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깃발, 저항과 혁명, 피.


스라져간 영혼들에 대한 추모일까, 센티널의 꺾이지 않는 의지일까?





1차 대전 프랑스군하면 떠오르는 파란 군복.


많은 사람들이 이 군복의 유래를 "구시대적이고 위장이 안되는 파랗고 빨간 군복을 쓰다가, 자존심을 포기 못해서 빨간색만 버렸다."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이 "호라이즌 블루"는 새로 채택하려고 했던 회색 군복에서 빨간색 염료만을 제외하고 나온 색깔이다


독일에서 생산한 빨간색 염료를 쓸 수 없자, 전쟁 직전에 급하게 파란색과 하얀색 섬유만을 가지고 생산한 것.







그리하여 탄생한 이 하늘색 군복은 의외로 수평선 너머 하늘과 섞여 위장이 잘 되었다는 말도 있다.


참호 속 병사들의 시선은 위쪽으로 간다는 걸 생각하면 나름 합리적인 설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군과 재판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드레퓌스 대위






19세기 후반으로 시간이 돌아간다. 당시 프랑스는 보불전쟁을 패배한 충격에서 수십년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프랑스 군부와 여론은 패배의 원인을 첩자들, 즉 '내부의 적'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드레퓌스 대위는 성실하고 우수한 포병 장교였지만, 정직하고 아부를 할 줄 모르는 성격 탓에 여기저기서 미움을 받았다.


1894년, 군부 정보국은 드레퓌스를 증거도 없이 체포해 속전속결로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그를 첩자라 확신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에게 유대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가 대통령에게 쓴 편지. "나는 고발한다...! (J'Accuse...!)"라는 문구는 에밀 졸라가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이후 유행어가 된다)



언론과 민중들은 그를 죽음 직전으로 몰고 갔으나, 프랑스와 각국의 지식인들이 연합하여 일제히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의 여론이 프랑스를 비난하자 내부에서도 점차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 "'드레퓌스 사건'은 절대로 말하지 맙시다!" 2. "말했구만...")



12년 후인 1906년 7월, 결국 드레퓌스 대위와 그의 무고를 처음부터 주장했던 피카르 중령의 복권이 이루어진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고갔고, 가족이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면 파탄난다는 만평이 나올 정도였다.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프랑스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유대인들.


시오니즘이 싹트며 자신만의 나라를 꿈꾸기 시작하지만


증오의 소용돌이가 몰고 올 재난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여러모로 당시 프랑스의 반유대주의와 군부의 부패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 볼 수 있는데


리버스 세계관 내에서 마도학의 핏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대놓고 차별당하는 묘사가 여러 번 나왔고


센티널의 죄목 중 마도학 무단 사용이 있다는 걸 생각했을 때 상당히 묘하다.








여튼 다시 PV로 돌아와서


1910년대, 아직까지 기사도와 낭만이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각국의 군부는 멋진 군인의 이미지를 앞세워 참전을 독려했고


많은 청년들은 나라를 지켜 명예를 얻겠다는 꿈에 휩싸여 전쟁터로 향한다






모두가 아는 대로, 그들의 꿈은 진흙 속에서 산산히 부서졌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 경험한 적 없는 총력전, 외교적 한계와 우연에 따라 변화하는 전장


전쟁을 최대한 빠르게 끝내기 위해 세운 전략들은 복합적인 난제 속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고, 지휘관들은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상을 밝게 빛내리라 기대했던 신문물들은 더욱 더 많은 피를 요구할 뿐이었다.








말과 갑옷을 두른 기사들은 포화 속에서 쓰러졌고


젊은이들의 건강한 신체와 정신은 부패해 갔다.


독가스와 파편이 난무하는 전쟁터는 인류애를 허락하지 않았다.







1918년 11월 11일. 마침내 휴전 조약이 체결되었지만 아직 전쟁은 끝난 게 아니었다.


참호와 포탄 구덩이 속에서 죽어가면서 본 환상은 유럽 사회를 혼란 속에 빠트린다. 






(1932년, 경찰에 의해 무차별 진압당하는 미국 참전용사들.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백악관으로 진격하는 중이었다.)



전쟁 피해를 재건하기 바쁜 사회에서 참전용사들의 처우는 잊혀졌다


신체를 잃으며 치룬 전쟁의 대가는 싸구려 훈장과 푼돈뿐





얼굴에 끔찍한 상처를 입은 호주의 병사들은 스스로를 '깨진 가고일'이라 부르며 사회로 나가기 두려워했다






눈에 띄는 상처를 가진 이들조차 이런 취급인데, 내면의 상처를 알아보았을 리 있는가?


참전용사들의 호소를 기반으로 전투신경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정신병리학적 연구가 시작되었으나


생기 없이 죽은 눈을 가진 참전 군인들은 그저 꾀병을 부리는 것으로 취급받기 일상이었다.







센티널, 가고일, 총알에도 깨지지 않는 괴물, 죽지 않는 군인.


일선의 병사들은 그녀를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며 공포에 떨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들은 알고 있다. 전쟁이 파멸로 몰아가는 건 사람의 신체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내면은 치유받을 수 있을까?


이 전쟁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끝나는 걸까?


과연 그녀의 여친(추정)인 마샤는 단골 클리셰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계대전이 시발 한번 더 일어난다는 소리를 들으면 센티널은 무슨 반응을 보일까?


재건 상것들아 전쟁 2년 연장되서 마도학자고 인간이고 다 뒤지는 게 도대체 누굴 위한 사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