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컨텐츠 다 해서 시간 남는 겸 씀.

2. 공식 느낌처럼 써보려고 했는데, 설정이 안 나오거나 떡밥 안 풀린 게 많아서 100% 완벽하진 않음.

3.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4. 다음편이 있을지는 나도 모름. 일단 시리즈로 등록함.






------------------

  [5/11, 10:22]



  벌써 그날인가. 5월 11일. 두 번째 접견일이 오늘이다. 이미 마도학자들 사이에선 접견에 대한 소식이 퍼진 상태라, 별다른 설명은 더 하지 않았다. 단지 오늘 정해진 멤버에 대해선 걱정이 된다.



  정확히 한달 전, Z씨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마도학자 접견 일지를 여러 번 읽었다. 사적으로는 좋은 사람이지만, 상사로서는 나름대로 까다로운 사람이다. 그녀가 페이지를 4번 쯤 반복해서 넘긴 뒤에 말했다.



  ‘타임키퍼. 겨울과 소더비는 그 이후로... 함께 외근을 나간 적이 있나?’



  고개를 저었다. 나도 Z씨도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와 그녀는 한동안 침묵했고, 그 이후엔 새로운 방안을 모색했다. 첫 접견이었던 만큼, 나와 그녀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친분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선 괜찮은 성과가 있기도 했다. 그 이후로 소더비와 겨울씨는 간혹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라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협업에 있어선...



  ‘다음 명단을 추려봤네. 한 번 생각해보겠나. 버틴.’



  그녀가 준 명단에는 낯익은 이름 둘이 있었다. 천문학자와 사색가의 이름이었다.



  ‘Z씨, 이 둘... 괜찮을까요?’



  내 불안한 목소리에 그녀는 침착하게 답했다.



  ‘적어도 업무 효율에 있어선 꽤 괜찮은 조합일 거라 생각하네. 둘 모두 자주 외근을 나가는 편이니까.’



  



[5/11, 13:27]



  테라스 밖, 정원에는 오늘도 드루비스씨가 서 있다. 늘 그랬듯,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장미, 백합, 찔레꽃. 계절마다 다르게 피어날 꽃들일지도 모르지만, 여행가방 안에서 계절은 무의미하다. 그러고 보니... 콘블룸의 수레국화는 잘 자라서, 이젠 제법 볼 만하게 컸다. 드루비스씨와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다. 그녀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타임키퍼? 오랜만입니다.”



  혼잣말 하듯 조용하면서도, 은근한 생기가 있는 목소리. 하지만 독일인 특유의 억센 억양. 그리고 깍듯한 말투. 그게 복도 쪽에서 들린다. 까만 코트의 광택이 눈에 띄는 콘블룸이다. 그녀가 파란색 목도리를 매만지면서 내쪽으로 걸어온다. 한 손에는 푸른 수레국화를 들고 있다.



  “와. 센토레아가 잘 자랐습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테라스 밖을 바라본다. 드루비스씨와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이 서로 목례한다.



  “드루비스씨, 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드루비스씨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답한다.



  “정원을 돌보고 숲을 거니는 건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죠. 이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 한 시대의 몰락을 잊고 새로운 기억을 꽃피울 수 있으니까요.”



  드루비스씨의 언어는 항상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 나로서도 이따금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 콘블룸도 마찬가지로 느낀 듯하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머쓱한 듯, 하하 웃는다. 그러곤 찰랑이는 은발을 넘기고 내게 말한다.



  “오늘은 접견일이라고 들었어요. 저번엔 겨울씨와 소더비씨가 진행했었죠?”



  “맞아.”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그러자 그녀가 목에 걸고 있는 헤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오늘도 신기한 조합이더라고요.”



  ... 오늘 누가 접견하는지에 대해선 말한 적이 없다. 당사자들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그럼에도 이런 말을 한 게 그녀라 딱히 의문은 없다. 여행가방 안 곳곳에 이미 그녀의 감청설비가 완비되어 있을 테니까. 아마도 재단 내에도...



  “저도 그 사람들과 한 번 얘길 나누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벽 너머로만 들을 수 있겠네요.”



  그녀의 입이 근질거리는 듯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최적된 그녀가 항상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건 알고 있다.



  “나중에 한 번 기회를 만들어볼게.”



  “정말요? 전 환영입니다. 힘내세요, 타임키퍼!”



  내가 말하자,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답한다. 손목시계를 본다. 슬슬 시간이다. 그들은 이미 방 안에서 대기중일 거다.



  “시간이 됐어. 가볼게.”



  드루비스씨와 콘블룸에게 다시 한 번 인사한다. 콘블룸은 맞인사 후, 정원으로 걸어 나간다. 드루비스씨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다. 아니, 이야기가 없어도 괜찮을 거다. 콘블룸은 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 거니까.





  [5/11, 13:59]



  접견실은 거의 한 달 만이다. 평소엔 사츠키가 청소를 하는데, 오늘도 잘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손잡이를 습관처럼 잡는다. 머릿속에서 마틸다의 투덜거림이 울린다.



  ‘들어오기 전에 노크부터 하라니까!’



  손을 뗸다. 문을 두드린다. 노크를 하자 안에서는 ‘멍’하고 짖는 소리와 인도 억양이 섞인 영어가 들린다.



  “들어와요, 타임 키퍼.”



  문을 열고 들어간다. 처음 접견실에 왔을 때보단 말끔해 보였다. 사츠키의 힘일까. 보더콜리의 흰 털이 방안 곳곳에 미세먼지처럼 휘날리지만 나름대로 괜찮다. 사츠키가 한 번 왔다가 가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말끔해질 거니까.



  “시간에 맞춰 왔네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갈라보나씨가 품 속에 든 망원경을 흔든다. 아마 그녀는 저 망원경을 완드 대용으로 사용할 거다. 마틸다가 수정구를, 소네트가 유리펜을 완드로 쓰듯이. 바로 옆자리엔 피클즈가 앉아 있다. 새 것 같은 안경을 눈에 쓰고, 마도술로 공중에 띄운 책을 읽고 있다. 책이 허공에서 스르르 내려와 테이블에 놓인다. 피클즈가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든다.



  “아우우우, 멍!(오랜만이야, 버틴)”



  피클즈가 뭐라 말하자, 바로 옆에서 그의 통역장치가 차가운 기계음으로 번역을 한다. 미스터 APPLe 말론 이름이... 도기였나.



  “강아지가 당신을 반깁니다.”



  고개를 끄덕인다.



  “반가워요, 갈라보나씨. 그리고 피클즈.”



  피클즈에겐 그런 의문이 있다.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니면 머리를 쓰다듬어줘야 할까. 마도학자라는 인격체로서 대해야 할지, 강아지로서 그를 대해야 할지 애매하단 뜻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그와 자주 대화한 적은 없다.



  “미리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오늘은 마도학자 접견일이에요. 두 번째 시간이죠.”



  내가 말하자, 갈라보나씨가 시선을 떨구고 사색에 잠긴 듯, 입술을 매만진다. 그녀가 말한다.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그녀가 말을 하다가 멈춘다. 곧, 그녀의 시선이 피클즈에게로 향한다.



  “그... 마도학자 강아지와는 더더욱 무얼 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군요.”



  그녀의 질문은 합당하다. 첫 번째 접견일은 그나마 소더비가 주도하는 느낌이 있었다. 내가 주도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천문학자와 사색가, 과학자와 철학자의 대화 시간이다. 인간형 마도학자, 동물형 마도학자의 대화 시간이기도. 주제라도 던져줘야 할까. 아니, 일단은...



  “차라도 한 잔 마시죠. 전에 갈기 모래씨가 여행을 마치고, 다르질링을 선물로 줬거든요.”



  내가 말하자 피클즈가 답한다.



  “웅웅. 아웅.(역시 영국인에겐 티타임이 중요하구나.)”



  도기도 이어서 번역한다.



  “강아지가 영국인에겐 티타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피클즈가 말하는 영국인엔 과연 본인도 포함인 걸까. 접견실 옆엔 한 가지 비품을 추가했다. 다과회를 올려놓는 선반이다. 마치 탕비실처럼 보이기도 한다. 접시 위엔 투스 페어리씨의 토피 사탕이나, 레굴루스...의 닥터 페퍼. 그리고 소네트가 가져다 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 여러가지가 있지만 인도에서 온 그녀에겐 다르질링이 좀 더 익숙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전기 주전자의 스위치를 켠다. 생각해보니 이들은... 20세기 중반의 인물들이다. 그때도 전기 주전자가 보급되어 있었나? 갈라보나씨는 그냥 무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피클즈는 반대편 창밖을 보고 있다. 둘 다 크게 관심이 없는 거로 봐선, 그들이 살던 곳에도 전기 주전자는 있었을 것 같다.



  “쿠마르는 차를 좋아하지 않았었죠. 우리나라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에도 쿠마르는 대학에 있었으니까요. 그녀가 말했죠. ‘영국의 산물인 짜이는 천문학자들의 소중한 시간을 뺏는 쓰레기’라고.”



  피클즈가 귀를 쫑긋거린다. 무언가 흥미가 돋는 얘기라도 있었을까. 갈라보나씨, 그녀의 이야기는 마틸다에게 얼추 들었다. 재단 내에서도 워낙 커다란 이야기였다. 대부분은 마틸다 본인의 활약 이야기였지만... 갈라보나씨가 쿠마르라는 은사와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뭔가 떠올리게 했다면 유감이네요.”



  자리에 앉는다. 주전자 안에 물이 끓기까진 시간이 걸릴 거다. 갈라보나씨는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괜찮아요, 타임키퍼. 별개로 저는 차를 좋아하거든요.”



  잠깐의 고요함은 곧,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로 깨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선반 쪽으로 다가간다. 뜨거운 물을 유리 재질의 찻주전자에 옮겨 담는다. 주전자의 뚜껑은 스테인리스 재질의 거름망이 달려 있는데, 아래쪽을 열어 이곳에 다르질링을 넣으면 된다. 그러면 뜨거운 물 사이로 다르질링의 향과 맛이 퍼져나갈 것이다.



  찻주전자와 찻잔을 테이블 위로 옮긴다. 갈라보나씨가 옮기는 걸 도왔고, 피클즈는 의자 위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편다. 그러고 보니... 피클즈에게도 차를 따라줘야 할까. 잔은 세 개다. 접견실에 들어오는 건 대체로 세 명이니까. 잔도 딱 맞춰서 세 개.



  “모르판크... 고향의 향이 나는 것 같네요.”



  내가 뭔가 하기도 전에 갈라보나씨가 미소를 지으며 잔을 채운다. 피클즈의 몫도 있었다. 피클즈는 자기 앞에 놓인 잔에서 올라오는 향을 맡는다. 녹차와 홍차 어딘가의 미묘한 향.



  “월월. 아우우. 월. 월. 아우.(아쉽지만 나는 이걸 먹을 수 없어. 인간이나 인간처럼 생긴 마도학자들에겐 아니겠지만, 카페인은 강아지인 내겐 맹독이거든.)”



  피클즈가 뭔가 말한다. 향이 좋다고 말하는 걸까. 피클즈가 도기를 두드린다. 그러자 도기가 번역을 시작한다.



  “강아지가 차는 독이 된다고 말합니다.”



  음. 피클즈의 취향은 아니었나. 번역기 말을 들어보면 피클즈는 차를 꽤 혐오하는 것 같다. 아까 영국인들에게 티타임이 필수라던 건... 비꼬기 위함이었나. 갈라보나씨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피클즈와 눈이 마주친다. 피클즈의 눈에는 뭔가 억울한 감정이 섞여 있는 것 같다. 번역이 잘못 된 걸까. 최근 미스터 APPLe의 말로는 정확도를 90%까지 올렸다는데.



  “쿠마르와 비슷한 말을 하는 군요. 피클즈. 어쩌면 당신과 쿠마르는 꽤 잘 맞았을 수도 있겠어요.”



  갈라보나씨가 미소를 짓는다. 피클즈가 귀를 쫑긋거리며 입을 연다.



  “월, 월. 아우. 아우우우. 월월, 월.(쿠마르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나와 함께 한 적이 없는 사람이야. 그 사람과 내가 함께 길을 걷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 한, 잘 맞았을 수 있다는 건 한편의 가정에 불과하지.)”



  역시나 도기가 피클즈의 말에 화면을 반짝이며 반응한다.



  “강아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필요 없는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위험한 발언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갈라보나씨의 눈치를 보게 된다. 피클즈가 진심으로 저렇게 말한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실례인 말일 거다. 피클즈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도기를 계속 짓밟는다. 피클즈 역시 갈라보나씨의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우리 둘의 예상 밖이었다.



  “하하, 그렇죠. 천문학자들은 늘 신화 속의 실존에 대해서 탐구하고, 연구하곤 하니까요. 우리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가정을 할 필요가 없죠. 물론 이건 ‘악마의 증명’ 같은 논리에 쉽게 파훼당할 수 있겠지만 말이죠.”



  둘만의 대화가 시작된 것 같다. 내가 끼어들 틈은 없을 것 같다. 애초에... 소네트나 마틸다면 몰라도 나는 저런 심도 깊고 지적인 대화와 맞지 않는다.



  “월월. 월. 멍멍. 아우우. 아우.(너는 천문학자 아니었어? 점성술사였나? 어쨌든 굉장히 말이 잘 통하는 것 같네. 과학과 철학의 대화는 해본 적이 없는데.)”



  피클즈가 말... 짖는다. 도기도 바로 번역한다.



  “강아지가 과학자와 철학자의 대화를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둘이서 이야기를 나눈다. 별에 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 부존재의 증명에 대한 이야기. 실존주의와 허무주의. 거의 철학의 이야기에 가까운 것 같지만...



  “맞아요. 신화는 일종의 철학과 과학이 혼합된 결과물이죠. 옛 철학자들이 별자리를 관측하고, 철학을 통해 별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건, 아주 오래전부터 과학과 철학이 서로 통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둘은 서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마치 쌍성처럼 말이죠.”



  “월월. 아우우우. 월. 으르르. 월. 월월. 월.(그래, 맞아. 네 얘길 들어보니 내가 과학과 철학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 같아. 나라도 종족도 다른 너와 내가 말이 잘 통하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일 것 같아.)



  “강아지가 당신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또한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 두 사람. 평소에는 말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대화 상대를 잘 만난 것 같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갈라보나씨는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던 스승을 잃었다. 피클즈도... 자신과 함께하던 주인을 폭풍우 속에서 잃었다. 둘의 공통 사항은 비슷한 결과로 나타났다. 타인에게 말하기 보단, 각자의 연구에 몰입하는 것. 그런 둘이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게... 이런 것도 어쩌면... Z씨나 내 생각보다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찻잔이 비어간다. 두 사람... 아니, 한 천문학자와 철학자는 둘이서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슬슬 시간이 됐다. 둘의 이야기는 접견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이어나갈 수 있을 테니, 나는 이만 보고서를 마쳐야 한다. 그런데 약 5분이 남았을 무렵, 누군가가 접견실의 문을 두드린다. 피클즈와 갈라보나씨의 대화가 멈춘다. 우리 셋의 시선이 모두 문으로 향한다.



  “사... 사츠키입니다. 타임키퍼씨, 들어가도 될까요?”



  아주 정중하고 공손한 말투지만... 일본인 특유의 억양이 알아듣기 힘들다. 이런 사람은 재단 내에 한 명 뿐이다. 사츠키.



  “들어와. 사츠키.”



  문이 열리자, 사츠키가 조신한 발걸음으로 들어온다. 한 손에는 대걸레, 다른 손에는 양동이를 들고 있다.



  “무슨 일이야?”



  내가 묻자, 그녀가 머뭇거리다가 갈라보나씨와 피클즈를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그녀가 숨을 한 차례 가다듬더니 말한다.



  “그게... 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소녀는... 정말 의도하진 않았는데...”



  분위기가 깨졌으려나. 그렇다고 한숨을 쉬면 사츠키가 풀 죽을 것이 뻔하다. 보고서도 이 정도면 됐고, 갈라보나씨와 피클즈에겐 이틀 정도 외근 나갈 일을 없애주면 될 것이다. 그러면 둘이 충분히 대화할 수 있겠지.



  “슬슬 일어나죠. 갈라보나씨, 피클즈. 찻잔을 부탁할게. 사츠키.”



  갈라보나씨와 피클즈가 일어난다. 사츠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에서 나와 옆으로 비켜준다. 갈라보나씨와 피클즈를 먼저 내보낸다. 두 사람이 나가고 실크햇을 고쳐 쓰는데, 뒤쪽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린다. 뭐랄까. 구름이 걷는 발자국 소리... 라고 하면 이해가 어려울까.



  뒤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사츠키는 지금 토끼 두 마리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있다는 걸. 그녀의 콧노래가 등 뒤에서 들린다. 아마도 토끼들의 발자국 소리를 지우기 위함이다.



  [5/11, 15:05]



  “그럼 드루비스씨는 항상 겨우살이 가지를 깎는 겁니까?”



  로비로 나오자 콘블룸이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로비 구석의 작업대에 마주 앉아 있다. 드루비스씨는 겨우살이의 가지를 칼로 깎아내고 있고, 콘블룸은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앉은 채 그걸 지켜본다.



  “그렇죠. 겨우살이는 숲 그 자체와 같으니까요. 죽음과 부활이 공존하는 신비한 식물이니까요. 이 미스틸테인은 당신 거예요.”



  “아, 정말요? 그런데 저는... 그... 선악과가 필요한 걸요?”



  드루비스씨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마도 콘블룸의 재미 없는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센스 없는 독일인이 머리를 긁적인다. 저 둘도 슬슬 친하게 지내는구나. 괜찮은 기분을 뒤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저들이 평화롭게, 조금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야할 일들. 집무실 문손잡이에 손을 댄다. 머릿속에 클릭의 말이 떠오른다.



  ‘부탁인데 노크를 좀...’



  아니지. 여긴 내 방이다. 문을 연다.



  “와우. 위대한 버틴! 점프 스케어는 한 물 갔다니까? 노크 좀 하고 들어오라고.”



  어지러울 정도로 정돈 안 된 집무실 책상에 조슈아가 걸터 앉아 있다. 한 손에는... 보이저에 대한 기록물을 들고 있다. 여전히 학교에서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조슈아. 여긴 내 집무실이야.”



  그에게 말하자, 그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젓는다.



  “아니지, 버틴. 나는 호러피디아라고. 여기선 그 이름으로 불러줄래? 우리 약속했잖아.”



  한숨이 나온다.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 지 감도 안 잡힌다. 일단... 호러피디아라 부르기로 약속한 적도 없으니 말이다.



  “이야, 그 특유의 한숨. 공포영화 속, 답답한 여주인공의 심경을 대변하는 클리셰적인 표현이지.”



  ...



  “조슈... 호러피디아. 왜 내 집무실에 있는 거야. 보이저의 기록은 왜 보고 있는 거고.”



  그러자 그는 기록물을 내 책상에 내려놓는다. 안경을 왼손 검지로 툭툭 만지더니 갑자기 홀스터에서 자신의 총을 꺼낸다. 마치 너프건처럼 장난스런 모양새다.



  “내가 새로운 그물탄을 개발했거든. 그리고 보이저. 그 녀석은 내가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코스믹 호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잖아. 안 그래?”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총에서 탄창을 빼낸다. 또 탄창에서 탄을 빼낸다. 엄청 커다란 쇠구슬처럼 생긴 탄이다.



  “말하자면 그런 거야. 코스믹 호러의 대표적인 산물인 그녀에게 이 그물총을 발사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생각만 해도 너무 재밌지 않아? 바이올린만 연주하고 평소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신비로운 소녀. 우주적 존재. 코스믹 호러. 그런 이야기의 중심에게 그물을 맞췄을 때 그녀의 반응! 짜릿하잖아?”



  그가 총구를 내 머리에 들이민다. 하지만 조슈아도 알 것이다. 내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내 눈초리는 네 미간만 보고 있을 거란 걸. 그도 곧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총에 탄창을 결합하고, 홀스터에 집어 넣는다.



  “보이저는 릴리아랑 투스 페어리씨와 함께 외근을 나갔어. 당분간은 안 돌아올 거야.”



  그러자 조슈아는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체념한 듯 말한다.



  “말도 안 돼. 내... 내 위키피디아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드디어 집무실이 좀 조용해졌다. 자리에 앉는다. 서류들을 조금씩 정리한다. 하지만 곧 멈춘다. 오늘은 따뜻한 날이다. 이런 기분을 조금 더 만끽해보고 싶다. 선반 맞은 편,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축음기로 향한다. 레굴루스가 눈물을 흘리며 선물해준 레코드 한 장을 올린다. 크랭크로 태엽을 돌리자, 레코드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늘을 올려둔다. 나팔관을 통해 기대한 것과는 다른, 로큰롤 소리가 흘러나온다.



  “Re.Re.Re.Re.Re.Re.Re.Re.Regulus!”





15시 24분. 제 2회 접견 일지.



과학과 철학, 마침.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