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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항상 단조롭다

알지 못하는 흐릿한 광경, 기억나지 않는 목소리, 그것들은 줄곧 달라지고는 한다.

꿈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로 멍하니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소네트...는 아니다. 아니라는건 알고 있지만 뭐라고 부르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다. 소리내어 따라해 보려고 한들 말이 되지 않는 한순간의 느낌 뿐.

오로지 깨어난 후에야 그게 꿈이라는걸 알기 마련이다. 내가 땅에서 솟아나거나 하늘에서 떨어졌을 리는 없으니 내게도 부모님이 있었겠지, 사고이건 의도적이건, 눈물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포대기 든 바구니를 내려놓고 숨죽여 달아났건 아니면 무심하게 손끝에서 떨어뜨렸을 뿐이건,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헤지고 닳아버린 머나먼 옛적의 기억은 깊은 무의식과 뒤섞여 글에서 읽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소리들과 뒤섞여 나타났다.

그 중 하나에는 정말로 내 부모였던 이들의 모습이 있었을까? 그렇다 한들 이제는 진짜 기억을 분간할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번 꿈은 특별하다. 폭풍우에 쓸려나간 사람들처럼 형형색색으로 일그러져 손을 대었다간 곧바로 산산조각나 흩어질 것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직 따뜻한 온기만이 전해져 오는 꿈이라니, 이런건 처음인데. 물론 꿈 속에서 꿈이라는걸 의식하고 있는 것도 기억하는 한은 이제껏 없는 일이지만. 어쩌면 폭풍우를 악몽으로 칠 수 있을까?

 

'- -- -- - -'

 

흐릿한 노랫소리, 어딘가에서 들어봤던 기억이 나는데.. 익숙하고 편안한 목소리야 가사가...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달콤한 노래, 어머니가 불러주던 달콤한 노래

 

정말... 이상한 꿈... 아니 들어본적 있는 목소리야 분명

 

"일어났구나 소네트, 피곤하다면 조금 더 잠들어 있어도 좋단다 얘야. 버틴은 내일 아침까지 방에서 나오지 못할 테고 네게도 휴식은 필요하잖니."

 

뺨에서 온기가 떠나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꿈결에 들려왔던 포근한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옆에 있었다. 불이 꺼진 방의 침대 바로 옆, 탁자에 놓인 램프가 비추는 가까운 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자애롭게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들어 있었던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 만큼 조용히 빛을 비추는 램프는 오직 그 귀부인에게 닿을 정도로만 어둠을 몰아냈다.

 

"부아닉 부인, 여기는..?"

 

여기가 자신의 방이 아니라는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방에는 부드럽고 안심되는 향기가 났고 지금껏 따스한 포대 역할을 해준 침대만 해도 자신의 방에 있는 것 보다 훨씬 값비싼 고급품이라는게 눈에 보였으니까. 방 저편에서 보석인지 유리일지 모를 반짝임도 보였지만 금방 부아닉 부인의 옷차림에 세공된 보석들의 색채에 가려졌다.

 

"내 방이란다, 틸드가 돌아오면 같이 지내려고 좀 공들여 준비했거든. 여기서 지내는건 그리 길지 않겠지만 잠깐이라도 딸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귀중하잖니. 오늘은 딸아이가 어릴적부터 가장 아끼는 친구에게 칭찬이나 보답이라도 해 주려고 준비해 보았단다."

 

“감사..합니다 부인.”

 

여전히 기품있는 모습으로 따듯한 미소를 건네는 부아닉 부인은 찬찬히 당신의 손을 내밀어 내 손에 포개었다. 꿈결에서 느꼈던 온기가 재단 조사원으로 지내며 상처가 나고 아물고 굳은살이 생기기를 반복한 거친 손에 겹치며 어딘가 착잡한 아쉬움을 남겼다.

가장 현실에 가까워 보였던 환상은 가장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었으며 나는 언제까지고 그걸 가질 수 없을거라는 아쉬움을.

 

“실례했습니다 부아닉 부인, 오늘은 감사했어요. 읏!”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빼내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느껴지는건 자신의 손을 끌어당긴 베릴의 부드러운 가슴이었다. 어릴적의 마틸다를 떠올리듯이 자신의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댄 베릴에게 당황스러움을 넘어 얼굴이 새빨개지는것만 같았지만 뭐라 말할수도 없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촉감 사이를 아이에게 속삭이는 것처럼 조곤조곤 스며드는 베릴의 목소리가 타고 흘렀다.

 

“아직 네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단다 소네트, 틸드가 방어선 학교 시절부터 네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꺼냈는지, 그 애가 보내오는 편지에 소네트라는 이름을 얼마나 꾹꾹 눌러 적었는지 모르겠지. 그 아이에게 너는 항상 앞에서 빛나는 별이었단다. 항상 올바르고, 성실하고, 뛰어난 소네트, 그 애를 뛰어넘어 보이겠다면서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기특했는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부아닉 부인의 말투와 몸짓은 달라지는 바가 없었다. 여전히 자식의 첫 옹알이를, 혹은 상장을 받아오던 날을 기억하듯이 부드럽고 차분했다. 하지만 혼란스러웠다, 틸다가 종종 자신에게 경쟁심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어머니에게 항상 그 이야기를 했다고? 혹시 자식이 받았어야 할 최고의 자리를 빼앗아 갔다고 화를 내시는건가?

 

“혹시 화가 나신거라면...”

 

“아니야, 아니란다 아가야. 네가 틸드를 깔보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도 알고 항상 나를 놀래키려고 노력한 틸다의 앞에서 목표가 되어주었다고 해서 미워하는것도 아니야.”

 

별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 머무르던 생각에 답하는 부인은 오히려 방금 전보다 더 생그럽게 웃어 보이고 있었다.

 

“내가 좀 뛰어난 점술사라서 말이야. 틸드에 관련된 일이라면 보통은 점을 칠 필요도 없지만.”

 

“...틸다가 어머님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었어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어머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뛰어난 점술가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어머님에게 증명해 보일 것인지 이야기하고는 했죠. 어머님께 제 이야기를 한 줄은 몰랐지만요.”

 

“그랬구나. 그런데 소네트, 틸드는 방어선 학교에 전학하기 전부터 너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했단다.”

 

“네?”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처음 틸드가 화사하고 빛나는 백색으로 차려입은 천사같은 주황빛 머릿결의 여자아이에 대해 쏟아내던 날 나는 벨기에의 공주라도 방문한건가 싶었단다. 어찌나 흥분해서 내게로 달려왔는지 정말 동화속 공주라도 마주한 것 같았다니까. 수완도 좋고 욕심도 있는 우리 틸드가 그렇게 한눈에 반한것처럼 방방 뛰면서 어쩔줄 몰라한 일은 참 적었는데 말이지. 어린이 마도술 경연대회에서 수상했을 때도, 에펠탑 위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바라볼 때도 그만큼 눈이 빛나지는 않았지.”

 

옛날의 좋은 일을 기억하듯이 나른한 목소리로 전해져 오는 소중한 친구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을수록 보이지 않는데도 뺨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틸다에게 머나먼 나라에서 온 천사나 공주처럼 보인 그 주황머리 여자애가 누군지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틸다에게 공주님처럼 보였을 그 운 좋은 여자아이가 나였다면, 방어선 학교에서 수석이라는 명예로 학교 밖 세상에 자신을 선보일 기회를 얻은 보잘 것 없는 소네트라면, 그렇다면 왜 부유한 부모님 슬하에서 재능이 꽃피우기를 기대받으며 어머니의 손을 잡고 파리 사교계를 누볐거라고 장담하던 친절하고, 성실하고, 귀여운, 그리고 때때로 종잡을 수 없는 나의 허물없는 친구가 빈말로라도 호사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각박한 방어선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 수밖에 없었으니까. 학생의 절반은 자신처럼 오갈 곳 없는 고아이고 나머지 절반은 궁핍한 마도학자 가정에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자식을 보내는 곳을.

어린 시절에는 별 생각 없이 넘겼던 의문이였던 것이 되돌아와 나의 귓잔등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저... 정말로 죄송해요 저 때문에 틸다가...”

 

“사과할 필요 없단다 얘야, 그날 파리에서 한껏 차려입고 행진하던 아이가 내 딸을 꼬드기려는 의도로 그랬을리 없다는건 누구나 알 수 있고 나도 틸드가 해를 입지는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고서야 방어선 학교에 들어가야겠다는 틸드의 바램을 들어준 거니까. 몇일 밤을 지새우며 수정구를 들여다 보아야 했지만.”

 

허물 없이 드러내 보이는 부인의 미소는 점점 섬뜩하게 변해갔다. 부인에게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은 백치와도 같았던 나의 무지였고 내 행동이 불러온 결과가 나의 소중한 친구를 어디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무거운 깨달음이었다.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부채에 대한 청구서가 갑자기 날아든 것처럼 점점 어깨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제가 아니었다면 틸다는 훨씬 행복했을거에요. 어차피 가족이라곤 없는 저와 다르게 가족과 함께 지내고, 절 이기지 못했다고 좌절할 일도 없고, 방어선 학교의 딱딱한 교실이 아닌 파리의 저택에서 누구 하나 부러워할 일 없이 풍요롭고 화려한 삶을 살았겠죠. 저는 틸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 애의 발목에 걸린 족쇄나 다름 없었네요...”

 

“어쩌면.”

 

뒤늦게 자수한 피고에 대한 평결은 차갑고 무심했다.

 

“하지만 너는 그 아이의 삶을 어떤 부귀도 해줄 수 없을 정도로 더없이 풍성하고 화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단다. 이제부터라면 말이야.”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본 베릴의 보석 장식에는 아직 눈물이 새어 나오고 있는, 놀라움에 찬 녹빛 눈동자가 비쳐 있었다.

 

“네가 그 아이의 가족이 되어 준다면 우리 틸드는 너를 그 어떤 세상의 부와 명예로도 바꾸려 하지 않을거란다. 어머니로서도, 미래를 점치는 점술사로서도 장담할 수 있어. 그리고 네게 자신이 베풀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풀어 주겠지. 부귀, 영화, 닳지 않는 애정과... 영원할 가족을.”

 

분명 뭐라고 답해야 했지만 머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많은 진실이 한 순간에 닥쳐 아무것도 처리할 수 없었다. 눈에서는 아직도 소금기가 새어 나왔고 틸다의 어머니가 맞잡은 손은 타들어가듯이 뜨거웠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그 애를 가족에게서 떼어 놓고, 심지어는 그 모임의 다른 친구들처럼 사라지게 할 뻔한 거라면? 그 애를 다시 예전처럼 스스럼 없이 대할 수 있을까?

 

“네가 나쁜 거란다 소네트 양, 이렇게나 사랑하는 우리 딸의 마음을 이제껏 몰라주다니.”

 

‘그렇게 음란한 몸으로 내 아이를 유혹했으면서 여태껏 모른체 하다니 네가 나쁜거란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분명 그 말 뒤에 펜던트를 꺼내서 나를...

 

“저를 여기로 데려오시기 위해 제게 뭘 하신 거죠?”

 

“아무것도, 그저 몸의 피로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했을 뿐이란다.”

 

“그런 정도로 훈련받은 조사원을 기절시킬수는 없을 텐데요?”

 

좀전까지의 꿈결에 물든 태도가 돌연 바뀌었음에도 부아닉 부인에게는 변화가 없었다. 다 예상했다는 것 같은 태연함은 석연찮고도... 불안했다. 이건 종종 마틸다가 이야기하던 자상하고 능력있는 여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귀한 딸을 홀렸다고 책망하는 것 같지도 않다는 점이 더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마치... 사냥감이 함정으로 걸어들어가는것을 보면서 연민을 느끼는 사냥꾼처럼.

 

“정말인지 내가 확인하게 해주렴.”

 

“읏! 아앗...”

 

희고 부드러운 손길이 어깨를 타고 흘렀다. 불에 데이기라도 한 양 온 신경이 곤두서고 반응하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마도술? 아니야 마도술의 흔적은 없어. 그저 가볍게 쓸어 내리는 것에 불과한데도 이런 느낌이 들었다고?

 

“불쌍한 소네트, 다른 사람의 손길을 느낀게 언제인지 기억하니?”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사람과 피부를 맞댄 일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이전 동료들이건, 재단에서, 혹은 임무 중에 만난 이들이건, 심지어 가장 가까운 버틴까지도 직접 맞닿는 일은 없었다. 그럴 필요성이 없었고 그럴만한 상황도 없었다.

 

“내가 돕게 해주렴”

 

부인은 더 이상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 대신 몸을 떨며 어쩔줄 모르는 나에게 우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침대보에 중심이 하나 더 생겼다가 둘이 합쳐졌다. 아무런 대답도 몸짓도 하지 못하고 가쁜 숨을 내쉬는 나의 등에 차갑고 촘촘한 광석의 감촉과 부드러운 피부결이 느껴졌다. 뒤에서 끌어안는 부인의 양 팔이 하나는 옆구리를, 하나는 어깨를 짚는 것이 느껴졌다. 그 온기란, 한없이 왜소하게 만드는 온기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진정하지 못하는 나약함이란.

 

“불쌍한 소네트, 그렇게 열심이었는데도 충성스러운 강아지가 받는 만큼의 보상조차 받을수 없었다니. 아무도 가까이 다가와주지 않았구나. 누구에게도 손을 잡고, 비밀을 속삭이고, 온기를 나눌 수 없었구나. 한 번만이라도 돌아보았다면 언제나 자신을 내어줄 아이가 있었는데도.”

 

부인의 손 끝이 내 쇄골에서 가슴으로, 다시 배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귓가에 부인의 뜨거운 숨결이 불어왔다. 사람과 몸을 맞대는 것이 언제였지? 그런 적이 있었던가? 혼란스러운 머리와 달리 몸은 너무도 정직했다. 한번도 충족된 적 없는 유년기의 본능과 스킨십에 대한 굶주림이 심장을 두들기고 허파를 틀어 쥐었다.

 

“틸드도, 나도, 너의 가족이 되어 줄 수 있단다. 소네트, 우리 가족이 되지 않겠니?”

 

꿈결에 느꼈던 어머니의 것과 부인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고, 요람 속에서 느꼈던 듯한 손길에 녹아 내리는 와중에 단 한 사람의 이름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버틴... 제게는 버틴이 있어요.”

 

그리고 손길이 멈췄다. 온몸을 타고 흐르던 전율이 그치자 안도감보다도 아쉬움이 먼저 찾아왔다. 그리고 고조된 가슴이 가라앉기도 전에 반짝이는 빛이 눈길을 끌었다. 부인의 손 위에 빛나는 수정구가 올려져 있었다.

 

“타임키퍼는 내일 아침까지 방에서 나오지 못할거란다. 직접 보려무나.”

 

‘미안하지만 버틴은 나와 내일을 약속했어요.’

 

‘마스터는 나랑 밤을 보낼거거든, 나한테 동정녀 역할을 부탁했단 말이야!’

 

수정구 속에 비쳐 보이는 모습은... 버틴이 두 가방 속 친구들에게 붙잡힌 모습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버틴을 끌어 당기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타협의 여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버틴은, 버틴은 지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타임..키퍼...”

 

“아무래도 시간이 되었나 보구나.”

 

수정구에 비치던 버틴의 방의 모습이 갑작스럽게 떨어진 물방울에 흐려지자 그것을 건네었던 손이 그것을 거두어 갔다. 그리고 온기가 느껴졌다. 더 강렬하고 부드러웠고, 가까웠다. 입술에 느껴진 살갗의 감촉이 지워지기도 전에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본 부인은 입술을 훔쳤다.

 

“걱정하지 마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단다. 안심해도 좋아 아가야.”

 

다시 의자로 돌아가며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분명 내 모습은 어머니가 떨어지기를 원치 않는 울보 아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겠지.

그리고 허겁지겁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다음은, 벌컥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

 

“엄마? 급한 일이라니- 세상에 소네트? 엄마랑 소네트가 여기 왜”

 

“우리 딸, 어서오렴. 딸이 그렇게 칭찬하던 소네트를 만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었어.”

 

“엄마???”

 

“우리 딸이 소네트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방어선 학교에 가서 그 애를 만나야겠다고 어찌나 떼를 썼는지, 정말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거든. 우리 딸 가까이 오렴,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인사해야지 않겠니?”

 

아, 이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겠어

 

“소네트! 세상에 울고 있는거야? 어디 아프거나 한건 아니지?”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이걸로 조금은...

 

“틸다야.”

 

내 목소리는 완전히 잠겨서 빈말로도 듣기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나는... 네가 나 때문에 방어선 학교에 들어온줄은 전혀 몰랐어.”

 

“무 무슨! 난 전혀 그런적 없어! 아니 나는 널 이기고 1등 자리를 차 차지하려고 전학한 거라고!”

 

“네가 앞에서나 뒤에서나 날 신경써주는건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난 네 마음을 모르고 지금껏 기다리게 했지."


"틸다야,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면 내 연인이 되어줄래?”

 

눈물 젖은 눈으로 올려다 본 틸다의 모습은 얼굴이 달아오른 상태로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줘서 고마워, 내 사랑.”

 

다시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이번에는 더 길고, 더 달콤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섞여 들어가는 키스였다.

그녀의 아이들이 황홀한 순간에 빠져 있는 사이 어머니는 차분히 일어나 방 밖으로 나왔다.

조용히 문이 닫히고, 베릴의 마도술이 반짝임과 함께 문의 잠금 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베릴은 만족스럽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성스럽고 축복받은 날, 그녀의 아이들이 기억에 남을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마틸다 부아닉과 소네트 부아닉, 베릴 부아닉에게 이 글을 헌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