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출석문구에서도 언급했듯 191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앨런튜링은 동성애자이면서 그 점을 숨기기는 커녕 알리고 다녔는데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면서 만난 또다른 세기의 천재였던 폰 노이만과 친분을 쌓고 그에게서 '영국에선 동성애는 불법이니 차라리 미국에 남아있으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영국인 이였던 엘런튜링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고국에 봉사하는것을 선택하였다


<에니그마와 그 작동원리도>

그는 1939년 영국 정보 통신본부에 들어가 나치군이 개발한 한 글자당 158,962,555,217,826,360,000가지의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는 미친 암호기계 "에니그마"가 만들어내는 암호를 풀어내야하는 세션 hut 8팀의 팀장 자리를 맡았으며


<튜링 붐베>

<콜로셔스>

앨런튜링은 이에 "튜링 붐베"라는 암호해독기를 개발, 독일군은 절대 뚫릴리 없다 자부하던 에니그마가 뚫어지자 에니그마의 해독 경우의 수를 2배로 늘려버린 "로렌츠 암호전기"로 대항하려 했으나
앤런 튜링은 직접적인 프로그레밍이 가능한 최초의 디지털 전자 컴퓨터 "콜로셔스"를 만들며 독일군의 암호망을 완전 뚫어 버리게 되었다
최전방에서 직접 전투를 지휘하진 않았지만 영국 국민 전체를 살렸다고 하여도 무방한 활약이였다

종전후 1950년 그는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에 관련된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이란 논분을 발표하며 인간의 학습능력, 추론능력, 지각능력을 인공적으로 구현시는 기계 즉 ai에 대한 첫 이론을 내놓았고
튜링 테스트(상대방의 정체를 모를때 인간 실험자는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인간인지 아님 고도의 지능을 가진 기계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가?)라는 실험의 구상안까지 내놓았다
1950년에 ai가 주도해나갈 미래를 미리 본것이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앨런 튜링은 자신이 동성애자였던걸 꺼리낌 없이 드러내고 다녔던 점이 결국 문제가 되고 말았다, 대학시절을 보냈던 미국이 아닌, 동성애가 불법이였던 영국에서도 앨런 튜링은 마찬가지로 행동했었고
1952년 동성애에 대한 외설 혐의로 기소되게 되었다
그의 동료들은 엘런의 성적기호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1950년대의 대중들이 보기엔 전쟁영웅이자 세기의 천재수학자, 과학자, 논리학자, 컴퓨터 공학자, 그리고 '동성애자'였던 앨런 튜링은 악인이자 범법자에 불과해졌고 앨런 튜링에 대한 사회적시선은 급속도로 나빠지게 되었다

결국 앨런 튜링은 위법 판결을 받고 거세를 당하느냐, 아님 여성 호르몬을 투여받는 시술을 받느냐란 대한 기로에 서게되었고
여성호르몬을 투여받는 시술을 받게 되었다

그는 시술 초기엔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거나 해외의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참여하는등 나름 밝은 모습을 보여주였으나

엎친데 겹친격이라 했던가
메카시즘 열풍에까지 휘말리게 되며 소련의 스파이로 반쯤 낙인찍힌체 해외로의 출국까지 막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감시당하는 지경에 빠지자

그는 1954년 자택에서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사과를 먹으며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니 전쟁영웅이자 세기의 천재였던 앨런 튜링은 고작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앨런 튜링의 전쟁영웅으로서의 활약, 수많은 천제적인 발상안, 그리고 자신을 낳아준 조국에 대한 헌신에서도 불구하고 그는 동성애 범죄자로서 사후에도 쉬쉬되었다

하지만 21세기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의식이 올라가며 2009년 고든 브라운 총리가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인'에 앨런 튜링의 이름을 넣어주었고
스티븐 호킹을 포함한 수만명의 지식인들의 복권 청원으로 2013년 영국여왕의 특별사면을 받게되니
그는 59년만에 겨우 범죄자의 신분에서 벗어나 복권하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이 미래에 쓰일까봐 두렵다네.

튜링은 기계가 생각한다 믿었다.
튜링은 남자와 잤다.
그러므로 기계는 생각할 수 없다.

고통을 담아.

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