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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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건물의 조사실.



에즈라는 이곳에 임시 구금되었다.



처음 그를 찾아온 사람은 재단 직원도 라플라스 관리자도 아닌, 타임키퍼였다.



버틴은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을 직접 파악하고자 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두 사람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이번에는 보고서가 아닌, 에즈라 본인의 증언을 통해 사건의 경위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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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과 어둠이 감도는 박물관.



조명이 켜지자 그 고요한 자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관람객 하나 없는 이곳에 두 쌍의 발걸음 소리가 울러퍼졌다.



그들은 관계자 외에 출입이 제한되는 전시장의 뒷편으로 향했다.



커다란 암막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에는 빈 진열장과 여분의 차단봉 따위가 즐비했다.



그리고 전시 중 훼손당해 임시보관된 수집품이 하나있었다.



가운데가 새까맣게 그을린 적암을 마주한 스파토데아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죄책감과 후회어린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곁에있던 에즈라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봐요, 지금은 유리로 완전히 감싸져있어요. 이제 당신의 마도술에 반응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요.'



그는 예의 목줄을 그녀에게 건냈다. 스파토데아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은 벨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도 그 물건의 용도를 정확히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목에 차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구분해낼 수 없었다.



'이건 굴욕이 아니에요. 자발적인 상징이죠. 충동을 거스르고 이성을 훈련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라 생각하세요.'



스파토데아는 진열장 안에 놓인 바위와 마주하고 에즈라는 뒤에서 그 모습을 관찰했다.



'누구도 당신을 보지 않아요. 자신을 통제하고 본연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증거를 오로지 스스로에게 증명하게 될 거에요.'



커튼의 뒷편은 스산했다. 조명이 거의 없는 이곳은 시야와 의식을 제한한다.



진열장의 유리에 자신의 모습이 흐릿하게 반사됐다.



반사상은 자신의 몸동작을 따라하며 떨리는 손을 목덜미로 향했다.



가죽 벨트가 목 주위를 두르고 금속 버클이 채워졌다.



단단히 조인 벨트가 압박감을 주었다.



나는 그걸 직접 찼다.



너는 그걸 직접 찼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에즈라는 아무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스파토데아는 홀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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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틴은 보고서를 바라보며 확인했다.



'이후 스파토데아를 다시 만난건 일주일 뒤였지.'



에즈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버틴은 줄곧 시선을 고정하던 보고서에서 눈을 때고 에즈라를 응시했다.



'그럼 그 사이 그녀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모른다는 뜻이겠지.'



에즈라는 구태여 물어보지 않았다.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버틴은 자세를 고쳐앉았다. 한가지 짚어둘 사실이 있었다.



'너희가 처음 박물관을 방문해 데이트를 하던 그 날, 에즈라 넌 박물관 안내를 직접 진행했지.'



그녀는 보고서에 별도로 첨부된 팜플렛을 꺼내들었다.



'그 날은 마도학 광물 특별 전시회였어. 규정에 따르면 관람객이 마도학자일 경우, 관람에 앞서 마도학 감응성 물질에 대한 경고사항을 고지하는 것이 너의 의무였어.'



에즈라는 부정하지 않았다.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건지 이해가 되는군요. 제가 박물관장으로써 직접 검토한 규정인데도 불구하고 그 날 진행했던 안내는 너무 미흡했죠..'



이어지는 에즈라의 설명은 스파토데아의 증언과 일치했다. 그가 없는 사이 그녀는 문제의 바위로 향했고 무심코 마도술을 발동했다.



버틴은 그러한 정황이 의심스러웠다. 당시 장소와 상황은 에즈라가 충분히 조작가능한 범위에 있었다.



하지만 에즈라의 의도를 떠나서 그에게 의사결정권을 맡긴건 결국 스파토데아 본인의 의지였다.



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은 그 이후에 있었다.



'너는 스파토데아에게 박물관을 다시 가도록 권유했고 그곳에서 개목걸이를 찰 것을 종용했어.'



에즈라는 말이 없었다. 차분함을 유지해오던 버틴은 이 순간 처음으로 감정을 담아 쏘아붙였다.



'네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스파토데아의 심정이 어땠는지 생각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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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속 박물관.



오싹한 감각에 머리가 멍해졌다.



충격 받은 의식이 육체와 분리된 듯 했다. 그 의식은 시야 언저리, 암막 커튼 사이로 숨어들어 멀리서 거리를 두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 곁에는 비어있는 진열장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유리들은 사방에서 스파토데아의 모습을 반사했다.



무수한 반사상 한 가운데 갇힌 그녀는 지금 이 순간, 하나의 소장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의 기억은 분명치 않다.



남은 기억의 길이가 불규칙적이고 드문드문 이어졌기에 신뢰하기 어려웠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에즈라가 자신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의 품에 안겨 코를 훌쩍였다.



그리고 훈련을 하고 숙제를 하고.



식사와 데이트를 하고 에즈라의 말을 따랐다.



스파토데아가 올바른 행동을 하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정어린 칭찬을 해주었다. 방향을 벗어나면 가혹한 교정과 지도를 실시했다.



스스로의 육체를 한계까지 단련하는데 능숙했던 그녀는 괜한 오기가 생겼다. 그러나 일련의 정서적인 괴로움은 그녀의 자신감을 쉽사리 꺾었다.



번번이 실수하고 실패하며 실망시켰다. 결국엔 자신에게 질려버린 에즈라가 혹여 떠나기라도 할까봐 그의 말에 더욱 순종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거울을 보자 낯설어진 스스로가 보였다.



체형이 눈에띄게 변하고 헤어스타일, 옷차림 할 것없이 괴리감이 들었다.



왜 이토록 맹목적으로 그의 말을 따르는거지?



그야 에즈라를 믿기 때문이다.



그는 똑똑하고 이성적이며 사리판단에 확신이 있다.



그렇기에 네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네 곁에서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리고 네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을 포착하여 자신의 둥지로 낚아채갔다.



메스머 주니어는 지난 몇 개월간 진행된 자아 상실 과정을 그렇게 설명했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스파토데아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 보았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결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직접 내려야한다.




무릎위로 맞잡은 두 손이 꼼지락거렸다.




의존하는 사람 없이 나 스스로..




스파토데아는 점차 두려움에 매몰되었다.




내가? 나홀로?




불안을 주체할 수 없었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박물관 앞에서, 에즈라 앞에서 그랬듯이.



'용기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소망하는 일을 추구할때 빛난다.'



애석하게도, 불안해하는 자신을 다독이던 에즈라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눈에 보이는데로 죄다 박살내고 싶은 충동이 번쩍인다.



놀란 메스머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위태로워 보이던 상대방의 얼굴이 분노로 잔뜩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스파토데아는 부아가 끓어오르며 주먹을 으스러뜨리듯 쥐었다.




어째서 이토록 화가 날까? 에즈라가 했던 말 때문인가?



그의 따뜻한 손길, 다정한 눈길.



무심코 이를 악물었다.



스파토데아는 고개를 치켜 들었다.



'메스머 씨, 에즈라가 제게 저지른 모든 일을 성 파블로프 재단에 보고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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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거군요.'



에즈라가 작게 읊조렸다.



그는 이번 일에 유감을 표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재단의 처벌과 조사에 순순히 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들은 버틴은 수긍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에즈라.'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



이를 펼치자 수많은 사진들이 보였다.



에즈라의 금고에서 발견된 폴라로이드 사진들은 다양한 피사체를 담고 있었다.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기억들.



전후 상황을 배제한채, 오직 순간만을 포착한 이미지.



버틴은 파일을 한장씩 넘겼다.



두꺼운 파일에는 많은 양의 사진을 넣을 수 있었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사진들로 이뤄진 콜라주가 슬라이드처럼 이어졌다.



이전 페이지가 잔상을 남기며 다음 페이지와 섞여들어간다. 피사체, 구도, 배경, 인물, 빛과 음영이 순서와 구분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 페이지 위로 쏟아진다.



이마 위에 검게 새겨진 단어, 고삐를 쥐고 있는 손, 계단 아래로 꼬꾸라진 몸을 윗층에서 내려다 보는 구도, 혀 위에 놓인 기괴한 문양의 버섯 조각, 침에 젖은 재갈, 식탁아래 바닥에 놓여있는 음식, 커튼 뒤에 숨어 몸을 가린 사람의 형체, 수북히 쌓여있는 잿더미, 조명꺼진 체육관, 암흑속의 박물관, 안대로 눈이 가려져 움츠러든 모습.



버틴은 손으로는 파일을 한장씩 넘기면서 시선은 에즈라의 얼굴을 주시했다.



작은 징후하나 놓치지 않으며 예상했던 반응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당혹감에 흔들리며 표출하는 분노, 자포자기한 좌절과 체념, 혹은 솟아오르는 유열을 숨기지 않고 악취미를 한껏 담아낸 비웃음까지.




그 어느것도 아니었다.




에즈라는 지난 순간들을 아련하게 곱씹고 있었다. 자신의 행적이 공공연하게 노출된 사실에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저, 스파토데아와 단둘이 공유한 순간들이 제3자의 손에 다뤄지는 상황에 한줄기 씁쓸함을 내비치는 것이었다.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고 파일이 닫히자 옆으로 밀어두었다.



버틴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한 시간 반 내지의 심문 끝에, 추론 가능한 결론은 두 가지로 좁혀졌다.



그 중 한 가지는 이렇다.



에즈라가 자신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훈육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평소 행동양식과 방금 보인 반응을 종합했을때, 그 중심에는 자신이 상대를 도왔다고 굳게 믿고있는 독선적인 인격이 자리잡고 있던 것이다.



그는 순수히 이성에 기반하여 학대를 자행했다.



버틴은 다시한번 가방 속으로 손을 뻗어 서류철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 가능성은..



'마지막으로 확인할게 있어.'



서류안에는 현장조사 양식을 맞춘 출력물이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박물관장 에즈라 시어도어는 약 세 달전 오지 탐사를 떠났어. 그곳에서 특정 마도학 균류를 연구중이었지.'



버틴은 종이를 앞으로 내밀며 다시 한번 소년의 표정에 집중했다.




여전히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납득되지 않는 의문을 마주하자 미간이 찌푸러졌다.



이건 이미 삭제한 데이터였을텐데.




'당시 통신 장애로 번번이 연락이 끊겼지. 누락된 데이터 또한 삭제된 상태였고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보유한 인력 중에는 자신이 인지한 대상의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마도학자가 존재해.'




설명을 마친 버틴은 곧바로 연구자료의 핵심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사항을 종합할때 이 균류는 피식자의 외형과 행동을 모방하는 성질을 가졌음을 가정할 수 있다.'



소년의 생각은 여전히 삭제된 데이터에 머물러있었다. 그 정보를 접할 수 있는곳은 오직 내 머리 속 뿐이다.



설마 내 기억을 들여다 본건가?



언제?



줄곧 차분함을 유지해오던 얼굴에 처음으로 의심과 불안이 싹텄다.



마침내 빈틈을 보인 것이다.



버틴은 단호한 어조로 추궁했다.



'진짜 에즈라는 어디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