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심란해진 로페라는 계속해서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었다. 최근 생겨난 몹쓸 습관이었다.
타임키퍼 소대에 들어온 이후 로페라는 도박에 참여하는 횟수가 점차 늘었다. 도박의 짜릿함에 중독된 것이다.
도박판을 전전하며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들렀다. 여행 가방에서의 소소한 카드게임을 비롯해 라플라스의 보드게임 내기, 심지어 엄격한 재단 직원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주사위 놀이가 성행했다.
무모한 내기 속에서 지지부진한 결과가 이어지자 주변 마도학자들에게서 톱니동전을 빌리기 시작했고 한번 생겨난 빚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
이러한 일이 지속되자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멀어졌다. 결국 가장 친한 친구라 할 수 있던 던컨마저 진저리를 치며 그녀를 멀리했다.
어느날 버틴이 로페라에게 면담을 제안했다. 로페라는 무엇때문에 자신을 부르는지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버틴이라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줄지도 모른다.
로페라는 버틴의 방을 찾아갔다. 버틴은 그녀를 자리에 앉히며 차를 권했다. 로페라는 뭘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지만 사양하지 않았다. 버틴의 눈치를 살필정도로 위축된 상태였다.
버틴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의 상황은 잘 알고 있어.'
이렇게 운을 땐 그녀는 로페라의 주황색 눈을 마주보았다. 열정적이었던 소녀의 눈은 최근 빛을 잃었다.
'나는 근래 외근이 잦다는 이유로 소대원 상태를 살피는걸 소홀히 했어. 구성원의 일탈을 방지하는 것도 내 소관인데 너무 부주의했던거야.'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버틴의 태도가 오히려 차갑게 느껴졌다. 로페라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이미 재단 내에서는 너의 심리상태에 대한 분석과 규정 위반행위에 대한 보고서가 제출되었어. 소대와 라플라스 내부에서의 일은 내가 어떻게 손써볼 수 있겠지만 재단 윗선까지 제기된 문제는 심각성이 중대해.'
이는 재단 내부 타임키퍼 소대에 대한 위신을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버틴과 그녀를 따르는 모든 마도학자에 대한 자율성에 제재가 가해질 것을 의미했다.
로페라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손을 떨었다.
'괜찮아 로페라. 너무 걱정하지마. 우리는 생사를 함께한 동료인걸. 무슨일이 있더라도 너를 포기하지 않아. 나와 동료들이 사태 수습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거야. 하지만 로페라 너 스스로도 우리에게 협조를 해줘야 해.'
눈시울이 붉어진 로페라는 목이 매여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버틴이 제시한 협조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1.재단의 재활치료에 주 2회 참여할 것.
2.소더비의 항정신성 약물 처방을 받을 것.
3.어떠한 종류의 내기나 도박 금지.(판돈 여부와 상관없이)
4.재산 및 소득 관리는 임시적으로 뉴바벨의 개인 사업자에 위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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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이 지났다.
근신 처분이 끝난 로페라는 다시 현장에 복귀했다. 빚은 뉴바벨과 소더비가 일정부분 처리해 주었고 복잡하게 얽힌 보증 문제도 수완이 좋은 테넌트가 솜씨를 발휘해 말끔하게 해결했다.
로페라는 소대원들을 한 명씩 찾아가 그동안의 일을 정중히 사과했다. 진심어린 뉘우침에 친구들은 마음을 열었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여행 가방에서 로페라의 근신이 끝난 기념으로 파티를 열었다. 그녀는 모두가 모인자리에서 앞으로는 이전과 같은 일이 절대 없을거라 다짐해보였다. 던컨의 짓꿎은 농담과 안조 날라의 축하, 버틴의 덕담, 이 모든게 그저 다행스러웠다.
로페라는 절망스러웠던 몇개월 전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안정을 느꼈다. 마치 훈련장에서 몰디르의 무릎위에 머리를 베고 누워있던, 새로운 가족에 소속된 그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번 가족은 절대 자신을 배반하지 않을터였다.
로페라는 임무에 헌신하는 것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으로 여겼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전투에 임했지만 자신의 안위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 때문일까. 이번 작전지역에서 정찰임무를 맡은 로페라는 재건의 손 간부를 발견하고 이를 단신으로 추격하다가 그만....길을 잃었다.
동료들과의 연락도 끊기고 길을 물어볼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산한 거리에는 외부인을 경계하는 부랑자들만이 돌아다녔다.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지나가기 일수였다. 그러나 한 무리는 예외였다. 그들은 골목을 지나치던 로페라를 먼저 불러세웠다.
'아가씨, 혹시 바쁘지 않으면 여기 빈자리 좀 채워주겠어?'
4명의 남자가 원탁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앉아있었다. 로페라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 카드뭉치와 주사위, 지폐다발. 남자들은 담배와 술잔을 들고 한창 기분이 좋아보였다. 문득 상파울루의 향수가 느껴지기도 했다. 원탁 구석에는 의자 하나가 비어있었다.
태양은 낮게 기울어지며 빛을 발했다. 건물의 유리창이 이를 반사하며 거리를 노랗게 물들였다.
딱 한번만?
로페라의 뇌리에 충동이 일었다.
'아니! 아니야!'
로페라는 임무에 집중해야했다. 동료들이 연락이 끊긴 그녀를 걱정하고 있을터였다.
로페라는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에서 울려퍼지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등 뒤로 멀어졌다.
그런데 그 끄트머리에서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 로페라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쫓던 재건 간부의 이름이다.
다시 골목에 다가간 그녀는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쪽을 등진 탓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로페라는 결심을 굳히고 원탁의 무리로 다가갔다. 빈자리에 앉은 그녀는 맞은편 남자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잭팟!
남자들은 기뻐하며 로페라를 환영했다. 검은 옷의 재건 간부가 말을 걸었다.
'게임 규칙은 알고 있겠지 아가씨?'
수염으로 거뭇한 입이 씨익 웃어보였다.
모든 것을 걸면 모든 것을 받아낸다.
로페라는 자신 앞에 던져진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닿으면 정전기가 나기라도 하듯 선뜻 손을 뻗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섣불리 상대를 붙잡으려 하다가는 놓칠 우려가 있었다.
조금만..
재건 간부가 긴장이 풀린 순간을 노려야한다.
조금만 하는거다. 조금만..
로페라는 카드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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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라와 동료들은 임무에서 복귀했다.
사람들은 로페라의 공적을 치켜세웠다.
보고를 마친 그들은 잠시 잡담을 나누다 휴식을 취하러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로페라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갑자기 명치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그녀는 이를 부여잡고 침대위로 쓰러졌다.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물을 마시려고 팔을 뻗자 손이 덜덜 떨렸다.
그 날 이후로 로페라는 이상 증세를 보였다. 식사 시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임무중에도 한눈이 팔린 듯 했다. 모두가 걱정하며 말을 걸어왔지만 그녀는 둘러대기 일수였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로페라는 다시 한번 버틴과 대면했다. 이번에는 버틴의 방이 아니었다. 재단 건물의 면회실이었다.
버틴은 담담하게 여태까지의 상황을 정리하고 앞으로 진행될 절차를 설명해주었다. 이를 전달해야할 재단 직원은 따로 있었지만 버틴은 자신이 직접 통보하는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로페라는 타임키퍼 소대에서 해임된다. 그동안 재단에서 제공한 복지와 예우 또한 모두 박탈된다. 단, 그녀가 쌓은 공로와 기밀 등급을 감안하여 그녀에게 재단 남미 지부의 2급 행정보조직을 제안한다. 제안은 통보즉시 효력을 발휘해 7일 이내에 수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남미 지부의 특성과 해당 보직의 역할을 생각해봤을때 사실상 기밀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너를 감시하는 형태에 가까울거야.
버틴이 덧붙혀 설명했다.
로페라의 눈은 공허했다. 파국이었다.
로페라는 과거 두 차례의 배신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처음은 친부모에게서, 그 다음은 양부모에게서, 좌절한 그녀는 무언가를 놓아버린듯 도박이 안겨주는 쾌락에 자아를 의탁했다. 그러나 이번에 충성을 배신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로페라 자신이었다.
'버틴. 다른 방법이 없을까?'
'...'
'제발 한번만 더 기회를 줘. 나는 더 이상 혼자가 될 수 없어. 너희는 내 가족이란 말이야.'
버틴은 답하지 않았다. 로페라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맞아. 내가 모든걸 망쳤어. 전부 내가 자초한거야. 내게 안겨준 친절을 아무것도 아닌듯이 뿌리치고 나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굴었어. 나를 소중히 여긴 사람들의 믿음을 배신한거야.'
'여행 가방 속 누구도 너를 원망하지 않아. 단지 너를 걱정할 뿐이야.'
견디지 못한 버틴이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로페라는 이미 이성의 끈을 놓았다.
'버틴 이제 나는 혼자야. 내 총은 어디있어? 직원들이 내게서 압수해갔어.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던건 그것 밖에 없단 말이야!'
로페라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로페라 내 말을 들어줘. 나는 이전에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어. 난 내 약속을 지킬거야. 네가 돌아올 수 있도록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거야. 그러니 너도 부디 포기하지 말아줘.'
그녀의 표정은 결연했다.
'버틴... 고마워, 고마워...'
그렇게 말한 로페라는 돌연, 자신의 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로페라.. 왜 그래?'
그녀는 조끼를 벗어두고 셔츠 단추에 손을 댔다.
'지금 뭐하는거야?'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걸 생각해봤어.'
버틴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저항하는 양팔을 붙잡았다.
'그만둬!'
윗단추가 풀어진 셔츠 사이로 그녀의 쇄골과 고운 살결이 보였다.
'네가 여행 가방에 보관한 빨간 드레스를 봤어. 옷의 주인이 누구인지, 너랑 무슨 관계였는지 얼마전에 알게 되었어.'
예상치못한 사람이 언급되자 버틴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너도 혼자 괴로웠지? 난 그것도 모르고 네가 모든걸 해결해주길 바라며 마냥 의존했던거야. 내가..내가 그 사람의 빈자리를 채워줄게. 네가 무엇을 원하든지 내가 도와줄게.'
버틴은 표정이 굳었다.
붙잡고 있던 팔을 놓고 뒤로 몇걸음 물러났다.
로페라는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말 그대로 무엇이든지 따를 작정이었다.
'무엇이든지?'
로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틴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양손을 감싸쥐었다.
'네가 그걸 원한다면..'
로페라의 머리결 사이로 오렌지 향이 났다. 남미의 작열하는 태양아래 달콤하고 새콤한 열매는 풍부한 즙이 가득 채워졌다.
과육의 가운데에 엄지를 찔러넣고 양쪽으로 벌리면 알알이 가득찬 과즙이 터져나오며 상큼한 향을 풍긴다.
'내가 원하는게 한가지 있어.'
로페라는 덜컥 겁이 들었다. 버틴의 다음 말을 듣고싶지 않았다.
'네가 자기 자신을 찾길 바래.'
버틴은 손을 놓고 자리를 떠났다.
로페라는 홀로 남겨졌다.
그녀는 망연자실하게 창문 밖을 보았다.
거기에는 나무가지 위, 새 한마리가 앉아있었다.
로페라와 눈이 마주친 새는 금방이라도 날아갈듯 흔들리는 가지 위에서 시선을 고정했다.
미친새낀가 ㅋㅋ
개잘썼네 ㅋㅋ
로페라에게 왜그레...
그러게 블루포치 정말 나쁘다
얼탱
로페라는 이게 맞다ㅋㅋㅋ
크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