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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재미로 보는 리버스 1999 분석글
· 캐릭터 나이에 대해서 (장문 주의) · 이졸데의 후일담
· 먼지에 대한 의외의 사실과 번역
· 시청에서 점프 뛰어야 하는 마도학자 명단
이건 심심할 때 쓰던 짜투리 분석글
[시리즈] 서명으로 보는 리버스1999
· 스포) 서명으로 살펴보는 리버스1999 Ch.1 한자문화권 (하편) · 스포) 서명으로 살펴보는 리버스1999 Ch.1 한자문화권 (상편)
이건 서명 시리즈 첫번째 모음집.
이번 시간에 알아볼 건 키릴문자권 마도학자들에 대해서야.
폴란드는 폴란드어를 따로 쓰긴 하는데
동네가 동네다 보니 추가했어.
이번에도 분량상 상하편으로 나뉘고
상편에선 키릴'문자' 서명에 대해서 쓸거야.
하편은 키릴문자권 마도학자의 서명이고.
두 챕터의 차이는 보다보면 알게 될거야.
세계관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보기 싫으면 뒤로가기 부탁하고
한자문화권 때도 그랬지만
나는 언어학 전공자가 아니므로
99% 확률로 어딘가 모순이 있을거야.
지적은 굉장히 환영해.
내가 바라는 건 내가 알아보고, 추측한 걸 보여주고 끝내는 게 아니야. 단지 내가 부족한 걸 다른 릾붕이들이 지적하고 채워주면서 유저들이 리버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곳이 되었으면 해.
이 글은 단순히 서명이 어떻다가 아니라
그 서명에서 찾아본 캐릭터의 배경, 관련 역사, 성격 등이 내포될 수도 있거든.
그럼 시작할게
Ch.2 키릴문자권
두 번째로 분석할 건 키릴문자권 인물들이야. 나라가 다양해. 러시아 제국. 그 이후 소련. 속에 라야시키와 이국 트란스니스트리아. 그리고 그곳과 관련된 우주에서 날아온 친구들까지.
다행히도 이번에 나올 캐릭터들은 갈천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출몰했던 애들은 없어.
키릴 문자는 라틴 문자와 뿌리가 같아. 우리가 러시아어와 영어가 은근 비슷하게 생겼다고 느끼는 것도, 둘 다 그리스어를 뿌리로 둔 언어이기 때문이야.
키릴문자는 중앙 아시아, 슬라브계 국가에서 주로 써. 다만 본 분석글엔 폴란드인도 한 명 포함될텐데, 미리 말하지만 폴란드어는 러시아어와 달라. 그쪽은 라틴문자거든. 단지 폴란드어를 우크라 같은 슬라브계에서 일부 사용하기에 포함시켰어. 오해가 없길 바라.
다른 이유라면 정교회를 받았냐, 개신교를 받았냐 차인데 너무 복잡해지니까 이건 넘어가고...
마커스가 루마니아 도서관에서 글을 배웠으면 모르겠지만... 루마니아 역시 19세기에 키릴 문자에서 로마 문자로 넘어왔어. 때문에 내가 아는 한, 작중 키릴문자권 인물들은 후술할 인물들이 끝이지 싶네.
일단 한 명 씩 살펴보자.
"건배하자고, 친구."
첫번째 인물은 본작의 사이다와 의외로 상식인 포지션을 겸비한 릴황이야. 처음부터 어지럽지? 한국인은 필기체와 굉장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어. 우리가 한국어 정자체를 배우고, 어릴 때 받아쓰기 노트에 적지만, 한국어 필기체를 따로 배우고 쓰진 않잖아?
소비에트 연방 출신의 그녀이니 러시아어로 쓰긴 했을 텐데
이게 대체 무슨 글자일까.
사람마다 고유의 필기체가 있어. 때문에 릴황 역시 굉장히 이상한 필기체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릴리아가 엄청난 악필이라고 할 순 없어.
이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러시아어 필기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해.
이게 뭘까. 아랍어일까? 뭐라 쓴 거야.
이건 러시아어 필기체야. 같은 글자만 쓴 것도 아니야. 전부 다른 글자지. 외국에서 러시아 필기체는 이미 밈에 가까워.
러시아어 필기체야. 영어로는 Russian traditional cursive라고 불려. 번역하면 '러시아어 전통 필기체'라고 할 수 있지. 이 또한 한자처럼 몇 번 필기체가 바껴.
이 내용은 후술하고.
척 보기에도 흐느적 거리고, w처럼 생긴 필체 두개는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지. B의 대수문자 구분도 난리고 M과 n이 함께 쓰이면 난리가 날 것 같아.
안그래도 원판이 저 모양인데 필기체도 저 모양이니 정신이 나가지.
심지어 중간에 e와 ё가 있잖아?
러시아인들은 다른 나라보다도 유달리 필기체를 많이 써.
왜냐하면 러시아 학교에선 애들이 입학하자마자 가르치는게 필기체거든.
그러다보니 두 사람이 똑같이 필기체를 써도 사람마다 '필체'가 미묘하게 달라. 누군가는 글을 더 예쁘게 쓰겠지만 누군가는 글을 생략하지.
때문에 러시아권에선 e와 ё를 필기체로 쓸 때 완전히 똑같이 쓰기도 해. 그럼 똑같이 생긴 글잔데 어떻게 알아보냐고?
우리도 이 글자 알아보잖아.
'실정은 루비드스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 문장을 모르겠지만
우린 알아보지.
왜냐하면 오래 쓴 언어고 감각이 있으니까.
러시아어도 마찬가지로 그쪽 동네에선 아무리 개판으로 써도 글자는 다 알아봐.
이게 그나마 예쁜 상위 1% 필기체라면
이게 평균~평균이하인 거지.
이를테면 학업에 종사하거나 글을 빨리 쓰고 넘겨야 하는 의사들이 쓰는 필체?
특히나 러시아어는 키릴문자 자체가 괴랄하게 생긴 만큼 정자로 쓰면 몹시 비효율적이라 저렇게 날림체가 발달했잖아.
바꿔 말하면 날려 쓰기 효율적인 상황일 수록 더더욱 날려쓰게 되는 거지.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거고.
1차적 정리는
릴리아의 저 서명은 사실 굉장히 고증이 잘 됐다는 거야.
Лиля
릴리아는 러시아어로 이렇게 써. 릴랴? 뭐 비슷한 발음인데 영어로는 Lilya야. 엄밀히 말하면 '릴리아'라고 읽히진 않아.
그녀의 이름을 필기체에서 따오면
이 필기체들을 합친 느낌인 거지. 릴리아의 서명을 보면 얼추 비슷하게 보일 거야.
그녀는 그녀의 이름을 러시아어 필기체 답게 썼다고 할 수 있어. 동시에 그녀가 군사 아카데미에서 수료했고 군복무를 했던 만큼, 정자채보단 효율 좋은 필기체를 썼을 확률이 높아. 전쟁을 겪은 릴황이 한땀한땀 정자채를 쓸 이유가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릴황은 자신의 직업적 특성과 러시아식 필기체를 적절하게 고증한 서명을 쓴 셈이야.
특히나 소련 시절의 러시아어 필기체는 약간의 기울임, 완벽하게 연결된 글자, 균일함 등등이 굉장히 엄격하게 교육되고 관리되었는데 엄밀히 말해서 릴리아의 글씨체가 소련시절 스테레오 글씨체는 아니야.
소련시절의 필기체는 정말 정형적이었거든. 일말의 자유와 개성도 용납하지 않듯이.
서명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좀 더 자신의 성향에 초점을 두고 있지. 게다가 릴리아는 작중 즈브로카를 버틴에게 선물받으며 은근히 사상적인 '자유'라는 요소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때문에 필체가 소련시절 사람 치곤 좀 더 자유분방한 느낌도 줘.
실제로 위에 악필 러시아 필기체 현대판 사진들도 대부분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민주주의(현실은 독재지만)를 어느정도 받아들이면서 필기체에 대한 통제가 풀린 후에 생겼다고 봐도 무방하거든.
여유롭게 글씨나 쓸 일은 없었던 릴리아. 하지만 늘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하던 릴황 고유의 필체인 셈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석하자면
1. 릴리아의 서명은 현대 러시아의 필기체에 가깝다.
2. 릴리아는 조국에 대한 관심보다 본인의 자유를 갈망했다.
3. 릴리아의 서명에선 그녀의 자유분방함과 극단적인 필기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전쟁'등의 상황이 은연 중에 드러난다.
"... 수많은 길이 살아가는 모든 이의 발걸음 아래에 있다."
зима. 영어로는 Zima. 우리나라 말로 '지마'라고 발음해. 뜻은 겨울이 맞아. 겨울은 한국에서 존재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양권에선 꽤나 인기가 좋은 캐릭터인 듯해. 맨 위에 올렸듯이, 글섭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보이스를 가진 인물이거든. (물론 그냥 겨울 뽑고 접은 사람들이 많아서 저 보이스가 나온 걸 수도 있음)
물론 한국에서 인기가 있냐 싶으면... 포겟미낫 갤에서나 있으려나.
겨울은 앞선 릴리아나 후술할 인물들보다 시대상으로 훨씬 이전의 사람이야. 그는 러시아 제국에서 활약한 인물이거든.
겨울의 본명은 아무도 몰라. 그가 키우는 박새에게 지마라는 같은 이름을 줬어. 본인의 이름도 겨울이라기 보단 그냥 그렇게 불리길 바라는 것 같아.
그의 이름은 다소 알아보기 쉽지. 릴리아와는 다르게 정자체거든. 시인이고, 아무대나 휘갈겨 쓸 것 같은 이미지의 겨울이지만, 굉장히 정자라서 의외야.
이에 대해선 겨울의 특성에 대해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겨울의 캐릭터성은 특이해. 사교성이 더욱 악화된 6이라 생각하면 쉬워. 사람과 어울리는게 너무 힘들지만, 그렇다고 배려가 없는 사람은 아니야.
그의 일화를 보면, 겨울은 소네트에게도 말은 없지만 꽤 친절하고 진지하게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여.
마치 한자문화권에서 갈천의 글씨체가 그러했듯, 겨울 역시도 타인에게 보여질 서명에 대해선 최선의 배려를 담았다고 볼 수도 있어.
다만 약간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을 가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 사진은 70년대 소련 시절 학교의 필기체 수업 장면이야.
보면 필기체임에도 마치 정자체 노트처럼 선이 그어져있지.
릴리아에서 전술했듯, 러시아어 필기체에선 약간의 기울어짐과 이어진 글씨가 생명이었어. 특히나 공산권 국가였던 소련에선 학생들의 자유보단 학생들이 같은 필기체를 쓰도록 엄격하게 교육했지.
릴리아의 글씨체가 이것보다 날림체인 건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대변할 수도 있겠지만, 겨울은 상황이 달라. 그는 러시아제국 시절의 사람이거든.
먼저 소련과 다르게, 러시아 제국 시절엔 러시아어 필기체가 명확하게 통용되지 않았어.
때문에 각 지방마다 사람들이 쓰는 필기체가 다 달랐지.
이건 1910년 당시 러시아어 필기체야.
이건 1916년 필기체야. 다만 이게 표준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해. 이 시대까지도 필체는 딱히 표준이랄 게 없었거든.
이게 1969년 이후 현대인의 필기체.
폰트만 다른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 그 부분이 포인트야.
겨울은 깃털펜을 써. 무슨 깃털인진 모르겠지만, 19세기 말 당시 러시아에선 문자를 쓸 때 거위깃털펜을 많이 썼어. 애초에 폴란드와 러시아는 19세기 깃펜 최대 생산국이었거든. 만년필이 들어오기 시작하던 시기. 또는 이전에 겨울이 유배당한 걸 생각하면, 블루포치가 겨울에게 깃펜을 들린 건 의외로 고증을 잘 살린 부분인 거지.
깃펜은 유튜브에 Quill pen이라고 쓰면 알겠지만, 동양의 붓처럼 글자 굵기의 세밀한 표현이 가능했어.
1916년 당시까지도 러시아어 필체에 굵기가 존재했던 건, 그들이 정말로 깃펜을 많이 썼고,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이야. 또한, 깃털을 단순히 깎으면 마모가 되었기에, 강철을 입혀서 사용했어. 특히 러시아 제국에선 1916년까지도 세계 최고의 강철 깃펜 공장이 있었지.
물론 겨울은 일러스트가 그러하듯 그냥 깃펜이야. 저걸 쓰려면 깃털의 끝부분을 뭐에 담그고 자르고 깎아내고 별에 별 끔찍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정작 금방 마모되지. 대신 필체의 굵기는 상대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기에, 겨울 본인의 본래 글씨체는 만년필로 굵기가 일체화된 이후보다 1916년 사진 속 필기체와 가까웠을 거야.
겨울이 유배당한 건 일화에서 나오듯 1912년이니까.
하지만 1917년 이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어. 그때 러시아어 철자법 개혁을 거치고, 키릴문자 알파벳이 바뀌어. 그리고 이전의 필기체 역시 모두 사라지고 오늘날 필기체와 유사하게 바뀌어고 통일돼. 그리고 만년필이 많이 풀리지.
이유는 간단해.
언어는 어떻게 보면 나라의 정체성이야.
일제강점기 시대, 한글을 계속 못쓰게 막았던 것처럼.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싶은데
자국의 글자가 통일되지 않고 개판이면, 세상을 물들이기 어렵잖아?
때문에 철자 개혁을 했고, 겨울은 당시 유배 중이라 본인 나라의 필기체가 바뀐 것도 몰랐어.
애초에 1920년대 중반에 그의 유배지에 한 기자가 찾아오기 전까진, 겨울은 자신이 밟은 땅이 소련이 된 것도 몰랐거든.
유배 중이었던 겨울이 영어를 배울 리 만무하고, 실제로 겨울은 영어 보이스 한정, 영어를 엄청 더듬으면서 말해.
곡랑은 말이 안 통하지만 버틴의 번역 마도술로 얘기가 통하는 케이스고, 갈천은 본인이 일종의 번역을 하고 필터링하는 능력을 갖췄지만, 겨울은 딱히 그런 마도술을 받거나 가지진 못한 것 같아.
러시아어는 바로 말하고 영어는 더듬지. 조금이라도 영어를 할 수 있어서 번역 마도술을 안 걸었거나... 아니면 그냥 4성이라 버틴이 챙겨주기 귀찮았거나.
어쨌든 왜 이렇게 딴 소리를 했냐면
1. 겨울은 볼셰비키 혁명 이전(러시아 철자법 개혁)에 필체를 배웠을 것이다. 그가 유배된 건 1912년이다.
2. 겨울은 실제로 깃펜을 가지고 있고, 당시 러시아인들 대부분이 고유의 필체를 썼다. 1917년 철자혁명 당시 그는 유배지에 홀로 있었기에 필체를 강제로 교체당할 일이 없었다.
3. 겨울은 남들에게 굳이 글씨체를 보여줄 이유가 없었다. 그가 유배지에 남긴 시도 누가 보라고 쓴 건 아니다.
4. 겨울은 사람과 잘 못 지내지만, 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추가로
이게 겨울의 본래 필체야. 아무리 봐도 정자체랑 거리가 멀지? 현대 필기체라기엔 글자가 미묘하게 굵기차가 있고, 위에 올린 1910년대 필기체의 분위기와 흡사하지.
때문에
5. 겨울은 서명에 일부러 정자체를 썼다.
이렇게 해석해도 무방해.
즉슨 자기 방식대로 서명을 썼던 릴황과는 다르게
겨울의 서명은 나름대로의 조용한 배려가 담겨 있던 셈이야.
그의 글들은 그의 일화 이후, 타인들도 읽을 수 있게 됐으니. 하지만 러시아 제국 시절의 필체가 남았기에, 본래 필체가 소련 이후 정립된 오늘날의 러시아어 필체와 미묘하게 달라. 그리고 그의 은근한 배려심을 통해 서명에는 정자체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는 해석을 가미할 수 있는 거지.
물론 그의 서명에서 드러나듯, 깃펜으로 쓴 건 맞다고 생각해. 글자 굵기가 미묘하게 다른 걸 보면.
끝으로 해석을 할게.
1. 겨울의 서명은 정자체로, 그의 타인에 대한 조용한 배려가 보인다.
2. 겨울 본인의 필체는 러시아 제국 시절의 필체를 보여준다.
3. 깃펜으로 쓴 것처럼 서명에 굵기가 존재한다.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 의견이니 참고만 바라.
이 내용들이 다 진실이면 내가 아니라 블루포치가 진짜 광기인 거니까.
"여울물이 그들의 영혼을 북쪽 바다로 보내기를."
Енисей, 예니세이는 공식에서도 악필로 놀려먹는 공인된 인물이야. 더불어 그림도 엄청 못그리지. 성격도 무슨 포메라니안처럼 사나워.
그녀의 서명은 과연 악필일까?
삭일수기에서 그녀의 역할은 일종의 기록자, 조수였어. 겉으론 매정해보여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지. 그리고 베스머트에게 그러하듯, 보호욕이 매우 강해.
개인적으로 예니세이는 내 생각에 인물 특성을 스킬에 제일 잘 녹여낸 캐릭터라 생각해. 실제로 그녀의 인게임 보호능력은 최상위권이거든.
보호만 해서 딜유틸이 없어 문제겠다만...
이야기가 샜네. 어쨌든
예니세이 역시 현대 필체와 연관이 없어. 그녀는 겨울보다 더 이전의 사람이거든. 겨울이 20세기 초, 러시아제국의 몰락 속에서 귀족들 까는 시를 썼다면, 예니세이는 19세기 그래도 꽤 잘나가던 러시아제국의 귀족이었어. 문맹이 많던 그 시절의 귀족 출신이라 그런가, 글 자체는 잘 쓰고 다니지.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 볼셰비키 혁명 이전의 러시아어 필체는 명확하게 정해진 게 아니었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필체를 주입식 교육하던 소련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지.
예니세이의 글씨체가 개판인 건 서기 + 악필의 은근한 아이러니에서 오는 개그코드도 있을 거야. 물론 그녀의 글씨가 속기사 급은 아니더라.
이건 러시아어 속기체인데... 이 정돈 아니니까. 넘어가자.
어쨌든 예니세이에게 기록지를 쓴다는 건 일이었어.
그런 그녀에게 빨리 써야하는 효율적인 필기체가 필요했을 거야. 그녀는 보통 그 일지를 어디 책상에서 쓰는 게 아니라 야생에서 바로바로 썼거든.
그녀의 필체는 그런 부분에서 발전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어.
일단 н 부분을 살펴보면
이게 현대고
이게 제국 말기 시절 필기체야.
근데 예니세이의 글씨체는 확실히 둘과 다 다르지. 그래서 1800년대 초반 글씨체에 대해 알아봤어. 실제 서기관의 글자인데
이런 느낌이었어. 뭔가 예니세이 글씨체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사진 속 전문 서기관들의 글씨들이 훨씬 잘썼지. 여기서 한 가지 얘기를 해볼까 해.
러시아어는 당시 자료에서도 보이듯 필기체가
이런 식으로 기울어진 게 특징이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인들의 입장에선 이게 글자의 미적 필수 요소인 셈이지. 동시에 필기체의 기본이고. 소련 시절 학교 사진에서 보이듯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게 특징이야. 특히 Е의 경우 사진(왼쪽 맨 위 두번째 글자) 본문에도 필기체가 나타나있는데 오른쪽으로 기울어졌잖아?
예니의 글씨체는 이런 러시아어 필기체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던 거지. 오히려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해. 러시아어의 글씨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문자를 기울이는 건 무려 18세기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거든.
말하자면 그녀의 필체는 러시아인 입장으로선
귀족이면서 기본도 안 된 필기체... 라고 볼 수도 있는 거지.
서명 전체를 살펴보면 기울기도 균형이 맞지 않고, 글씨체도 훨씬 날려썼어. 게다가 н는 오히려 н가 아니라 다른 글자처럼 생겨먹기까지 했지. 가령
이거나 뭐 다른 글자들.
결론을 말하자면
1. 예니세이는 러시아어 필기체의 기울임조차 개판으로 구현한 악필.
2. 야생에서 탐험가의 조수로서 일지를 급박하게 작성해야 했던 그녀의 모습을 나타냄. (속기해야 하는 직업일수록 글씨체 개판)
3. 굳이 나누자면 러시아제국 19세기 초 필체와 그나마 비슷한데 워낙 자기만의 필체이기도 하고 맨위 릴황편의 개판 필기체와 유사한 걸 보임. 다만 릴황편 속 개판 필기체는 현대 러시아에서 쓰임.
4. 그럼에도 서명이다 보니, 최소한으로 알아볼 수는 있게 최선을 다해서 쓴 듯.
이 정도라고 생각해.
"우리의 이상을 향해 나아갑시다! 동지!"
Вила.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싶어하는 생선, 빌라야. 비단 농담은 아닌 게
그녀는 '진짜'거든.
여담은 넘어가고.
빌라의 필체는 러시아어 필기체야. 정자체처럼 매우 알아보기 쉽게 쓰긴 했지만, 본질은 필기체지. 근데 글자가 하나하나 떨어져있고, 확대해서 보면 묘하게 펜으로 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서명은 그녀의 직업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
빌라는 1990년대 전시됐어. 여기서 전시라는 건 마도학자의 생년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지만, 빌라의 경우엔 '인간세상에서의 활동'에 가까워. 실제로 그녀는 폭풍우 맞기 전까지 소련의 변방, 라야시키에서 주로 미술을 가르치던 초등학교 교사였거든. 엄밀히 말하면... 1991년 소련은 멸망했기에 그녀가 소련에 나타났을 지언정 실제 활동 연도는 2번째 폭풍우가 오기 전, 1997년에 활동했으니 '러시아 연방'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해. 물론 사상은 여전히 빨갛지만.
앞서 말했듯 러시아의 필기체 교육은 소련 시절까지 굉장히 철저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분위기가 변했어. 여전히 러시아에선 아이들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필기체를 가르치지만, 한 번의 혼란을 겪고 나서 소련 시절처럼 엄청나게 철저하게 가르치진 않아.
자유분방하고 날림인 글씨체가 소련붕괴 이후에 많이 등장하듯이 말이야.
빌라의 필기체가 정석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건 이런 이유라고 생각해. 하지만 한 가지, 빌라의 필기체가 훨씬 간단하고 알아보기 쉬운 이유는 다른 해석을 가미해볼 수도 있어.
빌라는 자신이 늘 들고 다니는 소지품도 붓과 물감이야. 라야시키 스토리에서도 그녀는 아이들에게 미술을 주로 가르쳐. 그녀의 음성에서도 '의상과 체형' 부분을 눌러보면 염료와 물 자국 얘기를 하지.
특히나 그녀가 가르치는 미술은 '수채화'에 가까운데 여기서 수채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해볼까 해.
수채화는 초등교육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화법이야. 왜 초등교육에서 쓰냐하면 '간단하고, 금방 만들수 있다'. 이 두 가지 이유가 가장 커. 접근성이 좋고, 물감만 마르면 바로 완성이지.
미대에서 유화에 칠하고 마를 때까지 몇날 며칠을 기다리잖아? 하지만 초등학교에선 미술만 가르치는 게 아니야. 언어도 가르치고 수학도 가르치고 별에 별 부분들에 대해 아이들에게 '기초 지식'을 가르쳐야 해. 때문에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계 각국에서 '수채화'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가장 좋은 화법 중 하나야.
빌라 역시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 답게 '수채화'를 연상케 하는 화법을 많이 말해. 특히 그녀는 루살카고 굳이 말하자면 물과 친숙하지. 빌라와 수채화를 엮어서 캐릭터를 만든 건 블루포치에게 있어선 '직업적 특성', '캐릭터적 특성'을 엮어서 만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
그녀가 들고 있는 도화지를 봐도 유화보단 수채화에 적합하단 걸 알 수 있지.
특히 빌라의 서명 끝부분엔 물자국이 있어. 빌라가 침이라도 흘렸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의 캐릭터성을 고려하면 저건 수채화를 표현한 거라 할 수 있어.
게다가 그녀의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중간중간 붓으로 쓴 듯한 흔적이 보여. 글자 선의 내부에 은근한 틈새가 존재해.
즉, 빌라는 이 서명을 붓으로 썼고, 쓴 방법도 수채화일 거야.
게다가 글씨체도 단순해서 알아보기 쉽지. 이를 종합해서 해석하자면, 빌라의 서명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아.
1. 빌라는 초등학교 미술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수채화를 가르친다. 이를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서명에 물자국을 냈다.
2. 빌라의 글자는 붓으로 쓰인 것처럼 보인다.
3. 빌라의 글씨체는 바보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쉬운 필기체다.
4. 소련 시절처럼 확실한 필기체가 아닌 점을 미루어 보아, 그녀가 러시아 연방의 상황을 어느 정도 맞닥뜨린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녀의 개인스에선 그녀가 2번째 폭풍우에서 살아남았다는 걸 나타내. 2번째 폭풍우는 1997~8년에서 1985년으로 이동해. 어떻게 보면 그녀는 '러시아'의 라야시키에서 마지막에 '소련'의 라야시키를 보고 뒤돌아서는 모습을 보이는 거지.
그리고...
빌라가 공산주의자는 맞지만 엄밀히 말하면 '세상을 붉게 물들여요!'보단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사람들의 사상이 공존하길 바란다고 생각해.
그녀의 구려터진 최종술식 연출에서도 파랑과 빨강으로 그런 부분을 표현하거든. 물론 '공산주의자'인 건 명명백백한 사실이지만.
일단 오늘 업로드할 내용은 이걸로 끝이야. 키릴문자권 마도학자들은 앞으로 네 명 더 있어. 그런데 앞선 내용과 좀 다를 거야. 뒤에 나올 사람들은 엄밀히 말하면 '러시아인'이나 '소련인'은 아니거든. 그리고 대부분 서명에 그림을 칠해놔서 상편과는 조금 다른 내용이 될 것 같아.
키릴문자권 상편을 읽어줘서 고마워. 다음 글은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키릴문자권 하편으로 찾아올게.
마지막으로.
거듭 강조하지만 이 글에 정답은 없어. 어디까지나 내 주관적인 해석이고, 애초에 블루포치 놈들이 설정을 하나 둘 씩 프롬겜마냥 비워놔서, 플레이어가 알아서 뇌를 굴려야 어느 정도 해석이 될 수 있어. 때문에 읽은 사람들의 의견과 훈수는 언제나 환영이야.
어쨌든 모두에게 흥미로운 이야기 정도로 다가왔으면 좋겠어. 참고 자료는 러시아 사이트와 영문 사이트를 많이 참조했어. 틀리거나 본인의 의견이 있다면 가감 없이 댓글에 편하게 적어주길 바라. 나도 어쨌든 설정에 더 파고들고 싶거든.
읽어줘서 고맙고 다들 리버스 스토리를 더 재미있게 즐기길 바랄게.
-하편 링크는 추후 작성한 뒤에 추가 예정-
개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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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그냥 나라 필기체도 어지러운데 무슨 시대별로 또 따로있는건데 개추
와 러시아 평균 글씨는 진짜 어지럽네ㅋㅋㅋㅋㅋ밈 될만하다
서명도 지맘대로 적는 릴황 십간지네 이런 디테일들 정말 재밌는거같음... 특히 겨울 서명이 정자로 적혀있는 이유가 성격과 맞물린 부분이 정말 좋았음
лишишь 분석추
매번 느끼지만 저런 설정들을 인게임으로 표현하는 애들도 대단하지만 저걸 발견하고 분석해내는 것도 준내 대단한거같음. 재밌게 잘봤음
역시 정실은 드황
예니세이가 실제로 오래된 귀족이 귀족이 아니라 대충 비유하자면 졸부 집안인 걸 생각해 보면 잘 반영된 거네 - dc App
너같은 애들때매 디테일 작업 하는 작가들 일할 맛 날듯 - dc App
좋은 글에는 개추를 - dc App
이런걸 숨겨놓은 게임사나 찾는 유저들이나.. 둘 다 게임에 진심이네
릴리아 점마는 라틴문자로도 보이게 써놨네. 현대 예술이야
분석 ㅈ대노 - dc App
빌라 수채화였군 - dc App
와 재밌네...
와 겨울 안그래도 애정캐였는데 더 정이 간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