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공국의 자랑이자 르네상스 3대거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풀 네임은 레오나르도 디세르 피에로 다빈치는 엄청난 기록을 남겼음에도
이성이나 성애, 연애담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사람이였음
(인성도 얼굴도 못났던 미칼란젤로와 다르게 미남,쾌남으로 유명해서 인기 이슈도 아니였다)

여기엔 레오나르도 자신의 <성애>에 대한 사견탓도 있었는데

레오나르도는 사진의 수첩에 "인간의 생식활동과 그에 관련된 행위는 너무나도 역겨워 인간의 아름다움과 관능적 기질이 아니였다면 진작에 멸종하였을것"이란 기록을 남기고
이게 자신의 수첩에 남긴 인간의 <성애>에관한 유일한 기록이였을 정도로
<성애>에 관하여 부정정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였음

그럼 "앵?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데다가 성애자체를 부정적으로 봤으면 동성애자라기보단 그냥 무성애자 아닌가요~"라는 의문이 들건데

그가 동성애자였음을 지목하는 기록과 의문은 상당히 많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정체성에 관한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기록은 바로 이번 콜라보 이벤스 상편이 진행되었던 배경인 1476년의 피렌체에서 남겨졌는데

1476년 4월 9일 당시 금세공사이자 몰레 남창일을 하고있었던 야코프 사타렐리란 인물이 피렌체 법원에 고발당하였을때
당시 24세였던 레오나르도 또한 야코프를 탐하였단 남색 혐의로 고발당한것이였다
다행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남색 혐의를 고발 기각으로 벗어났고

또 같은 해인 1476년 6월 7일에도 남색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이번에도 기각을 받아 풀려나게 되었음

당시 동성애 행위를 고발할땐 직접적인 서명이 필요했는데 고발자들이 익명을 사용했었다는게 그 이유였음
(로렌초 데 메디치 가문이 손을 써줬다는 썰도 있고, 당시의 피렌체 공화국은 로마가톨릭이 국교였음에도 동성애 행위를 상당히 유하게 보고있었던 덕분이기도 하였다)

여튼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적행위에 관한 기록은
이 <2건의 남색행위 고발>기록이 유일했다는것이
다 빈치의 동성애 성향을 뒤받침 해주고잀음



여기서부턴 의혹이자 썰의 영역


레오나르도는 1490년부터 두명의 제자를 두게 되었는데

첫 제자는 "살라이(작은 악마)"란 별명으로 주로 알려진 잔 카모프

두번째 제자는 프란체스코 멜치란 인물이였음

이 작품은 다 빈치가 살라이를 모델로 그린 세례자 요한(1513년)이란 그림으로 이 그림의 러프 스케치를 살펴보면

포신을 기발차게 세운 살라이와 그걸 그린 다빈치를 볼 수 있음....


그리고 코덱스 아틀란티쿠스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형 판화집에는 신원불명의 인물이 남긴 낙서까지 들어가 버렸는데

그 낙서란게 살라이와 다빈치를 이런식으로 표현한 그림...


그리고 조르조 바사리라는 후대의 예술가 또한
살라이를 "레오나르도가 매우 좋아했던 곱슬머리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청년"라고 평하기도 하였음

(살라이는 그 별명답게 사고를 많이 치고 살았으며, 다빈치의 돈과 귀중품을 훔치며 다 빈치의 속을 썩이기도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사후에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동명작을 유산으로 받았지만 한량처럼 살다가 결투를 신청받고 패배하여 사망하였다)


두번째 제자인 프란체스코 멜치는 살라이랑 다르게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인물이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남은 생애동안 그의 곁을 지켰으며
개인비서이자 필경사,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보관하고 보존하였던 사람이였음
그역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개인비서를 넘어 그의 작품들 보관, 보존하는 역까지 인계 받았단 점에서 연인관계가 아니였나는 썰이 있음


귀부인들을 탐하고다닌 우리의 쓰래기의사 카카니아가 추종하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또한 1910년에 논문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어린 시절의 기억] 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아기였을 때의 "맹금류에게 공격당해 입을 벌리고 꼬리를 입술 안에 계속해서 쑤셔 넣었다"는 기억을 분석하며
"그것은 동성애적이자 남근적인걸 은유한것이며  레오나르도의 동성애는 잠재적이었으며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라 주장하기도 하였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응애시절 접했던 이집트 신화에 대한 기억을, 다 빈치가 직접 격었던 사건으로 오해하여 헛다리 집었던 거지만)

여튼 수많은 사학자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동성애 성향은  부정할 수 없고
성애에 관해  매우 부정적인 주장을 했거나, 평생을 연인없이 독신으로 살았던 점 또한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억누르기 위한 행동이였다고 추측하고 있음(+남색혐의로 기소당한것에 대한 트라우마)



글 더럽게 못쓰는거 나도 알고있으니
글에서 고칠점이 있거나, 글을 좀더 매끄럽게 쓰기 위한 팁같은거 있으면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