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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깐 소란 피워서 미안하게 생각해

본글이랑 재업글도 알바삭 당했는데

복구 신청도 원인을 물어본 글도

신고갤에서 매크로 답변만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원문 재업하고

이번에도 삭제되면 어디 올려서 링크로 대체하거나

그마저도 불가능하면 4편은 폐기해야지

출퇴근 시간 버스에서 짬내서 열심히 쓴 글인데

그래도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어제 큰 도움을 줬던 릾붕이들

다시 한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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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연은 콘블룸, 릴리아, 버틴. 조연은 칸지라, 이터니티, 마틸다, 멜라니아, 에이시. 콘블룸의 음성과 원하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릴리아에 빗댄 스토리임. 여러 조합 추천해준 릾붕이들 고맙다. 천천히 하나씩 써봄.

  2. 공식 느낌 나도록 썼으나, 어디까지나 2차 창작임을 감안해줬으면 함. 게임 내 고증이나 현실 고증이나 신경은 썼는데 일부 잘못된 설정이 있을 수도 있음.

  3. ~씨는 일부러 붙여 씀. 원래는 띄어 쓰는 게 맞음. 일부 맞춤법이나 억양, 말투, 영어 표기법은 국립국어원 표기보다 게임 내의 표기를 우선시 했음.(샤르지아는 ‘샤르자’라는 표기도 게임 내에 존재하는데 이는 이벤트 스토리 표기대로 ‘샤르지아’로 표기, 번역팀 소통 미스로 보임) 물론 내 능력이 모자라서 단순 오타일 수도 있다.

  4. 버틴이 문을 열 때 노크를 안 하거나, 콘블룸의 미래에 대한 꿈. 릴리아의 취미 생활 등은 공식 설정에서 따온 거거나 유추할 수 있는 내용으로 쓴 것임. 그 외 그녀들의 배경 설정은 공식 설정과 역사적 내용을 참고로 썼음.

  5. 게임 컨텐츠도 다 즐겨서 할 것도 없을 텐데, 심심할 참에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다. 이전의 이야기들과 일부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건 시리즈로 등록해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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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회 마도학자 접견 일지 - 콘블룸의 목소리


  [7/9 12:32]

  영국인에게 티타임은 중요하다. 레굴루스는 차 대신 닥터페퍼를 마실 테지. 나는 티타임을 엄청 즐기는 편은 아니다. 재단 밖의 영국 땅을 밟은 것도 타임키퍼가 된 이후의 일이다. 그런 문화가 익숙하진 않다.

  오히려 소더비와 만나고 티타임을 가장한 파티가 많아졌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내 피에 영국인의 피가 흘러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시간대면 혼자 방에서 티타임을 갖는다. 조용히, 홀로. 이따금 소네트도 오긴 하지만, 이때는 혼자가 좋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 혼자가 좋은데.

  “아, 정말이에요. 진짜 그러려던 게 아니라... 으... 으악!”

  누군가 문을 뻥 차고 들어왔다. 문고리가 박살난 건 아니겠지... 하. 덜렁거리는 문손잡이를 보니까 머리가 아프다.

  화가 났다기 보단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 이터니티씨는 파란색 사교복을 입은 채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배꼽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인도인, 칸지라의 목덜미가 잡혀 있다.

  “꼬마 아가씨. 친구 관리는 해야지. 아니면 확 잡아 먹어버릴까?”

  이터니티씨가 입을 벌린다. 송곳니가 반짝인다. 당연히 그냥 날카로울 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송곳니는 아니다. 홍차를 내려놓는다. 티타임은 끝난 건가. 칸지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그녀가 소리친다.

  “푸... 푼기... 푼기! 물어! 이 아줌마 뱀파이어라고!”

  그녀의 반려 코브라 푼기가 이터니티씨의 다리를 휘감고 문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상대가 이터니티씨다. 그녀의 면역력은 몸에 흐르는 피 때문인지 상상을 초월한다.

  “아가야. 그 정도 독은 아무런 위협도 안 된단다.”

  하. 한숨이 나온다. 무슨 상황일까. 가만히 그 둘을 보고 있자 이터니티씨가 입을 연다.

  “젊은 마술사와 다이아몬드 판매상이랑 포커를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 녀석이 와서 내 비행 가방을 뒤지고 있잖니?”

  이터니티씨가 손을 풀었다. 칸지라는 그대로 안면을 바닥에 부딪혔다. 그러니까, 센츄리온과 테넌트씨, 이터니티씨가 포커 중이었는데... 칸지라가 도둑질을 하려다가 덜미를 잡힌 건가.

  “그... 그게 아니에요! 전 그냥. 가방에서 떨어진 게 있길래 주워 담으려고...! 아얏!”

  이터니티씨가 칸지라의 머리에 꿀밤을 먹인다.

  “네 주머니에 주워 담을 생각은 아니었고?”

  울상이 된 칸지라가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다. 또 다시 한숨이 나온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터니티씨. 이 일은 제가 해결할게요. 믿고 맡겨주실래요?”

  이 정도론 안 되려나.

  “칸지라. 샤르지아씨가 지금 재단에 와 있다고 하던데...”

  내가 말하자 칸지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이터니티씨도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만족한 듯, 입술에 미소를 띤다.

  “그래. 일면식도 없는 노인네한테 혼나는 것보단, 선생님한테 혼나는 게 무서운 법이지. 잘 좀 부탁해. 꼬마 아가씨.”

  그 뒤로 이터니티씨는 나갔고, 칸지라는 내 사무실 구석에 가서 쭈그려 앉아 있다. 일단은 내버려두기로 한다.

  다시 차를 든다. 한 모금 마신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쓴맛이 혀를 감싼다. 크리스탈로는 장생의 피를 받은 이후, 나름대로 기력을 되찾았다. 심지어는 가끔 이터니티씨와 출장을 나가기도 한다. Z씨는 그 사실에 굉장히 만족했고, 이번 네 번째 접견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조합을 짜 주셨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눈에 보인다. 이터니티씨처럼 은발. 하지만 곱슬기가 없는 머리카락. 채도가 낮은 파란색 눈. 그리고 새까만 코트와 파란 목도리. 가방 한가득한 그녀의 센토레아...

  “버틴씨, 얘기 들었습니다. 제가 이번 접견의 주인공이라고요.”

  차분한 생김새와 다르게 은근 분위기를 깨는 그녀다. 그녀는 두 손을 꼭 모아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그저 한숨이 나온다. 왜냐하면 접견의 주인공이 누가 될 지는, Z씨와 나만 아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난 말한 적 없다. Z씨는 더더욱 그럴 리 없다. 감청 설비를 전부 처리해야 하는 걸까.

  일단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칸지라가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겁은 줬으니 슬슬 말해줘야 하나.

  “칸지라, 이제 돌아가도 돼.”

  그러자 칸지라는 우물쭈물 거리더니 푼기를 쓰다듬으면서 땅을 보고 말한다.

  “저기... 버틴씨. 샤르지아 선생님께는 얘기 안할 거죠?”

  고개를 끄덕인다. 칸지라의 도벽이 나쁜 것이긴 하다. 그건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나... 한 가지 참작 가능한 점이 있다. 이터니티씨, 테넌트씨, 센츄리온이 모인 게임 자리는 사기와 마술로 판을 칠 곳인 게 뻔하다. 칸지라가 없었더라도 이터니티씨는 돈을 꽤 잃었을 거다. 오히려 게임을 멈추게 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칸지라는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아마도 점술을 보면서 돈을 벌기 위해 톱니 시장으로 갈 것이다. 이제 콘블룸과 나, 두 사람만 남았다.

  “활기찬 소녀네요.”

  콘블룸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는다.

  “드루비스씨께 새 완드를 선물로 받았다고 들었어. 어때?”

  완드 제작에 취미가 있는 드루비스씨는 얼마 전, 콘블룸에게 새로운 완드를 만들어줬다. 콘블룸이 주로 쓰는 완드는 누군가의 것처럼 총기의 형상이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쓸 지, 안 쓸 지 모르겠다. 콘블룸은 고개를 젓더니 이내 답한다.

  “아뇨. 아쉽게도 저는 제가 쓰던 완드가 훨씬 편해서요. 드루비스씨는 지팡이형 완드를 선물로 줬는데, 제가 쓰기엔 많이 어렵더라고요.”

  역시 그런가. 일단 뻘쭘하게 서 있는 콘블룸에게 손짓한다. 앞으로 오라는 뜻이다. 그녀가 앞에 서고, 나는 구석에 있는 손님용 의자를 그녀 앞에 갖다 준다.

  “와, 감사합니다. 버틴씨.”

  그녀가 자리에 앉는다. 차가운 듯 보이면서도 똘망한 눈. 평소엔 파란 목도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 독일인 여자. 콘블룸은 생각보다 알기 쉬운 사람이다. 단순하고, 상냥하며,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다. 타인의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사람. 내가 아는 콘블룸은 그렇다. 그럼에도 마도학자들은 콘블룸에게 말을 걸기 어려워 한다. 그녀가 동독 출신이란 점도 한 몫 했을 거다. 동독은 공산권 국가였으며, 문화 전반이 대부분의 마도학자들과 다르다. 게다가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아주 차갑고 살벌하다. 그녀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무래도 슈타지 출신인 점, 그녀 특유의 어두운 옷차림도 원인 중 하나일 거다.

  “차라도 마실래?”

  내 앞에 놓인 홍차가 식기 직전이다. 이것도 마셔야 한다. 버리는 건 아까우니까. 그러나 나 혼자 먹기엔 그래서 콘블룸에게 묻는다. 그러자 그녀는 반갑게 웃으면서 “네,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포트의 물을 끓인다. 그동안 그녀는 내 방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본다. 내 방에 있는 것이라곤 읽지도 않는 책, 폭풍우에 참고가 될 만한 역사서, 기타 재단의 서류와 마도학자들 서류뿐이다. 그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서류가... 있긴 하다. 그녀는 그녀의 직업처럼 타인에게 관심이 많으니, 마도학자 서류가 주요 관심사이리라.

  차를 우린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그녀의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다. 향긋한 새 홍차 한 잔을 그녀 앞에 건넨다. 그녀가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다. 녹아내리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좋네요. 티타임이라는 건. 동독에 있을 때는 커피를 더 많이 마셨던 것 같습니다.”

  ...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야. 콘블룸.”

  내가 묻는다. 정작 그녀는 아직까지 자신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손에 낀 새까만 가죽 장갑을 벗는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다. 그녀는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조심히 연다.

  “저와 이번에 접견하게 될 사람이 릴리아씨라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무슨 얘기를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 솔직히 Z씨의 결정에 큰 이견은 없다. Z씨는 웬만하면 일에 있어서는 냉철하니까. 그런데 의문은 있다. 콘블룸과 릴리아는 매개, 영감. 그리고 외근 장소. 모든 게 맞는 것이 없다. 비슷한 시대의 인물이란 점 빼고는 아마도 공통점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안심하도록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들에게 그런 존재니까. 그렇다면 어떤 이유를 말해야 할까.

  “그... 다양한 사람들과 접목을 해볼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에 대한 대비로 접견을 하는 거야. 팀워크도 쌓고,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그녀의 질문에 답이 되었을진 모르겠다. 다만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에 대해선 나도 난감하다. 릴리아가 꽃 이야기를 좋아할 리 없고, 콘블룸이... 술 이야기를 좋아할 리도 없다. 어렵다.

  “그렇습니까... 어렵네요.”

  그녀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다. 그럼에도 Z씨의 눈이 틀리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Z씨 덕에 겨울씨와 소더비도. 갈라보나씨와 피클즈도. 힐마와 이터니티씨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봐. 그런데 한 가지 말해두자면, 릴리아는 너와 접견인 것도, 애초에 접견이 잡힌 것도 모를 거야.”



  [7/11 12:22]

  톱니 시장은 오늘도 분위기가 활기차다. 재단의 조직도 상, 내 산하에 위치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용한다. 그럼에도 그 수로는 시장 활성화에 어려움이 있다. 때문에 이따금 재단 사람들도 찾는다. 그 중에서도 칸지라의 점술집이 인기가 많은데, 그녀의 점이 용하다는 소문 때문이다.

  “야호! 환영합니다. 칸지라의 점술집! 단돈 10 톱니 동전에 여러분의 희미한 앞날을 밝혀드려요!”

  물론 점술 능력으로만 따지면, 이따금 용돈벌이를 하러 오는 마틸다보다 모자랄 것이다. 마틸다는 칸지라보다 훨씬 더 점술에 능통하다. 수련도 많이 하러 다니니까. 다만 칸지라에겐 마틸다에게 없는 능력이 한 가지 있다. 뭐라고 표현하긴 애매하다. 굳이 말하자면 현실을 보는 눈이다.

  굳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콘블룸이 칸지라에게 갔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지금 보니 콘블룸이 칸지라의 앞에 서 있다. 무슨 점이라도 보러 온 걸까. 칸지라가 콘블룸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그녀는 센토레아가 가득한 가방에서 가죽지갑을 꺼낸다. 조심해야 할 거다. 안 그러면 그녀의 애완 코브라가 지갑을 덥석 물어갈 테니.

  “참... 말도 안 돼. 저 녀석에게 내 손님들을 다 뺏기고 있다니. 안 그래 버틴?”

  아... 바로 옆에서 독특한 프랑스 억양이 들려온다 했더니 마틸다다.

  “바로 옆집엔 천재 프랑스 점술가 마틸다가 있는데. 무.. 물론 저 녀석도 점술에 나름 일가견이 있지만... 나는 일류 점술가라고.”

  칸지라가 처음 재단에 합류했을 때, 마틸다와 칸지라는 꽤 자주 다퉜다. 요는 그런 거다. 칸지라와 마틸다 둘 다 점술에 일가견이 있지만... 서로가 서로한테 배워야 한다느니. 그런 말을 하면서 서로 다툰 거다.

  물론 마틸다에게 내가 무어라 해봤자 피곤해질 뿐이다. 딱히 답은 안 한다. 솔직히 마틸다가 잘못 말한 건 없다. 그녀는 프라이드가 넘침에도 딱히 타인을 비하하거나 하진 않으니까.

  “너...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

  “그건 네가 하루종일 수정구로 귀여운 소네트 얼굴이나 보고 있으니까 그런 거지... 윽...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걸?”

  “... 뭐... 뭐라고?”

  어디선가 보드카 냄새가 지독하게 난다. 곧이어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반사적으로 손을 치우려고 했는데 돌아보니 릴리아다.

  “여, 버틴. 끅. 어우. 너무 많이 마셨나?”

  술에 취해서 코가 새빨개진 릴리아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드디어 그녀를 찾았다. 며칠 동안 그녀의 방문을 두드려도 답이 없길래 접견을 취소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콘블룸을 찾아온 것도 1시까지 릴리아를 못 찾는다면 접견의 취소를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릴리아를 찾았으니 접견은 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마신 것 아닌...”

  내가 말을 하는데, 그녀가 내 목을 팔로 휘어잡더니 이내 끌어당긴다. 실크햇이 바닥에 떨어질 것만 같다. 술냄새가 코를 마비시킬 정도로 가까이서 난다.

  “버틴, 나랑 바람 쐬러 가지 않을래? 해장이라도 할 겸. 아, 물론 뒷자리엔 보드카도 실려 있어. 널 위한 저알코올 샴페인도... 끅.”

  릴리아도 릴리아지만, 옆에 마틸다의 얼굴도 다른 이유로 새빨개졌다. 그녀는 이를 꽉 물고 주먹을 꽉 쥔다.

  “리... 릴리아! 재단의 보조 교사한테 그게 지금 무슨... 그런 험담은... 워... 원칙 위반...”

  그러자 릴리아가 마틸다의 말을 듣다 말고 먼곳을 가리킨다. 동시에 말한다.

  “어, 소네트다.”

  마틸다는 릴리아의 ‘소네트’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어딘가로 황급히 도망갔다.

  “하여간, 우리 보조 교사님은 은근히 허접하다니까.”

  ...

  “릴리아, 이것 좀 풀어주면 안 될까.”

  그녀가 점점 팔을 세게 당겨서 목이 졸린다.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가 ‘아이쿠’ 하면서 손을 풀어준다.

  “그래서, 버틴. 시장은 웬일이야? 나는 드루비스씨의 켈트족 전통 맥주를 사러 온 참인데...”

  ...

  “톱니 시장에선 술은 미성년자 판매 금지야. 릴리아. 물론 야외에서의 음주운전도.”

  내가 말하자 릴리아가 기억을 못하는지 ‘그랬나?’하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도, 내가 살았던 시대도. 이제는 없다. 시대가 사라졌으니. 재단의 규율에 의하면 어쨌든 미성년자의 음주는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바깥 세상의 암시장에서 술을 구해 마신다면... 할 말은 없긴 하다. 애초에 릴리아의 음주는 다들 공공연히 알고 있는 비밀이다. 때문에 나이도 잘 안 밝히곤 하니까.

  더불어서 나는 그녀의 빗자루에 타고 싶진 않다. 탈 수야 있겠지만, 그녀가 술이 깬 다음에 맨정신일 때 타고 싶다. 그녀의 무사고 기록은 봐줄 만 하지만, 문제는 음주 상태의 그녀가 행하는 곡예 비행이다. 뒷자리에 있는 사람이 술을 입에 안 대도 토할 정도로... 그녀의 운전은 굉장하니까.

  “어쨌든, 릴리아. 얘기할 게 있어. 접견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만, 오늘 접견은 너와 콘블룸이야. 2시까지 접견실에서 대기해줬으면 해.”

  용건을 간략하게 말한다. 그러자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손사레를 치곤 술통에 담긴 보드카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런 건 정신사나워서 싫어. 알잖아.”

  ...

  “하지만 네가 다음에 빗자루 뒷자리에 앉아서 바람을 쐬러 나가준다면... 거절하진 않을게.”

  어떻게 해야 할까. 냉정하게 생각하자. 거절하게 되면 접견은 물건너간 셈이다. 릴리아는 정말로 한다면 하는 성격이니까. 더불어서 거절하더라도 릴리아는 계속 나에게 빗자루 뒷자리를 요구할 것이다. 그녀는 왜인지 나를 태우고 하늘을 비행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 조건을 붙여야겠다.

  “그럴게. 대신 그날은 술을 좀 덜 마셨으면 좋겠어.”

  내가 말하자 릴리아는 아쉬운 듯 머리를 긁적인다. 곧 머리를 골똘히 굴리는 듯하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으며 생각하기도 한다. 이내 가죽자켓에 붙인 몇몇 훈장들도 만지작거린다. 그녀가 답한다.

  “좋아. 딜... 그나저나 뭘 보고 있었어?”

  답변과 함께 내게 돌아온 질문. 솔직하게 답한다.

  “콘블룸을 찾고 있었어. 널 못 찾으면 접견을 포기할 생각이었거든. 그걸 콘블룸에게 알려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점을 보고 있네.”

  칸지라가 콘블룸에게 뭐라 말한다. 멀어서 잘 들리지는 않는다. 희미하게 인도식 언어가 들릴 뿐이다. 머리를 흔들거리는 인도식 제스처는 잘 보인다. 두 손을 모아 눈을 감고, 자기 식대로 기도하는 콘블룸도.

  손목 시계를 본다. 시간이... 12시 55분. 콘블룸에게 말이라도 걸어볼까.

  내가 고민하는 사이, 릴리아가 내 손목을 잡더니 끌어당긴다. 그러면서 그녀가 말한다. 취기가 살짝 빠졌는지 똑바른 러시아 억양으로.

  “그럼 가서 얘기하면 되겠네. 날 찾았으니 2시에 즉각 오라고 말이야.”

  “자... 잠깐만 릴리아.”

  내 만류에도 그녀는 멈출 생각이 없다. 계속 간다. 그리고 콘블룸 앞에 다다른다. 칸지라도 보인다. 콘블룸의 지갑을 물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호리병에 숨는 푼기도...

  “아... 하하하. 어서오세요. 칸지라의 점술집입니다. 그... 지금은 손님이 있는데... 줄을 서서 기다려주시겠어요?”

  못 봤겠지 싶은가 보다. 자신이 지갑을 훔치는 모습을 말이다. 콘블룸이 놀랐는지 눈을 떴고, 곧 나와 릴리아와 마주쳤다.

  릴리아는 바닥에 떨어진 콘블룸의 지갑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건넸다. 콘블룸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상황을 인식하려 한다.

  “제 지갑이 왜 릴리아씨 손에... 있죠?”

  물론 그렇다고 릴리아가 엄청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오다가 주웠어. 네 마도학자 신분증이 있더라고.”

  칸지라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녀는 이상하게 내 앞에서만 겁을 내는 모습을 보인다. 다행이도 마찰은 없었다. 콘블룸은 릴리아에게 지갑을 건네 받았다.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릴리아씨.”

  둘의 어색한 기운이 느껴진다. 뭐랄까. 난감해하는 콘블룸, 귀를 파는 릴리아. 아무래도 내가 얘기를 꺼내는 편이 낫겠지.

  “콘블룸. 점을 보고 있던데, 어떤 거에 관해서 보던 거야?”

  내가 말하자 콘블룸이 목도리를 콧등까지 올린다.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다. 곧, 목도리 안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게... 오늘 접견에 관한 운세를 보고 있었습니다.”

  ... 뭐라고 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알던 당당한 그녀는 어디로 간 걸까. 혹시 릴리아가 무서운 걸까. 물론 릴리아의 드센 성격 때문에 그녀를 어려워 하는 사람들은 많다. 둘 다 어떻게 보면 소년병에 가까웠던 사람들이지만... 성향은 전혀 반대인 사람들로 보이니까.

  “접견? 운세? 캬하하하하.”

  정작 릴리아는 박장대소를 터뜨린다. 어느 부분이 웃겼던 걸까. 나와 콘블룸은 얼떨떨하다. 그녀만의 포인트가 있었던 걸까.

  “버틴, 이건 어때. 지금 바로 여기서 접견을 하는 거지. 솔직히 접견실에 가는 것도 귀찮잖아?”

  ... 물론 안 될 건 없다. 장소 자체는 말이다. 문제는 개인적인 정보가 발설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장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당장에도 우리 뒤에 칸지라의 점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한 둘 서 있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보인다. 조금 멀어서 희미하지만, 블로니와 제시카도 톱니시장 안에서 걸어다니고 있다.

  “당장 여기서 하는 건 무리한 것 같아.”

  하지만 톱니 시장 인근에 임시 거주처를 가진 사람들 중, 그런 공간을 가진 사람이 있다. 아주 개인적인 공간을 가진 사람이. 여기서 멀지 않다. 그리고 그녀라면 적어도 입이 가벼운 사람은 아니다.

  “다만 아는 곳이 있어.”


  [7/11 13:05]

  문을 벌컥 열려고 하자, 콘블룸이 만류한다. 모든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면서도 사생활을 존중해야한다는 이상한 신념을 가진 그녀다. 하긴, 나도 모르게 또 노크를 안 할 뻔했다. 콘블룸이 대신 노크를 하자, 문이 열린다. 멜라니아가 노크 소리에 반응하기까진 늘 5초가 걸린다. 그리고 7초 뒤면 문이 살짝 열린다. 약 30cm 정도의 틈으로. 실제로 그렇게 되자, 멜라니아가 고개를 쏙 빼고 말한다.

  “응? 무슨 일이라도... 아 미안, 너희들 방문은 계획에 없던 일이라... 좀... 많이 당황스럽네.”

  “멜라니아. 태도가 잘못됐어. 감점 사항에 해당돼.”

  쥘 리메 컵의 복사품과 신문들이 가득 붙은 방. 크리터와 비슷한 촉감을 가진 말하는 가방 에이시. 그리고 안경과 베레모, 빨간 스타킹이 특징적이지만, 평범한 외투로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멜라니아.

  “멜라니아.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 혹시 접견에 대해서 알고 있어?”

  내가 말하자, 멜라니아는 당연하다는 듯 안경을 치켜올리며 말한다.

  “물론. 그런 정보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 그런데 접견이랑 내가 무슨 관련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오히려 멜라니아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늘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니까.

  “방을 좀 빌리려고 해. 접견용으로. 오늘은 릴리아와 콘블룸의 접견인데 사정이 좀 생겨서.”

  내가 말하자 멜라니아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예상 못한 일에는 늘상 약한 그녀가 캡모자를 벗고 말한다.

  “잠깐만. 상황 파악까지 12초 정도 필요할 것 같아.”

  그녀가 말하자, 뒤에서 릴리아가 기지개를 펴면서 말한다.

  “이봐, 12초면 접견도 끝낼 시간이겠어.”

  릴리아는... 접견이 뭔지는 알고 있는 건가. 멜라니아는 답하지 않고 턱을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한다. 그러다가 생각이 끝났는지 검지를 펴며 말한다.

  “좋아. 3번 방이면 되겠어. 라미레스 사무실이랑 구조는 비슷한 거. 알지, 버틴?”

  그녀가 문을 활짝 열어준다. 곧이어 자리를 비켜주려는지 우리들에게 말한다.

  “어제 커피를 무려 열 세 캔을 마셨어... 갈라보나씨가 그렇게 하면 잠이 안 온다고 했는데. 너희들이 온 김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가져야겠어. 계획에는 없던 일이지만 어차피 쉬는시간 30분은 계획된 시간에서 빼뒀거든.”

  멜라니아가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입을 가린다. 하품을 크게 한다.

  “30분만 자고 와야겠어. 안 그러면... 재단에서 내준 과제를 끝낼 수가 없을 것 같거든.”

  “멜라니아. 과제는 가져가야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라. 지금 점수는 B-야.”

  “아... 에이시 선생님...”

  무뚝뚝한 말투로 말하는 가방, 대학생이자 괴도인 영국인. 두 사람은 서로 만담을 나누며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물론 과제는 가져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시달려온 멜라니아의 사소한 반항인 듯하다. 어쨌든 그녀가 말한대로 이곳은 라미레스의 회사 건물을 본떠 만든 곳이다. 각종 트랩들이 설치되어 있다. 조심해서 들어가야 한다. 괜히 잘못 건드리면 곤란하다. 다행이도 전에 멜라니아에게 들은대로라면 괜찮을 거다. 새로운 트랩만 설치되어 있지 않다면... 멜라니아는 매일 이곳에서 훈련을 하고 과제도 한다. 내가 알기론 여행가방에서 내어준 방에선 잠만 자는 거로 알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여기서 그녀의 개인실까진 30분도 더 걸리지 않나? 황무지에서 버스를 탄다고 해도...

  아무튼 접견실은 3호를 쓰면 된다고 했다. 바닥에서 툭 튀어나온 발판을 피하고, 벽 틈새의 작은 구멍은 빠르게 지나간다. 혹시 모를 함정을 대비해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 정신 사나운데.”

  릴리아가 한탄한다. 이런 상황 자체가 귀찮은 모양이다. 반면 콘블룸은 능숙하게 함정들을 피하고 있다. 그녀의 눈이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건 덤이다. 슈타지에서 도대체 뭘 배웠던 건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어. 접견실은 시장에서 출발하면 2시는 돼야 도착했고, 네가 빨리 하고 싶다고 해서 선택지가 여기뿐이었어.”

  답을 해준다. 릴리아는 더이상 궁시렁대진 않는다. 그래도 자기 발언에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다.

  3호의 문앞에 도착했다. 문손잡이를 살핀다. 별다른 장치는 없는 것 같다. 문을 연다. 그러자 문 옆에 걸려있던 빗자루가 툭하고 쓰러진다. 경계경보가 울릴 일은 없을 거다. 실제 상황이 아니니까. 다만 멜라니아 본인이 이 빗자루를 쓰러뜨렸다면 굉장히 슬퍼했을 것이다.

  “뭐야, 이 빗자루는.”

  릴리아가 빗자루를 주워든다. 아마도... 멜라니아 나름의 훈련용 보안장치라는 건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녀는 빗자루를 방 우측 구석에 갖다 놓는다. 역시, 청소용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방 한 가운데엔 사각 테이블이 있다. 접견실에 있는 것처럼 탁자는 아니다. 서류 하나 없이 깔끔했고, 주변은... 역시나 60년대 괴도에 대한 신문들이 벽에 붙어 있다. 다만 서류나 다과는 없다. 고요한 밀실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엔 좋은 곳이리라.

  의자는 4개가 있다. 콘블룸은 눈치 빠르게 의자 하나를 구석으로 치웠다. 나와 그녀, 릴리아까지. 모두 자리에 앉는다. 공손하게 앉은 콘블룸.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앉은 릴리아. 그리고 나.

  조용한 상황이 1분 정도 이어진다. 나도 이 둘 앞에선 무슨 얘기를 해야 할 지 애매하다. 콘블룸은 볼을 긁적이고, 릴리아는 그녀의 힙 플라스크를 꺼내들고 내용물을 마신다. 술냄새가 난다. 역시 보드카려나.

  “너도 한 잔 할래?”

  릴리아가 콘블룸에게 술을 권한다. 그러자 콘블룸은 손사레를 치며 답한다.

  “괘... 괜찮습니다. 술은 안 해서요.”

  아무래도 시작을 해야겠다.

  “둘이 한 살 차이라는 건 알고 있지?”

  내가 말하자 둘 모두 몰랐다는 듯 서로를 돌아본다. 곧이어 릴리아가 입을 연다.

  “내가 많겠지?”

  고개를 젓는다.

  “콘블룸이 한 살 더 많아.”

  “아... 뭐 어때. 원래 세상 만사 나이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릴리아는 머쓱한 듯 손가락을 튕군다. 그녀의 힙 플라스크는 스트랩을 따라 떨어지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뚜껑은 닫았나?

  “그럼요.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단지...”

  콘블룸이 뭘 말하려다가 만다. 다시 정적이 찾아오기 전에, 이들이 입을 열었을 때 얘기를 해야 할 게 있다.

  “일단 접견에 온 걸 환영해. 이런 자리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을 거야. 재단의 일이고, Z씨가 총괄해. 콘블룸과 릴리아. 너희 둘이 접견을 진행하게 될 거야. 마도학자 간의 친분 형성이 팀워크에 있어서 도움이 될 거란 분석이 있었어. 실제로도 갈라보나씨와 피클즈는 접견의 결과, 좋은 팀워크를 얻게 됐고.”

  둘이 터그 놀이를 한다는 건 얘기 안 해도 되겠지. 어쨌든 대략적인 설명은 마쳤다. 자리는 만들었고, 주제를... 얘기하면 되는데. 뭐랄까. 이 둘의 공통점부터 찾는 것이 맞을까.

  “둘은... 나이대, 활동하던 시대 등등에서 맞는 부분이 있어. 릴리아는 소련에서 활동했었고, 콘블룸은 동독에서 활동했었지. 릴리아는 제노 군사 아카데미를 떠난 후, 공군에서 활동했어. 콘블룸은 슈타지에서 활동했고. 두 사람 모두...”

  소년병이라는 말이 이들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을까 했지만, 생각해보면 존재하긴 했다. 업무 외적인 부분이다. 배경과 관련해서. 동독과 소련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비밀스러운 조직이 많았고, 콘블룸은 슈타지를. 릴리아는 소련 공군의 마도학자 소년병으로. 둘 모두 타국에는 철저히 알려지지 않은 기관에서 활동했다.

  “버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진 알겠어. 나는 소년병이었고... 독일민주공화국 출신인 이 친구도... 그러니까... 슈타지가 군인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년병이라면 소년병이겠지.”

  릴리아는 딱히 개의치 않은 것 같다. 콘블룸을 살핀다. 그녀도 같다. 목도리로 가려진 입가의 표정은 모르겠다. 하지만 눈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다.

  “그것과 관련해서 옛날 썰이나 풀어라. 그런 거야?”

  릴리아가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냥 기본적인 배경만 설명한 것 뿐이야. 대화는 너희들의 몫이고.”

  “재단 녀석들. 참 대단한 과제를 내줬네.”

  릴리아가 의자를 45도 쯤 뒤로 눕힌다. 의자의 앞발이 서고, 뒷다리가 그녀의 무게를 지탱한다. 그녀는 손으로 머리 뒤를 받친다. 또 다시 정적이 이어질까 싶었는데, 의외로 먼저 말을 꺼낸 건 콘블룸이었다.

  “그래도 저는 독일민주공화국과 독일연방공화국이 통일하게 됐다는 소식이 다행이었습니다. 체제에 관련해서 상관에게 귀담아 들은 적은 없지만, 적어도 소네트씨처럼 미래에서 온 사람들에게 들은 바론... 두 나라는 머잖은 미래에 하나의 독일로 통일이 됐다고 들었습니다. 사회주의에는 관심 없지만, 적어도... 그림자에서 사람들을 감시할 일은 없어졌으니까요.”

  콘블룸이 길게 말하자, 릴리아도 그녀의 말에 답하듯 말한다.

  “나도 체제니 뭐니 하는 건 크게 관심이 없어. 소련도 해체된다고 들었고. 내가 직접 본 미래는 아니지만, 재단 녀석들은 후의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도 많아. 미래와 과거, 누군가에겐 현재. 다양한 시대가 꼬여 있지만... 그래도 버틴이 우릴 미래로 데려다 줄 거니까. 맞지?”

  ... 그래.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고, 얼마 안 가서 소련 역시 해체되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시작되었고, 저 두 사람은 그 직전 시기에 머물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 미래를 보진 못했다. 평화에 머무르지 않고, 누군가를 감시하고 죽여야 했던 사람들.

  “물론이야. 나 역시도 1999년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언제나 그랬듯, 그것만은 약속할게.”

  그리고 나는 타임키퍼다. 이들을 평화의 시대로 되돌려야 하는 임무가 있다. 그리고 그건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고맙습니다. 버틴. 저는 늘 믿고 있습니다. 꿈이 있거든요.”

  콘블룸이 말한다. 그녀의 꿈. 전에 한 번 들은적이 있다. 판도라 윌슨의 인터뷰에 은근하게 실리기도 했었지.

  “심야 토크 진행자.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 물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그만 둘 순 없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미래로 간다면 그런 일을 해보고 싶네요. 그래서 여전히 재건의 손에 맞서 싸우는 거기도 하고요.”

  릴리아가 옆에서 의외라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러자 콘블룸이 릴리아를 바라보며 묻는다.

  “릴리아씨는 용감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입니까? 물론 표정과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런 사람인 걸 알 수 있습니다만... 직접 듣고 싶기도 해서요.”

  그러자 릴리아는 머쓱해하며 내게 말한다.

  “버틴. 이 녀석, 되게 조용한 줄 알았더니 의외로 말이 많구나.”

  모든 사람들이... 콘블룸과 가까워지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갭이랄까. 좋은 신호다.

  “겉보기와 많이 다른 사람이야. 아주 좋은 사람.”

  그러자 콘블룸의 얼굴이 빨개진다. 더운듯, 그녀는 목도리를 내린다. 그녀의 얼굴 전체가 오랜만에 드러난다.

  “오, 되게 예쁘게 생겼구나. 너.”

  릴리아가 추파를 던지자, 콘블룸은 머쓱하게 웃는다.

  “감사합니다. 릴리아씨.”

  릴리아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다름아닌 그녀의 빗자루 인증 열쇠다. 그거를 꺼내더니 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휙휙 돌리기 시작한다.

  “난 말야. 용감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지. 재단 녀석들의 헛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매일 나의 Su-01ве로 날아다닐 수 있거든. 물론 보드카도 한 잔 걸치면서 말이야.”

  그녀가 다시 힙 플라스크를 손에 들고 한 모금 마신다. 그녀가 말을 잇는다.

  “난 뭐. 대단한 꿈을 가진 건 아니야. 그냥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면, 그걸로 나는 만족하거든. 누구의 위협도 없이 자유롭게. 사람들을 태우면서 말이야.”

  릴리아가 직접적인 꿈을 이야기 한 건 아니지만... 콘블룸의 물음엔 답이 되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을 거다. 퇴역한 공군이 나중에 보통 어떤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지. 당연하겠지만 미래의 여객기 조종사들은 퇴역 공군 출신이 많다. 릴리아도 그것을 아는 건진 모르겠지만. 미래가 온다면... 우리에게 잃어버린 오늘이 돌아온다면. 그러면 두 사람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 눈에 보인다.

  “멋지네요. 저는 사실 릴리아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많았습니다. 뭐랄까... 나름의 직업병인데.”

  “뭐. 설마 엿들은 게 있는 거야?”

  “그야... 엿듣다기 보단 들은 거죠. 슈타지에선 농땡이 칠 때도 많았지만, 여기선 그 이상으로 쉬는 시간이 보장이 돼서... 뭔가 직업병처럼 듣게 되거든요.”

  “참... 대단한 직업병이네. 하긴 나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걸 좋아하니 이것도 직업병 중 하나인가?”

  “그럴지도 모르죠. 확실한 건 릴리아씨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겼네요. 물론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릴리아씨가 워낙... 화를 잘 내시다 보니까요.”

  “화를? 무슨 소리야.”

  “가끔 윤활유가 덜 들어갔다고 재단의 정비반을 갈구는 걸 들었거든요.”

  “야... 그건...”

  “하하, 릴리아씨. 그래도 듣고 싶은 건 직접 들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꿈에 대해서 듣고 싶었거든요. 당신처럼 용감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직접 말하는 꿈 얘기요.”

  ...

  “저는 꿈을 갖고 있지만,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개의치는 않았음에도 이따금 멀어져만 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시대가 역행하고, 점점 과거로 돌아갈 수록 말입니다.”

  “콘블룸...”

  릴리아의 태도가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모든 마도학자들이 폭풍우를 겪고, 재단에서 상담을 받는다. 라플라스 의료 센터에서 재활을 받기도 한다. 대부분은 평범하게 살아간다. 재단이든. 다른 시대든. 내 여행가방 안에서든. 그러나 바깥의 시대가 거꾸로 가면 갈 수록... 다들 내면의 불안감은 생겨났을 것이다.

  “그래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앞에서 꼭 말해보고 싶었거든요. 마이크 너머의 사람 말고도 말입니다.”

  콘블룸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녀가 다시 목도리를 올려, 얼굴을 가리려고 한다. 그런데 릴리아가 그것을 막는다. 콘블룸은 놀란 표정으로 릴리아를 바라본다. 릴리아는... 그런 말을 건넨다.

  “안 되겠다. 너.”

  “네? 뭐가 말입니까?”

  “같이 바람 쐬러 가자. 빗자루 뒤에 한 자리 남거든.”

  “어... 그치만... 아직 접견이...”

  “버틴, 상관 없지?”

  릴리아가 묻는다. 아까 내게 뒷자리를 권할 때와는 다른 표정이다. 굉장히 중요하고 이것이 필요하다는 표정. 보기 드문 릴리아의 웃는 표정이다.

  “이 정도면 보고서에 쓸 거리는 있을 테니까. 갔다 와. 둘 모두.”

  릴리아가 콘블룸의 장갑 낀 손을 잡는다. 그리고 늘 그랬듯 잡아당긴다. 콘블룸은 놀란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데... 저기 갑자기 빗자루는 왜...”

  그러자 릴리아는 당당하게 천장. 아니, 어쩌면 하늘일지도 모를 위쪽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야 하늘을 날 거니까. 네가 말했잖아. 늘 그림자에서 사람들을 감시했다고. 하늘을 날아다니면, 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너의 그림자에 가려질 거야. 넌 태양이 되는 거고.”

  “우와... 멋진 말입니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우는 겁니까?”

  “뭐긴, 너도 보드카 한 잔 할래?”

  릴리아는 내게 윙크를 건네고, 콘블룸과 함께 라미레스 사무실 3호를 나간다. 콘블룸은 나가기 직전, 내게 손을 흔들었다. 먼저 가본다는 뜻이리라.

  나도 슬슬 내 집무실로 출발해야지. 그래도... 두 사람 모두 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 릴리아의 빗자루 뒷자리에 처음 탔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가상 몽유 장치에서 깨어났을 때, 라플라스 제활 센터 병실의 창문을 깨고 들어온 릴리아.

  멋진 대사를 하면서 들어와선, 나를 데리고 나갔지. 그때 빗자루 뒷자리에 처음 타면서 느꼈어. 하늘은 정말 상쾌한 곳이구나. 콘블룸도 그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림자에서 벗어나서. 그녀의 밝은 성격은 밝은 환경에서 더욱 빛이 날 테니까.

  그리고 그 환경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나는... 내가 맡은 일을 마쳐야 한다. 반드시... 미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7/11 15:41]

  집무실에 오자마자 서류 정리가 우선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향기가 났다. 뭐랄까. 시원한 향수 냄새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다. 뭐지? 일단 내 자리로 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신음 소리가 들린다. 내 뒤쪽. 뒤를 돌아보니, 열린 문이 스르르 닫힌다. 그리고 그 문쪽에... 아마도 내가 문을 열면서 얼굴을 박은 것으로 보이는 마틸다가 있었다.

  “아... 아야야... 도대체... 누구야...”

  마틸다가 찡그렸다가 이내 통증이 멎었는지 눈을 뜬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녀는 3초 정도 동공이 풀리더니, 이내 새빨개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내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한다.

  “버... 버버버... 버틴? 네가 왜 벌써 여기에. 접견이 이렇게 빨리 끝나는 거였어?”

  한숨이... 나온다.

  “이... 이 마틸다님 앞에서 한숨이라니. 너... 너!”

  “그래서. 무슨 일이야. 마틸다.”

  내가 묻자, 그녀는 우물쭈물거리면서 답을 못한다. 이럴 때는 그냥 내 방 서류 중에서 뭐가 달라졌는지를 보면 된다. 서류철들을 살핀다. 모두 그대로인데... 소네트와 관련된 마도학 보고서. 그리고 접견에 관련된 보고서가 삐죽 튀어나와 있다.

  “그... 그게... 그러니까... 이 마틸다님이 재단의 보조 교사로서, 다음 접견에 참관을 할까 하는데 말이야. 만년 꼴찌였던 너보다는 1등인 내가 접견의 감독을 한다면 훨씬 신빙성 있는 자료가 되지 않겠어?”

  “그런 거로 따지면 소네트를 부를게.”

  “소... 물론 소네트가 학교에선 1등이었지만... 나는 바깥 세상 물정도 더 잘 아니까. 게다가 나는 위대한 프랑스인이고... 그리고...”

  ... 물론 인도에서의 공적 이후 마틸다는 재단에서 훨씬 더 괜찮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본디 재단의 조사원에게만 허락되는 비상용 연락 접근 장치의 권한 제한을 약간 더 풀어준다거나.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접견에 참관할 수 있을까. 물론 사츠키도 종종 엿듣고, 콘블룸도 감청을 하겠으나, 공식적인 석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는 건 다른 일이다. Z씨가 그걸 승낙할까. 어차피 마틸다가 있는다고 해서 딱히 손해 볼 건 없다. 오히려 마틸다가 운을 띄우면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 마틸다. Z씨에게 건의해볼게.”

  뒤따르는 한숨은 덤이다. 그러자 마틸다는 갑자기 우쭐해졌는지 팔짱을 낀다. 그리고 턱을 치켜올리면서 거만한 표정으로 말한다.

  “핫, 네 자료들을 조금 뒤져본 건... 그것 때문이야. 그래. 접견. 절대로 소네트 자료를 만지거나 하진 않았고... 접견에 정식으로 참관하려면 나도 알아야 할 게 있으니까. 이건 그러니까... 보조 교사로서 형식적인 행동이었다고.”

  ...

  “그래. 고마워.”

  마틸다는 내 말을 듣고는 콧방귀를 끼더니, 머리 옆까지 올라올 정도로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나간다. 여전히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오리처럼 뒤뚱뒤뚱...

  의자에 앉는다. 오늘 접견은 아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일이 많을 것이다. 장소도. 사람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것들. 창밖을 본다. 날씨가 맑다. 그런데 웬 새까만 형체 하나가 손쌀같이 지나간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창 가까이 다가간다. 창밖을 살핀다. 아, 뭔지 알겠다.

  고글을 쓰고 비행하는 릴리아. 목도리가 휘날리는 콘블룸. 두 사람은 지금 릴리아의 빗자루를 타고 황무지의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황무지의 햇살이 그들을 비춰서일까. 땅을 밟고 있는 나는 하늘의 그녀들이 그렇게 보인다. 태양이 비추는 그림자로. 그리고 그녀들도 나를 그렇게 볼 것이다. 자신들에게 가려진 그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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