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편에서 이어짐)




[새벽, 여행 가방 안 로비]

  “어쩐지 아침에 매캐한 냄새가 나더라니. 불쇼 한 번 저질렀구만. 버틴한테 메일이 왔었거든. 뭐, 오늘 아침엔 간만에 재단에서 먹었어. 할라데츠를 나름 괜찮게 하더라고. Сука Блят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데저트 플란넬, 그 녀석 머리통을 팔꿈치로 내려 찍었을 텐데 말이야.”

  릴리아가 바니바니의 이야기를 듣다 말고 주먹을 꽉 쥔다. 바니바니는 외려 릴리아를 만류하며 손사레친다.

  “아녜요, 릴리아 씨. 데저트 플란넬 씨는... 제게 사과했어요. 그날 오후에 문자가 왔거든요. 자기 자신보다도... 플래피가 다칠 뻔해서. 그래서 화가 나서 제게 실수했다고. 미안하다고요.”

  그 말을 듣자, 릴리아는 의문이 생긴다. 그럼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는 왜 이토록 우울해보이는 것인가. 모든 일이 해결 된 게 아닌가? 그녀는 힙 플라스크 속 즈브로카를 마저 들이키려 한다. 하지만 술이 남지 않았다.

  “에라이. 다 떨어졌구만.”

  바니바니가 술잔... 아니, 플라스크의 뚜껑을 건넨다. 릴리아는 뚜껑을 받고 플라스크를 잠근다.

  “그러면 우리 마리안나 씨는 왜 그토록 우울하실까. 그거 알아? 아까 전까지 너 말인데, 진짜 그... 누구냐. 이졸데 같았다고. 그 왜, 불꽃 꼬맹이가 엄청 무서워하는 섬뜩하고, 우울한 오페라 가수 말야.”

  릴리아의 농담에 바니바니는 한참을 웃는다. 그녀가 웃음을 되찾은 것에 릴리아도 나름 만족한다. 하지만 웃음이 의문을 풀진 못한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바니바니가 입을 연다.

  “버틴 씨가 절 안아줬을 때 말이에요. 제 머리카락에 뭐랄까. 물방울이 떨어졌어요. 따뜻한 물방울이었어요. 저는 그게 예니세이 씨의 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그제야 릴리아는 의문이 풀리는 듯 했다.

  “밝게 빛나는 태양 씨도 가끔 눈물을 흘릴 때가 있는 법이지.”

  “그게 걱정이 됐어요. 사실... 버틴 씨가 슬퍼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버틴 씨가 그런 모습을 보여서. 그래서 그게 너무 기분이 이상했어요. 릴리아 씨는... 버틴 씨랑 오래 알고 지냈잖아요. 저보다도 훨씬 더. 버틴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릴리아의 의문은 풀렸으나, 바니바니의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그녀의 우울은 동료와의 불화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다. 자신이 믿어왔던 강인한 사람이 눈물을 흘려서. 그게 신경 쓰여서 이 새벽에 로비에 나와 즈브로카를 마셨던 것이다.

  릴리아는 곰곰이 생각한다. 타임키퍼의 일화를 모르는 건 아니다. 버틴이 타임키퍼가 되기 전부터 봐온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이다. 그만큼 어느 정도 이유는 눈치 챈 상태다.

  그런데 이걸 바니바니에게 말해도 될까.

  “음. 술이 없는데. 맥주 있어?”

  “맥주요? 맥주 안 드시지 않아요?”

  “잘 안 마시지만, 그래도 마실 줄은 알아. 드루비스, 그 사람의 켈트 맥주도 한 번 먹었었거든. 사츠키와의 합작이랬나? 벚꽃 향이 나는 술이었지.”

  릴리아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맥주라면... 제 방 냉장고에 보관 중이긴 한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릴리아는 이미 갈 길을 떠난다. 그녀의 목적지는...

  “그럼 네 방으로 가보자고.”



  [새벽, 바니바니의 방]

  바니바니의 방 구조는 여느 마도학자들과 같다. 물론 꾸밈새는 다르다. 전시장에는 클럽에서 받은 트로피, 이 달의 바니걸 훈장, 상장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커다란 냉장고가 있었고, 방에는 작은 오븐도 있었다. 먹성이 좋은 바니바니 다운 방이었다.

  “설마 옷장에는 그... 야시꾸리한 옷만 있는 건 아니겠지?”

  릴리아가 한쪽 눈을 치켜뜨며 묻는다. 바니바니가 고개를 저으며 답한다.

  “설마요. 물론... 그... 바니걸 복장이 가장 많긴 하지만, 모든 곳에서 그 옷을 입진 않아요.”

  “오히려 신기한 걸. 네가 그 옷을 안 입는 상황이 있다니.”

  “지금처럼 잠옷을 입어야 하는 상황에선 바니걸 복장을 안 입죠.”

  릴리아는 순간 섬뜩했다. 자신도 물론 여벌의 옷이 많은 인간은 아니지만, 어쩌면. 어쩌면 이 여자의 옷장 안에는 바니걸 복장과 잠옷 만이 들어있을 지도 모른다고.

  “뭐, 자유는 존중해야지. 그게 요즘 시대의 덕목이잖아?”

  작은 유리 탁상 앞에 릴리아가 앉는다. 의자는 가녀린 철제였다. 그녀가 기다리는 동안, 바니바니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온다.

  “구스 아일랜드예요. 정확히는 메디슨 포켓 씨가 라플라스에서 재현한 1980년대 제품의 보존품이죠.”

  캔맥주에는 영어로 대문짝만하게 ‘구스 아일랜드’라고 적혀 있다. 릴리아는 캔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아니나 다를까.

  “누가 그 개 같은 녀석 작품 아니랄까 봐. 이 이빨 자국은 대체 왜 넣는 거야.”

  메디슨 포켓의 심볼과도 같은 이빨 자국이 캔맥주에 프린팅 되어 붙어 있었다. 그의 괴상한 센스를 이제야 발견한 바니바니가 활짝 웃는다.

  “그러게요, 하하. 역시 메디슨 포켓 씨 답네요.”

  릴리아와 바니바니는 캔맥주를 딴다. 팝 소리와 함께 맥주 안에서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동지들을 위해 건배. 우리의 밝은 내일을 위해 건배.”

  짧은 건배사와 함께 릴리아는 바니바니의 캔을 툭 친다. 그러고선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하루종일 갈증에 시달리다가 처음 물을 마시는 사람처럼.

  “캬, 이 맛이지. 그래. 이제 좀 이야기 해볼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술 한 잔이면 사라질 고민이다. 릴리아에게 솔직함은 덕목 같은 게 아니다. 그녀 본연의 모습과도 같다.

  “그래. 우리 타임 키퍼 씨에 대해서 말이지. 아쉽게도... 내가 그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니야. 그저 들은 이야기지. 하지만 너의 의문점을 해결하는 데에 약간의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마리안나.”



  [과거, 재단 아르헨티나 지부]

  본부와 다르게 재단 지부의 사람들은 협력체에 가깝다. 버틴이 타임키퍼가 된 이래, 여전히 폭풍우는 멈추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재단은 역사적으로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던 시점을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타임키퍼의 임무는 그 일이 일어났던 시간 속을 걷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1976년, 닉시관의 시계를 보며, 버틴은 더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헨티나 쿠데타...”

  곧 있으면 한 국가의 근간을 뒤덮을 소동이 벌어질 터였다. 폭풍우는 세상의 치욕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 사이에도 버틴은 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폭풍우의 징조를 알아채고 그것이 다가오기까지 남은 시간을 공표. 재단과 협력 기관의 직원들을 폭풍우 안전지대로 대피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간을 버는 것.

  고리와 이사벨라, 친구들이 사라지던 그날부터 버틴에겐 그것이 사명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

  하지만 모든 것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사람을 구하는 것도.

  버틴은 지부의 한 집무실을 빌렸다. 홀로 조용히 앉아, 폭풍우의 징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쿠데타는 왜인지 예정된 때에 일어나지 않았다. 폭풍우 증후군 또한 관측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녀의 집무실에 한 소녀가 찾아왔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버틴은 조용히 “네.” 라고 답했다.

  “식사하세요, 타임 키퍼. 안데스 산맥에서 잡은 산양으로 만든 아사도예요. 먹기 편하게 잘라두었어요.”

  “들어오세요.”

  예의가 바른 정장 차림의 소녀였다. 적발이 마치 아일랜드인처럼 보였다. 분명 소녀였다. 그러나 버틴보단 나이가 많아 보였다. 초면에 소녀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향긋한 고기 식단 속, 어린 아이를 보며 소녀는 놀랐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 만났고, 친해지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나렐라’라고 소개했다. 쑥쓰러움이 가득했다. 버틴은 그런 그녀와 묘하게 마음이 깊어졌다.

  나렐라는 재단 지부의 계약직 직원이었다. 소심하지만 똑부러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인간이었다. 때문이었을까. 버틴은 여러 번 정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버틴은 사람이었다. 정이라는 건 쉽게 주고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의 기록보다 쿠데타가 늦어지는 동안, 버틴은 계속 아르헨티나에서 지냈다. 나렐라와 친구가 되었고, 나렐라의 친구들. 진주 귀걸이를 하고 다니던 페를라. 항상 셔츠 단추 두 개를 풀고 다니던 유일한 마도학자 친구, 알렉시스. 반바지를 입고 다니던 디에고까지.

  그들은 타임키퍼인 버틴의 휴게 시간이 오면, 항상 찾아와서 함께 지냈다. 둘세데레체가 들어간 초코파이, 알파호르를 몰래 먹곤 했다.

  역사는 완전히 동일하지 않았다. 결국, 쿠데타가 너무 늦어지자, 하나 뿐인 인력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버틴은 돌아가게 되었다.

  버틴은 그들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폭풍우가 오기 전에

  반드시 구하러 오겠다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1976년의 폭풍우는 아르헨티나와 무관했다. 예측은 빗나갔다. 폭풍우의 시발점은 일본에서 개발된 VHS가 그 원인이었다.

  버틴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르헨티나를 다시 찾았다. 알렉시스는 없었지만, 디에고와 나렐라가 있었다. 자신의 친구들을 더 이상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떠올렸다.

  여행 가방 안이라면... 여기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비의 장막 아래 모든 것이 씻겨나가는 폭풍우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방주가 되어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버틴은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을 여행 가방 안으로 들였다. 이미 폭풍우 증후군으로 인해 이성의 끈을 놓치기 직전인 친구들이었으나, 버틴은 그들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다고.

  하지만 결과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가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간은 여행 가방에서 폭풍우를 피할 수 없다.

  버틴의 눈 앞에서 친구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하나 뿐이었다. 폭풍우의 법칙을 다시금 적는 것. 여행 가방은 사람을 폭풍우로부터 지켜줄 수 없다.

  완전히 변해버린 아르헨티나를 뒤로, 그녀는 본부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유일한 마도학자였기에, 지부에서 폭풍우 안전지대로 향했던 알렉시스가 있었다.

  그녀가 안경을 벗고,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버틴... 나렐라는? 디에고는?”

  버틴은 회백색 제단 천장을 올려다봤다. 왜 이곳은 지금 무너지지 않는 걸까. 생각했다.

  “버틴... 우릴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때였다.

  “마도학 게이지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그 이후의 장면들은 뚝뚝 끊긴 영화 필름처럼 파편적으로 흘러갔다.

  “안정기... 빨리 메스머를 데려와, 당장!”

  버틴의 앞에 선 알렉시스의 눈물이 곧, 전기로 변했다. 그녀의 마도학 능력이 폭주했다.

  “타임키퍼, 피하셔야...”

  재단의 경호원들이 타임키퍼를 뒤로 밀쳤다. 하지만 버틴의 손은 알렉시스를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알렉시스는 그렇게 죽었다. 사인은 마도학 능력의 폭주로 인한 신체 수분의 분해.

  녹아내린 시체를 보며 메스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 마도학자들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은 존재란 말을 듣는 거야.”

  버틴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자기 자신은 왜 폭풍우 속에서 걸을 수 있냐며

  그녀는 홀로 집무실에 틀어박혀 천장을 바라봤다.

  저 전등에 넥타이를 걸고 목을 맨다면...

  그렇다면 내려놓을 수 있을까, 하고.



  [새벽, 바니바니의 방]

  릴리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는 이미 수많은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사람이다. 전우의 시신 수습과 더불어, 더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던 사람.

  “난 이 일화를 떠올리면 가끔 생각해. 옛날에... 내 동료를 내 손으로 죽일 뻔한 적이 있어. 하산이라는... 웃음이 많고 껄렁한 녀석이었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녀석이 나와 같이 서 있던... 군인에게 말했어. 자길 편하게 해달라고. 그 군인은 망설였고, 나는 내 손으로 그를 죽이려 했어. 총을 들고, 머리를 조준했지. 하지만 그를 죽인 건 그 군인 동지였어. 알렉시오스. 그런 이름이었지. 그는... 아직 제노의 꼬맹이였던 내게, 동료의 피를 묻힌다는 저주를 넘겨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릴리아는 긴 말을 하며, 맥주를 들이킨다. 그리고 눈앞에서 끝없이 우는 바니바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잇는다.

  “잔혹한 세상이지. 그런데 말야. 난 가끔 생각해. 나는 그때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지만, 버틴은... 그보다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방아쇠를 당겼어. 그 녀석이 원해서 당긴 게 아니야. 그 녀석의 아주 작은 실수 하나로도... 방아쇠는 당겨졌어. 그 녀석은 떠나간 이들의 수많은 저주를 짊어지고 살아.”

  제아무리 많은 전쟁을 거친 베테랑 군인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서 목소리가 떨리지 않을 순 없다. 릴리아도 점점 목이 메이기 시작한다. 그녀도, 버틴도. 아직은 어른이 아니다. 어쩌면 어른이었더라도. 이 이야기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릴리아에게도 바니바니에게도 확신은 없다.

  “버틴이 눈물을 흘린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마리안나. 너라는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늘상 침착해 보이고, 담담해 보이지만, 우리 대장님은 말야. 누구보다도 마도학자고, 사람이고, 인간이야.”

  바니바니는 맥주를 들 수 없었다. 그럴 힘이 없다. 목과 눈이 부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릴리아는 거의 비어버린 캔을 들고, 바니바니의 맥주 캔 대신 그녀의 이마에 건배한다.

  “그러니까 건배하자. 동지... 아니, 이 친구야. 내일을 위해. 버틴을 위해. 건배.”

 


  [오전, 여행 가방 로비 안]

  오늘은 여행 가방의 흔치 않은 공휴일이다. 모든 외근 임무가 없다. 버틴 역시도 오늘은 휴가를 만끽하기로 했다. 올리버 포그가 재단에서 단식 투쟁을 해서 만든 휴가다.

  하지만 공휴일 속에서도 여전히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 타임키퍼 소대. 여행 가방의 방문자들. 라플라스 친구들. 목소리가 큰 프랑스인 보조교사까지. 모두의 아침을 책임져야 하는. 아니, 책임져주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나선 사람들이 있다.

  바니바니와 데저트 플란넬, 플래피는 오늘 황무지 광장에서 요리를 준비한다. 조리실은 박살나버려서 수리 중이고, 조리 기구들은 못미덥지만 X의 발명품으로 대체했다.

  “이야, 바깥에서 요리하니까 기분이 색다른데? 이 초록색 불꽃이 나오는 마도학 반짝이 화구도 꽤 쓸만하고 말야. 그 음흉한 녀석이 가끔은 도움이 된다니깐?”

  데저트 플란넬이 흥얼거리며 바니바니와 요리한다. 플래피는 오늘도 전처럼 수프를 젓고 있다.

  광장, 노란 미세먼지가 미세입자 시계탑에 빨려들어간다. 톱니시장에선 칸지라가 점괘를 봐주며 용돈벌이 중이다.

  “바니바니, 거기 쌀포대좀 가져와줘!”

  “잠깐, 잠깐! 웍질하느라 손이 없어!”

  여전히 그들이 티격태격 할까 걱정이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들은 화해했다. 그것이 또 싸우지 않는다는 보장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싸우더라도 해결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버틴은 그렇게 생각하며, 광장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그녀들을 지켜본다. 여전히 감기는 낫지 않았는지 콘블룸의 목도리를 차고 있지만, 어제보다 묘하게 기분이 좋은 그녀다.

  곧이어 버틴의 근처에 이국적인 향이 맴돈다. 요리 때문일까. 감기로 막힌 코를 뚫고 들어오는 향에, 그녀는 주변을 돌아본다.

  “우리 진지한 친구! 여기서 식사 기다리는 거야?”

  “아... 네. 갈기모래 씨.”

  버틴이 난처한 웃음을 짓는다. 벌룬파티의 풍선보다도 더욱 커다란 이야기 보따리를 지닌 중년 남성 때문이다.

  “내가 산 속에 있을 때 말이야. 스승님이 요리를 많이 해주셨지. 라씨를 만드는 법도 그때 배웠어. 생각해보면 그 라씨가 정말 맛있었지. 산 속의 오미자를 따서 넣은 라씨였는데, 문자 그대로 다섯가지 맛이 강렬하게 나지 뭐야. 하지만 말이지. 가끔 스승님의 요리가 늦으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홀로 산행에 나섰어. 그때 아주 거대한 바위를 발견했는데, 문득 고행이 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나는 공복 속에서 바위를 이겨내기 위해 손에 힘을 풀고...”

  갈기모래의 끝없는 토크가 이어진다. 버틴은 멍하니 요리하는 두 사람을 보며, 요리가 언제 끝날지 기다린다. 이 사람은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 걸까. 주제가 있는 걸까. 온갖 생각이 들지만 떨쳐낸다. 그의 끝없는 이야기가 10분을 넘게 흘러갈 무렵, 귀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버틴과 갈기모래의 사이에 은발의 독일인이 앉는다.

  “갈기모래 씨. 버틴 씨는 지금 감기로 요양 중입니다. 계속 말씀하시다간 감기가 옮아버릴지도 모릅니다.”

  은근히 딱딱하면서도 능글맞은 말투를 가진 콘블룸. 그녀가 윙크를 하며 검지손가락으로 입가를 가린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다.

  갈기모래는 양손을 들며 졌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이런이런. 건강한 신체를 요구하는 건 사람의 필수 덕목이지. 좋아, 난 가보지. 그런데 은발 친구도 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 괜찮나?”

  그의 말에 콘블룸이 싱긋 웃으면서 답한다.

  “이미 감기에 걸렸으니 말입니다. 감기에 더 걸릴 일은 없잖아요?”

  갈기모래가 떠나고, 콘블룸이 버틴의 옆에 남는다. 버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고마워, 콘블룸.”

  그러자 콘블룸이 답한다.

  “천만에요.”

  버틴이 조금 졸린지 눈을 비비며, 그녀에게 묻는다.

  “그나저나, 릴리아랑 비행하러 안 가도 돼?”

  콘블룸은 아쉽단 표정을 지으며 답한다.

  “감기에 걸려서 말입니다. 릴리아 씨한테 옮기면 그녀가 절 빗자루에서 떨어뜨릴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그러자 버틴이 목도리를 매만지며, 미안하단 표정을 짓고 말한다.

  “너한테 옮긴 것 같아. 미안해. 목도리도 빌려줬는데.”

  콘블룸은 버틴과 요리 중인 두 여자, 그리고 도트로 이뤄진 홍학을 바라본다.

  “Morgens und abends zu lesen.”

  독일어였기에 버틴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콘블룸을 바라보자, 수레국화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버틴을 바라보며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버틴이 묻는다.

  “시야?”

  콘블룸이 버틴에게 기댄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예요. 나중에 꼭 읽어보세요, 타임키퍼.”



  -끝-



  마지막으로 접견 일지 시리즈 남겨둘게
  심심하면 읽어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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