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상상해보자. 우리의 유능하고 성실한 타임키퍼 소대의 제 1조수 소네트 양 께서 파격적인 늑대 인간 코스튬을 입고 있는 모습을.
“음. 멋진 분장이네 소네트.”
대체 무슨 꼴이야? 라며 놀라 부끄럼을 타며 눈을 돌릴지도 모르겠으나, 그 모습이 너무나도 허무맹랑하니 되려 냉정하고 차분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알아차릴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 하나.
아, 이건 꿈이구나.
… 혹은 폭풍우가 찾아왔거나.
“그렇죠? 꼬리 만져 보실래요?”
‘음… 내 꿈속의 소네트는 참 저돌적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스스로 소네트의 그런 모습을 바라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좋아. 그럼 사양않고.”
복슬복슬한 편이구나. 늑대의 털은 제법 빳빳하다고 들었는데. 그보다 감각이 무척이나 생생하다. 영리한 보더콜리 한 마리가 처음으로 가방에 들어왔을 때 무심코 만지게 된 기억이 떠오를 정도로.
나는 한참을 소네트의 야생적인 면모를 쓰다듬었다. 체모라고 표현한다면 다소 표현이 광범해질 우려가 있으나 애니멀 테라피적인 의미의 교감이라고 생각한다면 썩 문란해지지도 않으리라.
“저어… 타임키퍼? 언제까지 쓰다듬기만 하실 건가요?”
그 질문을 한 시점의 소네트는 이미 내게 반쯤 안겨있는 셈이었다. 그보다 신경쓰이는 것은 ‘언제까지’ 보다는 ‘쓰다듬기만’의 ‘만’ 쪽이었다. 대게 이 경우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의향을 물을때 쓰이는 것이 아닌가.
“...음.”
이젠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우리 귀엽고 충성스런 강아지가 파격적인 분장을 한 줄로만 알았거늘 정말 한 마리의 야수가 되기로 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미안. 내가 너무 심취해 있었던 모양이야.”
시치미를 뗐다. 정확히는 손을 뗀 것 뿐이지만, 나는 불편을 끼쳐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흘러내린 모자를 고쳐쓰며 돌아섰다.
“타임키퍼? 어딜 가시려는 거예요?”
이때 눈치챘다. 이건 꿈이지만 전능한 권력을 가진 자각몽 같은 것이 아니였다. 루시드 드림은 어느 마도학자의 마도술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일 뿐이라는 저널을 마도학 잡지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악몽이라기엔 달콤했으나 두려웠다. 이건 정말 소네트인가? 내가 아는 소네트가 이리도 소름돋게 갈망하는 눈동자를 내게 보인적이 있었나? 닭살이 돋고 두려움이 엄습한 나는 도주할 수 밖에 없었다.
-
“허억… 헉…”
땀이 나고 숨이 가빴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가슴이 뻐근했다. 전력질주 후의 불쾌감 마저 생생했고 나는 정말 잘 뛰는 아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정말 질 나쁜 꿈이네.”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소네트에게 느낀 불쾌감 때문은 아니였다. 극적으로 도주해 온 장소가 너무나도 익숙하고 칙칙했기 때문이었다.
제1 방어선 학교, 그것도 나와 동기들이 탈출을 꾀하던 지하 통로였다. 두통이 악화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이봐 버틴! 빨리 와! 이쪽이야!”
…응?,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 모습을 둘러봤다. 앳되고 장난기 어린 눈을 가진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멋진 정장과 모자를 쓰고 그런 재밌는 표정을 지을 줄 모르게 된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나를 부르는 것은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하얀 원피스 처럼 보이는 교복을 입고, 함께 불러선 안 될 노래를 부른 아이였다.
“...그쪽으로 가면 안 될 것 같아.”
제발 그리로 가지마 고리, 이사벨라. 그 목소리를 전할 수 없도록 목이 매여왔고 아이들은 의아한 모습으로 어두운 터널 안으로 나아갔다. 정말이지 끔찍한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아냐. 정신차리자. 그냥, 질 나쁜 꿈일 뿐이야.”
재현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과거의 실책은 절대 잊지 않을 나의 원죄이기도 하니 그것을 없던 일로 하려는 꾀가 아님을 밝히고 싶다.
어찌되었든, 나는 정신을 되찾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소네트의 회심의 일격에 당해 돌이 된 어린 공군 경비원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리의 탈출은 성공적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리, 이사벨라, 레이디 Z, 그리고 폭풍우.
선명한 재현 속에서 나는 우산을 펼쳤다.
숭고한 수학자들의 노력과, 용감하고 냉철한 빈의 조사원, 거듭된 연구원들의 자기희생으로 태어나, 우리 ‘친절한’ 동기 메스머 주니어의 수고로운 봉사로 인해 건네받은 우리가 아는 그 우산 말이다. 호기심 가득하여 말썽을 부리는 어린아이는 이제 없었고, 나는 그것을 씌워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제 돌아가자. 너무 멀리 나가면 안 될 것 같아.”
빗방울이 우산을 두드리고 있었다. 우산의 무게를 지탱하는 손끝에 그 싱그러운 감각이 생생했다. 그 생생한 감각의 재현 속 오렌지의 향기가 났다.
-
“멋진 우산이네. 마스터.”
소더비와 소네트의 멋진 드라이빙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와이어하우저의 영애의 발등에 키스를 하며… 음? 아무튼. 아무튼, 극적으로 피아니스트를 쓰러트리고 금괴를 갉아먹는 이들 속에서 만찬을 즐기던 그리운 1929년. 슈나이더는 그곳에 서있었다.
“...이걸 만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거든.”
“후후… 겸손하기는. 나는 마스터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걸? ”
“음… 어디서 부터 이야기 해야 좋을까.”
이야기의 갈피는 금새 잡혔다. 폭풍우를 넘어오며 잠에 든 공주님이 된 이야기와, 그 탓에 동료들이 겪은 고생 이야기를 해주었을때 슈나이더는 무척 즐거운 듯 웃었다.
“나와 헤어진게 그렇게나 슬펐던거야 마스터? 귀엽기도 해라…”
얼굴이 아름답다거나, 머리 색깔이 깃털같아 마음에 든다거나, 참으로 적극적이고 솔직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소네트가 나를 위해, 또 슈나이더의 자그마한 복수를 겸하여 시카고 지부의 태만을 고발한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 또한 반응이 무척 좋았다.
“후후… 고지식한 아줌마는 어느새 충견이 된 모양이네. 조금 의외이기도 하고…”
“너희가 다시 만났으면 좋겠네. 잘 어울리게 될거라고 생각해.”
“어머, 마스터의 그런 순진무구한 감상을 놀려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슈나이더는 무척이나 좋은 기분인듯 하여 나른하게 웃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러게… 소네트, 그 귀여운 아이도 다시 만나보고 싶어라.”
“너무 괴롭히지는 말아줘.”
“후후, 그건 마스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
그 나른하고도 얄궂은 태도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패배를 모르는 화법이라고 생각하여 조금 치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라, 마스터의 웃는 얼굴은 처음 보는걸.”
자각은 없었다. 그저 이 풍경이 내게는 너무나도 즐거웠던 모양이지.
“부끄럽네. 우산 좀 들어줄래?”
이 풍경의 정체가 꿈이든, 악몽이든, 또 다른 무언가든 중요한 사실은 아닐터다. 남 보여줄 일 없는 한때의 추억이거나 언젠가를 그리며 꿈꾸는 이상향일테니.
“마스터의 부탁이라면야.”
슈나이더에게 들려준 우산이 살랑거렸다. 나비처럼 날아올랐고, 사뿐히 내려앉았다. 바닥에 떨어졌다고 한들, 더는 비가 오지 않았다.
“마스터…?”
우산 아래에서 슈나이더에게 입술을 포개졌던 것 처럼, 굴러떨어진 우산 아래에서 나는 슈나이더에게 키스했다.
“벙쪄있던 그때보단 잘하게 된 것 같지 않아?”
“...연습 상대가 있었던걸까?”
“...이런.”
자신만만했고, 그녀는 주눅들지 않았고, 허점을 물고 물렸다. 서로에게 총을 쏘며 오렌지를 할퀴던 때에 비하면 무얼, 축복스런 일이라고 해도 좋을테지만.
장난스럽고 난처했다. 웃음기가 줄어들수록 고양감은 넘쳐갔다. 이를 더 어찌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사를 나누었다.
“...”
“귀여운 나의 마스터. 어딜 보고 있는걸까. 날 봐야지.”
다소의 분함이 차있던 터라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그 애교어린 나긋함에 이끌리고 말았다.
“옳지 착해라. 분해하는 모습도 정말 사랑스러운걸.”
“...아냐, 슈나이더 딱히 분해하는게 아니라… 조금 분하기도 했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시점에서 깨닫게 되는 것도 무어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돌아보면 그래. 후회스럽고 미련이 남은 일들의 재현이었고 연속이었다.
눈꺼풀 한장만큼의 어둠에 휩쌓인 나를 슈나이더는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마지막 대사를 할 때였다. 그것이 이 꿈의 종식을 알려줄 마침표가 되어주리라.
“...고마워 슈나이더, 네가 그리울거야.”
그리움의 형태로 간직될 그것은 더이상 후회스럼이 남지 않았다. 응당 어둠으로 가득찼던 시계에는 빛으로 가득찬 눈부심이 남아 나는 더욱 세게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을 땐, 똑같이 앞을 볼 수 없어 두 눈을 손으로 덮고 있는, 커다란 안경을 쓴 귀여운 앵무새를 보게 되었다.
“...”
“...음. 비밀엄수를 위해 정신과 의사를 입막음 하려는 시도는 종종 일어나는 해프닝인거지?”
“우와악! 저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타임키퍼! 적어도 마지막 정사 부분은 정말로!”
카카니아의 마도술 재활과 심리적 안정을 위한 시도가 이런 일을 불러 일으킬 줄이야.
불행중 다행으로 그녀를 해하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면 좋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그녀는 실력좋은 정신과 의사였다.
“...오늘 본 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줘.”
허심탄회한 부탁과 함께, 모자를 눌러써 상기된 얼굴을 감춘다면 충분히 그 의미가 전해지리라.
“물론이죠. 네, 물론이고 말고요.”
카카니아는 동그란 눈을 지긋이 감으며 나긋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녀는 실력있는 정신과 의사였다. 그녀의 곁을 떠나 돌린 걸음은 한결 가벼웠으니.
“어라, 안녕하세요 타임키퍼. 뭔가 좋은 일 있으셨나요? 웃고 계신건 오랜만이네요.”
모퉁이를 돌아나온, 참으로 익숙하고 다행스런 하이얀 정복을 입은 소네트를 마주친 나는 말했다.
“재밌는 꿈을 봤거든, 네가 굉장한 옷을 입고 있는 꿈이었는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꿈속에서 소원을 이뤘구나 먼지 재밌게 읽었어요
역시 정실이야
저도글엇케생각해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보이저 정말 멋진 이야기야 넌 멋진 소수가 될 수 있어 - dc App
이런 멋진 글을 보니 새삼 버틴 정실 슈나이더가 그리워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