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 양, 이런 종류의 문답은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어요."

둥둥 떠다니는 사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스스로의 실수를 알아채고 어투를 낮추었다. 이미 누차 반복된 일이었다.

"왜?"

"또, 또.."

사과는 본과(果)답지 않게 언성이 높아질 뻔한 것을 침착하게 가다듬었다.

"리버티 양, 제가 여러 번 설명하지 않았나요?"

"뭘?"

왜? 가 아닌 다른 의문문을 끌어냈다는 것이 그나마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금은 비참한 타협이었다.


"어떤 주제나 사상이건 간에.. 제 말은, 정말 '어떤' 무언가든 간에.. 거기에 끊임없이 왜? 를 붙이다 보면 결국 그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왜?"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그건, 리버티 양. 우리 모두가 결국 어느 정도는 무지한 채로 이 세상에 왔기 때문이랍니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쉬이 알아들을 표현들은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상관이라기보다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벗어날 수 없는 물음표들의 그물에 사로잡힌 APPLe로서는 즙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으니.


"동서고금을 통틀어 사람들은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었지요. 태양이 뜨고 지는, 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이는 이유, 물건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 그런 것들을 그리고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하여 증명할 수 있었어요. 중력가속도는 얼마, 빛의 속도와 지구의 자전 속도는 얼마, 이런 식으로요..

여기까지 이해되었나요?"

플러터페이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 아이는 그냥 반복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왜?" 폭탄을 날려대지 않는다는 뜻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APPLe에게는 더욱 골치 아픈 일이기도 했다. 아이는 말하자면 정말 알고 싶은 것이었다. 왜 "왜?"를 계속하면 결국 그 끝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건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데 그렇게 밝혀낸 세상의 구조들.. 말하자면 숫자로, 사칙연산과 등식으로 환원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왜' 그렇게 되어있는지. 왜 더 높거나 낮은 값이 될 수는 없는지. 왜 양변이 같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답니다."

사과가 보이지 않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밝히는 것과, 그것이 "왜" 그런지 밝히는 것 사이에는, 어쩌면 그런 합목적적인 설계가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왜애?"

그 회심의 질문을 실로 적재적소에 얻어맞은 사과가 소리지르는 광경을 보았다고 해도 누군들 믿겠는가? 초롱초롱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입을 모으고 현명한 사과 아저씨의 정신머리를 괴롭히는 꼬맹이가 그런다고 신경이나 쓰겠는가? APPLe은 그리하여 마음껏 들리지 않는 탄식을 토해냈다. 상큼한 사과즙 냄새를 풍기며.


"어이, 일등항해사!"

플러터페이지는 고개를 돌려 새롭게 등장한 인물을 바라보았다. 구세주처럼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20세기 중엽의 로큰롤 해적 레굴루스였다.

"어디 있나 한참 찾았네. 이런 데서 뭐해?"

레굴루스는 계단을 종종걸음으로 내려오며 물었다.

"선장님, 저는 아마도.."

뒤따르는 한숨 소리. 플러터페이지는 그것을 듣고 잠깐 다시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레굴루스에게로 돌렸다.

"아마도 이.. 꼬마 아가씨에게, 왜 어떤 것들은 '왜?'의 대상이 될 수 없는지 이해시키려던 것 같습니다."

"아아, 공부하고 있었어?"

대수롭지 않게 넘겨짚는 레굴루스의 말에 두 당사자 모두 의아한 표정과 몸짓을 했다. 한쪽은 그런 것이 공부일 리 없다고 여겼고, 다른 쪽은 이런 게 공부라면 딱히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이 언니가 아저씨의 선생님이야?"

"그런 건 아니지만.. 선장님. 혹시 선장님도 몇 마디 보태주시면 어떨까요?"

레굴루스는 입가를 쫑긋거리며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양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그런 걸 갖고?"

푸후. 그런 맥빠지는 소리와 함께 레굴루스가 고개를 옆으로 까딱거렸다. 그러더니 부러 잔뜩 힘을 준 런던 경찰의 성대모사를 하듯 일갈하기를.

"그런 먹물 냄새 나는 일은 자네가 도맡아 해야지, 일등항해사!"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저, 조금 생각해보면 자명한 일이라는 거예요."

날아다니는 사과는 거의 간곡하게 말을 이었다.

"어떤 사실에 대해, 세상의 요소에 대해서 왜? 왜? 왜?.. 를 끊임없이 하다 보면, 결국 그 끝에는 아무것도 남을 수 없잖아요. 결국 그러면.."

"아하. 알겠어."

레굴루스가 말했다. 그녀가 손뼉을 치며 이야기를 요약하되-

"결국 계속 고찰을 거듭하는 순간 세상의 배경이자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형이상 혹은 형이하적인 임의의 대상들이 원래부터 그런 모양으로, 그런 관계로, 특정한 임의의 비례를 갖는 법칙에 묶여있다는 걸 직면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 왜? 라는 질문이 마지막으로 던져지는 순간 그건 '원래부터 그랬다.'라거나 '어쩌면 조물주의 섭리일 거다'와 같이 변명처럼 들리는 대답밖에 남을 수 없다는 뜻인 거지?"

레굴루스는 말을 마친 뒤 방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진 것을 보았다.


"뭐야, 왜들 이래?"

그녀는 눈앞에 있는 하나의 사과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석상처럼 굳어버린 어린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고.."

"그러면, 언니가 대신 대답도 해줄 수 있어?"

플러터페이지가 성큼 레굴루스에게로 다가섰다. 누더기를 모아 빚은 누더기 같은 옷차림새가 수더분하게 그 궤적을 덧씌웠다. 그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레굴루스는 문득 아이의 두 손이 자신의 것을 꼭 잡고 있는 것을 알았다.

"왜 어떤 건 원래 그렇거나, 원래 안 그렇거나, 왜 어떤 건 끝까지 '왜'?를 붙일 수 없는지 말해줄 수 있어?"

심오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불경한, 어쩌면 금기시되는 질문이기도 했다. APPLe은 자신이 사람이었더라면 이 순간 침을 삼켰으리라고 생각했다. 역사를 통틀어 숱한 사람들이 그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동문과 스승들에게, 나아가 왕과 장군과 제사장들에게 던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 명쾌하게 만족시킬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질문을 들은 레굴루스는 고민했다. 플러터페이지가 잡지 않은 한 손을 허리춤에 댄 채, 턱을 비스듬히 기울인 채, 투명한 레코드판의 연주라도 듣듯이 발부리로 리듬을 맞추며 고민했다. APPLe이 보기에는 위기였다. 외통수였다. 장고가 이어질수록 결국 최초의 완전무결한 질문(왜?)에서 벗어난 장광설이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자랑스러운 로큰롤 해적선장도 말허리를 끊으며 무아지경으로 펼쳐지는 플러터페이지의 "왜?" 안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넌 좌우간 뭔가가 '왜' 그러냐고 물어본 거지?"

레굴루스가 말했다.

"뭔가가 왜 그런지, 왜 그렇지 않은지."

"응, 왜?"

플러터페이지가 강조했다. 그러자 레굴루스는, 선글라스 너머로도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크고 믿음직한, 거의 만화에서나 볼 법한 미소를 짓곤, 곧바로 입을 열기를..

"왜 안되는데(Why not)?"


그 한마디와 함께, 레굴루스는 다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