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니 루부스카? 이제부터 나는 표를 구하기위해 떠날거야. 열차가 오기까지는 3일이나 남았으니까."
백발의 소녀가 붉은 빵모자를 깊게 눌러쓴 소년에게 몇 번이나 당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녀는 소년을 혼자 남겨 두는게 불안한지 뒷부분을 이어가지 못 했다.
"괜찮아. 코르부나도 알잖아?"
소년은 당당하게 피리를 돌렸고 이에 소녀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금세기 가장 용감한 나의 흡혈귀야."
소녀는 작게 속삭였다.
그러고 단도가 든 검집을 가지고선 누더기가 된 망토를 걸쳤다. 망토의 조각은 소년의 옷에 자연스럽게 꿰어져있다.
소녀는 불안한지 몇 번 씩이고 고개를 돌렸고
소년은 그 때 마다 붉은 눈과 피리를 돌리며 당당하게 서있었다.
소녀는 소년이 안 보이자 단도를 꺼내들었다.
은으로 재련된 단도였다.
단 하나를 위해 재련된 검.
거기에 비치는 건 그 의도에 정확히 반대되는 존재였다.
붉은 눈은 잠시 그 칼에 비쳤고 다시금 녹색 눈으로 돌아왔다.
카르부나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면서 역을 나왔다.
"재단에서 사람이 온다고 했지. 77분대였나 71분대였나?"
소녀는 기억을 되새기며 걸어갔다.
===
왈라키아 대공 아놀드 5세의 마지막 후손이자 초대 아르제슈 공작 겸 아르제슈 성의 주인 사바노바치의 유일한 후계자, 루부스카.
그 아이의 가족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이 세계를 탐험하다 우연히 루부스카의 가족이 되었다.
정말 허망하게 죽은 전생, 나는 애석하게도 마지막으로 플레이한 게임인 이 리버스 1999의 세계로 전생했고 현재 시간대가 어느 시점인지 파악도 못 한 상태에서 나의 종족을 겨우 파악할 수 있었다.
흡혈귀.
마도학자.
그렇게 나를 부르는 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진조 흡혈귀의 말석이자
동족의 심판자이자 구원자이시며
소르부나 공작령과 어던 백작령의 정당한 주인이시며
밤의 송곳 기사단의 15대 단장이신
카르부나 여공전하.'
로 시작하는 길고 현학적인 편지였다.
핵심 요약을 하면 지금 흡혈귀는 재단파와 재건파 그리고 방관파로 나누었고 같이 재건으로 가던 방관으로 남으란 편지였다.
재건행은 솔직히 끌리는 선택지가 아니였다. 그야 원작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직장이기 때문이다.
그럼 재단행은 어떤가? 솔직히 끌리긴 했지만 그 정치 복마전에 들어가기엔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일단 나는 방관행이 옳다 느꼈다. 다만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다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야 될 문제다.
지금 시급한 건 시간대와 살 곳이었다.
뭐 솔직히 시간대가 확확 바뀌는 스토리여서 시간대의 문제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살 곳은 지금 내가 깨어난 곳을 거점으로 삼는 방법도 있긴하나 폐허를 집으로 삼기는 좀 그러지 않은가? 나무 판자가 다 썩어 문드러졌는데.
근데 여공이라면서 이런 곳에서 사는거 말이되나?
나는 의문을 뒤로하고 보이는 짐들을 챙겨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옷과 망토, 약간의 식량과 돈.
그리고 짐이 담긴(아마 내것 일 것이다.)가방.
눈에 띄고 싶다고 광고를 하는 곡선 문양이 아릅답게 각인된 빛나는, 그와 대비되게 단순한 모양의 검집에 올라가 있는 단도였다.
나는 몸이 기억하는 방식대로 검집을 허리에 차고 검을 잡았다.
검은 소름돕게 손에 익숙했다.
"...그렇게 채비를 끝마치고선 달빛을 벗 삼아 사흘내리 걸어서 이곳에 도착하게 된 거랍니다!"
놀랍게도 말이죠.
사흘내리 밥을 못 먹어서 굶은 상태였던 나를 루부스카가 발견해서 구해줬고 여태까지의 여정을 설명했다.
물론 흡혈귀라던가 대공이야기는 빼고 적당히 각색했다.
"그럼 언니는 그 먼거리를 떠돈거야!? 저기 이름이 뭐야? 아 맞다! 크흠! 나는 루부스카야!"
루부스카는 신나게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루부스카는 이런 자기 소개를 더 좋아하겠지?
나는 일어서서 연극조로 말했다.
"본인은 위대한 진조 흡혈귀의 말석이자
동족의 심판자이자 구원자이며
소르부나 공작령과 어던 백작령의 정당한 주인이며
밤의 송곳 기사단의 15대 단장인
카르부나 여공일세."
달도 붉은 날 밤 두 흡혈귀가 만났다.
- dc official App
댓글 0