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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의 날에 보빔을 쉬는 버틴이 보고 싶다자연보호도 타임키퍼의 소임 중 하나였는데 보빔온난화에 너무 열중해 보린걸 반성한다며 오늘은 보빔을 쉬겠다 선언한 버틴 소네트는 그걸 듣고 충격에 스푼을 떨어뜨린줄도 모른채 타...타임키퍼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어쩔gall.dcinsi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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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장소. 폭풍우 속에서 항해하는 작은 방주.

다시 말해, 여행가방.


아페이론의 일을 마친 버틴과 소네트는 그 안에서 간만의 평화를 즐기는 중이었다.


“모든 것의 바깥에는 시간이 있지.”


버틴은 턱을 괸 채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평화 속에서라면, 수프를 섭취하는 일쯤은 잠시 미루고 감상에 잠겨도 괜찮으리라.


“시간이요?”


“응."

“시간은 모든 것을 품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영민한 소네트는 금세 버틴의 말을 해석한 다음, 수프의 첫 스푼을 떴다.

버틴이 직접 만들어 준 수프였다. 얼마전 사형당할 위기까지 겪은 소네트로선 각별하기까지 하다.


‘타임키퍼의 액체……’


자기도 모르게 불순한 생각을 떠올리던 소네트는 그만 버틴의 말을 놓치고 말았다.


“듣고 있어, 소네트?”


“아. 다시 한 번 말해 주겠어요?”


“응. 타임키퍼라는 내 직위에 대해 생각해 봤어. 사라지는 시대, 사라지는 모든 것……. 내게 주어진 이름은 그 모든 것을 지키는 이름이지. 하다 못해 지켜보기라도.”


소멸하는 시대의 관찰자.

그 무거운 책무의 흔적은 버틴의 뒤편으로 보이는 벽에 고스란히 남았다.


웨스트 앤드의 루이스.

작가를 꿈꾸던 매리언 스미스.

히바우두에 열광하던 줄리.


시대와 함께 영원한 망각으로 떠난 이들의 기록.

저 작은 사진이 아마도 이 세상에 그들이 남긴 유일한 유산이겠지.


“그래, 모든 것. 자연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소네트는 버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살짝 돌렸다.


“자연이요?”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의 풍광은 언제나처럼 생경하다.

시간이 그대로 물화한 듯한 그곳은 결코 익숙해지지 못할 애잔함이다.


“응. 아무래도 지금까지 난 자연 보호라는 소임을 망각하고 있던 것 같아.”


소네트는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37은 훌륭한 정보 하나를 알려 주었어. 2006년에 2월 27일이 세계 북극곰의 날로 지정되었다는 정보. 나도 그 자연 보호 정신에 입각해, 오늘은 보빔을 쉬려고 해.”


버틴은 그 외에도 37이 말해준 ‘2와 27을 곱하면 54가 나오는데 54번째 제곱수는 2916이며 2와 9를 16에 더하면 27이 나온다’라는 놀라운 사실을 말했으나, 소네트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타, 타임키퍼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소네트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스푼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스푼은 그녀의 급격히 메마른 입술만을 가릴 뿐, 초조한 얼굴을 가리기엔 너무도 작았다.

덜덜 떨리는 스푼 아래로 스프가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보빔탄소제로 프로젝트에 동참해 줘서 고마워. 소네트. 우리 함께 보빔온난화를 막아 보자.”


보빔탄소배출권이니, 저보빔녹색성장이니, 그런 것에 하등 관심 없는 소네트였지만 감히 티를 내진 못했다.


“네…….”




공포스러운 선언 이래로 소네트의 마음은 그녀의 머리칼처럼 붉게 타오르는 듯했다.

이전처럼, 아니 그보다도 더한 사랑을 갈구하는 소네트의 눈빛에 어떤 응답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업무만 처리하는 버틴의 모습이라니.


아, 버틴! 어째서 너는 나의 이 안달난 마음을 모른 체 하는 것이지? 터질 듯한 이 나의 열정을 온전히 소모시키는 일 또한 그대의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이래선 안 되는데. 노건처럼 더디게 닿아선 아니됨을 그대가 모르지 않을 터인데.


“소네트? 할 말이라도 있어?”


“……아니에요, 타임키퍼.”


할 수 있어. 하루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소네트는 재단의 학교에서 받았던 모든 교육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나 음욕이란 가상한 뜻마저 길지 않아 허물고, 아무리 드높은 성채라도 쉬이 침범하는즉.


“하으……”


인고가 충분토록 쌓이기도 전에.

시침이 두 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소네트는 농염한 암컷의 체취를 흩뿌리며 버틴에게 다가갔다. 소네트의 뒤로 끈적한 그림자가 남는 듯했다.


소네트의 팔이 버틴의 허리를 더듬는다.

천천히, 그러나 벗어남을 허용치 않는 듯 치밀하게, 껴안는다.


아! 목마르고 굶주린 여인이여. 구도하던 그대는 이제 한처음 유혹을 속삭인 어느 참렬한 뱀과도 같구나.


“소네트. 오늘은 보빔탄소제로의 날이라고 했잖아.”


당신도 나의 향기를 맡고 있으면서.


소네트는 차마 그 말을 꺼내지는 못한 채, 목매는 듯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직접적 수단이 가로막히자, 소네트는 차라리 버틴쪽에서부터 조급하도록 만들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평소보다 매혹적인 곡선을 그리는 허리.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 머리칼은 여자의 비밀이라, 떨치기 어려운 요염함이 그 너머에 있다.

드러나는 목께와 빗장뼈의 음영을 보라. 누가 탐을 내지 않을까.


그러나 티타임 때까지도 버틴은 다가오지 않았다.


‘어째서……!’


어제까지만 해도 차와 사탕을 입에서 입으로 주고 받는 보빔 티타임을 즐겼을 터인데.

평소처럼 고상하게 홍차를 홀짝이는 버틴과 달리, 소네트는 거의 노여움에 가까운 욕구불만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소네트, 차가 입에 맞지 않아?”


“아, 아니에요.”


덜덜 떠는 손 탓에 홍차는 사방으로 튀었고, 결국 소네트의 입에 들어온 홍차는 한 모금 정도뿐이었다.

겨우 그만큼으로는 소네트의 마음 속에 일어난 불길을 꺼뜨리기 어려웠다.


결국 소네트는 좀 더 대담해지기로 결심했다.




오후 업무에 필요한 서류를 가져다 주며, 은근슬쩍 소네트는 버틴의 옆에 바짝 붙었다.


버틴의 팔꿈치를 슬그머니 자신의 샅으로 가져가는 소네트.

버틴은 모른 척하려 했으나, 기어코 소네트가 자신의 기분 좋은 곳을 버틴의 팔꿈치로 꾹꾹 누르자 한숨을 쉬고 말았다.

“오늘은 안 된다고 했잖아, 소네트.”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소네트의 얼굴이 그녀의 머리칼보다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죄, 죄송해요……!”


우물쭈물거리며 버틴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던 소네트는 간신히 물러난 다음 자기 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외롭고 쓸쓸하게 누운 소네트는 버틴을 상상하며 은밀한 곳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흐응…….”


그러나 그녀의 손은 버틴의 손이 아닌 것을.


아무리 몸을 상냥하게 쓰다듬어도,

격렬하게 사타구니 근처를 매만져도,

유두를 저릿할 만큼 꼬집어 봐도,

버틴의 숨결 한 번에 미치지 못한다.


절정까지 이르지 못한 쾌락은 이내 같은 양의 죄악감으로 화하여 소네트를 옭아매었다.


아, 버틴. 버틴!

그대는 정녕 나를 이렇게 버려 두려는 뜻을 거두지 않는단 말인가요?

나는 버티지 못하고 내 마음으로부터 타버리고 말 텐데.






밤이 깊어 어느덧 자정에 가까워진 시각. 모든 예술가에게 축복이며 저주인 시간.

그런 시간에 문학의 정수인 시집을 읽는 일은 타임키퍼의 품위에 어울리는 일일 터.


“때가 되었다. 밤이 오리라…….”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를 읊던 버틴의 귀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버틴은 문을 열었다.


“…소네트?”


평소의 단정한 모습은 어디 가고, 애욕으로 잔뜩 달아오른 표정과 흐트러진 잠옷 차림이라니.


“버틴…….”


소네트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이름을 말했을 뿐이지만, 그것은 삶에 대한 천착보다도 간절한 애원이었다.

그 다리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는 또 어떤가. 얼마나 서 있었다고 그 아래로는 이미 작은 웅덩이가 생길 지경이다.


“소네트. 몸이 안 좋은 거야?”


짐짓 걱정하는 듯한 말투. 소네트는 그 다정한 말에 그만 절정할 뻔했다.


“타임키퍼…….”


버틴의 입가에 걸린 희미한 미소는 조명이 채 지우지 못한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일단 들어가자, 소네트.”


버틴이 소네트를 인도하려는 듯 소네트의 허리에 손을 감은 순간이었다.

소네트는 흠칫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몸을 떨며 버틴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타임키퍼… 저, 더는 못 참게써효…….”


소네트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에 만족한 버틴은 기어이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었다.


악동처럼 순수한, 그래서 더 소유욕을 부추기는 미소.

언제나 세상에서 한 걸음 거리를 두는 듯한 표정 아래로는 그 천연덕스럽고 자유로운 계집아이가 숨어 있다.


“안 돼, 소네트. 아직 북극곰의 날이 지나지 않았잖아? 북극곰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거야?”


“그치만… 그치마안……!”


위아래로 질척한 액체를 흘리는 소네트의 모습은 버틴이 기대하던 감흥을 주었다.


“소네트.”


“네에……?”


“역시 넌 울 때 가장 귀여워.”


버틴은 자신이 시를 읽던 소파에 소네트를 눕혔다.


버틴이 소네트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소네트는 곧장 버틴에게 안겨들려 했다.

하지만 버틴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늘은 터치 금지야.”


소네트는 곰인형을 잃어 버린 여자아이 같은 울상을 짓고 말았다.

그러나 버틴은 노련했다. 아, 그 교활함이라니!


“하지만, 10분 남았어.”


“10분……?”


버틴이 꿈과 악마처럼 속삭였다.


“오늘이 지나갈 때까지. 오늘이… 사라질 때까지.”


소네트에게 주어진 10분의 유예는 그야말로 끔찍한 지옥이었음이니.

진정으로 버틴은 악마였다.


그저 버틴이 부르는 세 음절 자신의 이름마저도 온 몸을 꿰뚫는 벼락 같다.

하물며 버틴이 속삭이는 달콤한 연인의 밀어는?

그런 것을 주면서, 소네트가 가장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버틴은 정말 못된 주인이다.


“타임키퍼…… 제발…….”


버틴이 피아노를 연주하듯 소네트의 몸을 두드릴 때마다.


“8분 남았어, 소네트.”


그 손가락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활처럼 소네트의 몸을 가로지를 때마다.


“5분.”


소네트가 허리를 튕기며 소파를 꽈악 쥐어뜯을 때마다.


“3분.”


버틴은 그 모습을 탐미한다.

위대한 타임키퍼는 여유롭기만 하다.


소네트는 혼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시계를 찾아 눈길을 이리저리 돌렸다.


분침이 아직도 열 걸음을 떼지 않았을까?

시간을 지키는 일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구나…….


뎅― 뎅―


“잘했어, 소네트.”


"에……?"


버틴은 마침내 소네트가 기다리던 것을 선사했다.


“흐윽!”


소네트의 몸안으로 버틴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던 소네트는, 버틴의 손가락이 익숙하게 약점을 누르자 끝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경련을 일으켰다.


“아으… 버틴…….!”


너무나 커다란 흥분에 기절해 버린 소네트의 몸은, 그 와중에도 버틴의 손가락을 놓지 않으려는 듯 강하게 조여들었다.

버틴은 힘을 주어 손가락을 빼 내고는 손가락에 묻은 소네트의 타액을 핥았다.

씨익 웃은 버틴은 소네트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그렇게 소네트를 깨우며 버틴은 무언가를 속삭였다.


“……가 왔어.”


정신을 잃었던 소네트는, 버틴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쾌락의 몽유 속에서 소네트는 반쯤 정신을 놓은 채 되물었다.


“뭐가… 왔다는 건가요……?”


버틴이 다시 한 번 소네트의 깊고 예민한 곳을 어루만졌다.


“폭풍우가 왔어. 우리 둘만의 폭풍우가.”


소네트의 다리 사이에서 음탕한 비바람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