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키퍼, 최근 괜찮으세요?"
시작은 소네트의 가벼운 안부 인사였다. 최소한 그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다고 넘기기에 소네트의 얼굴은 너무 진지했다. 진지한 정도를 넘어 엄숙하다고 할 수준이었다. 설마.
"재건의..."
"이번 물품 신청 목록에..."
소네트가 드물게도 내 말을 끊었다. 글썽이는 눈물에 반항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럼에도 신선한 표정이었다.
"새, 생리대가 없어서요."
그 말을 꺼내기까지 수도 없이 고민했으리라. 머리칼만큼이나 빨개진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순간 웃음이 새어나왔다.
"타임키퍼! 저는 진지하다고요. 만약 타임키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저는..."
조금만 더 소네트를 놀리고 싶었던 것이 실수였을까. 괜찮다는 말에 뜸을 들이는 사이에 소네트가 맹세했다.
"타임키퍼의 여생은 제가 책임질 테니까요!"
"어, 그래. 고마워?"
내 대답을 채 듣지도 않고 소네트는 도망치듯 복도를 달려갔다. 실내에서 뛰면 안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던 소네트가. 오늘 소네트의 새로운 면모를 여럿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그만 중요한 점 몇 가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예를 들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던가.
눈을 떠보니 또다시 책상 위에서 잠든 모양이다. 널부러진 서류뭉치 사이로 오늘자 Headonion 조간의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다.
'타임키퍼, 충격의 임신 은퇴. 상대는 다름 아닌?'
소더비 특제 '눈이 반짝 정신도 번쩍' 포션을 마셨을 때보다 눈앞이 새하얬다. 급하게 일어서다 뒤로 넘어질 뻔했지만 그나마 다행인지 발가락을 책상에 찧는 정도로 그쳤다. 하여튼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통증 덕에 머릿속이 맑아졌다. 살짝 절뚝거렸지만 서둘러 어니언을 찾아나섰다.
"그럴 순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제보자의 신원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언론인의 의무!"
어니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를 미행하면서 큰 소리로 중계하는 그녀를 마주하자 오히려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단독 인터뷰라나 뭐라나.
"어니언, 농담하는 거 아니야. 누가 알려줬어?"
"타임키퍼는 여전히 의혹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타임키퍼와 그 제1조수 간의 밀회에서 사랑의 맹세를 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고 했습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잠시 후 Headonion 라이브에서 계속됩니다!"
어니언이 언론인의 긍지를 건 이상 입을 열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아, 드디어 저에게 비밀을 말해주기로 결심했나요?"
"아니, TTT. 오늘은 묻고 싶은 게 있어."
"하지만 공짜로 알려줄 수는 없죠! 그에 맞는 거래라면 모를까."
TTT의 화면이 흥분감에 깜빡였다. 비밀이라 해도 이 가방 안에 비밀은 없다. 당장 어제만해도 말이 새어나갔으니까. 소네트가 털어놓았을리가 없으니 누가 엿들었다는 뜻인데...
"콘블룸!"
당연히 듣고 있을 콘블룸이 헤드셋을 떨어뜨릴 만큼 크게 소리쳤다. 문제는 감청이 특기인 그녀가 어디에 있느냐였다.
"후후, 그 정도 비밀은 쉽죠. 콘블룸 씨의 도구도 결국은 전기 장비이기 때문에 저와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어딘데?"
TTT는 말 대신 얼굴을 옆으로 돌려 귀를 화면 쪽으로 내밀었다.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꽤나 노골적이다. TTT가 관심있어할 비밀이라.
"나 오늘 팬티 검정색이야."
이런 대답은 예상 못했는지 TTT의 얼굴이 빨개졌다. 뒤에서는 어니언이 마이크를 떨어뜨려 하울링에 귀가 찢어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TTT를 재촉했다.
"이제 네 차례야."
"마지막 신호는 황무지 속 지하실에서 잡혔어요. 하지만 금방 모든 전원을 차단해서 그 다음은 모르겠어요."
"황무지에 지하실이 있다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아니지만 만들기 전에 미리 허가를 받기 바란다. 불법 건축물로 과태료를 물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 우선 콘블룸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황무지는 넓고 장비의 전원을 차단했다한들 항상 소지하는 소형 감청기를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래서 저를 찾아온 것이군요."
"그래. 콘블룸의 전파가 느껴져?"
"흐음."
미스 라디오가 다이얼을 돌리자 삐걱이는 전자음이 들렸다. 그리고 이내 멈추자 작게 부스럭거리는 풀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저쪽에서도 제 전파를 알고 있으니 도망치기 쉬울텐데요."
"걱정 마. 숲은 우리의 편이니까."
황무지 안으로 들어선지 얼마 안 가 나무를 쓰다듬는 여인을 발견했다. 천천히 돌아서는 모습은 마치 나를 기다렸던 것만 같았다.
"드루비스 씨, 콘블룸을 찾는 걸 도와줄 수 있을까?"
"물론이죠, 버틴. 누구라도, 그것이 콘블룸 씨라도 우리의 내일을 방해하도록 두지 않을 거에요."
드루비스는 숲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미스 라디오가 가끔 방향을 안내했지만 필요 없을 정도로 숲의 목소리는 정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덩굴들에 묶인 채 바둥거리는 콘블룸을 찾을 수 있었다.
"놔! 놓으라고! 이러기 싫어서 지원 부서에 지원했던 건데..."
"그렇다면 말썽을 부리지 말았어야죠."
드루비스가 드물게도 싸늘한 목소리로 꾸짖으며 바닥을 완드로 쳤다. 그러자 더 많은 덩굴들이 튀어나와 콘블룸을 휘감았다.
"드루비스 씨, 멈춰. 이건 지나쳤어. 콘블룸도 이제 도망치지 말고."
드루비스는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다시 한 번 완드를 덩굴들에 향하자 콘블룸은 풀려났다.
"미안해요, 버틴. 우리의 내일을 놓쳐버릴 뻔했다는 생각에 잠시 이성을 잃었네요."
"너희의 내일이 아니라 나와 버틴의 미래겠지."
숨을 고른 콘블룸이 내 팔짱을 끼며 쏘아붙였다. 드루비스도 지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뒤에서 껴안으며 한 손으로 내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버틴, 한창 몸이 예민할 시기인데 밖을 너무 돌아다니면 안 돼요. 자, 어서 돌아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죠."
나보다 키 큰 여인 둘 사이에 껴있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미스 라디오까지 들고 있기에는 슬슬 걷기 불편했다.
"그, 둘 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슬슬 알려주지 않을래?"
대답은 갑작스런 확성기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드루비스."
"네, 버틴."
"우리 숲에 들어갈 때 어니언도 따라오지 않았어?"
"아뇨. 저와 버틴, 그리고 미스 라디오 뿐이었어요."
불안을 뒤로하고 숲가에 다다르자 소네트의 목소리임이 분명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단상 위에 선 소네트를 어니언을 필두로 수많은 카메라가 에워쌌다.
"소네트 양, 어젯밤 타임키퍼와 밀회를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까?"
어니언이 간만의 특종에 신나서 질문했다. 소네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얼굴을 들었다.
"네, 맞습니다."
소네트가 입을 열자마자 카메라들이 일제히 번쩍이며 광경을 담았다.
"하지만 이는 평소의 마무리 일과였으며 일체의 부적절한 행위가 없었음을,"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것인가요?"
블로니가 휴대용 녹음기를 꺼내 마이크에 가져다 대었다. 그녀 또한 이 기자 놀이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그 옆의 제시카는 카메라의 버튼들을 눌러보며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눈을 찌푸렸다.
'타임키퍼의 여생은 제가 책임질 테니까요!'
절절한 고백이 회장에 울려퍼지자 다시 한 번 소네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기죽지 않겠다는 듯 큰 소리로 맞받아쳤다.
"분명 타임키퍼와 제가 깊은 관계인 것은 사실이나,"
"뭐래는 거야."
뒤에 무슨 말이 이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주정뱅이가 단상으로 올라가 말을 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곧바로 후회했다.
"버틴의 여친은 나라고. 알겠어? 오, 마침 저기 있네."
모든 이의 시선이 릴리아의 손가락을 따라 내게로 꽂혔다. 그리고 드루비스가 손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인파로 둘러쌓였다.
"버틴,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 거야?"
"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너는 나중에 다 크면 알려줄게."
"언제가 다 큰 거야? 왜 지금은 알면 안 돼? 윌로우는 알고 있어?"
윌로우가 투덜거리면서 플러터페이지의 귀를 막고 끌어냈다. 빌라 또한 어린 아이들과 윈드송을 데리고 비슷한 질문 세례를 뚫으면서 빠져나갔다. 그것만으로 절반은 줄어든 것 같았다. 그리고 남은 절반은 숨죽이고 내 대답만을 기다렸다.
"좋아, 다 모인 김에 말할게. 나는!"
"월경 불순이네요."
보건실에서 진찰을 마치고 투스 페어리가 짧게 결론 내렸다. 나는 받은 이빨 요정을 우물거리다가 씹어 삼켰다.
"직접적인 원인은 호르몬 불균형이지만 그에 대한 원인은 수면 부족, 스트레스, 식습관 등이 있는데..."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시선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투스 페어리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전부 다 해당되는 것 같네요. 우선은 재단에 병가를 신청하고 바니바니 씨에게 식단을 더 신경써달라고 전해둘게요. 그리고 이번에는 토피 사탕 안 줄 거에요."
"네."
"그리고 한가지 더."
투스 페어리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받아들어도 의문은 늘어갈 뿐이다.
"라텍스 장갑? 투스 페어리 취향은 존중하지만..."
"앞으로 조심하라는 이야기에요. 버틴은 더이상 홀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책임져야 하니까요."
이어지는 말만 아니라면 더 감동적일 뻔했다.
"물론 제 취향이기도 하고요."
"고마워. 근데 이렇게 신경 쓸 필요 있어? 어차피 여자끼리인데..."
침대에서 돌연 하품 소리가 들리더니 쫑긋 귀가 튀어나왔다.
"바바라 씨, 일어나셨네요. 몸은 어때요?"
"고마워요. 많이 좋아졌어요. 이만 가볼게요."
"잘 가요, 바바라 씨. 그래서 버틴, 하려던 말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조심할게."
닫힌 보건실 문을 멍하니 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내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누가 문을 두드렸다. 그 뒤에 선 소네트가 쭈뼛거리면서 사과했다.
"타임키퍼, 오늘 죄송했어요. 제가 괜히 일을 키우는 바람에..."
나는 손을 들어 소네트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소네트도 이내 긴장을 풀고 그 손길에 몸을 맡겼다.
"아니야, 내 걱정을 해준 거잖아? 실제로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도 맞았고. 소네트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야."
손을 거두자 소네트는 미련이 남은 듯 눈을 떼지 못하다가 한 걸음 물러났다.
"늦은 시간에도 맞이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그래, 소네트도 잘 자."
불을 끄고 평소보다도 더 지친 채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콘블룸, 소리 꺼."
그리고서야 편히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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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수르스 일화처럼 우당탕탕하는 느낌으로 써봄
어머니가 셋이라 좋으시겠어요.
개판이야ㅋㅋㅋ
버틴이 소네트랑만 안해주는 그 만화 생각나네 ㅅㅂ ㅋㅋ
뭐노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