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것은 사실의 적시보다는
심신미약 상태의 생존자가
자신이 겪었던 가혹한 재해를
되짚을 때 흔히 그러하듯
뒤틀리고 왜곡되어 있었다.
그들의 설명은 괴담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
길쭉한 전나무와
새콤한 검은 산딸기를 품은
숲속 깊은 곳에는
한 채의 오두막이 숨어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침엽수들끼리
속삭이는 비밀이 들릴 듯한 그곳에는
한 명의 사냥꾼이 산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희생자를 죽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인간 사냥꾼이.
인간 사냥꾼의 살인은
정신 이상자가 머릿속 목소리의
명령에 따라 살육을 벌일 때처럼
비논리적이고 흉포하지도,
악마 숭배자들이 그들의
주인에게 제물을 바칠 때처럼
거룩하고 잔혹하지도 않다.
사냥은 오로지 냉철하고 무정하게,
효율적이고 빈틈없이 이뤄진다.
인간 사냥꾼에게 있어 사냥은
오로지 수단에 불과한 까닭이요,
언제나 빠르고 확실하게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
사냥꾼의 숙원이기 때문이다.
악의로 빚어진 탄환이
사냥꾼의 엽총에서 벗어나
비명을 지르며 달음박질치고 나면
인간 사냥꾼의 비밀을
숨겨주는 전나무들은
조용히 총성을 삼키고
시체를 뱉는다.
살의로 벼려 서슬 퍼런
사냥꾼의 예리한 날붙이가
은은한 달빛을 조각내면
희생자의 육신은 가시덩굴의 거름이 되고
피는 산딸기의 영근 과즙이 되어
영영 숲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
.
.
주민의 괴담이 끝났다.
그 안에서 진위를 가려내는 것은
법관의 몫이었다.
촌장이 필사적으로 덧붙였다.
"아침부터 이곳까지 오시느라
피곤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아직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할 수 없어
거부감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아무쪼록 빠른 결단을
내려달라고 부탁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머뭇거릴 틈이 없습니다.
마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불경한 자를
한시라도 빨리 퇴치하지 않으면
무고한 이가 언제 또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나리의 인도에 따를 테니, 부디 한 시라도
빨리 숲속의 악마를 퇴치해 주십시오!"
법관은 마침내 입을 떼었다.
"그대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소."
"무엇이든지요!"
"오두막의 위치를 알려주시오."
촌장과 주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그렇다면!"
"아직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오.
그러나 한 가지는 약속하겠소.
정의는 구현될 것이오."
촌장과 마을 주민들은 앞다투어
오두막의 위치를 상세히 설명했다.
법관은 즉시 숲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뒤로 감사의 인사와 찬양을
담은 목소리가 쏟아졌다.
법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없이 걸어갔다.
한참 후, 마을을 벗어나 혼자만이 남은
디케는 조용히 뇌까렸다.
"세상에 의롭지 않은 일들이 많군."
.
.
.
황금의 왕좌를 백은이 물려받고,
계승 과정은 먹구름 장막 뒤에서만
은밀하게 치러진 하늘 아래에서,
법관은 숲속을 걷고 있었다.
그 순간 법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던
생각은 바로, 굳이 오두막의 위치를
물어볼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마치 동화 이야기 속 헨젤과 그레텔이
조약돌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표시했듯
죽 늘어져 있는 묵주알들이
피해자가 어디서부터 옮겨졌는지
낱낱이 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묵주알들은 서로 상당한 간격을 두고
초목 사이에 띄엄띄엄 흩뿌려져 있었으나
남다른 관찰력과 추리력을 바탕으로
진범과 무고한 이를 밝혀내는 직종에
임하고 있는 법관 앞에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법관은 묵주알의 안내를 받으며
숲을 가로지르는 동시에
머리 한편으로는
아직 확실히 풀리지 않은 의문점들과
여태까지 들은 이야기의
내용을 되새겼다.
그녀의 어깨에 올라가 있는 손이 슬며시
흩어지며 마치 계곡 사이를 가로지르는
음침한 바람 같은 소리를 냈다.
"정숙하시오."
법관의 한마디에 손은 침묵을 되찾았으나,
그 선사 시대의 유물이 보인 반응은
법관의 의심에 확신을 더했다.
촌장은 순수한 진실만을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 사이에 거짓을 섞어
기만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법관은 딱히 배신감 따위를 느끼진 않았다.
특별 재판소의 대법관으로 일하면서
무고한 마도학자들을 구하는 동안
감성적인 마도학자들의 설명과 변명에
기만이 한 톨도 섞여 있지 않았을 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거짓 속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느냐,
그로써 정의를 집행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법관의 뇌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다리 또한 거침없는 걸음을 이어갔다.
주변 지리에 능통한 그녀가 이제는 슬슬
타뷸라 마을보다도 인근의 다른 마을에
더 가까워질 정도로 멀리 왔다고 생각할 즈음,
묵주알의 흔적이 끊겼다.
대신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법관은 사방에 퍼져 있는 핏자국 주변을
쭉 살폈다.
온갖 곳에 남아있는 각양각색의 두터운 털,
구석에 가지런히 모여있는 신발,
나무와 지면에 남아있는 거친 전투의 잔재,
그리고 사나운 맹수만이 남기는 자취.
법관은 손을 뻗어 털을 집어 들었다.
먹구름 사이의 흐릿한 달빛만으로도
그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길고 두꺼운 늑대의 털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늑대의 것은 아니었다.
굳이 높이가 2M에 육박하는
나뭇가지에 남아있지 않았더라도
마도학자인 그녀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털의 주인은 마도학계의 기준으로도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이자
최악의 인간 사냥꾼으로 꼽히는 존재,
늑대인간의 것이었다.
법관이 마지막까지 보류하고 있던
의문들이 하나로 모였다.
마치 낱낱이 뿌려졌던 구슬들이
하나의 실로 꿰어지는 것처럼.
단순히 음습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훈련된 말조차도 접근을 꺼리던 마을,
걸어오는 내내 지나치게 고요하던 숲,
냉철하고 효율적인 인물이 저질렀다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난폭했던,
마치 짐승이 남긴 것처럼 보였던 상흔.
여태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던
'인간 사냥꾼'의 살해 동기.
그 순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법관은 그녀의 뺨에 닿은 감촉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금만 늦게 도착했더라도
증거물을 휩쓸어 없앴을
밤하늘을 확인한 법관은 피식 웃었다.
"비 오는 날이라 화형 기둥 아래
불의의 불꽃이 아직 피어오르지 않았군.
아직 늦지 않았어."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법관은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탄환을 튕겼다.
그녀는 탄환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검 끝이 가리키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총성과 목소리가 들려온 그곳엔,
우거진 전나무와 산딸기 덩굴 너머엔
오두막이 있었다.
구름 사이를 비집고 드러난 달빛 한 자락에
'인간 사냥꾼'의 모습이 드러났다.
밤하늘보다 어둡고
노을보다 붉은 사냥꾼에게서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피비린내가 났다.
하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verse1999&no=283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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