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드리운 숲에서
숲을 더럽히는 불경한 존재를
처단하기 위해
촌장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모하게도 단신으로 인간 사냥꾼을
마주하려 드는 법관을 도와
마을의 평화를 쟁취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법관에게 그의 의도를 솔직히 밝힐 수도
있었으나, 자신만만하고 당찬 법관에게
인간 사냥꾼의 위험성을 강조해 봤자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것 같았기에
몰래 뒤따라가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기실, 이는 법관에게는 차마 고할 수 없던
악랄한 진심을 숨기기 위함이기도 했다.

촌장은 인간 사냥꾼을 직접 처치하거나,
하다못해 그 최후를 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의 숲은
굳건한 그의 결의를 꺾으려 했다.

나뭇잎들이 서로 비비는 소리와
빗방울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에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두려움과 섬뜩함이 그를 삼켰다.

무언가가 들린 것 같아
불현듯 돌아봤지만 마주한 건
옅은 달빛뿐이었고,

무언가에 닿을 것 같아
슬며시 손을 뻗어도
닿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그러나 촌장은 마음을 다잡았다.

우울한 어둠이 그의 목을 조르고
울퉁불퉁한 나뭇가지가
그의 발목을 채는 손아귀가 되었지만

이 모든 것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불길이 그의 심장을
뛰게 하고 있었다.

복수심.


당한 대로 되갚아주려는 이 성미는
타뷸라 마을에 남아있는 모든 동료가
공유하는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촌장은 그들을 이끄는 이였다.


촌장은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구불구불한 숲길을 서슴없이
헤쳐 나갔다.

숲 한 가운데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 사냥꾼'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이든,
그 오만한 법관의 도움과 함께라면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


모두가 나날이 더 여위어지고 힘겨워지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어 가고 있었다.
법관의 말대로 추가적인 지원이 온다 한들
모두가 그때까지 멀쩡히 버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지금을 놓치면 이보다 더 최적인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다른 어중이떠중이라면 몰라도
촌장인 그라면 이 절호의 기회를
움켜쥘 수 있으리라.

그가 자신 있게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딘 순간,
벼락이 세상을 갈랐다.


세계가 하얗게 물든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예상치 못했던 존재가 서있었다.

대지에 검을 꽂고 양손을 그 위에 올린 채
무기물처럼 우뚝 서있는 법관이.


콰르릉


천둥이 쳤다.


촌장은 그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이곳에?

아무리 걸음이 늦어졌더라도
진작에 오두막 근방에
도착했어야 하지 않았나?

다시 번개가 내리쳤다.

그의 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법관의 모습은
마치 고고한 사자와도 같았다.


콰르릉


"재판을 시작하겠소."


천둥과 함께 법관의 목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원고는 타뷸라 마을에서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모든 마을 사람이오.
그러나 그들은 죽음으로 침묵하게 되었으니
내가 그들의 대리인으로서 원고의 직무를 대행하겠소.

피고는, 그대들이오."


초현실적인 느낌이 가시고 나자
울컥한 촌장이 고함쳤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설마 사냥꾼 때문에 죽은 제 친구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죄로 저를 탓하시는 거라면…!"

"정숙하시오."



법관은 검을 들어 올렸다 내리꽂으며
촌장의 말을 끊었다.


법관의 언행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마치 율법에 집행하는 그녀를
거스를 수 없는 마도술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선 첫 번째 증거품을 제시하겠소."


법관은 검 위에 올려놓고 있던 한 손을
떼더니 무언가를 건네듯 손을 위로 펼쳤다

그 위에 작은 묵주알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대들은 예배당에 안치된 이가 이 묵주를
목에 매달고 다녔다고 주장하였소."

"……."

"그러나 묵주는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아니오.
불신자들 사이에서 흔한 오해이지만,
목에 걸고 다니는 십자가에는 묵주알을 넣지 않소."


촌장은 침묵했다.


"이외에도 유사한 근거는 많소.

마을의 누구도 성호를 긋지 않았고,
예배당의 정확한 명칭을 언급하지 못했소.

사체는 관 안에 안치되거나
가지런히 손이 모아져 있는 대신
단순히 건물 안에 널브러져 있었지.

이는 마을에 거주하던 이 중 누구도
기초적인 종교적인 가르침조차
숙지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하오."


촌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론했다.


"그, 그건 저희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라서 그렇습니다!
매일 먹고 살기 힘든데
어떻게 그런 걸 배우고 삽니까!

우리가 종교의식에 무지몽매하다는 것이
모든 잘못을 뒤집어써야 할 이유가 됩니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소.
그러나 종교인의 복장을 한 피해자와
긴 세월 공동체 속에서 함께 한 이들이
교리에 완벽하게 무지하다는 사실은
어떤 가능성을 시사하지.

고인도, 그대들도 종교인이 아니오."



촌장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대들은 살해당한 이가 종교인이라면
도움을 요청하기 수월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에 맞춰 사후 위장하였소.

고인의 엉성한 삭발례가 이를 뒷받침하오.

그대는 선의로 도와주려는 이를 기만하여
거짓된 이유로 그대를 돕게 하려 했소.

그대들은 이 죄를 인정하시오?"


촌장은 짧은 고민 끝에
쉽게 반박될 수 있는 변명보다는
차라리 솔직한 심정을 고하기로 했다.


"…그만큼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상태를 보면 아시잖습니까!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했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상관이 없을 만큼 절박했습니다!"


법관은 덤덤히 말했다.


"재판을 계속하겠소."


법관의 말이 이어졌다.


"또한, 재판 진행 중에는 혼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명칭을 사용해 주기 바라오.

그대가 입에 담는 마을 '사람'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오."


촌장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비단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사체가 입은 훼손 중에
야수에게 뜯긴 듯한 상체가 있었소.

그러나 그대가 고했듯 마을 내외에도,
심지어 이렇게나 깊은 숲속에서조차
야생 동물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늑대의 것과 극히 유사하지만
그 크기에 있어서 월등한 털이
살해 현장 근방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소."


법관이 반대쪽 손을 펴 보이자
여러 색의 털들이 쥐어져 있었다.

촌장이 이를 갈았다.


"이것이 두 번째 증거품이오.

이 털의 주인은 늑대인간의 것이오.

다양한 색상이 증명하듯
여럿이 무리를 짓고 있소.

그리고 그 수를 유지하기 위해선
먹이도 상당량 필요하겠지.

이 넓은 숲에서
야생동물의 씨가 마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오."


법관의 파란 눈이 촌장을 꿰뚫어 보았다.


"사체에 남은 큼직한 상흔 또한
사후 늑대인간에 의해 생긴 것이었소.

사냥꾼의 영역 내에서 사망한 고인을
급하게 옮기던 중 생겼거나,

혹은 그 과정 중 생긴 흔적을 묻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처를 크게 낸 것으로도
볼 수 있소."


촌장은 짓씹듯 말했다.


"늑대인간이…
굳이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늑대에게도 동료의식은 있기 때문이오."


법관은 그녀를 노려보는 눈에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었다.


"고인은 타뷸라의 늑대인간이었소.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법관와 촌장 사이의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로써 그대들이 가장 기초적인 교리조차
이해하지 못하여 어설픈 흉내만 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소.

그대들이 사냥꾼이 두려워 숲을 피하자
마을에 닭 한 마리 남지 않고 사라진 것도
설명되오."


달빛 아래에서 번뜩이는 촌장의 안광이
차츰 더 날카로워졌다.


"고인이 사냥꾼에게 죽은 후
사체를 굳이 마을까지 옮겨온 것도,

이후 목걸이로 착각한 묵주를
사체의 목에 걸고 뜯어낸 후
묵주알을 숲에 뿌려놓은 것도,

전부 나처럼 도움을 주려던 이방인을
기만하여 사냥꾼과 맞붙이기 위함이었소."


촌장의 덩치가 꿈틀거리며 부풀어 올랐다.


"'늑대인간 사냥꾼'이 그대들에게
큰 위협이라는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오.
실제로 목숨을 잃은 무리의 일원도 많았겠지.

그대들이 사냥꾼에게 보이는
적대감과 공포는 거짓이 아니었소.

고인의 성향과 행적 또한 사실이었겠지.
그는 오두막 근방까지 인간의 모습으로
접근한 후에, 신발을 벗고 늑대의 형상으로
바꾼 후 사냥꾼의 오두막을 급습했소.

그 결과 인간의 모습으로 죽은 사체의
맨발에는 숲에서 걸어 다닌 흔적이
남지 않았지."


촌장의 전신이 털로 뒤덮였다.


"그럼에도 고인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소.

도저히 그대들만으로는 사냥꾼에게
복수할 수 없으리라 판단한 그대들은
인간들이 흔히 우러러보고 따르는
성직자의 모습으로 고인을 꾸몄소.

늑대인간 사냥꾼을 살인귀로 모함해 

인간의 도움을 받으려 했겠지.

그러나 사체와 숲속에는 갖은 조작을
저지를 수 있었으나 살해 현장만큼은
섣불리 건드릴 수 없었소.

그 위치가 사냥꾼의 오두막에
지나치게 가까웠기에,
고인의 사체를 회수한 후로 근처엔
얼씬도 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 결과 재판에 사용될
갖가지 증거물이 남게 되었소.

그대들은 죄를 인정하시오?"


촌장이 으르렁대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진실이나 거짓말, 핑계나 변명 따위가
중요한 시점은 지났다.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법관이 그의 요구를 따라
사냥꾼을 공격하는가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어졌다.



"그렇다면 우리 동료의 죽음 자체는
결국 사냥꾼에 의한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우리의 기만을 인정할 테니
앞서 우리 무리의 일원을 무참히 사냥한
'인간 사냥꾼'부터 심판하라!

네년은 정의를 집행하겠다고
선포하지 않았는가!"


법관은 고개를 들어 올려
늑대인간의 우두머리와 눈을 맞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두머리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법관이 부연했다.


"남의 목숨을 앗아가려던 자는
자신의 목숨을 잃더라도
불평하여선 아니 될 것이오."


늑대인간 우두머리가 울부짖었다.


"추잡하고 야비한 것이 과연 인간답구나!
우리의 정체를 알고 나니 팔이 안으로 굽던가?

동족을 학살한 늑대인간 사냥꾼에게
정당한 복수를 요구하는 것조차
인두겁을 쓰지 않으면 안 되던가?"


예배당에서부터 그들의 정체와 행적을 
짐작한 후에도 그러하였듯,
법관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한결 같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기존에 타뷸라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어찌 되었소?"


우두머리가 허연 입김을 내뿜었다.


"타뷸라는 그대들이 세운 마을이 아니오.
그랬다면 예배당을 건축했을 리 없지.
묵주 같은 물건을 사들였을 리도 없고.

반면 그대들이 위장을 위해 고인에게
입혔던 수도복에는 고인의 피 말고도
한참 전에 묻은 것으로 보이는,
한층 더 짙은 색의 피가 묻어 있었소.

마치 과거 그 복장으로 피를 쏟은
피해자가 있던 것처럼 말이오."


법관의 손이 검을 움켜쥐었다.


"나는 사체에 남은 큼직한 상흔이
사망한 고인을 급히 옮기다가 생겼거나,
그 흔적을 가리기 위해 상처를 키웠을
가능성만을 언급했으나,
이 외에도 다른 가능성이 있소.

이미 앞서 수도복에 남겨졌던 자국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동료의 사체를
훼손했을 가능성 말이오."


늑대인간의 우두머리가 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법관이 답했다.


"재판을 시작하며 선언했을 것이오.

본 재판의 원고는
타뷸라 마을에서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모든 마을 사람이며,

피고는 그들을 습격해 자리를 꿰찬
늑대인간인 그대들이라는 것을.


동족을 학살한 늑대인간 사냥꾼에게

복수하고 싶은 피고의 대표로서
피고가 저지른 타뷸라 마을 사람들의 학살을
변호할 수 있겠소?"


늑대인간의 우두머리는 코웃음치며
장난치듯 말했다.


"약육강식은 어떤가?"


법관은 고개를 저었다.


"가축도 잡아먹을 수 있는 그대들이
굳이 인간만 포식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오."


우두머리는 조롱하듯 물었다.


"굳이 미식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이는 생존의 법칙이 아닌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살인과 식인이니,
기존의 율법에 따른 결과 또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오."


우두머리는 흥미를 잃은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의 정체를 안 후에도 무덤덤해 보이길래 
아직도 함께 힘을 합쳐 인간 사냥꾼을 죽일 
생각이었나 싶었는데, 괜한 시간 낭비였군."

"피고 측의 추가적인 변론이 없다면
변호의 포기로 간주하여 판결을 선고하겠소."


우두머리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미 계획이 엎어진 이상
더는 재판이니 판결이니 하는
헛소리에 어울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번 외지인의 도움은 실패했다.

다음 외지인이 더 쓸모 있길
바라면 될 뿐이다.


문명과 예의범절의 시간은 진작 끝났다.
이제는 야만과 사냥의 시간이었다.


"본 재판정은 피고에게 사형을 선고하오."

법관의 선고는 우두머리의 포효에 묻혔다.


숲에 숨은 채 우두머리의 뒤를 쫓던
늑대인간 무리가 신호를 듣고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냥꾼과 법관이 격전을 치른 후 공멸하지 않았을 시
살아남은 쪽에게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곧장 죽일 수 있도록 함께 온 주민들이었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
그들의 후각과 촉각을 마비시키고
잊을만하면 내려치는 번개와 천둥이
그들의 시각과 청각을 방해하더라도
전부 상관없었다.

눈앞의 여자가 설령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조건이 같다면
머릿수에서 우세하고 익숙한 환경을
활용하는 측이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

이 숲은 말 그대로 그들의 앞마당이며
그들의 영역이었다.


우두머리는 익숙한 손짓으로
법관을 가리켰다.

법관은 비소를 지었다.


"무리를 불러 위협하는 건가?... 훗."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른
늑대인간들이 법관을 덮쳤다.

늑대인간의 그림자들이
쏜살같이 법관에게 몰려 들었다.


하나, 둘, 셋……
셋?

'겨우 셋?'


마을에 남아 있던 무리 전원을
끌고 온 것을 기억하던 우두머리는
순간 의문에 빠졌다.


"형의 집행은 그대에게 맡기겠소."


직후, 우두머리의 의문은
경악스러운 답과 함께 풀렸다.



"망할 늑대 같으니라고, 죽어라."

총성이 울렸다.

전나무와 산딸기의 냄새 사이에서
화약과 피의 비린내가 진동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한 발의 은 탄환이면 됐다.

이미 늑대인간들은 사냥꾼이 아닌
사냥감으로 전락해 있었다.


번쩍하고 다시 밤하늘이 밝아졌다.

우두머리의 명령대로
법관에게 덤벼드는 것조차 잊은 채
혼비백산한 늑대인간들 사이로
사냥꾼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그 사이에서 도끼와 총이
합쳐진 것 같은 기이한 모양의 '손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춤사위와도 같은 움직임이 끝났을 때,
관람객들이 찬사의 의미로 장미꽃을 던지듯
사냥감들도 그녀에게 선혈을 뿌렸다.

늑대인간 사냥꾼은 능숙하게
그들의 환호를 망토로 받았다.


천둥이 울렸다.

더는 우두머리가 아니게 된
늑대인간에게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그는 뒤도 안 돌아 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리는 새로 만들면 된다.
복수는 나중에 하면 된다.

당장은 무리더라도
힘을 길러서 다시 무리를 짓고
외딴 마을에 둥지를 틀면
수를 불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늑대인간의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하필이면 점령했던 마을 근방에
어처구니없는 실력의 늑대 사냥꾼이
살고 있었을 뿐이다.

하필이면 용병 겸 간식으로 부른 먹잇감이
이상할 정도로 눈치가 빨랐을 뿐이다.


산소가 부족해진 늑대인간의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이번 실패를 교훈 삼는다면
다음엔 반드시 성공해 낼 수 있다.

한때 40마리가 넘는
거대한 무리를 통솔했던 그에게
이런 것쯤은 그저 사소한 실수,
잠시의 후퇴에 불과했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다시 무리를 모으고 힘을 길러
언젠가 반드시 피의 보복을…


늑대인간의 장대한 계획은
귓가에서 들려온
소녀의 속삭임에 끊겼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그날 밤, 빨간 망토의 색이
한 번 더 덧칠되었다.


.
.
.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혀
조각난 달빛이 비정한 밤을
관통하는 숲속에서
두 인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예고 없던 방문과 요청에도
흔쾌히 사형 집행의 대리인으로서
나서준 점에 감사를 표하오."


법관의 말에 사냥꾼이 고개를 저었다.


"나야말로 늑대 위치를 알려줘서 고마워.
……피는 피로 갚아야 해."


법관은 그녀의 눈에서
낯익은 검붉은 불꽃을 보았다.
법관과 그녀의 어깨 위에 놓인 손 모두
비난하지 않는 감정이었다.


사냥꾼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녀가 단순한 기계적인 살인마 따위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불꽃이었다.

그러나 그 불꽃은 곧
우울한 빛 아래로 사그라들며
사냥꾼의 눈이 아래로 깔렸다.


"나쁜 늑대가 옆 마을에도 왔을 줄은 몰랐어.
알았더라면 이 마을 사람들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법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는 따로 지켜야 할 마을이 있었고,
늑대인간의 머릿수가 너무 많았소.

그대는 단신으로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방위를 펼쳤소."


사냥꾼은 다시 고개를 들어

법관을 바라보았다. 

법관이 덧붙였다.



"만일 그대가 없었더라면
늑대인간들은 두 마을을 거점 삼아
더욱 수를 불리고 영역을 넓혀나갔을 것이오.

그대는 많은 목숨을 구했소."


사냥꾼은 잠시 말없이 법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 것에 불과했으나,
법관은 한순간 사냥꾼이 눈물을 쏟아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차곡차곡 쌓인 물에 
버티지 못한 둑이 터지는 것처럼.

그러나 사냥꾼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암석처럼 단단하고 강인했다.

그녀는 조그마한 균열조차 보이지 않고
인사하듯 빨간 망토의 두건을
살짝 아래로 잡아당겼다.


"고마워."


법관은 사형 집행자이며 
이웃마을의 파수꾼으로서
알아 마땅한 정보 또한 
전할 필요를 느꼈다.


"늑대인간 무리의 잔당은 염려 마시오.

전령을 특별 재판소 쪽으로 보냈으니
마도학자를 동원하여 생포하라 일러두면
그를 통해 잔당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오.

그들 모두 받아 마땅한 처벌을 받을 것이니
그대가 번거로워질 일은 없을 것이오."


사정을 이해한 사냥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아직 밤이니 보초 서는 곳으로 돌아가야 해.

나쁜 늑대는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사냥꾼의 말에 법관은 일순간 고민했다.
그리고 같은 마도학자로서
신중히 단어를 골라 질문했다.


"방금 전투를 마쳤는데, 괜찮겠소?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오?"

"괜찮아. 난 모두를 지킬 거야.
이 빨간 망토에 걸고."


디케는 준비하고 있던 말을 삼켰다.

그녀는 첫 만남부터 

질문에 앞서 총알부터 쏘았던 

사냥꾼의 의지를 존중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밤마다 겪었을
늑대인간과의 혈투 후에도
법관의 설명을 듣자마자 기꺼이
늑대인간의 몰살에 가담하고
이를 빈틈없이 완수한 
천부적인 사냥꾼에게
무어라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타뷸라 마을의 장례와
뒷수습을 관장할 지원을 부르겠소.

그러니 그대는 안심하고 책무를 다하시오."


사냥꾼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밤의 그림자 사이로 사라졌고,
법관은 부지불식간에 혼자가 되었다.



법관은 눈을 감았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유럽 각지를 돌아다녀야 하는 마도학자와
외진 마을을 홀로 지켜야 하는 마도학자의
길이 몇 번씩이고 겹치기란 어려울 것이다.

시대가 뒤바뀔 정도의 이변이 없는 한.


디케는 눈을 떴다.


나무 사이로 고요한 밤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만이 남았다.
비탄에 잠긴 이들의 울음소리도,
불행에 빠진 이들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구름과 나뭇잎 사이로
은색 달빛이 힘겹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머잖아 구름은 걷히고 동이 트며
달은 잠시나마 책무를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당장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법관은 마을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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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시작해서 늑인 관련/무관련 드립이나

디케와 빨간 망토의 음성/물품/문화 내용 등

오마쥬 몇 개 찾는 재미라도 있었길 바람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