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마리안의 살육은 결국 그녀를 악마에게로 이끌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 밤 마샤의 격렬한 분투 끝에 악마는 물러났으며 마샤는 지쳐 쓰러졌다.
다음날 깨어난 마리안은 온몸에 격통을 느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상황을 파악한 마리안은 충격에 졸도했으며 둘의 상태를 염려하여 결국 아무도 방을 치울 수 없었다.
"세상에나 그 독실하던 처자가..."
"대의가 무엇이건 죽음으로 이끄는 일은 지옥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악마에게 잡아먹히는 공포라니, 제때 찾아오지 못해 정말 아쉽네요."
여기저기 수근거리는 가운데 타임키퍼 버틴이 심호흡하고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언제까지고 둘을 방치할 수는 없는 상황, 이 시각까지 누군가 방문을 열고 나오지 않는다면 자원한 인원이 방으로 들어가 상황을 수습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돌입하기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은 가운데 힘없이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에 붉고 검은 타박상의 흔적이 남은 채 마샤를 끌고 알몸으로 비틀거리며 나오는 마리안의 모습에 캠벨과 드루비스가 가고일을 부축해 의무실로 옮겼다. 에즈라와 카카니아가 역시나 사투 끝에 곳곳에 상처를 입고 옷가지가 벗겨진 마샤를 들고 뒤따랐다.
버틴은 방을 정화하느냐는 질문에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홀로 방문을 열어 안을 엿보았다. 몇초 뒤 버틴은 방문을 굳게 닫고 소네트에게 방문을 봉인하라고 말했다.
안에 무엇이 있건 악마의 잔재일 것이라 짐작하며 유사시를 대비해 모였던 인원들은 각기 발걸음을 달리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안과 마샤는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둘 다 안에서 어떤 사투를 벌였는지 답하기를 거부했고 일은 그렇게 관심에서 벗어나는 듯 했다.
"질책하려는건 아니야, 하지만 확인해두고 싶은데 네가 했던 일 맞지?"
"마스터, 그날 난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는걸?"
"다시 말하지만 난 이 일로 너를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오히려 고맙다면 고마운 일이니까. 분명 그날 네가 그 방에 있었던건 아니지만 그 이전에 마샤와 가깝게 지냈던 것도 사실이지."
"원래라면 그 가고일 아가씨와도 친근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뭐, 독실한 종교인이기 이전에 악마의 유혹을 받고 있는 와중에 악마와 가깝게 지내기는 어려웠나 봐."
"그리고 마샤는 줄곧 마리안의 상태를 우려해 왔고."
"맞아, 그건 예고된 일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일에 나만큼이나 전문가가 또 있겠어?"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왜 마샤를 도와준거야?"
"단순히 부탁하는데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웠던 것도 있고, 가방 속에서 씁쓸한 일이 없었으면 하던 것도 있고... 그리고 만족스러운 상황이 불쾌한 방식으로 무너지는게 달갑지 않았달까? 가방에서 지금 당장 배를 곯을 일은 없지만 마스터에게도 식사의 만족감이라는게 있잖아?"
"타당하고 합리적이네, 그럼... 그.. 그런...방식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거야?"
"마스터도 알고 있구나... 하아, 결과가 말해 주듯이 효과는 분명 있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크흠... 작동하는 건지는 말해줄수 있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알고있을 만한 거랑... 이것 저것 조합해서 생각해 볼 때 뻔히 예상되는 것들이랑... 마스터 두번째 서랍에 들어있는 잡지에서 뻔히 봤을거 아냐! 아무리 나라고 한들 직접 말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는 법이라고!"
"미안... 잠깐, 잡지는 아무한테도 말 안 한거지?"
"안 했어."
"휴우, 그런데 마샤는 다른 방법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을것 같은데, 다른건 몰랐던거야? 아니면 일부러 말을 안 해준거야?"
"아니? 처음부터 그 의무관 아가씨가 이런 쪽으로 부탁한 거였어. 이런 말 하기는 미안하지만 나라면 알고 있을것 같다면서 만약을 대비해 알려달라고."
"?"
"으읍! 마-마샤 난 이제 제정신이야 그러니까 또 이럴 필요는 없다고 읍!"
"아니요 사랑하는 마리, 언제까지고 고집을 부리려는지. 다시 총을 들고 악마에게로 가려는 나쁜 아이는 벌을 받을거에요.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다시는 살인같은 나쁜 생각 하지 못하도록 마마의 젖을 더 먹어야겠어요."
"나는 해야 하는 일이 있어 제발-"
유아로 떨어지기 싫은 가고일이 한껏 저항한다 한들 그날 이후 쇠약해진 몸뚱이로는 전쟁터에서 날고 기던 기사의 완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한 악마가 실패한 곳에서 다른 악마는 성공의 과실을 포식하고 하루 하루 그 결실을 즐길수 있었다. 물론 악마와의 거래가 치르는 대가는 가볍지 않지만, 그 값을 치루는 것은 수많은 육아용품과 라플라스의 값비싼 실험품을 포함해 변태적 플레이를 위한 도구들에 대한 청구서를 처리하고 드디어 타임키퍼가 성비 붕괴로 인한 마도학자 쇠퇴의 해결법을 찾은거냐는 주변의 조롱을 감내해야 할 버틴이지 악마가 아니다.
냉혹한 저격수이자 독실한 가고일인 마리안의 생일을 맞아 이 글을 헌정합니다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