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니아가 언급한 카 운트 카(K. u. K)의 배경 설명글.
글을 여러개 올리긴 했지만 리버스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건 이 글 밖에 없으니 이것만 읽으면 된다.
다만 아주 배경 설명을 안 할 수는 없으니 1편과 2편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겠다.
1.오스트리아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독일의 옛 이름)이자 헝가리의 왕이었다.
2.신성 로마 제국에는 프로이센이라는 북부 대공이 있었다.
3.신성 로마 제국은 나폴레옹이 없앴고, 독일을 여러 국가들로 쪼개졌다.
메테르니히, 유럽을 다스리다
유럽을 지배할 기세였던 나폴레옹은 라임주스와 동장군 앞에서 기어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유럽 국가들의 절대 명제는 바로 다시는 나폴레옹이 등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였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폴레옹 같은 '혁명가'가 '유럽을 휩쓸고 지배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
그를 위해서 나폴레옹을 물리친 유럽 국가들이 한 합의의 결과가 '빈 체제'다.
빈 체제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만 언급하겠음.
빈 체제를 주도한 메테르니히는 오스트리아인이었고,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지위를 다시 되돌리는게 목적이었음.
그렇게 나폴레옹이 쪼개놓은 신성 로마 제국을 다시 합치고자 했는데 이게 바로 '독일 연방'이지. 쪼개진 독일계 국가들로 EU를 만들고, 그 대장이 오스트리아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게 막을 의무가 각 국은 있으며, 만약 그렇게 되면 그걸 막기 위해 군대를 파견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업적을 배경으로 메테르니히는 오스트리아의 재상 자리에까지 오른 메테르니히는 혁명을 막기 위해 열심히 자국에서도 각종 검열 정책을 시행하며 혁명의 감시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1848년, 혁명
이러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이 퍼트린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은 그칠 줄은 몰랐음. 특히 나폴레옹이 집권한 프랑스에서 말이지. 결국 참다 못한 프랑스인들은 1848년에 다시 왕을 쫒아 내고 또 한번 왕을 쫒아 내고야 만다.
근데, 이 혁명을 보고 다른 국가의 국민들도 '할 수 있다 우리라면!'을 외치면서 봉기하고야 말았으니, 혁명의 불길이 전 유럽으로 퍼졌고, 여기엔 오스트리아와 독일 전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이 혁명으로 인해 메테르니히는 물러날 수 밖에 없었고, 황제는 일단 군중을 달래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고무된 시민들은 의회를 결성하고 독일 전체의 여론을 수렴하고자 하니 이게 '프랑크푸르트 의회'였다.
마스에서 메멜까지, 에치에서 발트까지!
이렇게 모였던 독일 시민들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였다. 쪼개진 독일을 하나로 합치고 프랑스처럼 '독일인들의,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거지.
그래서 이 의회는 처음에는 합스부르크 왕이 예전에 독일 전체를 지배했으니, 다시 독일인의 황제가 되어 달라는 요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보헤미아 왕국을 직할령으로 두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보헤미아 왕국이 전통적으로 독일의 전신인 '신성 로마 제국'의 소속국이기는 했는데 얘가 '독일인'이 아니었다는 거다. 아주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제국 내부에서 슬라브계 소수 민족들의 땅이 바로 보헤미아였거든. 신성 로마 제국을 다시 만들면 또 몰라, 독일인들 '만'의 왕국이라고? 이에 보헤미아인들은 프라하에 모여 '범 슬라브 회의'를 결성해 이에 맞서고자 했다.
그리고 또 또 문제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왕인 합스부르크 왕은 헝가리의 왕도 겸한다고 말했지? 얘들도 당연히 '독일인의 제국'에 합류할 생각이라고는 단 한치도 없었거든. 얘들은 애초에 신성 로마 제국에도 소속하지도 않았고, 민족도 독일인이 아니라 마자르인이니까.
결국 보헤미아와 헝가리에서도 혁명이 터지고 말았는데, 문제가 문제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은 북부 이탈리아도 손에 넣고 있었거든?(그야 로마잖아), 뭐 진작에 통치권을 잃어버리긴 했다만, 아무튼지 그래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직할령인 이탈리아 영지도 분명 있었거든. 당연히 거기서도 혁명이 터졌고, 여기는 그걸 넘어서 이탈리아에서도 혁명을 지원하기 위해서 군대를 보냈다.
복고
그러나 합스부르크의 장교들은 절대 이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군인들이 분리주의자들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단 하나였다. '총알'. 그렇게 결국 군인들은 혁명이 일어난 보헤미아와 이탈리아로 진군했고, 나폴레옹을 절대 못이기던 이 군대는 자국민들을 밟아주는 건 아주 잘 해냈고, 보헤미아와 이탈리아에서의 소요는 그렇게 진압되었다. 헝가리 빼고. 여기는 제국 땅 아니어서 못 밟았나봐.
그런데 헝가리는 헝가리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다. 헝가리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기는 했는데, 헝가리 왕국에도 헝가리의 주류 민족인 마자르인 말고 다른 민족도 많았거든.
얘들은 헝가리의 지배를 받으나,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으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해서 혁명에 미적지근 했다.
뭐 이 정도만 하면 아주 다행이었지, 아예 '나는 합스부르크 편이다!'를 외친 쪽도 있었는데, 크로아티아가 그랬다.
헝가리에서 반란 터지자 마자 크로아티아의 총독 옐라치치는 의회를 설득해서 '헝가리 왕국에서의 독립'을 선포해버렸거든. 그렇게 헝가리는 헝가리 대로 힘든 싸움을 치른 끝에....
지지는 않았다. 의외로 선전했다. 이대로 가다간 헝가리는 영영 오스트리아의 지배에서 멀어질 것 만 같았다.
근데 여기서 러시아가 또 개입해서 헝가리에 군대를 보내버림. 이쪽은 헝가리 땅을 낼름 삼키려는게 아니었다. 오히려 앞서 말했던 빈 체제에 따라서 헝가리 왕국을 작살내고 오스트리아 품에 돌려주는게 목적이었어. 왜냐하면 이 때 러시아에도 소수 민족 많아서, 찔리는 게 있었거든. 결국 헝가리에서의 반란은 진압되었고, 군인들은 이제 오스트리아 내부 독일인들의 의회에도 엄포를 내리니,
"의회는 놔 두겠지만 오스트리아는 단 한 조각도 쪼개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작은 독일이라도...
일이 이렇게 돌아가니 독일 연방에서 오스트리아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어쨌건 쟤들을 빼 놓을 수는 없는데, 자기들이 봐도 헝가리를 집어넣은 독일 제국이라는게 불가능해 보였거든. 근데 오스트리아 쪽에서 오스트리아 전부를 집어넣지 않으면 독일 통일은 없다고 하는데 어째.
그래서 차선책으로, 일단 오스트리아를 빼 놓고 독일이 뭉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걸 '소독일주의'라고 하는데, 그래서 누굴 위주로 독일을 하나로 뭉칠까 하니 그게 바로 프로이센이었음. 앞서 글에서 나왔던 독일 연방의 북부 대공....아니 변경백이었고, 오랜 역사를 가진 독일 내부의 2인자였다.
근데 프로이센의 왕이 이걸 또 거부해버렸다. 이유가 가관인데 "상놈들이 만든 관을 어떻게 귀족이 쓸 수 있겠음?"이다.
결국 대안 마저 흐지부지되고 독일 통일의 꿈도 흐려지기 시작하니 1848년 혁명은 동력을 잃어버렸고 통일의 꿈은 가라앉았다.
독일 제국
그렇지만 오스트리아도 프로이센도 독일 통일을 하고 싶지 않은 건 전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대로 "합스부르크가 다시 신성 로마 제국을 지배하는 것"에는 매우 관심이 많았고 프로이센 국왕님도 "...그런데 상놈들이 아니라 제후들이 추대 해준다면 기꺼이 황제 하겠다"는 단서를 달았거든. 사실 독일의 제후들도 여기에 꽤 관심을 보여서 프로이센에게 '제후들의 관'을 씌워주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는데, 오스트리아랑 러시아가 '그럴꺼면 우리랑 전쟁하자!'라고 외치는 바람에 일단 무산되었다.
그러나 프로이센은 독일 패권을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주도한 것이 "철혈 재상"으로 유명한 비스마르크다. 결국 누가 독일을 통일하게 될지는 전쟁이 결정하게 되었고, 승자는 프로이센이었다.
그렇게 프로이센은 독일을 통일했고, 오스트리아는 독일에서 떨어져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했다.
(사실 더 정확하게는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은 이후다만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음)
대타협
합스부르크는 독일 연방을 영영 잃어버렸다. 프로이센과의 전쟁 와중에 이탈리아계 영토 또한 이탈리아에게 할양해야 했다. 제국은 침체에 빠지는 듯 했고, 이건 헝가리인들에게 또 다른 기회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헝가리는 들끓기 시작했고, 오스트리아는 또 다시 해체의 위기에 놓이는 듯 했다.
그러나 독일도 잃었는데 헝가리까지 잃어버릴 수는 없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뼈를 깎는 심정으로 헝가리인과 타협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헝가리가 받아들이냐였지.
그런데 헝가리도 헝가리 대로 사정이 많았거든. 혁명의 불길이 끓어오르니 저번에 헝가리를 괴롭혔던 헝가리 내부의 소수 민족 문제가 다시 또 들끓기 시작한거야.
결국 합스부르크도, 헝가리도 마냥 강경하게 나가기엔 아쉬운 점이 각각 많았고 이에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합의안을 내 놓으니 이것이 대타협이다.
제국은 '제국령'과 '헝가리 왕국' 둘로 나뉘었다. 양쪽은 각각 별개의 의회를 두고, 법률도 별개로 두었다. 행정부도 별개로, 외교부도 별개로 두고 여권도 따로 썼다.
다만 국방부와 외교부의 장관은 '공동으로' 임명하고 각국의 부서를 함께 관할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두 국가의 왕으로써 각각의 의회를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말 그대로 두개의 왕국, 하나의 왕의 체제였다.
그리고 외견상의 변화도 눈에 띄었는데, 제국의 이름을 "제국 평의회가 대표하는 왕국과 영토들 및 거룩한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 왕관령"으로 개칭한 것이었다.(합스부르크 제국의 '독일이었던 부분'을 가리키는 공식 명칭은 없었다, 다만 '라이타 강의 이쪽' 정도 되는 의미인 시스라이타니아라는 말로 불리고는 했다). 이걸 줄여서 "제국령과 왕국령"이라고 칭하고는 했고 이걸 독일어로 쓰면 kaiserlich und königlich가 된다.
카카니아가 말한 'K.U.K'가 바로 이것. 제국과 황실이라는 번역은 오역이고 "제국과 왕국"이라고 해야 옳은 거다.
어찌되었건, 제국은 타협을 통해 평화를 되찾은 듯 했다.
남은 불씨들
그렇지만 제국에 남아있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었다. 보헤미아인들은 헝가리 만큼이나 세력이 있었지만, 독립된 왕국을 얻어낼 수 없었다. 헝가리 내부의 소수 민족 문제도 계속 들끓고 있었다. 독일의 민족주의자들도 독일 연방으로의 복귀를 갈망하고 있었다. 자신의 땅을 갈망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땅이 자유로워지는 것을 바라는 자유주의자들은 황실을 경멸했으나, 쪼개지려는 제국을 간신이 묶고 있는건 결국 그 경멸받는 황제였다.
그래도 제국은 50년간은 간신히 연명하는 듯 했다. 그렇게 1914년이 찾아왔다.
2편짜리도 아니고 3편짜리 글이고 그것도 정말 하루종일 붙잡아서 쓰고 있었네.
어쨌건 여기까지. 3편 읽어준 사람은 정말 수고 했고, 이 글 만 읽는 사람이라도 꽤 길었을텐데 고생했다.
널 역사글 싸기 종신형에 처한다
머야 아직 안 봤는데 스토리에서 카운트카가 제국과 황실이라고 나왔네?ㅋㅋㅋㅋ 하오플!!!!!
꽤나 길다란 시대적 맥락을 다루었는데 쓴 사람도 고생많았음ㅋㅋ
재밌다 계속 써줘 역사글 꿀잼임 ㅋㅋ
드디어 이제
대오스트리아 합중국이 빨리 받아졌거나 세르비아 분탕력이 약했다면 어떻게 됬으려나... - dc App
카이저리히 운트 쾨니크리히!
이탈리아 북부지역이 독일말 쓰고 독일 문화 쓰던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안 것 같다 고맙다
와 저 한국어 대사 진짜 너무하네 ㄷㄷ 암틈 정말 잘 썼다 고생했어!
복잡한 실타래 풀어내느라 수고했어!!
꿀잼꿀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