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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벨트를 왼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그 용도를 헤아렸다.

그리고 코웃음을 쳤다.

'지금 나보고 이걸 목에 차라는거야?'

사교계에 가끔씩 등장하는 저속한 취향의 인간들이 이런 물건을 취급하곤 했다.

하지만 이건 내연녀에게 선물하는 예쁘장한 치장품과 느낌이 전혀 다르다.

두께 있는 검정색 가죽벨트, 금속재질의 버클.

클래식한 디자인의 개 목걸이였다.

나는 이따위 모욕적인 목걸이를 건내준 발렌티나를 향해 한마디 쏘아붙혔다.

'식견이 쌓일수록 인격은 고상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여겼는데, 지금보니 그렇지도 않네?'

발렌티나의 취향이 담겼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투박한 디자인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나를 욕보일 목적으로, 그녀의 가학스러운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요즘들어 대부분의 상황이 발렌티나의 입맛대로 흘러간다는 인상이 든다. 

이 여자는 흡혈귀로써 2백년의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왔으니 내가 도통 당해낼 능력이 못된다. 

나는 지금껏 발렌티나의 유희에 그대로 휘둘려왔다. 그녀는 내 신체의 은밀한 부위를 능숙하게 유린했다. 견디다 못한 내가 비참하게 주저앉으면 만족스러운 듯 모욕을 퍼부었다. 

최근에는 내가 본인의 소유물이라도 되는양, 특유의 악취미가 서린 욕구를 거리낌 없이 투사했다.

이대로라면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길 것이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목줄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재주가 영 부족하네, 발렌티나. 네 고약한 취미에 누군가 어울려주길 바란다면 우선 그 접근 방식부터 뜯어고쳐봐.'

그리고 눈썹을 치켜들며 비웃었다.

'그럼 관에 묻힌 송장 정도는 꼬실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마 너랑 연배도 비슷할테고, 안그래?'

내 도발을 얌전히 지켜보던 발렌티나는 후훗, 하며 웃어보였다.





(1시간뒤)





'ㅡ응노오오아하아ㅡㅡ아그흐읏♡♡'

5번째 절정이었다.

'이걸로 강아지 확정이네.'

희미한 의식 속에 발렌티나의 조롱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몸뚱아리는 땀과 체액으로 범벅이 되어 너저분했고 그 아래 침대시트까지 더럽혔다.

나는 쾌감에 완전히 굴복해 뻗어버렸다. 발렌티나는 바로 옆에 누워서 내 머리결을 쓰다듬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한가닥 불쾌함이 치달았지만 지금 그 손길을 거부할 힘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

한참 뒤, 절정의 여운이 가라앉고 의식을 약간 회복하자 발렌티나는 내 손을 붙잡고 끌어다 마루 바닥에 앉혔다. 

나는 홀딱 벗은 몸 곳곳의 키스자국과 체액을 채 닦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앉았다. 
내 앞에는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옷차림의 발렌티나가 우두커니 서 있다. 
이러한 대조가 상호간의 서열을 확실히 구분지었다.

그녀는 어느새 목줄을 꺼내보이며 내게 대답을 촉구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한손을 들어올렸다.

툭.

내 손이 목줄을 때리자 그것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쯧.'

발렌티나는 혀를 짧게 차며 내 등 뒤로 돌아섰다. 

그녀는 몸을 아래로 숙여 그대로 내 알몸을 껴안았다. 
아끼는 옷이 체액으로 더럽혀지는 것도 개의치않고, 신체를 밀착하여 내 가슴과 다리사이로 양팔을 깊숙이 파묻었다.

'흐으윽...'

이미 수차례의 절정으로 민감해지다 못해 의식이 날아갈 것만 같던 나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버둥거렸지만 발렌티나는 고개를 목덜미에 파묻고 놓아주지 않았다.

'자, 착하게 굴어야지?'

'그만..그만해애ㅡ'

'그만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잖아?'

다시 한번 엄습해오는 오르가즘에 마치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부들거렸다. 
탈진할것만 같던 나는 바닥에 꼬꾸라져 한쪽 팔을 뻗고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발렌티나가 고개를 들어 그 꼴을 만족스럽게 감상했다.

'옳지, 옳지, 조금만 더 앞에~'

음부를 마찰하는 손짓이 더욱 거세지자 나는 미쳐갔다.

'아니야, 그 옆이라고~ 그래, 그래~ 거의 다 왔어.'

'흐긋, 하가아아악ㅡㅡ흐갸아악 으, 으그윽ㅡ♡'

'아하하하~'

발렌티나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리다 손짓을 멈췄다.

내 오른쪽 손아귀에 목줄이 꽉 붙들렸다.

내 몸을 짓누르던 발렌티나가 상체를 살짝 들었다. 몸을 움직일 공간이 약간 생겼다.

나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팔을 당겼다.

어기적 거리며 목덜미에 벨트를 감았다. 

'하아...하...'

중간중간 호흡을 몰아쉬며 조금씩 벨트를 조였다.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을 내려보던 발렌티나는 안쓰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한쪽 손으로 벨트 끝을 당긴다. 반대쪽 손으로 버클을 구멍안에 끼워 넣는다. 

딸칵.

됐다...

이제 끝났다.

해방이다.

흉부를 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지자 숨을 편하게 내쉬었다. 

'잘했어.'

발렌티나는 내 곁에 쪼그려 앉아 다시한번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을 내밀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는거야. 제멜바이스.'

'...'

발렌티나의 단호한 명령에 나는 굴종했다.


---


그날 밤.

나는 드디어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발렌티나는 자신의 옷장에서 옷을 꺼내, 내게 입혔다.

옷을 착용해 문명인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목덜미 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내 목에 달린 개목걸이에 기다란 끈을 달았다.

마치 개나 말에게 고삐를 채운 모양새였다.

그녀는 외출할 준비를 했다.

창 밖은 어두웠다. 그녀를 따라 현관 앞에 다다른 나는 주저했다.

그런 나를 돌아보던 발렌티나가 못마땅한듯 팔짱을 꼈다.

'이대로 나가기 싫다면 네 발로 기어서 산책시킬 수도 있어.'


그녀가 자신의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것도 싫다면 옷까지 다시 벗길거고.'

그녀가 손을 까딱거리며 복종을 요구했다.

나는 망설였다. 

이대로 체념하고 발렌티나 앞으로 걸어갈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내 목에 매달린 목줄 손잡이를 발렌티나의 손에 건낼 것이다.


그리고 하얀 달빛 아래, 발렌티나가 내 목줄을 끌고 밤거리를 누빌 것이다. 

자발적인 복종. 이는 나를 조련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마모된 윤리 의식을 지닌 그녀의 유희란, 이렇듯 희생양의 존엄성을 하나씩 갉아먹는 것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발렌티나는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저항할 방법이 있나?

발렌티나의 인내심이 고갈 되기 전, 나는 우선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