 가다듬더니 조리있게 버틴을 설득했다. 아. 버틴은 생각했다. 말투가 평소의 제 1조수로 돌아왔네?


“물자는?”

“네?”


 버틴이 불쑥 끼어들었다.


“물자는 어때? 발주 계획을 제출했던가?”

“아, 네.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우등생다운, 재빠르고 모범적인 대답.


“미등록 마도학자 동향조사는?”

“집계는 완료했고, 정리는 제가 하루 안에 끝내겠습니다.”

“그들 중 구조가 필요한 인원은?”

“확인했습니다. 재단에 인적 사항과 구조 요청을 보냈습니다.”

“Z씨가 부탁하신 문건은 잘 돼가?”

“진척은 아직이에요. 하지만 기한까지는 여유가 있으니 서두를 필요—”

“소네트. 왜 나한테 키스했어?”


“————”


  버틴은 조그맣게 하품했다. 그리고는 입을 가렸던 손을 올려 눈을 비비고, 앞머리를 매만진 뒤 입술을 문질렀다. 고양이의 세수와 비슷한 동작이었다. 

  소네트는 드디어 말이 막힌 모양이었다.

  물 흐르듯 경쾌했던 대답은 뚝 끊겼다. 어색하게 헤엄치던 두 눈이 어느덧 버틴의 손가락에, 입술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녀가 방금 함부로 범했던 입술에.


“꾸짖는 게 아니야. 네 속마음을 알고 싶을 뿐이지.”


  대답이 통 돌아오지 않자, 버틴이 짐짓 부드럽게 다독였다. 다정한 말투이긴 했지만, 졸음 때문인지 조금 성의 없이 들리기도 했다.


“생각해보니까, 네 속마음을 들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어. 서로 알고 지낸 지도 오래 되었잖아? 그런 것 치고는 우리, 서로의 내면을 잘 모르는 것 같아.”
 
“………”


  소네트는 대답하지 않고 입만 꾹 다물었다. 또다시 정적이 내려앉았고, 묘한 기류가 흘렀다.

  버틴의 무너진 카드탑 같은 사고가 침묵을 틈타, 또다시 머릿속에서 지껄이기 시작했다. 소네트. 사랑스럽고도 금욕적인 아이. 그녀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비롯할까? 소네트. 맞다. 그 이름처럼 철저한 규칙성과 질서에서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그녀의 빠릿한 정복처럼 말이다. 그리고 늦은 밤에도 흐트러짐 없는 흑백 체크 무늬 머리끈처럼 말이다. 체스판의 말처럼 늘 합리적으로 행동하리라 굳게 다짐했는지, 소네트는 스스로의 머리를 아예 체스판 모양의 끈으로 고정했다.



  체스판. 체스…… 체스말……



  체스…… 잊어버리려 했던 것……


  “타, 타임키퍼…?”


  버틴의 표정이 별안간 험악해지자 소네트는 놀라서 먼저 침묵을 깼다. 그리고 다음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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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잠깐…!”



  자기 머리끈을 풀어 해치려는 버틴의 손을 반사적으로 막았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목을 식은땀으로 습한 손이 움켜쥐었다. 더 이상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과연. 두 사람 중 누가 힘이 더 센지는 명백했다. 하지만 상관 없다.


“소네트. 왜 막아?”

“타, 타임키퍼야말로, 갑자기 제 머리는 왜”

“왜? 소네트. 넌 내가 머리를 만져주면 오히려 좋지 않아?”

“…!”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손목을 잡는 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버틴은 소네트의 머리를 쓸었다. 튀어오르는 어깨. 몸을 숙이고, 시선만 도발적으로 위를 향하며, 흐르는 오렌지 색 머리카락을 받쳐들고 그대로 코와 입술로,


“흐으…… 으아아아아……”

“좋은 향이네. 시트러스보다는 사이프러스구나. 샴푸도 꼭 너다운 걸 골랐어.”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땐 정말 말을 막을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꾸짖는 게 아니라니까? 하지만…… 그래. 넌 그 와중에 키스를 제일 먼저 떠올렸구나. 보통은 손으로 막든가 하지. 평범한 ‘직장 동료’ 사이라면.”


  소네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있었다. 



  저항이 멈추자 버틴은 얼른 소네트의 머리끈을 풀어버렸다.

  힘없이 떨어지는 양갈래 사이드 테일.


“……”


  버틴은 머리끈을 손 위에 얹고,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그것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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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체스판 같은 건. 4년 전 그날을 연상하고 말기 때문이다. 체스판을 마주두고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국하던.
  문득 생각하고는 한다. 나는 정말로 체스를 두었던가? 플레이어는 각각 누구였는가? 나는 플레이어였는가? 아니면 일개 말이었는가?
  사고가 한자리에서 빙글빙글 헛돌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버틴은 뇌에서 생각이란 것을 거칠게 내쫓았다.
  
  됐다. 됐어.
  지금은 모두 잊자.

  소네트의 말처럼 적당한 휴식은 필요하다.



  어쩌면, 여태껏 스스로를 과대평가 했을지도 모른다. 
 
  공들여 쌓아올린 정신력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카드탑일 뿐이었다. 누군가의 주먹질 한 방에 송두리째 박살나는.

  마룻바닥에 깨뜨린 유리조각도, 나중에 치우면 된다며 소네트가 손수건을 덮어놓았다. 딱 그 정도면 충분하다. 눈을 가리고, 아무 것도 못 본 척하는 정도면. 소네트가 제 1조수로서 도와줄 것이다. 왜냐하면, 이만 쉬라고 한 건 다름 아닌 그녀니까.


  버틴은 침대 안쪽으로 더 기어가 소네트와의 거리를 한계까지 줄였다. 다음으로,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손가락으로 턱을 꾹 들어올렸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이었음에도, 소네트는 우스꽝스러울만치 수줍어했다.


“소네트”


  이름을 부르고 등을 쓸어주자 소네트는 대답없이 다리만 꼼지락거렸다. 귀엽기는. 

  소네트. 그 이름처럼 질서와 아름다움을 겸비한 소녀. 사적인 감정을 죽이고 오직 인류를 위해, 재단을 위해 합리적으로만 살아온 아이.



  버틴은 이번에 그 철저한 규칙성을 어질러보고 싶었다.



“소네트. 옷 벗겨도 되지?”



  버틴의 한 마디를 신호로 두 사람은 침대에 쓰러졌다.




  마룻 바닥 위 손수건 틈으로 유리조각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달빛은 손수건이 아닌 두 사람을 비추었고.



  유리조각은 그들의 행위를 빠짐없이 훔쳐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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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8기 우수 맴버 증명 매달. 흑백 체크무늬 머리띠. 회색과 오렌지 머리의 두 소녀. 
  
  이들은 모두 구겨진 이불 위에서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하아, 흐윽…… 타, 타임 키퍼어……”


  평소에는 꼭꼭 숨어있던 목선이, 단추 몇 개를 풀자마자 민낯을 드러냈다. 버틴은 소네트의 귀 밑에 입술을 붙이고 쇄골까지 단번에 내려갔다. 목빗근이 움찔거리는 게 꽤 마음에 들었다.

  소네트는 일단 한 번 저항해보고,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간언했다.


“여, 역시, 흐윽, 아…… 많이 피곤하신 것 같아요. 이, 이만 주무시는 게,”

“어차피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아. 잠든다 해도 악몽을 꾸겠지. 넌 내가 악몽 속에서 허우적대길 바라?”


  숨이 헐떡이는 소리가 났다.
  저항이 한풀 꺾이고, 소네트가 버틴의 날개뼈를 슬쩍 더듬기 시작했을 무렵.


  버틴은 소스라치게 놀라 굳어버렸다.


  갑자기 행위가 중단되자, 소네트는 강아지처럼 물끄러미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버틴은 아래를 보았다. 손바닥은 틀림없이 소네트의 가슴팍을 누르고 있었다. 오른쪽 가슴을. 그런데.

  이상하다, 어째서, 왜 심장이 뛰지 않지?



  몇 초동안 고민하다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아, 참. 맞다. 이게 정상이었지……

  보통 사람의 심장은 오른쪽에 없지……




  소네트가 무사하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타임키퍼. 이쪽을 만져보세요.”


  소네트가 자발적으로 나섰다. 버틴의 손을 본인 손으로 감싸고, 왼쪽 멍울 위로 가져가더니 꾹 누르는 것이었다.
  가슴의 모양이 바뀌고, 그제서야 거센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 죄송합니다.”


  소네트가 버틴의 옆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제 심장은 이렇게, 기쁨으로 뛰고 있네요.”

“……아냐. 사과하지 마. 나야 말로 미안해. 그리고 항상 고마워. 늘 곁을 지켜줘서.”


  살짝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하자, 강아지의 표정이 활짝 피었다.


  그녀는 분위기에 취해, 몸을 일으키고 주인의 아랫입술을 충실히 핥기 시작했다. 이따금 이를 세워 긁는 것처럼 깨물기도 하고, 더 나아가길 원하는지 틈새를 비집기도 했다. 버틴이 턱을 젖혀 안쪽까지 허락하자, 기뻐하면서, 의심없이 입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흐응, 하아… 후우, 응, 으응”


  버틴은 눈을 끔뻑끔뻑하며 자기 목에 매달린 소네트를 관찰했다.

  솔직한 아이다. 

  진실하다. 순결하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다정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충실하다.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소네트는 버틴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것을.

  이타적인 천성과 재단의 주입식 교육이 그녀를 충성스러운 사냥개로 길렀다.
  
  어쩌면, 필요에 따라 자기 몸을 헌신짝처럼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소네트는 버틴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소네트는 강아지—— 잘 쳐줘봐야 사냥개다. 충실한 밤의 사냥개. 심지어 현재의 주인은 버틴일지라도 목줄을 쥐고 흔드는 건 전혀 다른 사람이다.

  사냥개가 어찌 주인의 영혼을 구원하겠는가?

  …하지만 잠시 위로하는 정도라면 가능할 것이다.
  상처를 핥아주는 정도라면.


“……소네트”

“하아…… 네, 타임키퍼”


  이름을 부르자, 소네트는 즉시 봉사를 멈추고 명령을 기다렸다.
  뛰어난 자제력과 충성심. 버틴은 또다시 서글퍼졌다.

  
  잠시 행위를 멈추고, 버틴은 창 밖을 보았다.

  어느덧 열닷 새가 지났는지 보름달이 높이 걸려있었다.

  달빛은, 달맞이꽃과 야광나비, 유리창을 두드리는 잎사귀, 그리고 혀를 내민 채 복종하는 강아지를 고루 비추었다.
  어찌나 밝은지, 주위의 작은 별을 모조리 말살할 정도였다.
 

  슬픈 밤이다.


“나…… 지금, 기분이 별로 안 좋아. 우울감이 평소보다 심한 것 같아.”

“……네. 많이 힘들어 보여요……”


  유리창에 잿빛 머리 소녀가 어슴푸레 비쳤다. 그녀는 덜 정리된 머리에, 푸석푸석한 눈매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버틴은, 그녀가 창문 속에서 입을 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또다시 헛소리를 지껄여, 소네트를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 나쁜 꾀를 떠올려서는——


“……저기, 있잖아—”


  말릴 새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


“—시. 그래. 시를 한 번 외워볼래? 내가 이제부터…… ‘안아주는’동안.”



  시.

  문학의 한 종류. 
  음악적 요소와 회화적 요소를 언어로 나타낸 것.
  정서와 사상의 표현.
  소네트의 마도술.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


“—네, 네에……?”


  소네트의 눈이 동그랗게 열렸다.

  당황스러워 보였다. 당연하다. 사실 버틴도, 말을 꺼낸 직후 스스로에게 놀라는 중이었다. 
  대체 무슨 맥락으로 시를 외우라는 요구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입이 멋대로 움직인 느낌이었다.

  역시 제정신이 아닌 건가.

  하지만 상관 없다. 맥락이야 어떻든. 
  버틴은 행동을 재개했다. 손을 흐느적대며 제복의 단추를 풀고 속옷을 드러냈다.


“으, 으앗!?”

  
  소네트는 자기 브래지어를 급하게 감추고 반문했다.


“가, 갑자기……! 시는, 어째서……?”

“어째서냐니. 그런 게 궁금해? 알잖아. 우린 명령에 이유를 물어도 되는 처지가 아니야. 시키는 건 무조건 해내야지. 너도, 나도……”

“하지만 이건 너무……”

“어서. 이러다 옷이 먼저 벗겨지겠어. 시가 싫으면 노래를 불러도 좋아. 특기잖아? 시를 외울 때 네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그래. 너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이 없어. 너는 아름다워, 아름다워, 소네트……”

“……”


  아름다워.

  귓가에서 속삭이자, 의도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소네트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그리고는 온 몸의 힘을 완전히 풀고 순순히 가슴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맥없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한 게 오히려 효과가 있었나 보다.

  잘 됐다. 이제 방해 받을 걱정은 없다. 버틴은 속옷 안으로 펀하게 손을 넣었다. 

  가슴을 전체적으로 한 번 쓸었다. 그 다음, 감촉을 확인하기 위해 가볍게 쥐어보기도 하고, 잡아 올리기도 해보았다

  솔직히, 자신의 것을 만질 때와 차이를 모르겠다. 두 사람은 동년배인 데다가 체형도 비슷하니까. 

  하지만 소네트는 가슴을 만지는 그 손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흐으…… 흐아아아아…… 으아……”


  흰 어깨가 들썩였다. 소네트는 덜덜 떨며, 다리를 오므리고 배를 움츠렸다. 
  풍부한 반응이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한데.

  버틴은 아래로도 손을 뻗어 대리석을 포장한 옷끈 역시 풀어버리려 했다.

  마도학자의 정신을 조율하던 타임키퍼의 손으로, 이제는 소네트를 흐뜨리는 것이었다.

  
  은근하고, 간지럽지만 전류처럼 강력한 자극. 그것을 견디듯 소네트는 질끈 눈을 감고 열심히 생각에 골몰했다.
  이따금 흐으, 읏, 콧소리를 내면서 상대의 옷깃을 꽉 쥐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심한 듯, 천천히 눈과 입을 열더니,
  
 
“아…… 안정적이며, 자신감 넘치고,”


  별안간 무언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주도면밀하며 순조롭고, 온화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이어지는 문장에 버틴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러나 싶어서 가만히 들어보고, 곰곰히 분석했다.

  소네트의 낮은 목소리가 파도처럼 리드미컬하게 넘실댄다.
  Stable, responsible. 형용사형 접미사 -ble이 묘한 운율을 형성한다.
  일부로 어절을 2개씩 끊어서 말한다.

  설마, 지금 시를 암송하는 건가?
  제 나름대로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그리고, 아, 아름……”


  버틴은 희미하게 웃었다.
  
  주인을 이토록 사모하는 강아지가 또 있을까.

  버틴의 희미한 웃음은 많은 감정을 내포했다. 미안함, 고마움, 즐거움, 그리고,
  그리고——


“아…… 아름답기까지, 앗!?”

 
  순간, 버틴은 소네트의 귀를 세게 깨물어버렸다. 사냥 중인 고양이에 견줄 만큼 순식간에.
  차분했던 음성이 높은 신음으로 뒤바뀌었다.
  

“아…… 아……? 왜……? 어…… 어째서……?”


  잘근잘근, 오른쪽 귓바퀴에서 오는 통증과 쾌감을 견디면서 소네트는 조심조심 질문했다.
  영문도 모르고 혼난 강아지의 심정일 것이다. 
  그런 소네트를 배려해서, 버틴은 귓가에서 차분히,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그거, 전에 날 칭찬할 때 썼던 말이지?”

“네, 흐읏, 아마도요.”

“내가 지금 칭찬 같은 걸 원하겠어? 추한 내 모습을 봐. 끝도 없이 추락해서, 아름답지도 않고, 꼴볼견일 뿐이라고.”

“그렇지 않……! 흐읏……!”

 
  반론의 여지를 주지 않고 소네트의 옆구리를 긁었다. 이미 상반신은 탈의를 끝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부로 손톱을 세워 집요하게 할퀴었다. 말 없이 원망할 때 흔히들 사용하는 방법이다.

  멈추지 않고, 버틴은 곧바로 바지 안으로 손을 뻗으며 자기 부하를 격려했다.


“자, 자, 괜찮아. 다시 잘 생각해 봐. 기왕이면 날 즐겁게 할 수 있는 시로.”

“……”

“행복해지고 싶어. 즐겁게 해줘, 소네트……”


  흰 바지가 무릎까지 질질질, 내려갔다.

  버틴은 뽀얀 허벅지의 안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당연한 듯 젖어있는 팬티를 발견하고 또한번 희미하게 웃었다.

  소네트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버틴의 웃음을 눈치채지 못 했을 것이다.


“으…… 타임키퍼… 생각, 생각할 시간을, 앗, 흑, 그… 그렇게 갑자기 만지지 말고, 아아아… 시, 외울게요, 그러니까아,” 


  기왕이면 눈을 마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채로 있게 두었다.
  이 이상 심술을 부렸다가는 화를 낼지도 몰라.
  무너진 정신이라도 그 정도 염려는 할 줄 알았다.

  푹 젖은 팬티 위에다 손가락 두 개를 붙이고 비비기 시작했다. 찔걱대는 소리가 났다. 반응이 있었다. 처음에는 수줍어 오므렸던 양 다리도 자극을 받자 서서히, 활짝 열렸다.

  
“후우…… 달콤한 사랑, 사랑이여…… 나, 항상 그대를 그립니다…”


  괜찮은 구절이 떠올랐는지 낭송을 시작하는 소네트.


“……태양이 매일 새롭고 낡았듯, 으읏, 나의 사랑은, 진부한 이야기를, 반복하네요, 힉, 흐익”


  턱 밑으로 숨을 불어넣으며, 성대가 여기에 있을까, 하고 찾아보았다. 목에다 입술을 바싹 대고 진동을 측정했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목의 중간 쯤이 떨렸다. 특히, 신음이 퍼질 때는 더욱.


“소네트. 기분 좋아?”

“네? 아…… 흐응, 네에…… 너무 좋아요……”

“다행이다. 계속할게.”


  버틴은 만족스럽게 끄덕이고 손을 움직였다. 너무 세게 만지지 않았나 싶었지만, 괜찮은 모양이었다.


임이여, 그대는 내게 항상 청춘입니다, 처음 모습 그대로, 그대 항상——”


  계속 듣다보니 알 수 있었다. 소네트가 가르쳐준 적 있다. 지금까지 외운 구절 모두 셰익스피어의 연작시에서 나온 것이다. 아마도 80번 째인가, 130번 째일 시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왜 하필 셰익스피어일까? 시대를 막론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시이기에 선택한 걸까? 버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그대는, 항상 같아서…… 앗, 타임키퍼, 잠시만요……”


  그때, 소네트가 불쑥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동작이었다. 눈을 끔뻑이는 버틴의 손목을 잡고서는,


“직접…… 만져주시면 안될까요, 옷 위로 하는 건, 답답해서, 저기……”

“그……랬어…?”


  자발적으로 속옷을 내렸다. 음부와 천 사이로 투명한 실 여러 겹이 죽 늘어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새삼 생각했다. 소네트의 생식기를 보는 건 처음이라고.
  언제 볼 기회가 있겠는가? 고지식한 모범생의 음란한 일면이라니.


“그리고요, 손가락도, 으으…… 안으로 넣어주시면…… 흐으……”

“………”



  설마 이렇게까지 적극적일 줄은.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들어주지 못 할 이유도 없으니까. 입구를 잠깐 문지르다가, 안쪽으로 중지를 밀어넣었다. 윤활은 충분히 되어있어 쉽게 들어갔다.


“아…… 버틴이 내 안에…”


  소네트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어디를 자극해야 할까. 앞일까 뒤일까 안쪽일까.  
  망설이려니, 뭐가 그리 급한지, 소네트가 직접 손목을 부여잡고 위치를 정해주었다.

  안에서 꼼지락거리자 반응이 있었다. 꽉 조여오는 내부.


“여기가 좋아?”

“맞아요…… 계속…… 만져주세요, 흐윽”

“알았어. 솔직하게 알려줘서 고마워. 착하네. 기분 좋으면 시, 계속 외워야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고 버틴의 눈을 마주보았다.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거짓임을 알아도, 나는 그녀를 믿습니다…… 그녀의 거짓된 혀…… 바보처럼 믿습니다……”


  아름다운 시를 듣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 에메랄드 눈동자를 바라본다.
  버틴의 하복부에도 열이 슬금슬금 몰렸다. 아마도 이미…… 젖었을 것이다.

  소네트의 눈가에 방울방울 이슬이 맺히고, 떨어졌다.
  그것은 보름달에도 지지 않는 유일한 별빛이었다.


“아름다워…… 소네트, 아름다워……”


  칭찬을 듣자, 신음하던 입에서 미소가 잠깐 나왔다.
  하지만 곧 사라졌다. 과한 쾌감은 표정을 무너뜨리기 마련이다.
  아무렇게나 벌어진 입술에서 침이 흘렀다.


“—그대를…… 여름날에…… 어찌 비할까요?”


  찰박찰박, 물 소리 사이에서 익숙한 구절이 들렸다. 
  이건 정확히 알겠다. 셰익스피어의 연작시 18번이다.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이다. 사랑과 예술과 불멸의 노래.
  
  아까부터 셰익스피어의 연작시만 잔뜩.
  아무래도 오늘 밤 소네트는 셰익스피어를 섬기기로 결심했나 보다.

  질투가 났다. 버틴은 이를 세워 가슴을 물었다.


“아아—!”


  감탄사를 마음껏 내지르고, 소네트는 연작시 18번을 이어갔다.


드센 바람이…… 읏, 하아, 하아, 5월의 꽃봉오리를 흔들고, 읏…… 때로는 하늘의 눈이, 뜨겁게, 빛나고……”


  소네트는, 소꿉친구, 옆자리 짝꿍, 존경하는 상사, 그리고 오늘의 밤상대를 와락 안고 흐느꼈다.

  이따금 가슴의 끝과 아래의 돌기를 동시에 튕기면 더욱 아름답게 울었다.

  버틴은, 소꿉친구, 옆자리 짝꿍, 든든한 조수, 그리고 오늘 밤의 안식처에 흠뻑 빠져들었다.
  
  창백했던 뺨에 핏기가 다시 돌았으며 심장이 다시 뛰었다.


모든 세상의…… 하아, 아름다움…… 읏, 점점…… 흣, 사그라들, 히익, 으응, 그러나, 아아, 그대의 여름은, 흐윽, 시들지, 헉, 헤으으, 않을 것이며,”


  소네트의 신음이 정형시의 완벽한 각운을 엉망으로 망쳐놓았다. 그곳에 더 이상 질서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의미조차 알아듣기 힘들어졌다.
  이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무질서인가.

  버틴은 손가락을 더욱 정성스럽게, 집중해서 놀렸다. 품 안의 그녀가 한 없이 사랑스러웠다.


“하아…… 아……! 나, 이제, 더는…… 그대는 이 불멸의, 시 속에서 영원하리—”


  정형시가 마지막 14행을 향해 무아지경으로 달려갔다.

  절정이 눈 앞이다.

  그런데, 문득, 희미하게 빛나는 물건이 버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침대 위가 아니라 마룻바닥이다. 손수건 아래에서 번뜩이는 유리조각. 새삼 그것의 빛을 직시하고 말았다. 

  완전히 우연이었다. 원치 않았다. 거의 잊을 뻔 했는데.

  대체 왜 이제 와서 시야에 들어왔는가.


  버틴이 한눈을 팔고, 산만해진 순간이었다.

  참고 참던 감정이 터지는 소리가.


“버틴…… 버틴……!”


  직함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렸다. 버틴이라고.


“……!”


  소네트의 부름에, 버틴은 깜짝 놀라 숨을 집어삼켰다.

  애타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버틴을 꿈에서 현실로, 피난처에서 폭풍우로 다시 끌고 나왔다.

  맑아진 정신으로 자문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버틴…… 좋아해…… 정말로… 많이, 많이, 좋아해……”


  소네트는 아직도 꿈속이다. 버틴의 입 안을 혀로 정신 없이 훑었다. 

  서로의 침과 숨이 뒤죽박죽이었다.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버틴… 이 시는, 오래도록 살아, 너에게, 생명을…… 흑, 흐앗, 버틴, 좋아해……”


  소네트는 마지막 14행을 끝내 완성하지 못 했다.


“버틴…… 날 좀 더 봐줘, 날 의지해줘, 내가, 얼마나… 널 좋아하는지, 눈치채줘…… 흐아아, 아아…!”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소네트의 진심을.

  그리고, 그 순결한 마음을 이용해, 현실에서 도망치려 했다는……
  
  버틴은 자신의 추악한 죄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에 힘이 더 들어갔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난 소네트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어. 하나의 진실이 심장을 파고들었고, 그때,


“흐, 흐아, 아…!”


  그 순간이 절정부였다.


“———! 으…! 읏… 아—!”



  야광 나비가 달로 날아갔다.








  버틴은 몽유병자처럼 흐느적댔다. 

  달라붙은 애액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죄의 증거처럼, 그곳에서 언제까지나 머무르며 자신의 죄를 규탄할 것 같았다.


“윽…… 미… 미안, 소네트, 어, 어떡하지……”


  버틴은 앉은 걸음으로 질질 물러났다. 등이 벽에 닿았을 때는 몸을 웅크리고 바들바들 떨었다.


“버틴……?”


  정신을 차린 소네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아직도 이름으로 부르는 그녀가, 버틴은 너무 무서웠다.


“버틴. 왜 그래……? 괜찮아…?”

“미안해…… 이러면 안 됐는데, 널 좀 더 아꼈어야 했는데, 해서는 안 될 짓을…… 널 망쳐버렸어……”

“무슨… 소리야… 버틴……”
 

  버틴은 팔로 앞을 막으면서 고개를 무릎에 쳐박았다. 소네트가 다가와 사이프러스 향을 풍겼다. 하지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소네트가 어떤 표정인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연거푸 사죄만 했다. 그렇다. 버틴의 정신은 아직도 무너진 상태였다. 어쩌면 다시 쌓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도 모른다. 혹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그럼에도 소네트는 주저 없이 버틴을 안았다.
  자신의 살결로, 셔츠 너머에 있는 몸과 심장을 따뜻하게 품었다.

  
  버틴이 조심조심,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소네트가 어떤 표정인지 읽기도 전에 다시 키스를 당했다.

  몇 분 전처럼. 아니, 그보다 더 깊고 진하게.

  
  소네트가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속삭이자, 방을 밝혔던 백열등이 툭 꺼졌다. 주문을 외운 듯했다. 이제 달빛밖에 볼 수가 없다.


“—타임키퍼. 괜찮아요.”


  소네트가 다시 제 1조수로 돌아와 말했다.


“당신에게 꼭 맞는 시가 방금 생각났어요…… 분명, 당신의 목소리와 잘 어울릴 거예요. 또 외워드릴게요. 얼마든지 외울 수 있어요. 이 시의 14행이 끝난 뒤에는, 편히 잠드실 수 있을 거예요. 꿈도 꾸지 않고.”

“소네트…… 내가 밉지 않아…? 널 희롱했잖아……”

“타임키퍼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기쁜걸요. 당신을 가장 가까이서 위로할 수 있어서……”


  더듬더듬, 셔츠 단추가 하나씩 풀어졌다. 맨가슴에 소네트의 손이 닿았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전부 현실이 아닌 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도.


“……알았어.”


  버틴은 코 앞의 나신에 얼굴을 묻으면서 말했다.


“전부 소네트한테 맡길게.”


  어둠 속에서, 미소가 어슴푸레 보이는 듯했다. 

  그 후에는 다시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었고. 서로를 껴안고. 그리고.



  둘의 유한한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타임키퍼. 아침이에요. 이제 일어나세요.”


  버틴의 눈 위로 햇살이 비쳤다.

  해가 꽤 높이 떠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오래 잤던 것 같다.


  잠이 깬 버틴은, 곧바로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깨뜨렸던 유리조각을 찾아 해맸다. 하지만 마룻바닥은 먼지 하나 없었다. 어느 틈에 청소를 해치웠는지 지난 밤보다 훨씬 깔끔했다.


“아, 제가 치웠어요.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소네트가 눈치 빠르게 덧붙였다.

  자신의 조수를 보며 버틴은 머뭇거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소네트를 믿을 수 없었다. 흰 정복도 평소처럼 빠릿하고, 눈동자도 맑았다.

  그 일은 전부 꿈이었던 걸까? 


  하지만…… 그렇다기엔, 자신의 팔뚝 곳곳에 찍힌 붉은 자국이 너무 생생했다.

  거기다 버틴은 아직도 알몸이었고.


“저기, 소네트…… 지난 밤에,”


  버틴이 뭐라도 할 말을 찾아 입을 열었을 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성큼 다가와 버틴을 안고,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


“……”


  할 말이 사라졌다.


“타임키퍼,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아침을 준비해두었으니, 천천히 씻고 나오세요.”

“……그래. 알았어. 고마워.”


  밝게 웃은 후, 소네트는 문 밖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오렌지 머리를 지그시 응시한 후, 버틴도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거울로 얼굴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눈 밑에 눈물 자국이라든가, 목덜미에 깨문 흔적이라든가, 여러가지로 엉망이었다.
  하지만 화장으로 가릴 정도는 되었다.



  얼른 준비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다.
  지난 밤은 잠시 쉬었을 뿐이다. 더 이상 멈춰있을 수는 없다. 해야할 일이 아직 많다.


  창 밖을 보았다. 나비 대신 참새가 날며 새로운 아침을 알렸다.

  오늘은 구름이 적고 부드러운 바람이 분다. 하늘의 상태로 보아 당분간 비는 안 올 것 같았다.

  좋은 날씨다.


  버틴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마시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소네트와, 다른 동료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늦잠을 자서 지각한 버틴을 언제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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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드디어 다 썼음 그리고 다 그렸음 힘들어 죽겠다 진짜

리버스 겜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소네트가 정형시라는 뜻이래

소네트 말 뜻을 들은 순간 소네트에게 시 낭송 플레이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문학적인 느낌을 주고 싶어서 책도 읽어보고 이것저것 연구도 해봤는데 잘 모르겠어

그러다보니 애착이 가기 시작해서 삽화도 몇 개 그렸는데

하다보니까 일이 너무 커짐 


열심히는 썼는데 어떨까 사람들이 좋아해줄까 과연 불안하네

개추랑 관심 좀 주세요


읽어줘서 고마워 
다시 레즈 야설로 찾아올게



디시 글자수제한 개시발롬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