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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출석 문구는 스푸트니크와 TV-3(Vanguard Test Vehicle-Three) 로켓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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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4일,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된 날.


직경 58cm의 이 작은 알루미늄 구는 삑삑거리는 전파음밖에 내지 못했지만, 소련과 미국을 본격적인 우주 경쟁으로 몰아넣는 거대한 신호탄이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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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이야기는 런던 시내를 마구 들쑤셔 놓은 독일의 V-2. 인류 최초의 탄도미사일로부터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은 V-2를 개발한 폰 브라운과 산하의 기술자 대부분을 소련보다 앞서 스카웃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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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도 미국처럼 전 세계에 핵폭탄을 투하할 능력을 갖추고 싶었지만, 대형 폭격기 개발 능력이 형편없었음


무엇보다 알레스카를 비롯한 전 세계에 공군기지를 배치한 미국과는 달리 소련에서 미국 본토로 날아가려면 10시간이나 걸리는 상황


결국 소련은 탄도미사일밖에 답이 없는데... 콤래드, 우린 망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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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겐 다행히도, 미국이 모든 걸 싹쓸이한 건 아니었음.


폰 브라운과 사이가 나빴던 헬무트 그뢰트룹을 비롯한 독일의 기술자 일부가 소련으로 넘어왔고, 무엇보다 소련에는 로켓 공학 방면에서 희대의 천재들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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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이자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세르게이 코롤료프. 


소련 제1 설계국(OKB-1)의 책임자였던 그는 1953년부터 인류 최초의 ICBM인 R-7 로켓의 개발을 주도하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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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7 로켓의 개량형이 지금도 쓰는 소유즈 로켓입니다)


코룔로프는 로켓이 완성되기 전인 1954년부터 인공 위성 발사를 건의할 정도로 우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음


당연하게도 군부는 미사일이나 더 개발하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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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55년 7월, 미국에서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 선언하며 상황이 달라지는데


1952년 국제과학연맹위원회가 1957~1958년을 '국제지구물리 관측년(IGY)'으로 지정했고, 미국이 이에 맞춰 인공위성을 쏘겠다 발표한 것.


양키 놈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자며 당을 설득한 코롤료프는 8월 8일, 인공위성 개발 승인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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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급박하게 개발에 들어간지라 개발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음


위성에 넣을 장비 제작사들이 규격을 지키지 않는 사?소한 기열찐빠로 인해 탑재에 실패. 코룔로프가 꿈꾸던 완전한 과학 위성이 되진 못했지만...


아무튼 간단한 측정 센서만을 탑재된 스푸트니크 1호는 1958년 10월 4일 오후 10시 28분 성공적으로 발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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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온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스푸트니크는 그 해 소련 서기장과 함께 타임지 표시를 장식합니다)


당시 미국 대중은 소련을 가전제품도 제대로 못 만드는 낙후된 농업 국가 정도로 여기고 있었음


그랬기에 소련이 보란 듯이 쏘아 올린 스푸트니크는 미국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스푸트니크 쇼크'.




소련이 저럴 동안 미국은 놀고 있었느냐?


그건 아니지만, 당시 미국의 로켓 개발은 여러 가지 이유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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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미 국방부는 핵폭탄을 투하할 전략폭격기를 수천 대나 보유하고 있으니, 탄도미사일에 큰 관심이 없었음


아이젠하워 정부는 우주 개발을 군사가 아닌 '평화적/민간 목적'으로 포장하고 싶어서

군용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폰 브라운이 아닌, 비군사용으로 개발 중이던 해군의 뱅가드 로켓을 밀어줬고


거기다가 나치 출신이던 폰 브라운 산하 연구진의 정치적 입지, 육군과 해군의 상호 견제 등...


아 공군은 뭐했나고요?







아틀라스 로켓을 뻥뻥 터트리고 있었죠.


암튼 최초의 명예를 소련과 코룔로프에게 빼앗긴 미국은 깊은 상처를 입었고


1957년 12월 6일, 뱅가드 위성을 발사하며 명예 회복을 시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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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가드 위성을 실은 TV-3(Vanguard Test Vehicle-Three) 로켓은 고작 1.2미터 떠오른 뒤 주저앉으며 장렬하게 산화.


이 망신스러운 장면은 전세계로 생중계 되었고, 사상자는 없었지만 소련에서 공식적으로 티배깅용 조문을 보내기에 이른다.


물론 스푸트니크가 보낸 동정은 동료 인공위성과 로켓의 사망에 대한 슬픔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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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들아_진작에_이랬으면_망신_안당하고_좋았잖아.jpg)


굴욕을 맛본 미국은 결국 육군의 폰 브라운에게 헬프를 요청.


1958년 1월 31일 익스플로러 1호를 쏘아 올리며 간신히 체면치레를 하게 됩니다.


익스플로러 1호는 스푸트니크와 달리 본격적인 측정 장비를 탑재하고 있었지만 그 크기가 스푸트니크에 비해 많이 작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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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내면 마더 로씨아가 아니지, 1961년, R-7 로켓을 개량한 보스토크 호에 인류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태워 보내며 또다시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것.


아 참고로 뱅가드 로켓은 58년 2월 5일에 한번 더 발사했다가 1분 후에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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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브라운 박사 인생 최후의 끌어치기, 새턴 v 로켓)


스푸트니크와 가가린이라는 2연타를 맞고 패닉에 빠진 미국 정부.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라곤 달 뿐


소련을 따라잡기 위한 간절함은 결국 인간을 달로 보내는 인류 최대의 돈지랄 프로젝트, '아폴로 계획'의 시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삐슝빠슝뿌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