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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널은 돌처럼 굳진 않았다. 정말로 이 경우에 '돌처럼 굳었다'는 진부하면서도 효과적인 비유를 쓰긴 어렵다. 가고일인지라 ‘돌처럼’ 굳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마부터 아래턱까지 ‘돌이 됐기’ 때문이다. 


“마리? 왜 갑자기 석화를?”


왜냐니. 육식 크리터와 만난 바람에 급하게 머리를 땅속으로 박은 타조와 정확히 같은 이유다. 위험을 피하는데 그다지 도움은 안 된다는 점까지도 정확히 같지만.


홍채의 석화를 억지로 풀자 고개를 갸우뚱하는 (전)여기사의 아름다운 얼굴이 코앞에서 보였고,


코의 석화를 억지로 풀자 싱그러운 장밋빛 머리칼이 원천인 것이 틀림없는 향이 몰아닥쳤고,


입술의 석화를 억지로 풀자 필사적인 부정이 튀어나갔다.


"무슨 말이야, 마샤? 들... 그게 뭔데?"


"어, 그거 해달란 말 아니었어요?


"아냐."


"뭔지 모른다면서 아니라는 건 알아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서부전선의 악몽, 전선의 악마, 아무튼 스물여섯살 꽃다운 프랑스 처녀에게 붙으면 안 될 온갖 흉흉한 별명의 소유자가 당황하는 모습은 마샤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허리를 꺾으며 웃는 마샤를 내려다보는 센티널의 얼굴은 창백한 가고일이 아니라 인간 기준으로도 새빨겠다.


"뭘 상상한 건진 몰라도 네가 상상하는 그런 건 아냐."


간신히 얼굴을 들어올린 마샤는 배를 부여잡으면서 키득거렸다.


"그치만 이렇게 물어봤잖아요. 마샤, 어느 정도 무게까지 들어 올릴 수 있어?라고"


"나는 네 근력이 궁금했을 뿐인데."


"처음엔 그 정숙한 마리가 정말 그걸 당하고 싶어서 그런 건가 하고 의심했는데 지금 반응 보니까 확실해졌잖아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 돌도 그 정도면 알 거예요, 섹스 얘기라는 거."


"다시 말하지만, 아니야."


"정말로? 아까부터, 정확히는 3시간 정도 근처에서 빙글빙글 맴돌다가 결심한 듯 나타나서는 한 손으로 몇 킬로그램까지 들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어떻게 기척을 알아챘... 아, 아니, 넌 위생병이니까 부축이라던가 할 때 중요한 요소잖아." 


"그야 평소 마리답지 않게 엄청 허둥댔으니까요. 눈 감고도 알겠던걸요. 한 손으로 50kg 정도 들 수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구체적으로 궁금했어요? 그거 마리 몸무게죠?"


퍼석. 얼굴은 아니었지만 몸의 어딘가가 또 확실히 돌로 변했다. 센티널은 마샤 앞에 계속 서있느니 차라리 참호 곤봉으로 무장한 기사단 중대 한복판에 알몸으로 던져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예시야. 전장에서는 정확한 수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버릇이 생기는 거 알잖아."


"아하... 저격수라 그런 건가요? 저격수한테 중요한 건 무게가 아니라 거리일텐데. 그리고 왜 한 손인데요?"


"두 명이 다치면 각각 한 손으로 끌어야 될 거 같아서... 그 중 한 명이 내가 될 수도…"


"전직 기사 마샤가 저격수 마리를 안아 올릴 손 말고도 애무할 손이 남아 있어야 하니까 아니고?"


마샤의 미소 띤 얼굴이 스윽 다가온다.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저격수에게 근접전은 대체로 상황 종료를 의미하는 법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상황 종료'가 센티널의 귓가에 속삭였다.


"마리는 변태."


퍼서석! 호라이즌 블루 빛깔의 군복 아래로 돌가루들이 후두둑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아하하! 미안해요, 미안! 장난이었어요! 석화 풀어요!”


마샤가 깔깔거리면서 센티널을 껴안았다. 갑옷과 돌이 부딪히다보니 푹신, 보다는 정면충돌에 가까운 포옹이었지만, 정수리까지 굳어버렸던 센티널의 얼굴은 이내 입술을 삐죽거리는 새빨간 얼굴로 돌아왔다.


“미안해요, 장난이 심했죠? 뭐 옮기고 싶은 거라도 있었어요?”


센티널은 그것이 자비인지, 장난인지, 어쨌든 정말로 최악의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필사적으로 얼굴을 돌리면서 센티널은 말을 쥐어짰다.


“…아니, 그 맞아, 모래주머니가, 그, 사실은 모래주머니가 아니고…”


마샤는 얄미울 정도로 화사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에, 네에, 이 전직 기사 마샤는 50kg 정도 나가는 모래주머니는 가뿐히 들어 올릴 수 있어요. 어디 있는데요?”


“저기…모래주머니가 아니라…아니, 그러니까 내 개인 참호에…”


“좋아요. 지금 갈까요? 50kg짜리 모래주머니가 있는 마리의 개인 참호는 어디인가요?”


“…저쪽.”


어떻게 마샤보다 먼저 앞서가서 모래주머니를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한 센티널의 손을 마샤가 부드럽게 잡았다. 부드러운 피부, 단단한 굳은살, 그리고 일자 흉터가 부드럽게, 바늘과 실 대신 르벨 소총을 쥐고 있는 손을 감싼다.


마샤는 당황해서 쳐다보는 센티널의 귓가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


“물론 딱 그만큼 나갈 귀여운 프랑스 아가씨도 들어 올릴 수 있어요. 물론, 한 손으로요. 갈까요?”


센티널의 귓가에 수도 없이 읽었던 구절들이 아주 잠깐 스쳐지나갔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지만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고린도전서 6:18) 어쩌고저쩌고. 시끄러워요, 사도 바울. 고린도 사람들한테나 설교하시지.


센티널은 어색하게 웃곤 마샤의 귓가에 속삭임을 되돌려줬다.


“저번보단 상냥하게 부탁해도 될까?”


킥 하는 기사의 웃음이 감미로웠다.


“자신은 못하겠는데요? 평소에 묶어두는 감정 중에 성욕도 있거든요. 그리고 나, 마리한테 향한 그 감정은 아주, 아주 많이 묶어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