념글에서 올라온 글에서 짧게 언급됬지만
이사건은 저런 간단한 헤프닝이 아닌 미군의 엄청난 흑역사중 하나였다


미국은 참전용사들에게 일종의 추가보상(보너스를 주는 법안)을 마련되었지만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이 받았던 보너스는 고작 60달러 뿐이였다
당연히 10만명의 사상자와 30만명의 부상자를 겪었던 참전용사들에게는 너무 턱없이 부족한 돈이였고
당시 미국의회도 이를 어느정도 의식해 인당 최대 625달러를 주고 이를 위한 총액 360억달러를 기금으로 모아 최종적으로 1945년에 모두 나누어 주고자 하였지만....


대공황이 터지며 이야기가 바뀌게 되었다
360억 달러는 종이 쪼가리가 되거나 다른 일에 쓰여지기 일보직전이였고
참전용사들과 상이군인들은 최빈층이 되어 판자촌으로 내몰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1932년 총 2만5천명이나 되는 참전용사과 그 가족들은 워싱턴dc에 상경까지하며 지금당장 약속한 추가보상을 줄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근처에 판자촌을 지어 추가보상을 위한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였고 그에 사람들은 이들을 "보너스 아미"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이를 소련의 시주를 받은 "빨갱이"로 치부하였고 참전용사들의 추가보상 지급 요청을 무시할 뿐 더ㆍ러 경찰을 진압에동원, 평화적이였던 시위를 강제적으로 해산시키려하며 폭력사태가 일어나게 되며
시위대가 경관들을 끌고가자 이에 겁먹은 한 경관이 총을 발포해 시위대 두명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미국 군부까지 자극시켰고
당시 미육군 참모총장이였던 더글라스 맥아더는 보너스 아미를 '공산혁명을 노리는 빨갱이집단'이라 낙인 찍으며
미군역사상 미친개중에서 가장 미친개라 불렸으며 수차례의 유혈진압을 지도한 전적이 있었던


조지 s. 패튼을 불러 시위를 진압할것을 명령하였다


패튼이 지위하는 진압군은
기병대를 위시로 6대의 탱크와 착검 보병까지 동원하여 보너스 아미가 지내고있던 판자촌을 말 그대로 짖밟아 버렸고
이에 당시 대통령이였던 하버트 후버 대통령과 행정부까지 놀라 당장 유혈진압을 멈출것을 명령하였으나
맥아더는 이를 무시하고 유혈진압을 계속하였고
임산부와 아기들까지 다치거나 죽는 상황에 이르렸다

조사결과 시위대의 95%는 당연히 빨갱이가 아닌 1차세계대전의 참전용사였고 5%는 그들을 돕기위한 사회운동가일 뿐이였다
맥아더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여 강경한 유혈진압을 했지만
보상원하며 평화시위를 벌이던 참전용사들을 국가가 배신하고 짖밟은 사건 그 이상도 아니였다

또 하나의 이야긴 거리로 "조 안젤로"란 전 참전용사도 보너스 아미 운동에 참여하였으니
이 사람은 1차 세계대전당시 패튼과 같이 복무했으며 기관총에 맞아 다친 패튼을 목숨을 바쳐 구해줘 훈공 십자훈장을 받기까지 했던 사람이였다
전쟁당시 전우였던 패튼을 구해주고 훈장까지 받았으나 었으나 돌아온건 국가의 외면과 한때 전우였던 패튼의 유혈진압이였을 뿐이였을 였다


하여튼 이사건으로 후버 행정부의 평판은 바닥을 찍게 되었고
맥아더는 필리핀으로 쫒겨났으며

군부를 더더욱 배척하며 문민정책을 확고히하몄고
재대구인 원호법을 새로 만들었으며

후버대통령 다음으로 루스벨트 정권이 들어오며 뉴딜정책에 참전용사들을 꽂아주는ㅈ식으로 참전자들을 어느정도 달려주게 되며 일단락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