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 찬 콘크리트 냄새. 퀴퀴한 공기.


차갑고 딱딱한 바닥. 몸이 저릿하다. 여기는 여행 가방 안이 아니다.


의식이 돌아온 튜즈데이는 회백색 벽과 천장으로 둘러싸인 방 안을 살펴보았다.


미약한 빛의 전등 하나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낡은 잡동사니가 굴러다니고 깨진 거울과 세면대 따위가 벽에 붙어있다.


창문이 없어 여기가 지상인지 지하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저벅. 저벅.


벽 너머에서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철문의 손잡이가 돌아가더니 실내를 향해 문이 열리고, 한 여자의 실루엣이 문간을 가득 채웠다.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튜즈데이는 이제야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가지 드는 의문은 어떻게 자신이 깨어난 순간에 딱 맞춰 모습을 드러냈냐는 것이다. 그저 우연에 불과할까?


방에 들어선 아르고스는 문을 닫았다. 


그녀의 한쪽 손에는 커다란 공구상자가 들려있었다. 


'드디어 너랑 나. 둘만 남았네.'


아르고스의 발걸음이 방안을 울렸다. 그녀가 튜즈데이를 향해 다가왔다.


'그렇네요. 버틴의 여행 가방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으니 말이죠.'


아르고스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튜즈데이와 한차례 눈을 마주치더니 손에 쥔 공구상자를 바닥에 내려놨다. 


잠금장치를 열고 뚜껑을 위로 젖히자 3단짜리 접이식 공구상자의 내부가 펼쳐졌다.


망치, 니퍼, 스패너, 줄톱, 버너, 전동 드라이버.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공구가 즐비했다.


투박하고 거친 도구 사이 이질감이 드는 물체 하나가 눈에 띄었다. 플라스틱 튜브로 봉입된 주사액이었다. 아르고스는 가장 먼저 그것을 꺼내 들었다.


'이 약물은 네가 쇼크사하는 걸 방지할거야.'


그녀는 간단하게 자신의 의도를 함의했다.


아르고스가 튜브의 한쪽 모서리를 잡아당기니 작은 주삿바늘이 포장재를 뚫고 나왔다.


투명한 액이 바늘 끝에서 새어 나왔다.


튜즈데이는 별로 저항하는 기색이 없었다.



---



투두둑.


튜즈데이의 하얀 앞치마 위로 붉은 선혈이 떨어졌다.


평소 튜즈데이가 품에 안고 있던 저주받은 태아, 스위트홈은 이 자리에 없다. 아이와 분리된 어미는 그 어느 때보다 무방비했다.


'나도 충분히 알고 있어. 너라는 종자와는 지난번에 실컷 엮였으니까.'


아르고스는 77번 국도에서의 악몽을 회상했다.


'네 몸을 쥐어짜서 얻을 수 있는 건 고작 해봐야 비명이랑 혈액 2L 정도겠지. 

넌 한번 마음먹은 이상 내가 원하는 걸 내줄 생각이 없잖아?'


아르고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쩌저적..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지.'


펜치 끝에 잡혀있던 손톱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르고스는 의도치 않았으나, 방금 뽑힌 손톱이 5분전에 뽑혔던 반대쪽 손톱 바로 옆으로 떨어졌다. 


양손의 약지 손톱 두개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짝지었다.


'후훗..'


튜즈데이는 통증으로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작은 우연을 발견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이른바 "나쁜 기적"이었다.


'이 정도로는 아직 여유가 있나 보네.'


아르고스는 다른 공구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튜즈데이는 줄곧 말이 없었다. 그저 아르고스의 유희에 순순히 응할 뿐이었다. 



---



며칠이 지났을까. 


튜즈데이는 엄습하는 신체적 고통에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기는 하지만 굴복할 기세가 전혀 없었다. 


아르고스는 용병답게 효과적으로 고통을 가할 방법을 계산했지만, 똑같은 반응이 이어지며 변화가 없자 초조함을 느꼈다. 


인간의 목숨을 유지한 채, 앗아갈 수 있는 신체 부위는 한정되어 있다. 


어느새 지쳐버린 아르고스는 신경질적으로 튜즈데이의 턱을 후려치기도 했다. 조금도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그 순간이 왔다.


아르고스는 거칠어진 자신의 호흡을 가누는 통에, 처음에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똑똑히 보았다. 


튜즈데이가 벌벌 떠는 모습을.


그녀 조차 물로 가득찬 수조 속에서는 인간의 생리적 본능을 거스를 수 없었다. 


튜즈데이는 저항했으나 아르고스의 팔은 손톱 자국 하나 남지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공포에 몰린 여느 인간이 그러듯 나약하게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방 한쪽에서 흘러나왔다.


'이제 너도 느껴지나 보네.'


아르고스는 성취가 가져다준 희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발 밑에 웅크리고 있는 존재를 조금이라도 동정했다가는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제 내 질문에 답할 마음이 생겼나?'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튜즈데이는 멍이 들어 시퍼런 눈을 떨었다.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소리는 처음엔 알아듣기 힘들었으나 조금씩 음을 갖추어 말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수준 미달이에요. 아르고스. 

당신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는군요. 

진부한 공포는 예의바른 아이들마저 진저리를 친답니다.'


비명을 지르느라 목구멍이 갈라지고 입천장에는 피딱지가 말라붙었음에도 불구하고 튜즈데이는 메이드로서의 기품을 담아내었다. 그녀의 악취미는 여전히 생동했다.


아르고스는 쓰디쓴 실망감을 맛보았다. 


상자에 손을 뻗어 아무 공구나 잡히는대로 주워 들고는 튜즈데이를 일으켜 세워 벽에 밀어붙였다. 


'원하면 몇 주고 몇 달이고 어울려줄게. 너와 내가 바라는 건 정해져 있으니까 말이야!'


그녀는 오른손에 잡힌 망치를 높이 들어 올렸다.


'말해!'


아르거스가 소리쳤다.


'말하라고!'


'그럴 일은 없어요..'


터져서 곤죽이 된 입술 사이로 작은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아르고스는 망치를 내리쳤다.


단단한 둔기는 옆에 놓인 세면대를 강타했다. 


세라믹 재질의 구조물이 부서지며 사방에 파편을 튀겼다.


'내가 네 두개골을 깔끔히 박살 내줄 테니까, 고통을 끝내고 싶거든 말하라고!'


잔뜩 흥분한 여성의 목소리는 어느덧 애원에 가까웠다.


'케일라는 어디 있어!'


아르고스가 다시 한번 망치를 치켜들었다


고개를 떨군 튜즈데이, 아니 크리스틴은 왼쪽 팔을 꿈틀거렸다. 


검지를 치켜들고 덜덜 떨며 올라가는 손은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방 한구석을 가리켰다. 


아르고스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깨진 거울?


수백수천 조각으로 쪼개진 유리 조각들은 방 건너편에서, 자신을 향하는 아르고스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뒤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튜즈데이였다.


..하지만 튜즈데이는 내 옆에 붙잡혀 있는데?


아르고스는 자기 왼손에 붙들린 피투성이의 튜즈데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시선의 언저리 또 다른 튜즈데이를 향해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피를 흘리지도, 물에 젖지도 않은 단정한 옷차림의 메이드였다.


'저의 정신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끈질기네요. 새삼 놀랐어요.'


그녀는 비웃음을 흘리며 초주검이 된 또 다른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관절이란 관절은 전부 반대 방향으로 꺾이고, 온몸이 멍 자국과 화상자국으로 가득하네요. 

 당신이 치아와 혀를 멀쩡히 남겨둔 이유는 대답을 듣는 데 방해되지 않기 위해서겠죠. 

 생명의 흔적을 사정없이 짓밟힌 비루한 몸뚱이지만 신경 체계를 타고 전해져오는 감각들을 여실히, 생생하게 느끼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도 제 폐는 아직 실낱같은 호흡을 유지하고 있어요.

 제 몸이니까, 아주 잘 알고 있지요. 

 고통으로 처참하게 무너진 주제에 어찌나 살고 싶어 하는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쉬지 않고, 

 쉬지않고 내지르며, 

 흐흐.

 아! 

 아..!'


미처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는지 튜즈데이의 장광설은 그 끝을 맺지 못하고 터져 나온 교성에 가로막혔다. 


그녀는 형용하기 힘든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에 비해 아르고스 곁에 있는 얼굴은 작은 미소하나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했다. 그저 한쪽 구석에 희미한 경련이 일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하나 이해되지 않는 적막 속에서 아르고스가 의지할 수 있는 감정은 오로지 분노뿐이었다. 


마도술로 내 정신을 뒤흔들 셈이야!


'악마 같은 년, 개수작 부리지마!'


그러나 튜즈데이는 어느 모로 보나 마도술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애초에 모텔이 아닌 그녀 본인은 어떤 종류의 마도술을 쓰는 거지? 


거울상의 튜즈데이는 후훗, 하며 웃어 보였다.


'안심하세요. 어차피 당신의 두려움은 아무런 영양가도 없으니까요.'


'뭐..?'


아르고스는 다시 한번 당황했다.


'지난번엔 질색을 표하셨지만 저는 여전히 당신이 훌륭한 어머니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조언해 드리자면 홀로 아이를 키우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에요.' 


그녀는 어느덧 거울 한쪽 모서리를 향해 사라졌다.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또 다른 거울 조각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남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빈곤한 환경에선 말이죠. 스스로를 쥐어짜서라도 아이를 편안하게 만들어 줘야 해요.'


그녀는 또다시 위치를 바꾸었다. 


반사광은 유리 조각, 흘러넘친 물웅덩이 등 사방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랍니다.'



---



이전, 재단에서 위험인자로 분류된 튜즈데이는 봉인 절차에 들어갔다.


타임키퍼 소대의 여행 가방에 갇히게 된 그녀의 아이는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더 이상 타인의 공포를 집어삼키지 못하게 된 초자연적인 존재는 그저 애타게 칭얼거리며 단 하나뿐인 보호자에게 의존해야 했다. 


크리스틴.


반사광이 내비친 기억을 전부 목격한 아르고스는 붙잡고 있던 반주검을 놓아버리고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나는... 뭐지?'


튜즈데이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이 모든 게 당신의 공포를 끌어내기 위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당신을 고문하기 위해 나타난 나 역시 실존하지 않는다는 거야?'


물웅덩이에 비친 여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이 악몽이 끝나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방 전체가 크게 울리며 진동했다. 


구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물웅덩이가 일렁이며 반사된 상의 비웃음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튜즈데이가 다시 한번 흥분에 몸서리쳤다.


'아하핫..

 이런 이야기가 그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걸 부정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인간성을 포기하고 받아들인 가학적인 광기, 기억 속 비극적인 상실마저 자신의 소유가 아닌 허상에 불과하다니...

 주어진 역할을 마치는 순간 무저갱의 공허 속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당신의 절망스러운 표정이란..'


흔들리는 방안에서 아르고스는 균형이 무너졌다. 그녀의 무릎이 바닥과 맞닿았다. 


얼굴 위로 양손을 움켜쥐며 현기증 나는 시야를 가리고자 했다. 


환상을 위해 급조된 아르고스의 자아는 실체 없는 과거와 기억 속에서 무수한 감정들로 덧칠되었다.


'본인이 모조품 인형이라 해서 너무 기죽지 마세요.'


방 전체에 울리는 굉음 사이 튜즈데이의 웃음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살인마들과 미치광이들에 대한 진부한 괴담이 전부 현실에서 일어났다고 해봤자 저는 조악한 진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아요. 

 이런 종류의 공포는 모텔에서 조차 보기 힘들었어요. 

 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구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뚝


진동이 멈췄다.


튜즈데이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방 한쪽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시선 없는 허공을.


'당신도 만족하셨길 바래요... 제시카.'


화면에 노이즈가 일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화면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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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화면이 관객들을 비추었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그들 가운데 제시카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와 모두를 돌아보았다.


'블로니! 블로니! 엄청난 영화였어!!! 다들 그렇지?!'


사슴 형태의 체인질링이 흥분한 듯 폴짝폴짝 뛰었다.


'호들갑 떨지마 제시카. 오늘 시사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내가 몇 주 전부터 촬영과 편집에 매달렸다고.

 이 정도의 걸작이 나오는건 당연한 수순인거야.'


주위에서 쏟아지는 호평에 득의양양해진 감독, 블로니가 콜라를 한 모금 크게 들이마셨다.


제시카를 위한 생일 선물로는 자신이 진심을 담아 제작한 공포영화가 역시 제격이라는 판단이었다.


'흠..튜즈데이랑 아르거스의 연기력은 흠잡을데 없어서 몰입하기 좋았어. 

 하지만 너무 자극만 쫓은 장면들은 오히려 호흡이 깨진다고. 

 마지막 반전도 전달력이 한참 부족하단 말이야.'


호러피디아의 날 선 혹평에 블로니는 반발했고 그와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했다.


소란이 일었지만 여전히 밝은 미소를 띤 제시카가 끼어들었다.


'난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들었어! 특히 튜즈데이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내 이름을 부를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 뭐야!'


춤추듯 기뻐하는 제시카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다.


'그런 장면이 있었나?'


'응! 그게 엔딩장면이잖아? 그러고 보니 그건 어떻게 연출한 거야? 두 명의 튜즈데이가 한 장면에 동시에 나오다니, 나 말고 다른 체인질링을 섭외한 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제시카? 여기 튜즈데이가 한 명 말고 더 있어?'


불쑥 나온 의혹에 접질린 관객 사이의 대화는 한동안 당혹스러움이 오고 갔다.


보다못한 블로니가 비디오를 역재생해 보려 다가갔으나 누군가가 제지했다.


'시간이 늦었어요. 이만 잠자리로 돌아가야죠.'


불평 섞인 아우성들이 결국 새어 나오는 하품을 이기지 못하고 제 방을 향해 각자 흩어졌다.


다음날, 비디오는 다시 발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