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냐 개인스 보기 전에 쓴 거라서 설정이 많이 다를 수 있숨미다
우리의 닥터 카카니아는 오늘도 신념과 동포를 지키기 위해 투쟁 중이다.
한 손에는 빈 제일의 미녀를 끼고, 다른 한 손에는 윙글러 가문의 필살 무기— 시장에서 사온 휴대용 손거울을 휘두르며 눈 앞의 유령에게,
“핫! 얍! 히앗! 받아라, 이 썩을 악령아! 이제부터 네놈 뚝배기를 퇴마(물리) 해주마!! ”
호기롭게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보면 칼과 총의 싸움. 강령술에 의해 소환된 그 유령은 진료실 안의 온갖 사물을 총알처럼 날릴 수 있었다. 만년필, 가위 같은 작고 날카로운 물건부터 스크랩북, 책걸상, 심지어는 500p짜리 전공서적…… 그 모두를 베고, 가르고, 찌르고, 쳐내지만 한낱 손거울로 그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
결국 카카니아는 일행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고 몸을 날려 소파 뒤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두 여성의 은신처 뒤에서 온갖 잡동사니가 폭풍우처럼 휘몰아쳤다. 카카니아는 거울 모서리를 초조하게 쥐어뜯으며 투덜거렸다.
“젠장…… 저 놈이 진료실 안에 있는 거울을 모조리 깨는 바람에 마도술을 쓸 수가 없어. 남은 건 이 쬐그만한 손거울 뿐인데…… 뭘 어떡해야……”
“흑…… 죄송해요, 죄송해요! 선생님……! 저 때문에 선생님이 또다시 곤경에……”
“아, 이졸데! 정신을 차렸군요!”
곁에서 나비 날갯짓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빈 제일의 미녀이자 가장 빛나는 오페라 스타. 동시에 카카니아의 단짝 친구이며 환자이기도 한 그녀. 이졸데가 눈을 뜬 것이다.
영혼을 부르는 능력이 폭주한 탓에 기절했는데 금방 깨어났다. 다행이다. 카카니아는 기뻐하며 이졸데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아요? 거울이 깨지자마자 쓰러졌잖아요.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마도술을 잘 제어하지 못 한 탓에 유령이…… 선생님의 소중한 진료실을 엉망으로 만들었어요……“
이졸데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 창백한 얼굴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 그러나,
“진료실? 그런 건 신경쓰지 말아요! 나중에 청소하면 되죠!”
햇살 같은 미소가 그림자를 단번에 날려버렸다.
“그것보다 당신의 몸이 더 걱정이라고요. 강령술이란 게 신체에 무리를 많이 주는 데다가 건강은 청소랑 다르게 빗자루로 쓴다고 해결되지도 않고, 또……”
카카니아는 초록 앵무새처럼 쉴 세 없이 조잘대며 이졸데를 진찰했다. 목덜미에 손을 짚어 맥박을 살피고 뺨을 어루만지며 체온을 재고, 호흡을 가늠하고……
헌신적이고 성실한 카카니아. 의사라는 직업에 이처럼 잘 어울리는 여자가 또 있을까?
“다정한 의사 선생님……”
이졸데의 창백한 뺨에 불그스름한 혈색이 돌았다.
촉/촉한 눈을 들어 주치의를 한 번 바라본 뒤, 소파 너머를 확인하는 이졸데.
무슨 결심을 한 걸까?
이윽고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당당하게 일어서더니 허리를 곧게 펴고, 턱을 올리고 가슴을 펴며 유령과 대면하는 것이었다.
“이졸데!?”
아직 소파 밖은 위험하다. 여전히 날카로운 물건이 휘몰아치고 있으니까. 카카니아는 얼른 이졸데를 앉히려고 했으나, 알다시피 여자의 사랑과 고집은 폭풍우로도 꺾지 못하는 법.
허둥대는 자신의 주치의를 향해 그녀는 의연하게 선언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깨진 거울 값은 차후 디터스도르프 가로 청구해주세요.”
“아, 아니, 지금 거울이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이졸데, 지금 무슨…”
“기절했을 때 무의식 속에서 저 유령과 대화를 나눴어요. 그리고 ‘그’가 지금 무엇을 원해서 난동을 부리는지도 알게되었죠. 소망이 이뤄진다면 그의 분노도 가라앉을 거예요…… 제게 맡겨주세요, 선생님. 제가 저지른 일은 제 손으로 책임을 질게요. 저자를 쫓아내겠어요.”
“정말요? 저 사나운 유령을 쫓아낼 수 있다고요? 그렇다면 제게도 방법을 알려줘요. 같이 힘을 합쳐서…… 잠깐, 이졸데? 왜 갑자기 옷을 벗어요!?”
이졸데가 드레스를 훌렁 벗고 속옷 차림이 되었다.
모두가 탐내는 오페라 스타. 그 속살이 드러난 순간. 카카니아가 이졸데의 몸을 급히 가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소파를 넘어간 이졸데는 휘몰아치는 유리조각 앞에서 심호흡을 하더니,
“그가 원하는 건 살로메야……”
몸을 돌려 카카니아에게 손을 뻗었다.
“선생님. 당신의 역할을 알려드릴게요. 요한! 당신은 이제부터 나의 요한이에요!”
막이 오른다.
무대가 펼쳐진다.
~살로메~
오스카 와일드 원작
등장인물
살로메— 헤롯의 딸 이졸데 디터스도르프
요한— 수감된 예언자 카카니아
나라보트— 경비대장 유령
해롯— 유대의 왕
헤로디아— 왕비
시종
(장면) 헤롯 왕의 궁전 대연회장 위에 자리잡은 테라스.
유대 공주 살로메가 발코니 너머로 몸을 기울이고 있다.
아랫쪽 우물에는 요한이 있는데, 상황 파악이 안 돼서인지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달빛이 아주 밝다.
요한: 진료실이 왜 이러지…? 윽, 눈 아파! 조명이 이상해…… 이졸데, 이졸데? 괜찮아요!?
살로메: 달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요한: ……이졸데…?
살로메: 달은 어쩜 저리 예쁠까? 마치 은꽃처럼, 은화처럼 빛나지.
달은 분명 처녀일거야. 처녀의 아름다움을 지녔잖아.
요한: 갑자기 왜 그래요, 이졸데??
살로메: 달은 순결해. 남자라고는 몰라. 자기 몸을 타인에게 내맡긴 적이 없어.
달이 제 알몸을 은꽃처럼 빛내는 동안 구름은 뒤를 쫓아가 젖가슴을 황급히 숨기지.
그러나 발가벗은 이는 개의치 않아. 왜냐하면 처녀니까. 순결하니까. 마치 에덴의 하와처럼.
요한: 어디선가 들어본 문장인데? 알겠다, 이거‘살로메’의 대사잖아? 그러고 보니 진료실 조명도 첫 장면에 나오는 보름달 같네.
저기, 이졸데? 갑자기 살로메는 왜…
살로메: (눈을 희번뜩 뜨며 고개를 쳐들고) 나를 부르는 자가 누구죠!?!?!?
요한: (화들짝) 흐익, 깜짝이야!!!
(근위대장 나라보트가 둥실둥실 등장. 나라보트가 지나가자, 요한은 마치 유령이라도 보는 듯 그를 괴이하게 쳐다본다. 살로메는 태연하다.)
나라보트: 공주님. 밤바람이 차갑습니다. 이만 연회장으로 돌아가시지요.
살로메: 싫어요. 연회장엔 아직 전하께서 계시겠지요? 포도주에 잔뜩 취하신 주제에 두 눈만 또렷이 부라리는.
나라보트: 전하와 왕비님께서 공주님을 찾으십니다.
살로메: 돌아가지 않겠어요. 전하의 시선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거든요. 늙은 두더지처럼 몰래 저를 훔쳐본다고요.
그건 그렇고, 나라보트. 방금 우물가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어요.
주님이 오셨다는 둥 나라가 망할 거라는 둥 말하던데요. 저기 누가 있나요?
나라보트: 세례 요한입니다, 공주님. 왕실을 모욕한 죄로 우물에 갇혔죠.
살로메: 아, 요한! 어머니에 대해 끔찍한 소리를 한다던 그 자인가요?
나라보트: 네. 누군가는 그를 선지자라고 부르더군요.
살로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정체가 무엇일까요?
요한: 맞아. 세례 요한도 살로메에 등장하지. 이 장면 직후 살로메는 요한에게 반하고, 그에게 구애하지만 거절당해.
나라보트도 주요 등장인물이야. 얼마 안 가 자결하지만. 살로메를 몰래 연모했거든. 사랑이 좌절되자 참지 못 하고 죽음을 택했어.
근데 아까부터 자꾸 나를 보면서 요한이 어쩌구 하네. 왜 나를 보는 걸까.
살로메, 나라보트, 요한. 살로메와 나라보트는 저기 있는 둘, 요한은 그럼, 설마…
살로메: 당신을 사랑해요, 요한!
(살로메가 요한에게 잰걸음으로 다가가 냅다 몸으로 박치기한다.)
요한: 제가 요한 역이에요!?!?
살로메: 당신의 눈은 달빛 같아요. 처녀처럼 순결한 달빛 같아요. 당신의 눈동자는 은 빛살처럼, 호박처럼 귀하고 깨끗해요, 요한.
당신의 몸은 정말 희어요. 마치 상아로 조각한 것 같아요. 당신의 몸은 유대 산 골짜기에 핀 백합처럼 희어요, 요한.
당신의 머리칼은 정말 검어요. 포도송이 같아요. 에돔의 나무에 걸린 검은 포도송이요. 별마저 몸을 숨기는 어둔 밤, 밤하늘의 칠흑조차도 당신의 머리칼보다 못 할 거예요, 요한.
(요한의 목을 끌어안고 가슴을 딱 붙이는 살로메)
살로메: (돌변) 아니…… 나는 당신의 눈을 사랑하지 않아요. 이제 보니 당신의 눈은 정말 무시무시해. 용이 사는 검은 동굴을 횃불로 태운 것 같아. 달빛에 일렁이는 검은 호수같아.
이제 보니 당신의 몸은 정말 소름끼쳐. 문둥이의 몸 같아. 전갈과 독사가 둥지를 튼 석고 벽, 회칠한 무덤 같아.
이제 보니 당신의 머리칼은 정말 징그러워. 가시 면류관 같아. 당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겠지요. 게다가 우물의 먼지로 뒤덮혀 있잖아. 나는 당신의 머리카락도 사랑하지 않아요……
내가 사랑하는 건 다름 아닌 당신의 입술이에요.
(살로메와 요한의 얼굴이 점차 가까워진다. 서로의 호흡이 얽히고 코끝이 스친다.)
살로메: 당신의 입술에 입을 맞추게 해주세요.
요한: 잠깐만요, 살로메, 아니 이졸데. 진짜 키스하려는 거 아니죠? 연극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이거 좀 놓고…
(살로메가 눈을 감고 요한을 끌어당긴다) 이졸데, 살로메, 아니 이졸데! 힘이 이렇게 셌나? 뿌리 칠 수가 없어! 나라보트! 나라보트 어딨어! 네가 나올 차례야, 살로메를 좀 말려 봐!
시종: 근위대장 나라보트는 방금 자살했습니다. 두 분 하던 거 마저 하십쇼.
요한: 벌써!? 말리는 시늉이라도 하고 퇴장해야지, 이렇게 근성이 없어서야!
그만, 그만! 이 와중에 당신이랑 키스하면 빈 전체가 나를 죽이려 들 거예요! 정말이에요! 당신 추종자가 얼마나 많은데, 앗…!
(요한이 뒷걸음을 치다가 돌부리에 걸려 뒤로 넘어가고, 요한에게 몸을 실었던 살로메도 덩달아 휘청인다. 두 사람은 우물 바닥에 쓰러져 몸을 겹친다.)
(무대 암전)
이졸데는 카카니아 위에 누위 잠시 숨을 골랐다. 후, 하. 붉은 입술에서 나오는 숨결이 아래 깔린 사람의 목덜미를 뜨겁게 데웠다.
이윽고 진료실 전체가 암전되자 이졸데는 주치의를 일으키고 소파 뒤로 갔다. 소파— 방금까지 요한을 가두는 우물이었지만 이제 다시 두 여인의 은신처가 되었다.
은신처 뒤로 푸른 생령이 생각에 잠긴 듯 둥둥 떠다녔다. 처음보다 훨씬 진정된 모습. 잡동사니 폭풍우는 더이상 닥치지 않았다.
이졸데는 초록 옷매무새를 익숙한 듯 고쳐주며 말했다.
“정말 잘 해주셨어요, 선생님. 이대로만 하면 괜찮겠지요.”
카카니아는 홀린 듯 대답 없이 이졸데의 손길을 받았다.
부유령이 둥실 떠다니다가 찻장에 있던 유리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쨍강, 하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카카니아는 겨우겨우 입을 떼더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고개를 있는 힘껏 갸웃했다.
“어머나! 무엇이 이해가 안 되시나요? 방금 저와 함께 펼쳤던 무대? 혹은 ‘살로메’ 그 자체?”
“방금 그거, 무대였나요? 너무 뜬금없어서 히스테리성 환각인 줄 의심했는데.”
“선생님이 히스테리라뇨! 선생님은 저와 달리 지극히 정상이신걸요…… 방금은 저 유령을 진정시키기 위해 부득의하게 살로메를 연기했답니다.”
이졸데는 소문을 좋아하는 귀부인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곁눈질하며 속삭였다.
“‘그’는 생전에 극작가 지망생이었어요. 불운한 사고로 요절하기 직전까지도 무대는 그의 모든 것이었지요. 그의 꿈은 살로메였어요. 살로메의 무대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꾸미는 것.”
“그렇다면 방금 말했던, ‘저 유령이 원하는 것’이라는 게…?”
“네.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지요. 생전의 숙원을 이룰 기회. 저를 보고 대뜸 달려들더니, 자신의 극본에 맞추어 살로메를 연기해달라고 협박하더군요. 드문 경우는 아니에요. 산 자든 죽은 자든 저를 이용하려는 이는 많으니까.”
“그, 그럼 옷은 왜 벗은 거죠?”
“? 살로메는 당연히 벗어야죠.”
“아, 네.”
눈길이 흰 가슴골로 잠시 쏠렸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고는, 카카니아는 자기 외투를 이졸데의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이졸데는 베시시 웃으며 초록 옷깃을 꼭 쥐었다.
“요컨대, 제가 요한이고 이졸데가 살로메라는 거죠? 그럼 나머지 역은……”
“그가 1인 다역을 맡겠다네요. 유령은 몸을 여러 개로 쪼갤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얼렁뚱땅 정해버려도 괜찮대요? 이 자리에 이졸데를 제외하고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초짜밖에 없잖아요? 제가 무대 관람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요한이라는 중책을 덜컥 맡다니 자신이 없는 걸요.”
“부담 갖지 마세요, 선생님. 여긴 빈의 오페라 극장이 아니잖아요.”
이졸데가 상냥하게 타일렀다.
“그에게 중요한 건 살로메지 다른 역이 아니에요. 제가 열심히 할게요. 선생님은 그저 퇴마 의식에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시면 돼요.”
“당신에게 너무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요, 이졸데.”
“괜찮아요. 게다가 요한 역은 선생님이 아니면 싫단 말이에요……“
톡. 두 여인의 손가락이 문득 맞닿았다. 손가락들 중 한쪽이 그 기회를 틈타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신을 상대에게 얽고 습기와 열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이졸데의 시선이 카카니아의 심장을 은근히 간지럽혔다. 그녀의 눈동자는 타오르는 불길 같기도, 폭포처럼 세차게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요한의 두 눈동자가 한밤중처럼 검다면 이졸데의 눈은 새벽 하늘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해뜨기 직전 푸른 새벽 하늘. 혹은 호메로스가 노래했던 지중해의 앞바다.
카카니아가 주저하며 몸을 뒤로 뺐을 때 둔탁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그것은 깨진 거울 조각이었다. 꽤 큼지막한 것이 아마 전신 거울의 일부분이었던 듯하다. 굵직한 조각들이 사방에 널려 창 밖의 어슴푸레한 빛을 반사했다.
이거다! 일순, 카카니아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손을 뻗어 흩어진 조각을 슬쩍 모으기 시작했다.
이졸데는 그런 카카니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가장 친하고, 가장 소중한 친구의, 평소처럼 반짝이는 두 눈을.
카카니아의 눈은 오늘도 달과 별처럼 순결하다.
(장면) 보름달이 전과 비교해 남쪽으로 더 올라갔다.
살로메의 시종이 우물가에 서 있다. 고개를 쭉 빼고 우물 안을 들여다 보며 독백하는 시종.
시종: 우리 공주님은 바람 잔 호수처럼 잔잔하신 분이랍니다.
예. 어릴 적부터 보필했으니 잘 알지요. 저분 마음은 도무지 흔들리는 법이 없어요.
수많은 사내가 자신에게 구애해도, 삼촌 되는 자가 친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해도, 그가 결국 양아버지가 되어 자신에게 추근대도 변함 없이 침착하셨죠. 너무 무심하셔서 인간이 맞긴 한가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공주님의 호수에도 결국 달빛 드는 날이 오는군요.
자, 보시죠.
(우물 안에 요한과 살로메가 단 둘이 앉아있다. 둘은 착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살로메: (음식을 입에 넣어주며) 자, 아- 하세요, 요한.
요한: (받아 먹으며) 아, 아아…… 으읍, 그만, 너무 많아요. 이졸… 살로메.
살로메: (웃으며) 어쩜 먹는 모습도 이리 예쁘실까? 사랑스러워.
시종: 보시죠! 이 닭살 돋는 한쌍을.
살로메: 요한, 어때요? 당신을 생각하며 제가 준비한 음식이에요. 마음에 드나요? 당신을 향한 제 사랑처럼 달콤하죠? (음식을 입에 쑤셔넣어주며)
요한: 풉, 너무 달아, 아니 이거, 자허토르테잖아요. 호텔 자허에서 사온 거죠? 예루살렘 음식이 아니죠!? 전혀 안 어울리는 소품인데요!
시종: (목소리를 깔고) 여기 먹을 게 그거 뿐이니 어쩔 수 없잖습니까. 뭔 불만이 그리 많아요? 잠자코 살로메에게 맞추십시오, 요한. 너무 어색하면 지금 당장 은쟁반을 가져오는 수가 있습니다.
요한: 살해 예고다!! 이 자식, 방금 목을 자르겠다고…!
(그때, 연회장의 문이 열리더니 바람을 쐬러 나온 왕과 왕비 등장. 그 뒤를 신하들이 횃불을 들고 줄줄 따라온다.)
시종: 오, 전하께서 오시는군.
헤롯: (취한 채 비틀거리며) 헤로디아. 저 달을 보시오. 오늘 달빛이 이상해. 미친 여자 같군. 꼭 매춘부 같아. 남자 여럿을 꾀며 밤거리를 배회하는.
구름도 그녀의 알몸을 가리려 황급히 쫓아가지만 다 소용 없지.
젖가슴을 저리 자랑스레 내놓고 있으니!
헤로디아: 제 눈에는 그냥 달로 밖에 안 보여요.
전하, 정신 좀 차리세요. 그리고 살로메 좀 그만 보세요.
그 애는 이제 당신의 딸이라고요.
헤롯: 살로메, 살로메는 어디에 있지? 연회장에 그 애가 없으니 허전해.
시종: 공주님은 제가 우물 안에서 잘 모시고 있었습죠. 이리 오십시오.
(우물 안을 보는 왕과 왕비)
요한: 새로운 등장인물인가?
살로메: (헤롯에게 인사하며) 어서오세요, 아바마마. 연회는 즐거우신가요? 부디 아바마마께서 저를 제외한 다른 즐길거리를 찾으셨기를.
헤롯: 살로메. 거기 있었구나. 모든 여자 중에 가장 좋은 딸이여. 보름달을 닮은 아름다운 처녀여.
죄인의 감옥에는 왜 들어가 있지?
네게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살로메: 잘 오셨어요. 들어보세요. 요한이 이제부터 세상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언을 내리겠다네요. 어떤 예언일까? 저는 그것이 궁금해 우물로 내려온 거예요. 그렇죠, 요한? (옆구리를 쿡 찌르며)
요한: (움찔) 어이쿠, 내 차례인가. 크, 크흠.
너희는…… (머뭇대며) 그러니까, 죄를 범했다!
아우가 형을 죽이고, 죽은 이의 아내는 살인자를 유혹해 근친상간을 저질렀다.
너희는 벌을 받을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벌할 것이다.
살로메: 어머나!
헤로디아: 또 그 소리! 요즘은 밤마다 우물가에서 저 사람 고함 소리가 들리니 아주 지긋지긋해.
전하, 예언자가 당신 아내를 욕보여요. 그냥 두실 건가요?
헤롯: 우리를 보고 한 얘기가 맞나? 당신을 콕 집어 저주한 것도 아니잖소? 세상에 자기 남편의 동생이랑 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시종: 맞습니다. 한 둘이 아니죠.
헤로디아: 세상에 전하 같은 사람이 또 있다고요??
살로메: 하아…… 정말 고운 목소리야. 듣기 좋아. 초록 앵무새가 쉼없이 조잘대는 것 같아. 이제보니 나는 그대의 목소리도 사랑하는군요.
어떡하면 요한이 나를 봐줄까? 왜 나를 봐주지 않지? 한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게 푹 빠진 줄로만 알았지. 하지만 어리석은 착각이었어. 혹은 당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요한. 내 뺨을 볼래요? 당신과 함께 있느라 우물의 먼지가 묻었어요.
내 허벅지는 또 어떻고요? 땅에 쓸려 상처가 났군요.
예언자님. 당신의 거룩한 손으로 이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면 안 될까요?
요한: (손사래를 치며) 아, 아뇨. 사양할게요. 됐어요.
요한으로서 지금은 거부하는 게 맞겠지.
근데 이상하다…… 극에 이런 끈적한 대사가 있던가? 내 기억이랑 다른데.
극장에서 보았던 살로메는 사랑에 빠진 소녀보다 좀 더 악녀 같은 모습으로……
살로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죠? 요한, 당신은 또 현실과 동떨어져 이상론을 늘어놓는군요. 순진한 사람. 그래서 더욱 아름답지만.
하지만…… 언제까지 당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을 수 있을까?
(살로메가 어깨에 걸쳤던 초록색 외투를 벗는다. 달빛 기둥 속에서 속살이 눈부시게 빛난다.)
살로메: (손을 땅에 짚고 골반을 내밀며) 요한, 나를 한 번만 봐줘요.
요한: 아니, 진짜 이런 장면이 있었던가?? (땅에 떨어졌던 외투를 다시 덮어준다.)
헤로디아: 저 애가 예언자에게 완전히 홀린 것 같아요.
헤롯: 살로메…… 살로메를 우물 밖으로 데려오라.
시종: (귀엣말로) 공주님, 지금은 돌아갑시다. 그래도 너무 섭섭해하지 마십쇼. 기회는 또 찾아올 겁니다.
(일행이 우물을 떠나간다. 살로메는 자꾸 뒤를 돌아보고, 왕은 그런 살로메를 보며 또 한 번 술을 들이킨다.
왕은 완전히 취해 눈빛이 안개처럼 흐릿하다.)
(무대 암전)
“이봐요, 당신. 오만방자한 것에도 정도가 있죠.”
등털이 쭈뼛 설 만큼 섬뜩한 목소리였다.
카카니아는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다. 분노로 가득한 이졸데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서있었다. 이졸데,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이 우선이었던 그녀. 그 어떤 무례도 그저 웃으며 넘어갔던 그녀가 드디어 격노한 것이다.
오페라를 부르던 고운 목소리는 이제 장미 가시처럼 뾰족하고, 카페에서 찻잔을 들던 손에 이제는 서늘한 핏줄이 돋았다. 친한 친구인 카카니아조차 처음 목격하는 일면. 카카니아는 급히 소파를 뛰어넘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뭐라고 했냐고요. 감히 그분을 위협해? 카카니아 선생님은 우리를 위해 익숙지 않은 배역을 맡아주고 계세요. 그런데 그분의 진료실을 망치는 것도 모자라 은쟁반을 가져오겠다고, 목을 베겠다고 협박까지 해요?”
“이졸데, 진정해요, 난 괜찮아요.”
“설마 진짜 요한처럼 목을 치려 했나요? 현실과 무대가 구분이 안 돼요? 당신은 강한 힘을 밀어붙여 억지로 이 조그마한 공간의 왕이 된 것 뿐이에요. 제가 없으면 자기 꿈조차 스스로 이루지 못하면서……”
“이졸데!”
안 돼. 마땅한 무기도 없는데, 지금 싸움이 붙었다간 도와줄 수가 없다.
카카니아는 이졸데를 부둥켜 안고 소파 뒤로 끌고 갔다.
폭풍우가 한 차례 지나간 것만 같다. 유명 오페라 스타의 격노를 고스란히 받은 헤롯, 아니 유령. 카카니아는 그의 기색을 살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별 반응이 없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어떤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휴우. 카카니아는 그럼에도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무슨 꿍꿍이속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에.
두 여성은 함께 진정의 시간을 가졌다. 어깨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심호흡하는 이졸데였으나, 감정이 아직 덜 풀린 모양이었다.
“선생님……”
삭이지 못한 화가 물방울이 되어 새벽 같은 눈동자를 적셨다. 숨은 격해지고, 얼굴은 벌게지고, 목소리와 주먹 쥔 손이 덜덜 떨리는데 정말이지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카카니아는 일부러 힘차게 미소지었다.
“선생님, 저…!”
“이졸데! 방금 아주 멋있었어요. 당신이 자기 감정을 그렇게 잘 표현하는 줄은 몰랐는데요!”
이졸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네에……? 선생님, 혼 안 내세요……?”
“혼이요? 제가 왜요! 저를 위해 해준 일인데 오히려 감사해야죠.”
“그치만, 허락도 구하지 않고 경솔한 행동을 했으니까…… 방금 큰일 날 뻔했잖아요.”
“뭐, 큰일 날 뻔 하긴 했죠. 그치만 제가 막았으니 됐어요. 그보다 이졸데, 당신에게 그런 당찬 면이 있었군요. 나름 절친한 사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모르는 점이 많네요.”
“아니에요! 그런 대단한 게 아니라 단지, 선생님이 계속 피해를 입는 게 너무 싫어서……”
“후후. 절 위해 화를 내줘서 고마워요. 이런 모습, 가능하면 더 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당신을 드러내 줄래요? 당신을 더 알고 싶어요.”
“선생님……!”
“자신의 내면을 억압하지 말고 해방하세요. 이건 의사로서의 조언이기도 해요.”
그 말이 이졸데에게 큰 위로였나 보다.
참지 못 한 그녀는 초록색 품을 와락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울음을 참으려는 건지 연신 끅끅 소리가 나왔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닌 영락 없는 소녀의 모습.
그래, 울 만하지. 카카니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등을 두드려줬다. 어쩌면 감정이 터지는 걸 몇 번이고 견뎠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당치 않은 요구에다 원치도 않았던 배역을 맡고. 그럼에도 꾹 참았을 것이다. 오직 카카니아를 이 재난에서 구하기 위해.
“이졸데, 당신은 좋은 친구에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카카니아는 검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이에 이졸데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고, 그 바람에 끈적한 눈물이 목덜미를 흠뻑 적셨다.
이졸데의 손가락이 날개뼈 부근을 수차례 쥐어뜯었다. 어느새 허리를 감싼 허벅지가 내장을 조이고, 흉부를 압박하는 유방에 숨이 턱 막히고, 몸 전체가 이쪽으로 확 쏠리는 바람에 근육 여기저기가 비명을 질렀지만, 물론 괜찮다. 친구로서도 의사로서도 카카니아는 이 모든 것을 거뜬히 받아낼 것이다. 역시 닥터 카카니아! 면허따윈 장식이라니까!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한 카카니아다. 한쪽 손으로 이졸데를 다독이면서 다른 손으로는 몰래 거울 조각 하나를 주운 것이다.
소파 밑으로 조각을 쑥 밀어넣으니 둔탁한 소리가 났다. 꽤 많이 모인 것 같다. 틈 날 때마다 챙긴 보람이 있군. 슬슬 써먹을 수 있겠어. 카카니아는 자화자찬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얼마나 치밀한가!
두 여성은 서로에게 심취해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둘은 몰랐다. 환희에 매몰된 탓에 미처 몰랐다.
유령이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후에도 무대는 이어졌다. 관객도 박수도 알아주는 사람 없이도 계속 되었다. 배우들은 참으로 열심이었다. 하나는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둘은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카카니아는 요한 역을 수행하면서 못해도 수십 번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유령 연출. 각본. 감독의 살로메’가 원래 알던 것과는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아니, 다르기만 하면 모를까 때로는 너무 개성적이도 했다. 어디선가 다이너마이트가 터진다든지, 예루살렘 식 일대일 결투 신청이 들어온다든지, 나라보트가 극적으로 부활했다가 깨가 쏟아지는 요한과 살로메를 보고 알아서 무덤으로 돌아간다든지.
(장면) 살로메와 요한은 우물 안에 있고 시종이 시켜보고 있다. 요한은 전신이 포박된 채 입이 막혀있다.
시종: 나라보트는 이제 나올 일 없으니 두 분 안심하고 하던 거 마저 하십쇼.
요한: 읍! 읍! 으으으으으브브
살로메: 하아, 귀여우셔라…… 당신이 잘못한 거에요, 요한.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니까!!!
입 맞춰도 되지요??
요한: 으브브브브브브브!!!
(요한은 살로메를 피해 콩콩 뛰어서 우물을 탈출하나 군사한테 잡혀 끌려간다.)
헤롯: 요한의 포박을 풀고 우물에 다시 가두어라. 살로메와는 분리시켜라.
요한: (풀려난 후) 쿨럭쿨럭, 어우, 진짜……
이런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극이 진행될 수록 카카니아의 마음 속에 모종의 걱정이 싹텄다. 사실 이 무대 나부랭이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걱정이긴 했지만, 슬슬 외면할 수 없는 단계까지 오고 말았다. ‘살로메’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뭐가 떠오르긴. 너무 선정적이어서 어느 지역에서는 상영 금지 조치까지 받았다던 그 장면. 일곱 베일의 춤.
이졸데가…… 유령 앞에서 그 춤을 춰야한다고?
추게 내버려둬도 괜찮을까?
빈 오페라 극장에서 살로메를 연기하던 이졸데의 표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정신 건강에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만일 그녀가 춤을 추고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면, 의사로서 카카니아는……
고민하는 와중에도 극은 흘러간다.
클라이막스까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장면) 달이 서쪽으로 더 기울었다.
달은 달빛을 연회장 쪽으로 쏟아보내지만, 무한히 많은 보석, 장신구, 횃불과 촛불에 잡아먹혀 그 의미가 퇴색하고 만다.
포도주가 강처럼 흐르는 금빛 연회장. 그 가운데 왕과 왕비가 앉아있다. 수많은 시종과 신하를 거느리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헤로디아: 저는 도무지 예언이라는 걸 믿을 수 없어요. 인간이 어찌 미래를 알 수 있을까?
우물에 갇힌 그를 보세요. 그가 자신의 죽음을 알았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겠죠. 그렇죠? 제 말이 맞죠?
그건 그렇고, 요한은 죽나요? 언제 죽지요?
헤롯: 아직은 죽이지 않을 거요. 선지자를 죽일 순 없소. 이 땅의 사람 중 가장 거룩하며 신을 직접 만났다고 하니.
시종: 사실 선지자가 신을 만났다는 건 헛소문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구름에 비친 신의 그림자를 신으로 착각한 것이지요.
헤로디아: 너는 하루종일 쓸 데 없는 소리만 하는군. 부채를 가져오라! 너부터 술에서 깨야겠다.
(시종에게 받은 부채로 시종을 퍽퍽 때린다.)
헤롯: 불길하구나. 예언자가 말하길 근친혼은 악을 부르는 결혼이라더군.
곱씹을 수록 불길해. 무섭구나.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떡하지?
헤로디아: 술에 취하셨군요. 취해서 괜히 불안한 거예요.
(빛의 끝에서 살로메가 나른하게 걸어온다.)
살로메: (인사하며) 아바마마. 부르셨나이까?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십니까?
이미 달이 너무 기울지 않았습니까? 아바마마께서는 너무 취하셨고요. 이만 침소에 드시지요.
헤롯: 안 될 말이다. 술에 취해도, 잠에 들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복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행복하지 못 하다.
살로메야.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행복해지고 싶구나.
그러니 지금 당장 옷을 벗고 춤을 추어라.
살로메: 네……?
헤로디아: (시종에게) 뭣들 하느냐! 전하께서 많이 취하신 모양이구나. 어서 부채를 부쳐드려라!
전하. 갈수록 살로메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군요. 그건 천한 자가 하는 일이 아닙니까.
아, 알았어요. 방금 하신 말씀은 농담이었지요?
헤롯: 나는 진심이오. 나는 언제나 모든 것에 진심이었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을 보고, 글을 쓰며 꿈을 꾸었을 때도.
아니, 방금 말은 잊으시오. 아무튼 살로메의 맨살만이 나를 즐겁게 할 수 있을 거요.
살로메: 옷을 벗지 않겠어요. 전하. 저는 노예가 아니에요.
헤롯: 네가 노예든 노예가 아니든 나와 무슨 상관이더냐? 어서 신발을 벗어라. 네 의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
살로메. 세상 모든 사람이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네 속뜻을 헤아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는 친모조차 너를 이해하지 못 했고, 관심도 없었다.
헤로디아: 그만하세요, 전하. 그 이상은 심각한 모독이에요.
헤롯: 헤로디아, 날개 소리를 들었소? 아, 저것 보시오! 심장에 장미를 꽂은 밤꾀꼬리가 피를 흘리며 날아간다! 아주 불길한 징조군. 하늘이 내린 계시야.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불길하구나, 불길해.
슬프다. 살로메, 어서 신발을 벗고 맨발이 되어라. 네 귀여운 발가락이 곰실대며 기다리고 있구나. 그들이 바깥으로 나와 가지 위 참새처럼 뛰게 하여라.
신발을 벗은 다음에는 옷도 모조리 벗어던져라. 이제 보니 네 옷이 너무 두껍다. 보는 내가 답답하니 어서 벗어라.
그 초록색 외투부터 벗어버려라. 정말 이상한 옷이구나. 괴상하구나. 화가들조차 기피하는 것이 저 초록색인데.
외투를 버린 다음은 베일도 벗어야 할 것이다. 일곱 겹의 베일. 상체와 하체를 감싼 색색의 베일.
헤로디아: 살로메는 명을 받들지 않을 거예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살로메: (외투를 싸매며 등을 돌린다.) 다른 분부가 없다면 이만 나가겠습니다.
헤로디아: 그리고 저는 밤꾀꼬리 소리 따위 전혀 못 들었어요.
시종: 저도 듣지 못 했습니다.
헤로디아: 전하께서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헤롯: 알몸으로 춤을 춘다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마.
(살로메가 우뚝 멈춘다.)
헤롯: 네 원하는 것이 아주 많지? 탐욕의 딸아, 말해보아라.
무엇을 원하는가? 이 나라의 반쪽? 부귀영화? 아니면 자유로운 날개?
헤로디아: 거짓말이다!
헤롯: 나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나는 내 말의 노예요, 내 말은 왕의 말이다.
혹시 꼴 보기 싫은 자가 있으면 말하여라. 은쟁반을 가져오마. 잘 드는 칼로 그자를 베고, 은쟁반에 목을 올려 하사하겠다.
살로메: 정말로 소원을 들어주십니까?
헤롯: 정말이다.
살로메: 어떻게 믿지요?
헤롯: 맹세하마. 내 왕관을 걸고, 내 생명을 걸고, 내 신들을 걸고.
착하고 아름다운 살로메, 그 어떤 딸보다 아름다운 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살로메: 저는 의사 선생님이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저분을 이곳에서 풀어주세요.
헤롯: 좋다. 소원을 들어주마.
살로메: 분명 맹세하셨습니다.
헤롯: 나는 왕으로서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왕답게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나를 즐겁게 하는 여자에게 마땅히 줄 것이다.
살로메: 맹세를 하신 겁니다, 전하.
(헤롯과 살로메가 시선을 교환한 뒤, 초록색 외투가 땅으로 떨어진다.
그때, 요한이 분노로 찬 고함을 지른다. 그는 우물을 뛰어 넘고, 나라보트의 피가 뿌려진 길을 달리고, 신하와 시종을 뚫으며 살로메 앞을 가로막는다.)
요한: 야, 이 자식아! 멈춰, 중지해! 이졸데에게 변태 같은 요구 하지 마!!
헤로디아: 예언자다. 그가 또 헛소리를 한다.
요한: 다 때려 치우라고! 이졸데는 살로메가 아니야!!
‘일곱 베일의 춤’에서도 살로메는 얇게 입었을지언정 다 벗지는 않았어. 근데 여기서는 알몸이 돼라고!? 이 씹어 먹을 악령아, 무슨 생각인 거야!!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헤롯: (실소를 터뜨리며) 저 자는 더 이상 예언자가 아니오.
우물을 들춰라!!
(헤롯의 손가락질 한 번에 우물이 통째로 날아간다. 쾅, 하는 굉음과 동시에 요한의 거울 조각이 드러난다.)
헤롯: (벌떡 일어나며) 보아라! 저자는 무기를 숨기고 이 나라를 전복하려 했다!!
그는 거룩하지 않다. 더러운 반역자일 뿐이다!!
요한: 들켰어……!?
헤롯: 여봐라! 당장 요한을 참수하라!!
요한: 이럴 수가!
(수백, 수천의 군사가 우물가의 거울을 짓밟으며 요한을 일제히 공격한다.)
요한: (손거울을 꺼내 군사들에게 휘두르며) 꺼져, 꺼져, 꺼지라고!
(균형을 잃고 휘청이며) 윽……!
살로메: 선생님!!
전하, 요한을 살려주십시오! 제발 그녀를 해치지 말아요!!
제가 옷을 벗겠습니다!
요한: 이졸데, 안 돼!!
헤롯: 요한, 입만 살았구나.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너는 이제 아무 무기도 없고, 아무런 힘도 없다.
힘이 없는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러고도 네가 선지자인가!?
(요한이 살로메를 감싸고, 군사들이 요한을 친다.)
(장면) 그 순간, 달이 핏빛으로 물들고 하늘의 별은 썩은 과일처럼 떨어진다.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도망간다. 무대 암전.
모든 불이 다 꺼졌다. 세상은 어둠에 완전히 삼켜졌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살로메: 선생님…… 선생님!? 어디 계세요, 선생님!?
선생님이 안 보여요, 무사하세요!? 너무너무 무서워요!
(땅에 웅크리고 머리를 쥐어뜯는다.) 어서 저를 안아주세요. 선생님, 클라라, 선생님, 선생님!
(땅이 심하게 흔들린다. 사방에서 굉음이 울린다.)
헤롯: 달이 사라졌다. 이것이 예언자가 말했던 종말의 날인가?
아니면 그의 목을 치자 하늘이 재앙을 내린 것인가?
목소리1: 신께서는 정말로 무시무시합니다.
목소리2: 신께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선지자조차 그분의 그림자를 보았을 따름입니다.
목소리3: 신께서는 선한 것 안에도 악한 것 안에도 존재하십니다.
(속삭이듯) 어쩌면 우리가 선이라 부르는 것도 사실 악일지 모르지. 세상은 온통 악한 것 천지요.
목소리4: 정말이지 신께서는 무시무시합니다! 그분은 절구에 옥수수를 빻듯 악한 자든 선한 자든 가리지 않고 박살 내십니다. 그분께서는 누구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분 안에서 하나이며 평등합니다.
목소리 1,2,3,4: 그러므로 너또한 땅 위를 기어다니는 미천한 생물일 뿐이지!
(손거울이 미약한 빛을 낸다. 손거울이 날아오자 목소리는 자취를 감춘다.)
요한: 이놈들아, 저리 가!
이졸데, 나를 봐요. 난 무사해요. 당신 바로 옆에 있잖아요, 이렇게!
(요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듯, 살로메는 웅크리고 앉아만 있다. 지진 탓에 요한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요한: 윽, 그렇구나, 감정이 격해진 탓에 이졸데의 마도술이 또 폭주한 거야. 그래서 내가 유령에게 당하기 직전에 모든 불이 꺼졌어.
이졸데가 나를 살린 건가? 아니, 안심할 때가 아니야. 우리 모두가 여기서 무사히 나가야 해.
(요한은 흔들리는 땅 위에서 힘겹게 균형을 잡는다. 팔을 휘저으며 살로메를 찾는다.
순간, 머리 위로 칼날이 날아온다. 요한은 가까스로 피했다.)
헤롯: (칼을 휘두르며) 죽어라, 반역자!
네 예언이 나를 죽이기 전에 선수를 치겠다.
더러운 반역자, 사기꾼, 위선자!
요한: (또 한 번 칼을 피하고) 으윽, 난 위선자가 아니야. 나는 외면하지 않을 거니까.
이졸데, 내 목소리를 들어요!
살로메: (고개를 들며) 선생님?
요한: 좋아! 정신을 차렸어.
살로메: 선생님, 어디 계세요……?
(요한은 공격을 피하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요한: 이졸데. 팔을 쭉 뻗어봐요. 혹시 손에 따뜻한 것이 닿거든 꽉 쥐어봐요.
(자신도 손을 뻗는다.) 좋아, 잡았다. 이졸데. 그게 나에요. 나 여기 있어요. 이 자리에 체온이 있는 건 우리 둘 뿐이에요. 소파나 유령이 이렇게 따뜻하진 않잖아요.
(칼날이 팔을 스치고 지나간다.) 윽…… 그러니 당신은 저를 찾은 거예요. 제가 당신을 찾은 것처럼.
살로메: 거기…… 계시나요?
요한: 그럼요. 제가 멀리 떠난 적이 있었나요? 항상 당신 옆에 있었어요. 손 뻗으면 언제든 닿는 거리에 있었죠. (웃으며) 오늘은 손이 차갑지 않아 좋군요.
살로메: 아…… 맞아요. 선생님의 냄새에요. 선생님의 온기, 선생님의 목소리, 숨결.
(지진이 서서히 잦아든다.
땅이 잠잠해졌다. 둘이 감격에 차 서로를 끌어안으려는데 헤롯이 또 공격한다. 한 대 맞은 요한은 땅에 주저앉는다.
이어서 다른 공격. 요한과 헤롯이 몇 합을 주고받는다. 헤롯의 일격에 요한의 손에서 거울이 튕겨 나온다.)
요한: 아얏, 손목이……
살로메: (땅을 더듬거린다) 잠깐만요, 제가 찾아드릴게요.
(거울을 요한의 손에 쥐어주며) 여기 있어요. 요한, 아직 포기해서는 안 돼요. 세상을 밝힐 자는 당신 뿐이에요.
요한: 저도 끝까지 싸울 거예요! 하지만…… 약한 소리 하기 싫지만, 저 놈, 유령 주제에 너무 쎄요.
살로메: 제가 마도술을 써볼게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살로메가 요한의 손거울을 감싼다. 주변에서 음산한 공기가 돈다.
다음 순간, 보라빛 불꽃이 거울 주변에서 콸콸콸 쏟아지기 시작한다. 세상을 밝히는 빛. 헤롯의 형체가 똑똑히 보인다.)
요한: (화들짝) 으히익 깜짝이야
헤롯: 살로메!! 반역자의 편을 드는 것이냐!? 너역시 죄인이 되고 싶으냐!
살로메: 아바마마, 아니 헤롯!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요한의 편입니다.
헤롯: 오냐, 악랄한 여자. 그렇다면 둘이 한번에 처형해주마!!
(요한이 보라색 불꽃을 휘두른다. 공격을 가까스로 막은 헤롯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린다.)
헤롯: 크윽…… 요한, 네 이놈!!
요한: 효과가 있어!? 진작에 이럴 걸!
살로메: 요한! 저자를 무너뜨리고 당신이 새로운 왕이 되는 거예요!
요한: 엥? 아니, 왕이 되고 싶진 않아요. 어쨌든 받아라, 이 썩을 놈아!!
(요한이 불꽃을 마치 검처럼 휘두르며 헤롯과 합을 주고 받는다.
헤롯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지만 어느덧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결투는 요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때, 헤롯의 마지막 발악.)
살로메: 아앗, 요한!
요한: 이졸데!
(헤롯이 살로메를 인질로 잡았다.)
헤롯: 크헤헤헤, 요한! 물러나지 않으면 이 여자의 목숨은……!
(갑자기 괴로워하며) 크아아아아악!
(헤롯이 몸을 웅크린다. 그의 복부에 단도가 꽂혀있다.)
살로메: 이것이 살로메의 키스다!
지금이에요, 끝을 내요!!
요한: 아, 아아 알았어요!
(요한이 팔을 크게 휘두른다.
헤롯은 공격을 받고 과장된 몸짓으로 천천히 쓰러진다.)
헤롯: 이——놈—들! 저—주—하—겠다…….
(털썩!!)
(헤롯은 땅에 누워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요한은 헤롯의 시체를 발로 톡톡 건드려본다. 시체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시체를 확인한 요한이 맥빠진 목소리로 한 마디.)
요한: 해치웠나?
살로메: (요한을 끌어안고) 아아, 당신은 영웅이에요! 선지자 요한. 당신이 폭군으로부터 이 나라와 민중을 구했어요.
요한: 이졸데. 무사하군요. 다친 곳은 없어요?
살로메: 네. 하지만 당신은 다쳤어요…… 팔에서 피가 흐르잖아요. 가여워라……
요한: 괜찮아요. 마도술을 쓰면 바로 나을 거예요.
근데, 진짜 해치운 거 맞겠죠? 왜 이렇게 찝찝하지. 우리 이제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나요?
살로메: 나가기 전에 잊은 것이 있지 않나요, 요한?
요한: 뭘 잊었죠?
살로메: 순진한 사람……
(살로메는 요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살로메를 바라보던 요한. 서서히 살로메의 눈꺼풀이 내려간다.
요한은 놀라서 살로메의 상태를 살핀다. 그러나 아파서 눈을 감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 어떤 때보다 생기 있는 모습으로, 붉어진 뺨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살로메.
눈치없는 요한은 그제야 상대의 뜻을 알아차리고 쩔쩔맨다.
묘한 공기가 감돈다. 둘의 입술이 가까워지고 있다.
달콤한 향기에 눈 앞이 아찔하다. 움직일 수가 없다.
뻣뻣하게 굳은 요한은 속수무책으로 자기 운명을 받아들인다…….)
요한: 으, 아으, 아아아아……
“카카니아! 지진이 났는데 괜찮따흐앙”
문을 열고 들어온 하인리히를 유령이 전공 서적 모서리로 후드려팼다.
“하인리히!! 안 돼!!”
카카니아가 소리를 질러도 유령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 죽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힘차게 팔팔하게 생기있게 하인리히를 패고 패고 또 팼다. 정수리도 내려찍었다.
“잔인한 자식!!! 500p짜리 전공 서적은 살인 무기라고!!”
“선생님! 거울 조각을 다 모았어요. 지금이 기회에요!”
이졸데가 바닥에 앉아서 조각을 짜맞추고 있었다. 금이 간 전신 거울이 놀란 카카니아의 눈을 비추었다. 자신과 마주치고 나서야 자기 역할을 떠올린 카카니아. 잠깐 요한이 되는 바람에 있을 뻔했지만 그녀의 본질은 선지자가 아니다. 의사다.
카카니아는 주저 없이 마도술 파동을 방출했다. 불청객이 문을 열어준 덕에 빛은 충분했고, 빛을 반사할 수만 있다면 거울은 제 기능을 한다. 전신 거울이 떠오르며 유령을 공격했다. 진정한 퇴마. 무대도 살로메도 없는 본연의 퇴마.
“—! ——! —!!”
유령이 발악했다. 아직 한이 남은 걸까?
그러나 자기 환자를 위협한 존재에게 자비란 없다. 유령은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팔딱거리다가 이윽고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헤롯의 형체가 햇빛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하늘로 사라진다…….
“…….”
퇴마가 끝났다.
“하인리히, 살아 있어요!?”
카카니아는 출입구로 달려가 쓰러진 남자의 맥을 짚었다. 하인리히는 의식이 없었다. 하긴 책 모서리로 맞았으니 멀쩡할 리가 없지만. 그래도 맥박과 호흡은 정상이었다. 다행이었다.
후우…… 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치료 마도술을 걸었다. 간단한 마도술을 걸어주면 금방 깨어날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정신에 따르면 의사는 환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불청객이라도 치료는 해줘야지. 그녀는 자신의 사명을 마침내 완수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쳐버렸다.
“흐어어어어어……”
비틀비틀, 구석으로 걸어간 카카니아. 소파가 바닥에 거꾸로 쳐박혀 있지만 아무래도 좋다. 우물만 아니면 된다. 소파 등받이에 걸터앉아 방석에 등을 파묻은 카카니아는 식은땀을 닦고 축 늘어졌다. 정말 긴 하루였다. 천국 문턱까지 갔다 온 것 같아…… 이대로 눈을 감으면 내일까지 죽은 듯 잠만 잘 자신이 있다.
그러나 옆에서 부시럭대는 소리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다가온 이졸데가 열심히 카카니아의 팔을 매만지고 있었다. 아참. 팔에 흐르던 피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치료해주려는 걸까? 그나저나 이졸데는 누군가를 치료해 본 적이 있을까? 다치게 하는 건 많이 봤다만.
그녀를 못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알아서 처치하는 게 서로를 위해서도 나을 것 같았다. 카카니아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팔의 상처를 고쳤다. 짠, 하고 팔을 보여주자 이졸데는 그제야 안심한 듯 미소지었다. 카카니아도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하하, 정말 수고 많았어요, 이졸데.”
“아니요, 전 아무 것도 못 했어요. 전부 선생님의 공로에요.”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 얼마나 잘 해줬는데.”
“아니에요, 선생님이 더……”
“아아, 됐어요. 그냥 우리 둘 다 잘 한 걸로 치죠, 뭐. 당신이 마도술이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잖아요?”
“헤롯과 칼싸움을 하던 장면 말인가요? 아마 그때 유령은 본 실력이 아니었을 거예요. 반의 반의 반 정도로만 힘을 내서 싸운 모양이던데요.”
“엥? 일부러 당해줬단 말이에요? 그럼 하인리히가 왔을 때는 왜 갑자기 부활한 거죠?”
“우리 둘 사이에 남자가 끼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대요.”
“뭔 소리에요, 도대체.”
이젠 딴지 걸 힘도 없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잠이나 자려는데, 몸 위에 누군가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뭔가 싶어서 보니 눈 한가득 이졸데의 가슴골이었다. 가슴. 속옷에 꽉 눌린 가슴. 부드러운 가슴. 아직도 속옷 차림인 이졸데. 속옷…… 허리를 감싸는 하얀 허벅지.
“이, 이졸데? 왜 제 위에 올라타는 거죠……”
“선생님, 저 다 나은 것 같아요. 당신 덕분에요.”
“엥”
“내면을 억압하지 말고 해방하라…… 그 말을 들은 순간 히스테리가 눈 녹 듯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아! 이런 느낌 처음이에요.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아요. 전 이제 고치를 뚫고 나온 나비에요.”
“그거하고 지금 이 동작하고 무슨 관계가…… 으읍!?!?!?”
“선생님……! 이젠 억압하지 않을 거에요!”
이졸데는 의사의 지시를 엄수하는 모범 환자다.
둘은 그제야 아무 방해도 없이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유령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그 장면’을 연출하면서.
물론 출입문은 활짝 열려있는 상태로.
다음 날 빈 일보의 헤드라인은 어느 스캔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느라 지면이 터져나갈 지경이었다고 한다.
‘빈 전체에 지진이 일어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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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서 아무도 안 읽어줄까봐 꼭꼭 숨겨왔던 소설
그냥 당당하게 맞서기로 해씀
이거 쓴 시기는 1.7 나왔을 때라서 인게임 설정이랑 다를 거임
예를 들어 카카니아에게 손거울이라는 도구가 가지는 의미 등등……
다 읽어준 놈 있으면 진짜 진심으로 고맙다 이렇게 긴 걸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야기 쓰는 실력을 더 키워서 진짜 감동적인 거 만들어서 여기 들고와보고 싶네
그리고 카카졸데는 진짜 전설이다……
촉/촉이 왜 금지어임???!?!??
쵹촉하게 만들어주맛
(녹)촉(녹)촉 - dc App
역시 카카졸데는 맛있구나 잘봤어
재능있어 많이열심히 써
살로메 소재로 유령극 재밌네 ㅋㅋ 창작은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