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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를 마친 메스머 주니어는 복도에서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 



야근과 당직이 근 몇 주간 이어졌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재활센터에서 오늘 같이 정시에 퇴근하는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퇴근에서 오는 해방감도 그녀의 표정을 밝게 만들지는 못했다.



환자들의 절규와 고성이 여전히 머리 속을 멤돈다.



정신이상자가 중얼거리는 헛소리와 신경질적인 태도들.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같이 불쾌한 자취. 메스머는 오늘 있었던 기억들을 애써 털어버리고 숙소로 돌아가고자 했다.



'안녕하세요, 메스머 씨. 퇴근하시는 건가요?'



한 여자가 말을 걸었다. 암호해독 부서의 연구보조원, 도라였다. 



'네, 도라 씨. 여유가 있을때 제 방에서 제대로 휴식할 생각이에요.'



일반적인 용무라면 도라가 재활 센터에 방문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이곳에 들린 목적을 파악한 메스머는 서둘러 자리를 뜨고자 했다.



'혹시 저번에 말씀드린 동아리 활동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셨나요? 가끔은 서로 만나기 힘든 연구원끼리 친목을 다지는 것도 즐거울거에요!'



일명 "실내 정리 및 정신 조정 명상회." 도라는 이 사내 동아리의 부회장을 겸하고 있었다.



메스머는 여전히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혼자 지내는게 편해서요. 그럼 이만.'



메스머는 도라의 제안을 뿌리치며 통로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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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향하는 길. 복도에서 낯익은 연구원들이 스쳐지나갔다. 형식적인 목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길 수 차례. 드디어 자신의 방 앞에 도착한 메스머는 문을 열었다.



조명을 키자 가장 먼저 보이는건 커다란 칸막이다.



현관 주위를 둘러싼 칸막이는 지나다닐 때마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다. 요즘 마담 루시가 뭐에 꽂혔는지 아침마다 불쑥, 직원들의 방을 방문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설치할 수 밖에 없었다. 메스머는 남에게 자신의 방 내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몸동작으로 칸막이를 열어젖히고 들어서자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방안은 자신만의 공간이었다. 라플라스 숙소의 표준 규격 배치와 가구들. 그리고 무수한 인형과 장난감과 아기자기한 포스터. 고양이와 유니콘, 무지개와 리본 따위의 장식과 스티커가 방 구석구석, 벽과 천장을 가득 채웠다.



익숙하고 따뜻한 세상으로 돌아온 메스머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 모두들. 오늘은 제 시간에 퇴근할 수 있었어. 정말 잘됐지?'



외출 후에는 우선 손을 씻어야한다. 그녀는 화장실로 향하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콥이 오늘도 식사를 거부하지 뭐야. 하지만 리사 여사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한결 수월했어.'



수도꼭지에서 물줄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메스머는 비누 거품을 손톱사이까지 구석구석 묻혔다.



'그분은 역시 환자들을 잘 다루신다니까. 나도 그런 노하우를 본받고 싶단 말이지.'



단추로 눈을 장식한 봉제인형, 천장에 무수히 수놓인 형광스티커, 전지로 작동하는 장난감 기차들이 화장실 문틈 사이로 전해져오는 메스머의 말을 경청했다.



그녀는 수건에 손을 닦고 이번엔 옷장 앞으로 향했다. 근무복을 벗고 저번 외출 때 몰래 사두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주황색과 갈색이 눈에띄는 숙녀복은 그녀의 평소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수한 차림이었다.



'어때? 다들 마음에 들어? 너무 과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걸?'



그녀는 거울 앞에서 이리 저리 자세를 취하더니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며 즐거워했다.



'오늘 저녁은 우리끼리 단란하게 식사하는거야.'



거울 속 자신을 마주한 메스머는 당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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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새어나오는 화학약품을 몇번이고 닦아야했다니까! 하하!'



메스머는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한참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테이블 주위로 양철로봇, 곰인형, 목각 인형등이 둥글게 모여있었다.



'옆에 있던 메디슨 포켓은 "멍청한 인턴들아, 저기 구멍부터 막아야 할 거 아니야!"라면서 길길이 날뛰더라고. 웃겨 정말.'



메스머는 메디슨 특유의 어이없어 하는 말투를 생생히 재현했다.



'아 참, 그리고 말이야. 저번에 도라 씨에 대해 말해줬잖아?'



그녀는 입안의 음식을 오물거렸다.



'정말 친절한 분 같아. 오늘도 나한테 동아리 참여를 권유하려고 내가 있는 곳까지 직접 찾아와주신거 있지? 그런데..'



메스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식기를 든 손이 탁자 위로 내려앉았다.



그런데 나는..



'나는 무서워서 거절해버렸어. 무례한 태도로 말이야. 라플라스의 동료들이 손길을 내밀 때마다 나는 항상 밀어내버려.'



메스머는 자신의 옆을 돌아 보았다. 의자에 앉힌 곰인형 하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안에 꼬옥 안아들었다. 푹신한 솜으로 가득 채워진 봉제인형은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손으로 어루만지자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느껴졌다.



'위로해줘서 고마워. 그래, 네 말이 맞아. 응..응.. 명심할게.'



그녀는 곰인형을 내려놓고 머리를 토닥였다. 눈에 달린 단추는 어린 시절 학급 친구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밝은 표정을 되찾은 메스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후식 먹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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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메스머는 음식물 찌꺼기가 묻은 식기를 치웠다. 소독제로 식탁을 닦았다. 기분이 좋을 때면 조심성 없게 음식물을 떨어뜨리곤 한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얼룩을 지우기 위해 물티슈로 수 차례 비볐다.



툭.



그때, 식탁이 흔들렸는지 인형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메스머는 떨어진 곰인형을 주워 먼지를 털었다.



인형의 단추 눈이 깨져있었다.



이게 깨지기도 하는거였구나.



흠이 생긴 인형에 씁쓸함을 느끼던 그녀는 조각난 단추를 한 손에 모아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반짝이며 통안으로 떨어지는 작은 조각들.



학급 친구가 선물했었다.



누가?



메스머가 그 친구의 선물을 버린건 이번이 두 번째 였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선물이라고 할 수 있나?



한번은 누가 자기 뒤통수에 조그만 물건을 던졌다.



뒤를 돌아보니 요셉이었다.



어디서 뜯어졌는지 모를 단추를 주워다 자신에게 던진 것이다.



메스머는 학급 청결 규정에 따라 단추를 버리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뒀다가 그대로 잊어버렸다.



며칠 뒤 요셉은 다리를 절단했다. 



메스머는 다리가 담긴 봉투를 폐기했다.



마취에서 깬 요셉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나중에 단추를 발견했지만 버리지 않았다.



재활 센터에 근무하면서 개인 숙소를 갖게 되었다.



곰인형을 구입해서 눈으로 단추를 달아주었다.



방금 단추가 깨져서 버렸다.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서사다. 이런건 바깥에서 질리도록 경험했다.



그녀는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안전한 장소여야 했는데.



혀 내미는 고양이 사진. 하트와 꽃이 그려진 포스터. 원반 던지기 장난감.



이미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방처럼 느껴졌다.



메스머는 벽에 등을 기대고 돌이켜보았다.



애초에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녀가 사진을 걸고 인형을 장식하고 색을 칠한건 전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메스머는 어릴 때부터 그런 것에 그닥 관심이 없었다.



다만 다른 친구들의 소망이었다.



바깥 세계를 동경하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한번도 접해본 적 없는 일상을 매일같이 속삭였다. 인형을 안고, 예쁜 옷을 입고, 장난감을 선물받아 다정한 가족과 식사하는 것.



과거 메스머가 처음으로 외출하던 날, 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조지 나무아래에서 함께 꿈꾸었던 다채로운 색깔들과 무수한 형태의 도형들.



이제 그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남지 않았다. 다들 자신만의 위치에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사라진 친구들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갈 곳을 잃어버린 꿈들을 누군가는 실현해야 한다고 여긴 것일까. 그녀는 제일 먼저 곰인형을 구입했다.



왜? 



'내가 메스머라서?'



그녀는 벽에서 등을 때고 앞으로 걸어갔다.



방 한가운데 멈춰서서 몽유 속 친구들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노래하는 새, 반짝이는 별, 천진난만한 웃음.



'모두들, 우리가 함께해온 시간은 오늘이 끝인 것 같아.'



그녀는 작별을 고했다.



'이제 안녕.'



---



띠리리리리-



초인종이 울리자 메스머는 문을 열었다.



'마담 루시.'



아침이 되자 어김없이 루시가 찾아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메스머 주니어. 혹시 실내 청소 서비스가 필요하십니까?'



'아니요. 필요없어요.'



메스머는 루시가 다음 방으로 향하길 기다렸으나 그녀는 꼼짝않고 있었다.



'실내 구조가 변경되었군요. 당신의 방 입구는 칸막이로 가려졌었는데 말이죠.'



'네, 어제 정리했어요.'



루시는 라플라스 표준 규격의 실내구조와 정확히 일치하는 방안을 잠시 둘러봤다.



'당신도 "실내 정리 및 정신 조정 명상회"에 가입한 건가요? 최근 도라 연구원이 동아리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더군요.'



'아니요.'



메스머는 평소 표정 그대로였다.



'저는 그런 활동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메스머가 부인하자 루시는 한번 더 질문했다.



'그렇다면 외부 요인으로 인한 심경의 변화인가요?'



메스머는 한동안 답을 하지 않았다. 어제 충분히 잠들지못해 여전히 피곤했다.



'제 상태가 궁금하신 거라면 걱정하실 것 없어요. 저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으니까요.'



애시당초 그건 내 세상이 아니었다.



루시는 그 답에 수긍한 듯, 다음 방으로 향했다.



그것도 당연한 일이야.



메스머 주니어는 현관문을 닫으며 되새겼다.



나는 메스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