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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소네트.”

“…안녕하세요. 투스 페어리씨.”

어느 늦은 오후, 소네트가 양호실 안으로 들어오며 투스 페어리에게 인사했다.

“임무 중에 넘어져서 무릎이 조금…. 진찰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곤 투스 페어리의 맞은 편에 앉아 발목에서부터 바지를 걷어내어 제 무릎을 보여주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다리에 대비되는 붉은 상처가 무릎을 뒤덮고 있었다.

“….”

투스 페어리는 말없이 소네트의 다리를 한 손으로 부축한 채 무릎의 피를 소독솜으로 닦아내며 소네트의 반응을 살폈다. 소네트는 상처의 고통보단 투스 페어리의 손길과 시선탓에 양 볼이 무릎처럼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 부상은 제게 오지 않아도 돼요, 소네트.”

소독을 끝낸 투스 페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약품 진열장의 문을 열며 말했다. 투스 페어리의 단호한 한 마디에 소네트가 급하게 시선을 돌려 투스 페어리를 바라보았다. 겨우 이런 걸로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렸는지 소네트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사소한 일로 투스 페어리씨의 시간을 빼앗게 만들어서….”

소네트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자, 투스 페어리는 약품을 고르던 손길을 멈추고 소네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일부러 절 만나러 올 명분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예요.”

“…!”

“바깥 세상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언제든 제 방으로 찾아와도 괜찮아요. 재단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고요.”

투스 페어리가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며 제스처를 취했다. 소네트는 안심한 듯 표정이 풀어졌지만, 여전히 잘못한 강아지마냥 투스 페어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동안 저를 찾아오지 않았던게 그 것 때문이었나요?”

소네트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네….” 하고 대답했다.

투스 페어리는 이따금씩, 소네트가 진찰을 받으러 올 때마다 바깥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영상을 크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 있고, 도시의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가 여럿 있으며, 문화에 따라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는 등 사소한 것까지 다 말해주었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끊이질 않았다.

“분명 바깥세상을 알려고 하면 안된다는 재단의 말에 잘 따르던 우등생이었는데 말이죠.”

투스 페어리는 진열장에서 연고를 들고와 소네트의 무릎에 발라주었다. 이런 간단한 응급처치 정도는 한 참 전에 가르쳐 주었을 것이었다.

“…바깥 세상을 동경하는 건 아니지만, 투스 페어리씨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요.”

붉은 무릎 위에 발라진 연고가 투스 페어리의 손길로 인해 얇게 퍼지면서 광택을 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투스 페어리는 소네트의 말에 시선을 올리곤 소네트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렇다면, 같이 바람 쐬러 나가지 않을래요?”

“네?”

“양호실을 비워선 안되지만… 오늘은 점심도 거르고 일했으니 휴식시간을 지금 쓴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소네트는 ‘그러면 안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단 둘만의 외출은 처음인지라 기대감이 먼저 부풀어 올랐다.

“소네트는 이 후의 일정이 있나요?”

투스 페어리의 질문은 만약 있어도 비워두라는 무언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겠다는 듯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며 소네트의 대답을 기다려주었다.

“음…”

소네트는 곤란한 듯, 눈썹을 늘어트리며 고민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오전 오후 일정을 모두 빠르게 마치고 투스 페어리를 만나러 온 것이라 급한 일은 없지만, 타임키퍼에게 돌아가 재단의 전달사항을 보고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곤란하면 나중으로 미뤄도…”

“…! 아니요. 이 후의 일정은 없어요…. 전부 끝내고 왔으니까요.”

투스 페어리의 아쉬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네트가 벌떡 일어서며 가로막았다. 재단의 명령을 따르는게 우선이지만 결국엔 투스 페어리도 재단의 직원이자 ‘어른’이었기 때문일까, 소네트는 자신의 철칙을 굽히는데에 거부감을 덜 느꼈다.

“걱정마세요. 자리를 오래 비우진 않을테니까요.”

소네트는 안심이 되면서도 어딘가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자기 딴에는 숨겼으리라 생각했으나, 투스 페어리는 소네트를 쭉 지켜봐왔기 때문에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 의자에 걸쳐 둔 코트를 입곤 양호실을 나가며 소네트에게 손짓하자, 소네트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투스 페어리의 뒤를 따라갔다. 그제서야 상처난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

“머리 조심하세요.”

투스 페어리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소네트의 등을 살짝 짚었다. 소네트는 그런 작은 배려에 저도 모르게 귀가 붉어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밥은 먹고 왔나요?”

투스 페어리가 소네트를 내려다보며 묻자, 소네트는 고개를 살며시 올려 투스 페어리와 눈을 맞추곤 대답했다.

“아뇨. 아직…”

끼니마저 거를만큼 빨리 만나러 오고 싶었던 걸까. 그런 기특한 마음에 투스 페어리는 절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식사부터 하죠.”

투스 페어리는 차문을 닫아주고 운전석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탑승했다. 쾅. 하고 문이 닫히며 차 안으로 찬 공기가 들어오자, 소독약 냄새가 소네트의 코끝을 찔렀다.

“시간… 괜찮을까요?”

‘자리를 오래 비우지 않는다.’ 규칙에 갇힌 아이를 달래주기 위한 허울 좋은 말이었으나 소네트는 철석 같이 믿곤 초조한 눈빛으로 투스 페어리에게 물어왔다.

“걱정하지 마세요. 샌드위치 정도는 금방 먹을 수 있을테니까요.”

소네트는 그 대답에 안심이 됐는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훔쳐본 투스 페어리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규칙위반을 두려워하면서도 울타리 밖의 세상에 호기심을 갖는 어린 강아지. 투스 페어리의 눈엔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



“후우… 조금 신기한 샌드위치였네요.”

소네트는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는 투스 페어리를 기다리며 중얼거렸다. 투스 페어리는 그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계산을 끝내고 소네트를 향해 대답했다.

“형태는 비슷하지만, 맛은 전혀 다르죠?”

재단에서 제공하는 식사대용 샌드위치는 식빵과 채소, 그리고 햄 슬라이스 한 장이 전부였다. 하지만 방금 먹고 나온 것은 둥글고 노릇하게 잘 구워진 빵 두 조각 사이에 갈색빛의 육즙이 가득한 고기와 채소, 과일, 치즈 등이 들어간 샌드위치였다.

“네. 굉장히 맛있었어요.”

조금 들뜬 소네트가 기쁜 듯이 말했다. 재단의 제복만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여자아이처럼 보일 정도로 행복한 눈빛이었다.

“돌아가기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드라이브라도 하죠.”

소네트는 투스 페어리에 말에 긍정하며 홀린 듯이 처에 탑승했다. 배를 채워서 긴장이 풀렸는지 직접 시간을 확인해볼 겨를도 없어 보였다.

“다음 번엔 스파게티도 먹어보고 싶네요.”

“내일 또 오죠.”

내일도 시간을 내주겠다는 듯한 말에 소네트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그래도 되나요?”

“그럼. 당연하죠. 사양하지 않아도 돼요.”

“감사합니다. 투스 페어리씨…”

짧은 대화가 끝나고 차 안은 다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둘 중 누구도 이 공기를 무겁게 느끼지 않았다.

소네트는 멍하니 움직이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투스 페어리는 운전하며 이따금씩 소네트의 옆모습을 흘깃 쳐다봤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도심에서 벗어나 주변에 광야밖에 보이지 않는 긴 도로가까지 나오자 투스 페어리는 창문을 열어주었다. 소네트는 갑작스럽게 문이 열려 불어 들어온 바람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불편한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흩날리는 주홍빛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고정하며 좀 더 밝고 선명해진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강아지와도 같아서 투스 페어리는 그만 웃음이 새어나와버렸다.

“…? 무슨 일 있나요?”

“귀여워서 그만…”

투스 페어리의 한 마디와 짧은 웃음소리는 소네트의 사고를 정지시키는데 충분했다. 소네트는 토마토처럼 달아오르는 뺨을 손으로 가리곤 투스 페어리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갑자기 무슨 소릴…”

예상 외의 답변을 들은 소녀같은 반응에 투스 페어리는 좀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지만, 애써 참아냈다. 이 이상 놀리면 본인이 더 참을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투스 페어리는 운전석의 창문을 살짝 내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소네트. 바깥 세상은 어때요?”

소네트는 시선을 다시 돌려, 투스 페어리를 보았다. 질문의 의도를 생각하기 위해 투스 페어리의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찰나에 눈이 마주치자 다시 시선을 피해버렸다.

“… …모르는 점들이 많네요.”

그동안의 경험을 떠올린 듯 소네트의 붉어진 뺨이 원래색으로 돌아왔다.

“그렇죠. 이 세상에 대해선 저도 모르는게 많답니다.”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 차는 점점 속도가 줄어들었다. 동시에 차 안으로 들어오던 바람이 잔잔해졌다.

“다 왔어요.”

투스 페어리의 말에 소네트는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자, 도심이 한 눈에 보이는 절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 아름다워요…”

노을진 하늘과 건물의 노란 불빛들로 어루어진 도심 중심부의 풍경은 아무런 생각이 들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방금 전까지 우리가 밥을 먹은 곳이에요.”

투스 페어리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소네트는 여전히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는 작지만, 가까이서 보면 크죠. 그게 우리들의 세상이에요.”

소네트가 눈을 한 번 깜빡이곤, 투스 페어리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이번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바깥 세상을 궁금해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그것도 일부에 불과하니까.”

“…”

투스 페어리의 말을 들은 소네트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풍경을 바라보았다.



***



“결국 해가 저물어버렸네요… 죄송해요.”


어느덧 해가 져 어두워진 밤하늘 아래, 헤드 라이트를 밝게 킨 자동차 한 대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괜찮아요. 덕분에 값진 걸 얻었으니까요.”

소네트는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아까부터 투스 페어리의 얼굴만 보면 심장이 요동쳐 말도 제대로 못붙였기 때문이었다.

투스 페어리의 한 마디를 끝으로 차 안엔 정적이 흘렀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소네트가 안절부절 못하며 투스 페어리의 눈치를 살피는 점이었다. 투스 페어리는 그런 소네트를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래요, 소네트?”

자상한 어조에 소네트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양 손을 얽으며 뜸을 들였지만 투스 페어리는 조용히 대답을 기다려주었다.

“그…”

드디어, 용기를 쥐어짜낸 소네트가 말했다.



“오늘 밤에… 투스 페어리씨의, 개인실에… 들려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