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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동안 날씨가 좋았다. 야간 비행에 더할나위 없는 기상조건 이라며 릴리아가 주장했고 초대에 응한 버틴과 함께 밤하늘을 누비는 것이 하루의 일과로 자리 잡았을 정도의 쾌청함이었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그녀만의 시간에 초대해준 것은 버틴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삶의 방식을 나누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듯 했다.


그녀의 고향에서 먹던 아침식사에 초대되기도 하고, 버틴이 부재중일때에도 무료함을 호소하며 버틴의 소파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던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다.


“...개?”


반려견을 키우는 기분은 필히 이런 것이 아닐까, 라며 버틴은 잠에 든 릴리아의 모습을 엿보며 대형견을 보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또한 작은 미소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그런 일상이 이어지던 가운데, 하루의 일과를 모두 끝낸 버틴이 복도를 누비던 중 앞길을 가로막는 조금 커다란 인영과 마주친 일이 있었다.


“아. 릴리아. 오늘도 야간 비행을 나가는 거야?”


“아니, 오늘은 바람이 세니까 너 같은 성냥개비들은 부러지든 날아가든 할걸?”


“음…”


그정도는 아니라며 그것이 친애의 표시인지 폄훼하는 말인지 버틴이 가늠하던 사이, 그녀를 가로막던 여인이 착용하던 갈색 가죽 장갑이 얼굴 앞으로 확 다가와 검지를 세웠다.


“대신 -.”


그 손 끝에 포커스가 맞았다. 천천히 주변의 흐릿함이 정돈되고 주변 풍경이 다시금 보여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엔 힙플라스크가 쥐어져 있었다.


“한 잔 할 동안 말동무라도 해줘, 해줄거지? 나의 태양.”


하늘을 누비는 그녀에게 있어 태양이란 다른 이들보다 가까운 존재였으리라.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으나 긍정적인 목소리를 느낀 버틴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수락했다.


“좋아, 장소는 내 집무실이면 괜찮을거야. 거긴 손님용 테이블이 있거든. 그치만 술자리에 필요한 소품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필요한게 있다면 알려줘.”


“필요한거라…”


가자 가자, 라며 흥얼거리던 여인이 버틴의 어깨를 감싸듯 나란히 섰다. 그것만이면 좋았을텐데 팡팡 두드리던 과격한 손길이 몸을 휘청이게 했다.


“너만 있으면 되겠는데?”


그 과격한 손길이 멎어들고 나서도 한 차례 다리를 삐끗한 버틴이 뚱한 표정을 짓고 한 여인과 함께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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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흐~! 역시 보드카는 차갑게 마셔야 한다니까, 생명의 물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거지!”


그것을 입에 댄 경험은 커녕 마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버틴에겐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마심새가 좋다.’라고 표할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에는 흔쾌히 긍정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시선이 집요하게 느껴졌던 걸지 릴리아의 입꼬리가 히죽거렸다.


“어엉? 뭐야, 이 싹수 누런 녀석 같으니 너도 마셔보고 싶은거야?”


“아니… 난 여기 홍차가 있으니까.”


버틴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허나 사양의 표현을 끝난 직후, 눈을 뜬 버틴이 다시금 여인을 마주했을 땐 맑게 갠 하늘 처럼 푸르렀던 여인의 눈동자가 아닌 그녀가 쥔 힙플라스크로 시선이 직행했다.


“좋아, 재단의 얼간이들이 알면 한 소리 하겠지만… 자. 딱 한 잔 만이야.”


힙플라스크가 꼴꼴거리며 투명한 액체를 버틴 가까이 흘렸다. 일렁이던 찻잔에 스며든 조금의 독주가 홍차를 조금 더 투명하게 만들었고 알코올의 아찔한 향을 냈다. 난생 처음 맡아보는 향기에 버틴은 현기증을 느껴 잠시간 미간을 짚었다.


“윽…”


“아하하! 냄새 맡은 것 정도로 어지러워 하기는!”


버틴은 우여곡절 속에서 찻잔을 말끔히 비워냈다. 여간 고집과 독종이 아니였다면 반성실에 구금되어서도 반성이 아닌 샤미르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쉽게 굽힐 고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호기로운 마심새를 보인 버틴이 숨을 골랐다.


“향이 굉장히 좋네. 맛과… 이 느낌에 적응하기는 아무래도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열이 올랐다. 버틴은 모자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비스듬히 몸을 기대 손부채질을 해댔다. 멀쩡한 얼굴로 뺨이나 조금 더 붉어진 릴리아는 얼마 되지 않던 힙플라스크의 내용물을 모두 비워낸 모양이었다. 그것에 지루함을 느낀 탓일지, 그게 아니라면 소기의 목적이 있었던 것일지 마주보는 형태의 소파를 넘어와 버틴의 옆에 앉았다.


취기가 느껴지지 않는 얼굴과는 상반되게 독한 술냄새가 났다. 짐승들은 냄새로 피아를 식별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버틴에게도 지금은 미약한 독주의 잔향이 남아 있었으리라. 반려견과 상통하던 면모가 있던 릴리아는 그 사실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


“잠들 것 같은 표정이네, 어~이 정신 좀 들어?”


“평소에 쓰는… 그 귀여운 곰돌이 모자는 뭐야?”


“어?”


버틴이 늘상 궁금했다며 릴리아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기울던 몸이 가까워 릴리아에게 안기다싶이 다 기울고 나서야 그녀가 쓰고있던 복슬거리는 털모자에 손이 닿았다.


“릴리아는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하하 얘 좀 봐.”


버틴이 팔저림을 호소하며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냈다. 거기서 거치지 않고 뺨에 닿은 손길이 오목조목한 릴리아의 이목구비를 만지작거렸다.


“가까이서 보면 순한 눈매네, 코도 높고… 입술도 커다래.”


릴리아가 히죽거리며 그 주정을 다 받아주었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라는 즐기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졌다. 버틴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왜 나를 태양이라고 부르는거야? 그건… 네게 어떤 의미야?”


“그건 말이지 -.”


“나는 그게 특별한 의미였으면 좋겠어…”


릴리아는 고민에 빠졌다. 버틴이 마신 것이 소비에트산 독주가 아닌 자백제가 아닌가에 대한 의문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공군용 힙 플라스크의 주둥이에 입을 대고 말끔히 비워냈다. 친근하고 맛좋은 보드카의 맛이 났다.


“...릴리아?”


“실컷 쓰다듬었어? 그럼 이젠 내가 예뻐 해줄 차례네.”


그녀는 취기가 올라 한껏 붉어진 얼굴로 버틴의 입술을 머금었다. 서로에게서 감돌던 독주의 잔향 속에서 섬세한 체취가 묻어났다. 그녀는 훌륭한 소비에트의 공군이었다. 가누지 못하던 버틴의 몸이 하늘을 나는 감각에 휩쌓였고 머지않아 침대에 뉘여졌다.


단추가 풀리고 옷깃이 흘러내리는 과정속에서 나신을 보인 것에 대한 수치심이나 육체적인 황홀감보다 앞서 버틴의 머릿속을 멤도는 생각을 되내였다.


── 사랑을 나눌 때에는 과격하지 않은 편이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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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대형 사고를 친 기분이 드는걸.”


하이얀 침대에서 탈의에 대한 자세한 기억 없이 나신으로 깨어나는 것은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등줄기를 간질이는 잔혹한 감각을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가늠하던 버틴의 앞으로 아침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온 릴리아가 시선을 던졌다.


“얼빠진 얼굴이네, 어제 무슨 꿈을 꿨는지나 말해봐. 아침 먹으면서 들으면 재밌을 것 같은데.”


“어… 그러니까.”


2인분의 아침식사가 잘 나뉘어져 테이블에 놓여진다. 가운을 걸쳐입고 릴리아와 마주앉은 버틴이 따스한 수프로 몸을 녹이며 시린 몸을 달랬다.


“제복 모자 6식은 군에서 비행 편대를 위해 특별히 지급한 헬멧이야. 혹한에서 자란 월트의 가죽에 특제 기술로 담금질한 금속을 덧대 만들어내니 돈 주고 구하려면 눈물 좀 날걸?”


“...응?”


“태양은 글쎄, 널 보면 딱 그런 생각이 났어. 무슨 의미인지 곰곰히 고민하기 보단 마음 가는 대로 부르는게… 내 성격 알잖아?”


무슨 소리냐며 기억의 혼선을 되짚어가던 버틴의 앞에서 아침부터 소고기를 짐승처럼 뜯어먹고 있던 릴리아가 갸웃거리며 시선을 맞췄다.


“궁금해 하던 것 같길래!”


괄괄한 웃음을 지어내는 그 모습은 태양 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자신에게 느꼈을 감정이 이와 같기를 바라던 버틴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잔잔한 아침식사를 즐겼다.


“음… 확실히, 어제 꾼 꿈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버틴은 말했다. 하늘을 나는 감각을 만끽할 수 있던 꿈이었다고. 두 여인은 모스크바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아침식사를 나누어 먹었다.


뒤늦게 버틴을 깨우러 온 소네트와 마주쳐 자신이 어째서 알몸으로 릴리아와 이른 시간부터 아침을 먹고 있었는가에 대한 설명을 해주어야 했을 때 릴리아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물러가 보았으니 조금 야속한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설명해주세요 타임키퍼, 릴리아씨도 도망치지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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